# 42
42화. 나도 건물주 (8)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 대규의 빈자리를 쳐다보던 정현은 밖으로 나왔다.
“바로 회사로 가지.”
가게 밖으로 나온 정현은 자동차에 오른 뒤 운전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동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저런 작은 식당 주인들에게 굴지의 제일푸드시스템이 프랜차이즈를 하자고 하면 백이면 백 무조건 오케이였다. 오케이를 넘어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감격하는 게 다반사였다.
‘아무래도 젊은 녀석이 단번에 인기를 얻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군.’
정현은 대규의 태도를 젊은 사장의 거만함이라고 판단했다.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자구.’
정현은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탕꼬의 건물을 쓰윽 쳐다봤다. 심상치 않은 눈빛이었다.
‘그나저나 회장님께서 불호령이 떨어지겠구먼.’
* * *
다음 날 브레이크 타임.
대규는 상민과 진희가 있는 기존의 탕꼬로 향했다.
요즘 새 가게에만 있거나 건물 알아보러 다닌다고 돌아다니느라 장사 시간에는 자주 들르지 못했다. 마감이 끝나고 밤에만 만나서 매출 보고만 받았을 뿐이었다.
점심도 같이 먹을 겸 브레이크 타임에 상민에게 들렀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가게 문을 열자 마침 상민과 진희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대규를 보자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깍듯하게 인사하는 진희.
“진희 씨, 앉아서 밥 먹어요. 근데 다른 직원들은?”
“흠흠, 밥 먹으러 나갔어.”
헛기침을 하며 상민이 말했다.
대규는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너희 뭐 먹고 있는 거야?”
“상민 오빠가 만든 볶음밥이에요!”
진희가 웃으며 말하자 상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음, 저게 과연 맛있을까?
자신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맛있게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상민은 가만히 서 있는 대규에게 숟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대규야, 점심 안 먹었으면 너도 이리 와서 먹어.”
숟가락을 건네받은 후 호기심에 볶음밥을 떠먹어 봤다.
굶어 죽을 지경이 아니라면 안 먹는 것을 추천한다.
진희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저는 맛있어요, 상민 오빠!”
그 말을 듣자마자 상민의 입이 메기처럼 헤벌레 벌어졌다.
속마음은… 듣지 말자.
“그런데 대규야, 아니 사장님. 여긴 웬일이야?”
“그냥… 간만에 니들 얼굴 보고 싶어서 왔어. 장사도 잘하고 있나 점검하려고. 별문제 없지?”
“다 좋아. 건물이나 시설이 너무 낡은 거랑 좁은 거 빼고는.”
좁은 거야 뭐 어쩔 수 없다. 원래 건물이 이런걸.
그때 진희가 볶음밥을 먹다 말고 말했다.
“그것보다 사장님, 요즘 혼밥러들이 부쩍 늘었어요.”
“혼밥러요?”
“네.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요. 요즘 혼밥, 혼술이 대세잖아요. 1인 가구가 많아져서. ‘혼밥남녀’라는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고.”
그때 상민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많이 오는 건 좋은데… 혼밥러의 경우 1인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게 되서 회전율이 나빠지는 게 문제야. 게다가 혼자 먹긴 탕꼬 한 접시의 양이 많아서 대부분 남기거나 포장하고 가.”
진희와 상민의 말을 들어 보니 그런 손님들이 아니라 아예 혼자 식사를 하기 위해 탕꼬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았다.
이거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것 같은걸.
사실 탕꼬 한 접시는 혼자 다 먹기 좀 많은 양이었다.
‘흠, 새로 오픈하는 영등포 지점 중 한 층을 혼밥러를 위한 1인 식당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존 탕꼬 한 접시의 양을 좀 줄여서 1인 세트로 판매하는 거다.
‘하긴, 요즘 1인 보쌈도 잘 나가니까.’
1인 보쌈 역시 원래는 혼자 먹기 힘든 음식인 보쌈을 요즘 1인 가구가 많아졌다는 현실과 접목, 1인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탕꼬도 그런 식으로 판매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진희랑 상민을 만나니까 이런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는걸.
