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화. 나도 건물주 (6)
대호의 사무실.
대호는 부하 조직원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서 배달된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부하 조직원들은 탕수육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며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 이거 존나 맛있겠는데.”
“똑같은 탕수육인데 이건 왜 이렇게 맛없냐?”
“무식한 새끼야. 저건 치킨 탕수육이라잖아.”
“탕수육이 씨발 다 똑같은 거 아니냐?”
부하들이 시끄럽게 굴자 대호가 눈에 힘을 주고 그들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밥 먹자.”
대호의 눈을 본 그들은 고개를 깍듯이 숙인 뒤 외쳤다.
“예, 형님!”
“형님이 아니라 사장님이랬지.”
대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든 걸 본 조직원들은 황급히 고쳐 말했다.
“아, 예… 사장님!”
대호는 부하 직원들이 보고 있는 핸드폰을 눈짓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뭐냐?”
부하 직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허리를 굽힌 채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엔 TV 프로그램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화면 상단에 ‘탕수육 치킨집의 신화 탕꼬’라는 자막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대호의 눈동자가 커졌다.
화면에 보이는 가게 사장의 모습.
조리복을 입은 대규였다.
‘씨, 씨발! 저 새끼가 대체 왜?’
현실에서 뭐 하는 새낀지 궁금했는데 식당을 하는 새끼였나. 그런데 이렇게 방송까지 타는 걸 보면 장사도 무지하게 잘되는 것 같았다. 차원의 틈에서 녀석에게 맞은 곳들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유명 방송에까지 나와서 잘난 척하는 꼴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부하 직원들이 대호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가게 돈 엄청 버는 것 같지 말입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우리도 물장사 말고 식당이나 차려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호는 눈치도 없이 떠들어 대는 놈의 얼굴을 자장면 그릇에 처박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이래라저래라야! 씨밸 놈이 많이 컸다. 사업 구상도 하고.”
날벼락을 맞은 놈이 그릇에 처박힌 채로 머리 위로 양손을 비벼대며 허우적거리다.
“크흡… 죄송합니… 흡흡, 살려 주세… 흡훅…….”
“이 새끼들이 오냐오냐해 주니까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옆에 있던 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십 도로 절하며 외쳤다.
“아닙니다, 사장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대호가 소리치자 부하들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탕수육을 먹기 시작했다.
그는 영상 속의 대규를 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저 자식은 차원의 틈과 타르타로스에서 온갖 보상은 혼자 다 쓸어 가는데 현실에서도 저렇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니.
정말 죽여 버리고 싶었다.
영상 속의 리포터는 이제 대규에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어떻게 이렇게 성공하실 수 있었던 거죠?”
앞치마를 입은 대규가 마이크에 대고 대답을 했다.
“저도 갑자기 이렇게 된 거라 좀 얼떨떨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고아로 자라 가난하게 자랐거든요. 그래서 홀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죠. 지금 이 가게는 제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일궈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인터뷰하는 대규를 보니 대호는 더더욱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칼침을 놓고 싶었다.
대호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김대규 저 자식을 힘으로 제압하는 건 무리다. 저 자식과 자신의 레벨 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럼 저 자식이 그토록 아끼는 저 가게를 망쳐 놓는다면?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야, 이 새끼, 어디서 장사하는지 알아봐.”
“넵. 지금 당장 검색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덩치는 대호에게 폰을 넘겨받고는 검색을 시작했다.
“신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신촌이면 신촌이지, 있는 것 같은 건 뭐야. 씨밸 놈이 제대로 안 하지?”
“아닙니다. 신촌입니다. 여기 찾았습니다.”
녀석은 폰으로 로드뷰를 통해 새로 이전한 탕꼬의 건물 주위를 보여 줬다.
“그래? 어디 봐. 천천히 돌려, 이 새꺄. 이건 곱창집이잖나. 똑바로 안 해!”
로드뷰로 골목의 정경을 확인하니 다른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형… 아니 사장님, 로드뷰라고 여기 사진이 전에 찍은 거라 그렇지, 같은 건물이지 말입니다.”
“알아! 알아! 로드… 부. 이 새끼가 어디서 잘난 척이야. 죽을래. 니가 그렇게 잘났어? 엉. 그럼 니가 오야붕 해! 이 새꺄.”
“사장님, 잘못했습니다.”
놈에게 폰을 뺏어 든 대호가 로드뷰 사진들을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방송에서 봤던 건물과 배경이 일치했다.
건물 주변을 확대해서 자세히 둘러보니 전선들이 아주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만약 몰래 가서 불을 지른다 해도 전선 누전으로 인한 화재 사고처럼 보일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론 그 자식에게 당한 것에 대한 분이 완전히 풀리진 않겠지만…….’
대호는 식사를 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당장 애들 불러 모아.”
* * *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퇴근 인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대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요.”
밤 12시, 장사를 종료하고 마감한 뒤 가게 문을 닫았다.
직원들을 퇴근시킨 뒤 대규는 매상을 점검했다. 이제 기존 탕꼬와 새로운 탕꼬를 합쳐서 하루에 벌어들이는 매상은 4,000만 원이 좀 넘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벌어들일 줄이야…….’
손님들이 양쪽 가게로 분산될까 조금은 걱정했는데, 역시 방송의 효과가 좋았다.
대규는 매상을 파악한 뒤 내일 쓸 입소문 양념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그 전보다 튀겨 내는 치킨 탕수육의 양이 배로 늘다 보니 양념도 그만큼 많이 들었다. 며칠 전에 만들어 놓은 게 벌써 비어 버렸다.
요 이틀 동안 가게 운영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새 지점 건물을 알아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입소문 양념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많이 만들어 놓자.’
타르타로스의 소환은 모레로 다가왔다.
