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나도 건물주 (5)
맛집 특공대 촬영 이후 탕꼬의 손님들은 엄청 늘어났다.
커다란 건물에 3층짜리 가게를 오픈해서 대기 손님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심지어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까지 먹으려고 찾아온 손님들도 있었다.
게다가 방송이 나간 날 탕꼬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처음엔 가게도 갑자기 커지고 고용 인원도 늘어서 정신이 없었는데, 열흘 정도 지나니까 좀 익숙해졌다.
주방 보조들에게 치킨 튀기는 걸 가르쳐 놓으니 대규는 상대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맛은 입소문 양념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기존의 탕꼬 역시 호황이었다. 진희와 상민이 아주 운영을 잘해 준 덕분이다. 그들은 생각보다 척척 손발이 맞아서 더욱 일을 잘했다.
가게가 커진 탓도 있지만 방송의 효과로 매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증거로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건물의 나머지 잔금 2억 원을 다 모으고도 남았다.
남은 돈으론 신촌의 번듯한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맨날 도형의 낡은 건물에서 접이식 매트를 펴고 자다가 작지만 아늑한 오피스텔에서 지내니 편리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대규는 벌써 다른 지점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점점 욕심이 났다.
벌써 현실에 온 지 26일이 흘렀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구나.’
성공해서 열심히 일하니까 시간은 후딱 흘러갔다. 옛날에 장사가 안될 땐 하루가 1년처럼 느껴졌는데.
4일 뒤면 타르타로스로 소환된다.
다시 소환되면 그곳에서 명당의 눈 같은 요긴한 스킬을 얻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젬스톤을 왕창 얻든지.
물론 남은 4일 동안 놀진 않을 것이다.
대규는 탕꼬 2호점을 낼 곳을 계속 고민해 왔었다.
예산과 거리, 기타 사항들을 고려해 적당한 지역을 쉬지 않고 알아봤다.
그리고 선정한 지역.
홍대.
신촌과 그리 멀지 않아 관리하기도 편할 것 같았고, 일단 지하철 역 근처라는 위치상의 장점이 있었다. 또 대학가 근처라 젊은 층이 많아 장사하기 유리했다.
직접 가서 명당의 눈으로 보물 같은 건물을 발견할 일만 남았다.
대규는 다음 날 장사를 직원들에게 맡기고 건물들을 알아보러 가게를 나섰다.
* * *
제일푸드시스템 회장 집무실.
마호가니 테이블 위의 태블릿 PC에서 맛집 특공대 탕꼬 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희승 회장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방송을 보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본부장, 그때 봤던 가게랑 다른 것 같은데?”
기획본부장 배정현이 태블릿 PC를 가져가며 대답했다.
“듣자 하니 새 건물로 이전해서 새로 가게 오픈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방송은 오픈에 맞춰 촬영했구요. 기막힌 타이밍입니다.”
배정현은 회장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면 유행처럼 떴다가 사그라질 가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방송 이후 매출 증가율은 급속도로 늘고 있구요. 회장님, 게다가…….”
배정현이 머뭇거리자 이희승 회장은 재촉했다.
“뭔가?”
“그게… 정보를 알아보니 저희 라이벌인 MBK 그룹에서도 이곳을 프랜차이즈 후보로 눈여겨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희 기획 팀에서는 이곳 탕꼬는 프랜차이즈 후보에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회장님만 좋으시다면 후보에 넣어 다른 후보들과 검토를…….”
“후보에 넣을 것도 없네.”
이희승 회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배정현이 묻자 회장은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그 반대야. 그냥 여기랑 계약해 버려.”
“예?”
“이곳으로 결정해서 계약하란 말일세! 다른 녀석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기 전에. 특히 MBK 녀석들에게 뺏기는 건 참을 수 없어.”
배정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회장이 의식하는 라이벌인 MBK 그룹을 언급한 효과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팀원을 보내 이번 주 안에 당장 계약을 맺으러 가겠습니다.”
“아니, 자네가 직접 가 보게.”
“제가요? 아, 예. 알겠습니다.”