이들에게 더 물어봐야겠다.
“얘들아, 혹시 그거 말고 장사하면서 느낀 불편한 점이나 뭐 그런 거 없었어?”
그러자 진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사장님, 하나 또 있어요!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뭐예요, 진희 씨? 말해 봐요.”
“사실 탕꼬의 경우 탕수육 치킨이라는 음식 특성상 약간 집에서 먹는 야식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포장해 가는 손님들도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요?”
대규가 재촉하자 진희가 말을 이었다.
“근데 지금은 포장 손님하고 매장에 들어와서 먹는 손님하고 구분 없이 같이 줄을 서 있어서 손님을 받을 때 되게 복잡해요.”
진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새로 오픈한 탕꼬에도 포장 손님과 매장 식사 손님이 섞여 있어서 직원들이 고생하고 있었다.
‘흠… 영등포 지점 장사 준비가 끝나면 계약 기간 동안 이 좁아터진 곳을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으로 바꿔 버려?’
실제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은 건물 값이 치솟는 요즘 유행하는 장사 방식이었다.
널따란 공간도 필요 없고 주방 시설만 있으면 되니까.
그래서 요즘엔 카페나 간식, 디저트류 음식들의 경우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많이 생겼다.
어차피 현재 탕꼬는 입소문이 꽤 나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처음부터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으로 시작했다면 홍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테이크아웃 매장을 내면 포장 손님들도 그쪽으로 몰릴 것이다.
기왕이면 1인 포장도 가능하게 ‘컵’s 탕꼬’란 메뉴를 만들어서 판매해야겠다. 그럼 자연스럽게 포장 손님과 매장 식사 손님이 분리될 테고. 특히 도형의 건물은 내구도가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면 그만큼 안전에 좋지 않을 것도 같았다.
보강 공사도 조금 할 겸 계약 기간 동안만 포장 전문으로 시험 삼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번 제대로 검토해 봐야겠다.
컵’s탕꼬가 잘된다면 다른 아이템으로 새로운 브랜드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대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희와 상민에게 인사한 뒤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상민이 쫓아 나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규야, 건의 사항 하나 더 있다.”
“뭔데?”
“나 진희랑 계속 같이 일하게 해 주라. 응?”
그럼 그렇지.
“으이구, 알았다. 대신 열심히 해!”
“넵, 사장님!”
상민은 기쁜 목소리로 대답한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 오픈한 탕꼬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정말 오길 잘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얻고 가는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 샘솟았다.
그동안 너무 요리에만 집중해서 이런 덴 신경을 쓰지 못했다.
며칠 전 자신에게 찾아왔던 제일푸드시스템 기획본부장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요리와 경영은 다르다.
‘앞으론 경영 관련 공부도 본격적으로 해야겠어.’
물론 타르타로스에 갔다 온 다음에.
당장 오늘 밤이 소환되는 날이었다. 한 달이 이렇게 빨리 가 버리다니.
가게에 도착한 대규는 저녁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 * *
그날 밤, 대규의 오피스텔.
대규는 본격적으로 타르타로스 세계에 진입하기 전 그간 현실에서 이뤘던 일들을 돌이켜 봤다.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명당의 눈 스킬을 이용해 준 빌딩을 싸게 매입한 일이었다. 그것도 그냥 건물이 아니라 향후 재개발로 건물 값이 뛰고, 유동 인구가 확 오를 그런 보석 같은 빌딩을 10억이라는 싼 값에 매입했다!
물론 10억 중 7억이 대출이어서 그중 3억 원만 값을 치르면 되는 상황.
일단 1억만 계약금으로 걸었고, 한 달 뒤 나머지 잔금 2억 원을 치르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대규는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잔금을 벌써 치렀다.
지금 하루 매출은 4,200만 원 정도 된다.
새 가게 오픈 이후 총 벌어들인 돈은 약 5억 8,821만 원.