요 이틀간 건물을 알아보기 위해 홍대를 돌아보긴 했지만 너무 넓어서 다 돌아보진 못했다.
물론 좋은 건물은 종종 눈에 띄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숨어 있는 명당을 찾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 당분간은 구역을 나눠 꼼꼼히 돌아볼 예정이었다.
“흠, 내일 돌아볼 구역이 어디였더라?”
대규는 입소문 양념을 만들면서 눈앞에 지도창을 띄웠다.
지도창에 홍대입구 근처가 쫙 떴다.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말고 이렇게 일반적인 용도로도 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게다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볼 필요 없이 바로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뜨니 요리하면서도 볼 수 있어 편리했다.
내일 돌아볼 구역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변에 파란 점 하나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뭐지?”
파란점은 빠르게 홍대입구 대로를 지나 신촌 로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또 다른 전사인가?
설마 이곳으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파란 점은 이제 로터리를 지나 자신의 골목 근처에 위치한 백화점 쪽 대로로 오고 있었다.
신경 쓰인다. 누군지 확인이라도 해 봐야겠다.
대규는 일단 만들어 놓은 양념을 냉장고에 넣어 둔 뒤 보관함에서 도약의 장화를 꺼내 신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도창을 띄우고 파란 점이 있는 곳을 향해 건물 옥상들을 내디디며 달렸다.
타타탓!
거의 다 왔다.
작은 건물 옥상에서 파란점이 찍힌 곳을 내려다봤다. 대로에는 사람 대신 까만색 자동차가 정차해 있었다.
차 문이 열렸고 몇 명의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그들은 트렁크를 열고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조수석의 문을 깍듯하게 열었다. 그리고 나온 건…….
‘최대호? 저 자식이 이 시간에 여긴 왜?’
대호는 트렁크에 있는 덩치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거리가 꽤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진 않았다. 속마음을 들어보려고 해도 거리가 있어서 안 들렸다.
가까이 접근해서 저 녀석이 뭘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겠다. 제1 타르타로스에서 추가로 받은 흑린갑의 투명화 옵션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흑린갑을 꺼내 입은 뒤, 땅으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들의 차가 서 있는 곳까지 도약의 장화로 순간적으로 다가가 가만히 서 있었다.
스스슥.
순식간에 투명화가 발동됐고, 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뭐야? 야,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냐?”
부하들이 대호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중 행동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지 말입니다, 사장님.”
대호도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무 이상이 없자 자신이 예민해졌나 보다고 생각하고는 부하들을 재촉했다.
“다 꺼냈냐? 새끼들아 빨리빨리 해.”
“예, 사장님.”
덩치들이 꺼낸 것은 휘발유와 신나가 가득 들어 있는 통이었다.
“그럼 가자. 사람들 있나 확인해 보고.”
“없는 것 같습니다.”
“조심히 옮겨라.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대호와 덩치들은 중간 골목 쪽으로 향했다.
이 자식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것보다 그들이 향하는 골목은 자신의 가게 탕꼬가 있는 방향이었다. 불안하다.
그때 최대호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김대규 새끼, 조금만 기다려라. 네놈의 가게는 이제 끝이다. 힘으론 널 못 이기지만 네놈의 가게는 제대로 망쳐 주지. 크크크.”
뭐라고?
“사장님,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만약 나머지 건물에도 불이 붙게 되면…….”
부하가 묻자 곧 대호가 그를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새끼! 안 걸리면 되지. 다른 게 타든 말든 알 게 뭐야. 보니까 여기 전선들도 존나 얽혀 있어서 화재 나기 딱 좋은 곳이더만.”
“아,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들은 이제 중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대규는 대호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저 자식! 감히 탕꼬에 불을 지르려고!
아무래도 방송을 보고 찾아온 것 같았다.
저 자식들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게로 가야 했다.
타다닥!
대규는 건물 외벽을 딛고 올라가 건물 옥상들을 점프하며 순식간에 탕꼬에 도착했다. 건물 옥상에 가서 내려다보니 녀석들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호는 불이 꺼져 있는 탕꼬 건물을 본 뒤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지 살피고는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가서 뿌려!”
부하들이 휘발유 통을 들고 건물 쪽으로 다가왔다.
대규는 도약의 장화를 이용해 건물을 타고 빠르게 놈들에게 다가갔다.
부하 한 명이 휘발유를 들이붓는 순간,
“어?”
퍽!
놈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대규는 나머지 부하들도 신속히 찾아가서 뒷목을 손날로 후려쳤다.
퍽!
“크윽!”
퍽!
풀썩.
“무슨 소리야?!”
대호가 건물을 향해 소리쳤다.
그때 대규가 양손에 기절한 부하들의 뒷덜미를 잡고 나타났다.
대규는 괴력으로 부하들을 최대호 앞에 던져 버리며 말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대호는 주춤거리다가 뒤에 있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비, 빌어먹을… 저 새끼, 죽여!”
부하들이 대규를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딱 봐도 비리비리한 대규의 외관을 보고 쉽게 제압할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대호는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고 있었다.
그는 대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부하들이 호되게 당할 것임을 알고도 내보낸 건 부하들이 당하는 사이 자신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퍽! 퍽! 퍽!
어둠 속에서 환영처럼 빠르게 스치는 대규의 주먹.
가장 먼저 맞은 부하가 쓰러지기도 전에 뒤에 달려 나간 부하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대호가 골목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대규는 이미 부하들을 다 작살내고 대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으으…….”
대규는 대호를 노려보았다.
참을 수 없었다.
다른 짓을 벌이는 건 그렇다 쳐도 자신이 힘들게 일군 탕꼬를 불태우려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최대호, 그때 맞은 걸로 부족했냐?”
대규는 천천히 대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