* * *
영등포 뒷골목에 있는 5층짜리 건물. 간판 같은 건 없었다.
1층 로비에 붙은 건물 안내판에도 상호명은 없고 호수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5층의 복도.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들 세 명이 복도 끝 사무실 앞에 떡 지키고 섰다.
사무실 안은 널찍했다. 벽에는 위협적인 흑호(黑虎)가 그려진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엔 사장님들이 앉을 법한 삐까번쩍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가 결박된 채 죽은 듯 쓰러져 있고, 가운데 소파를 빙 둘러 여러 명의 덩치가 각목이나 쇠파이프 등을 들고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무실 한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두 남자.
테이블 위에는 건물 매매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두 남자 중 한 명인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그를 맞은편에서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남자.
최대호였다.
대호는 다리 한쪽을 척 올리고 담배를 꼬나문 채 중년의 사내에게 말했다.
“형님, 빨리 도장 찍으쇼. 이 건물만 넘겨주면 무사히 보내 줄 테니.”
“네,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 으윽!”
대호는 물고 있던 담배로 상대의 손등을 지졌다.
치이익-
손등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형님 아래 있는 애들 다 내 쪽으로 돌아선 거 모릅니까? 모르시면 제대로 알려 드리지.”
대호는 말을 마치고는 공포의 안광을 시전했다.
중년의 사내가 대호의 눈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숨을 들이켰다.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붉은 눈동자!
“제발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그 눈빛만은…….”
대호는 붉은 눈으로 조직의 두목 조영재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크크, 이봐, 형님 소리 해 줄 때 잘하자고. 괜한 가오 잡다가 맛 가는 수가 있어요.”
대호가 위협적으로 안광에 힘을 더하자 조영재는 결국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꺼내 계약서에 찍었다.
영등포 조직 중 영등포 시장과 역 근처를 장악한 보스. 맨주먹으로 흘러들어 20여 년간 밑바닥부터 구르며, 조직을 집어삼킨 근성의 보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집어삼켰다. 유흥가를 장악하며 세를 키우고 이제 곧 영등포 전체를 통일하려는 순간이었다.
조영재는 억울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자기를 따르던 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는 비웃고 있었다.
“어떻게 일군 조직인데, 크윽. 흑흑…….”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는 최대호.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요. 우리 형님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시는구먼. 새 술은 새 부대에, 얼마나 좋아. 선수들끼리 서로 바쁜 시간 낭비하지 않고 상큼하게 해결하고 말이야.”
조영재는 대호의 눈을 피하며 이를 갈았다. 이 복수는 언젠가 하고 말겠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도 모르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커지더니 손쓸 틈도 없이 당하고 말았다.
대호가 차원의 틈에서 대규에게 처발렸고, 그 탓에 제1 타르타로스에선 다른 영웅이나 전사들에 비해 안습할 정도로 레벨이 낮아 꼬랑지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곳 현실에선 달랐다.
현재 그의 레벨은 11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대규나 다른 전사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지만 이 정도만 해도 현실에선 이미 인간의 한계를 멀찌감치 뛰어넘은 수준이다.
차원의 틈에 갔다 온 것만으로도 그는 조직의 다른 녀석들을 차곡차곡 밟아 넘버2가 됐다. 물론 반항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공포의 안광을 써서 못 움직이게 한 다음 피떡이 될 정도로 패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한번 잡을 때 제대로 공포감을 심어 줘야 다른 놈들이 개기지 못할 테니까.
효과는 확실했다. 나머지 녀석들은 최대호에게 찍소리 못 했다.
말이 넘버2지, 실제론 넘버1이나 다름없었다. 두목 조영재는 대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짐작조차 할 수도 없었다. 대호는 갑자기 말도 안 될 정도로 힘이 세졌고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제1 타르타로스에 다녀온 대호는 본격적으로 이 조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는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두목 조영재를 만났다. 조직의 근거지인 그의 건물과 넘버1 자리를 넘겨받기 위해서.
도장이 찍힌 매매 계약서를 본 대호는 만족스럽게 영재에게 말했다.