그중에서 직원들 월급과 재료비 등을 빼면 순이익은 2억 5,000만 원 정도 된다.
이미 잔금 2억을 훌쩍 넘긴 금액.
대규는 오늘 오후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해 잔금을 치르겠다고 말한 뒤 바로 2억 원을 계좌 이체했다.
게다가 최대호에게 영등포의 건물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명의로 소유하게 된 건물은 총 두 채.
한 달 만에 건물 두 채의 건물주가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다음은 공략집의 현황.
사실 한 달 동안 업데이트된 공략집의 기능은 현재 속마음을 듣는 것 말고는 찾아내지 못했다. 대부분 명당의 눈 스킬이 도움을 줬다. 물론 스킬 등급을 업그레이드하느라 젬스톤이 좀 들긴 했지만.
젬스톤이 안 쓰이는 곳이 없었다. 결국 젬스톤은 많을수록 유리했다.
‘타르타로스에 들어가면 무조건 젬스톤을 많이 모아서 온다! 그리고 공략집의 다른 기능들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타르타로스에서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의 점검이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최대호 녀석에게 넘겨받은 영등포 건물의 장사 준비를 하는 것.
최대한 빨리 내부 건물 인테리어 업자를 선정해 공사를 맡긴다.
매장으로 만들 2, 3, 4층 중 한 층은 혼밥러들을 위한 1인 식당으로 기획할 예정이다. 그렇게 하려면 1인 테이블이나 칸막이가 있는 바 형식의 테이블 등 특수한 인테리어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1인 식당들은 어떤 구조인지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건물 5층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사무실로 만들 것이다. 앞으로 점점 사업이 확장된다면 지금처럼 자신 혼자 모두 관리할 순 없을 테니까.
또한 입소문 양념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설비도 고민 중이다.
지점들을 본격적으로 확장시킬 경우 입소문 양념의 중요도는 매우 커진다. 지금처럼 대규가 혼자 수작업으로 양념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다.
‘공장처럼 양념 만드는 설비를 설치해서 만들면 좋을 텐데…….’
이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공장까진 아니더라도 생산 설비를 설치하는 것 역시 간단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러면 이제 타르타로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제2 타르타로스는 어떤 곳일까?
전에 안내인 여자에게도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알키오네오스 같은 강력한 몬스터가 떼거지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녀석들이 나올지도.
그래도 업데이트된 공략집과 가지고 있는 아이템, 장비면 어떻게든 이겨 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퀘스트가 하나 있다.
‘바로 최대호 자식을 처리하는 것!’
이번에 가면 그 자식을 확실히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제2 타르타로스가 어떤 지형, 환경인지 알 수가 없어 계획을 섣불리 짤 수가 없다.
일단 그 녀석은 기습을 위해 자신을 몰래 따라올 것이다. 일단 그 자식이 따라오게 만들 작정이다. 녀석이 생각하는 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줘야 할 테니까.
어쨌든 최대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녀석을 처리해야 한다. 어차피 타르타로스는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니까, 다들 녀석이 전투 중에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소환 때 성장시킨 성장형 아이템들의 효과도 시험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아이템들에 추가로 붙은 효과엔 애매한 설명이 많았다.
특히나 닥튈로이의 반지에 붙어 있는 ‘하급 저주 해제’.
정확히 저주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다. 저주에 걸리면 나에게 어떤 타격이 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혹시나 저주를 거는 몬스터가 앞으로 나타난다는 걸지도 모른다.
여태까진 육탄전만 하는 몬스터만 나타나서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마법 공격이라고 해 봤자 케르베로스의 꼬리용이 불꽃을 뿜어낸 게 전부였고.
생각하면 할수록 제2 타르타로스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자신은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는 비장한 표정으로 다짐을 한 뒤 침대에 누웠다. 옛날 접이식 침대보다 훨씬 푹신한 침대여서 그런지 눕자마자 몸이 기분 좋게 푹 꺼졌다.
그리고 주변이 암흑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