“형님, 너무 서운해하지 마쇼. 그래도 제가 이렇게 퇴직금도 챙겨 드리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제 지방에 내려가셔서 조용히 사십쇼.”
말을 마친 뒤 1,00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영재에게 건넸다.
영재는 봉투 속 액수를 확인한 뒤 속으로 이를 갈았다.
건물은 못 받아도 20억은 되었다. 그런데 1,000만 원이라니. 날로 먹겠다는 심보였다.
‘씨발, 날강도 같은 새끼…….’
게다가 지방에 내려가서 조용히 살라는 말은 다신 이 조직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협박이었다. 영재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저 붉은 눈동자를 보니 감히 대들 수가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복수도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을 재건하고 건물을 되찾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된다. 친분이 있는 청량리나 강남, 그리고 동대문 상가 조직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다시 일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살아만 있다면 자신의 경험과 인맥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치는 건 시간문제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날 때였다.
“…알겠네. 챙겨 줘서 고맙네.”
영재는 돈 봉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영재가 복도를 나서자마자 대호는 옆에 있는 덩치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 녀석들과 함께 처리해 버려.”
“형… 아니 사장님, 그래도 한식구였는데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대호는 덩치를 쳐다보며 공포의 안광을 뿜었다.
“어설픈 동정이나 의리로 저 녀석을 살려 주면 언젠가 반드시 되찾으러 올 거야. 세상에 골치 아픈 것이 한물간 늙다리들이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거든.”
녀석은 공포에 부들부들 떨며 아부를 늘어놨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뒤처리도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덩치들은 영재를 쫓아갔다. 곧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대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로 들어가 과거 영재가 앉았던 삐까번쩍한 책상 앞에 앉아 척 두 다리를 올렸다.
세상은 힘 있는 자를 원하는 법이다.
고아원을 도망 나와서 15년 전에 이 영등포 시장으로 흘러들어 와 온갖 서러움을 당하며 지냈다. 자신은 이 힘의 세계에서 항상 불리한 쪽에 있었다.
쾌감에 젖어 있는데 덩치 중 한 명이 들어와 영재가 들고 갔던 돈 봉투를 건넸다.
“처리했습니다, 형님.”
“수고했어. 가 봐.”
대호는 돈 봉투를 받고는 보관함을 열었다. 그곳에는 현금 1억 원이 쌓여 있었다. 가방의 돈까지 합치면 총 1억 1,000만 원!
타르타로스에서 얻은 젬스톤을 현금으로 바꾼 것이다.
영웅들을 도와 기간테스 성 전투 참여 대가로 받은 젬스톤 10개와 몬스터 전투 중 몰래 가로챈 젬스톤 1개를 합쳐 현금으로 바꿨다.
“멍청한 꼰대. 내가 미쳤다고 이 피 같은 돈을 너한테 줄 것 같았냐? 내가 그 빌어먹을 세계에서 개고생하며 벌어 온 돈인데.”
자기는 꼬랑지에서 다른 녀석들과 죽어라 잡몹만 해치웠는데도 전투 참여로 인정돼 미션 보상 젬스톤도 얻었고, 레벨도 2단계나 올랐다. 물론 최하급 꼬랑지로 분류된 건 몹시 가오가 상하고 화딱지 나는 일이었지만 막상 젬스톤을 받아 현금으로 바꾸니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좋은 보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김대규, 그 개새끼…….’
몰래 뒤통수를 치려 했는데 그 새끼가 홀로 나대는 통에 그럴 기회도 없었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거인 알키오네오스를 혼자 잡는 모습을 보고 단단히 질려 버렸다.
젠장, 복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현실에 돌아와 조직 애들을 풀어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의 그 무식한 파워에 다들 나가떨어질 것이다. 어쩌면 조직 전체가 날아갈지도 몰랐다. 농담이 아니다.
“빌어먹을!”
대호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 쳤다. 책상이 산산조각이 났다.
조직을 먹어서 기쁜 것도 잠시, 그 새끼를 생각하니까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규에게 차원의 틈에서 맞았던 얼굴이 욱신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