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37화. 나도 건물주 (3)
진희는 오늘도 오픈 시간 2시간 전인 9시에 출근했다.
대규는 그녀에게 튀김 반죽 만드는 법과 튀김을 튀기는 법을 알려 줬다. 브레이크 타임 때 건물을 알아보느라 늦게 되면 그녀가 탕수육을 튀겨 장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규는 반죽 보울에 밀가루와 감자 전분을 7 대 3으로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에 약간의 식용유를 첨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튀김 반죽의 식용유는 기름에 튀겨지는 동안 반죽에서 빠져나가요. 그러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튀김이 되는 거죠.”
“그렇구나…….”
“이 정도 점도면 됐다. 이제 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튀겨 보세요.”
대규가 자리를 비켜 주자 진희는 환한 표정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녀의 속마음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너무 신난다! 주방에서 일하게 되다니. 열심히 해야지! 혹시 내가 사장님 뒤를 이어 부조리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호호, 그건 너무 나갔나…….’
대규는 그런 진희에게 일침을 놓았다.
“기름이 튀면 화상을 입으니까, 다치지 않게 집중하세요.”
“네!”
튀겨 놓은 탕수육 치킨의 상태는 바삭한 것이 꽤 괜찮았다. 어린 나이에 조리 솜씨가 제법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아직 감정적으로 들떠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가르치면 좋은 요리사가 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주방 보조로 일을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 시간이 됐고, 오늘도 탕꼬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점심 타임이 끝나자마자 대규는 상민에게 다른 직원들과 밥을 시켜 먹으라고 돈을 쥐어 준 뒤 가게 건물을 알아보러 나섰다.
일단 대로부터 가볍게 돌아보자.
대로변은 접근성이 좋아서 등급이 높은 건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C등급 미만의 건물들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 한가운데 횡단보도를 끼고 있는 9층짜리 빌딩. 예전에 차원의 틈에서 미니 키클롭스들을 미친 듯이 베어 댔던 건물이었다. 1층엔 커다란 유명 도넛 가게가 있는 그곳.
명당의 눈으로 확인을 해 보니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미르빌딩(지하 2층~지상 9층)]
등급: A
향후 3년 이내 건물 값이 오를 확률: 80%
손님 증가율: 20%(단, 특수 효과 스킬 사용 시 변화될 수 있음)
재개발 여부: 없음
성공 가능 업종: 제과제빵, 카페, 식당
특이 사항: 2년 이내에 건물주가 바뀔 확률 70%
A등급답게 조건이 끝내준다.
게다가 성공가능 업종이 제과제빵! 도넛 가게가 잘되는 이유가 있었다.
하긴 대로에 횡단보도까지 끼고 있으니 당연히 알짜배기 노른자 위치다. 대신 가격이 만만치 않겠지. 역시나 부동산에 가서 시세를 알아보니 100억 원이 넘는단다. 건물을 내놓지도 않았지만 시세만 따져도 100억이 넘을 거란 말을 들었다.
임대조차도 1층의 경우엔 권리금만 10억 원이 넘었다. 게다가 임대인들이 꽉꽉 차 있었고. 임대도 나온 물건이 없었다.
미르 빌딩 말고도 대로에 있는 높은 등급의 건물들은 상황이 비슷했다.
대규는 대로를 벗어나 중간 골목들을 돌기 시작했다.
골목 초입에나 C등급 건물들이 몇몇 있었고 대부분은 D등급이었다. 간혹 보이는 허름한 건물들은 무조건 E등급이고. 대체로 가격과 등급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등급이 낮은 건물들은 대부분 가격이 낮았다. 건물에도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있었다. 젠장, 건물주는 다 좋은 줄 알았더니 거기도 계급이 존재했던 것이다.
‘명당의 눈이 있어도 좋은 자리를 구하는 게 만만치 않구나…….’
포기하고 탕꼬가 있는 골목으로 가려는데 폐업 전문 업체 차량이 보였다. 회사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끝자락에 위치한 빌딩의 간판을 떼고 건물 안의 각종 시설들을 빼내고 있었다. 저긴 오며 가며 보던 곱창집이었다. 들어온 지 6개월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망했나?
대규는 곱창집 사장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사 가시는 거예요?”
“이사는 무슨! 장사가 너무 안돼서 접었어. 진짜 이 건물은 무슨 귀신이라도 붙은 것 같아. 망해서 나가는 게 나까지 벌써 다섯 번째라니까. 싼 맛에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소문대로야. 자네도 절대 여기는 들어오지 마. 어휴…….”
“아, 예. 그럼 수고하세요.”
망해서 나가는 사람에게 더 이상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대규도 그간 저 사람의 기분이 어땠을지 잘 알고 있으니까. 사장의 씁쓸한 표정을 뒤로하고 골목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 흘끗 건물을 봤다.
하긴, 저 건물은 사실 신촌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도형처럼 건물주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저 건물 자체가 악운이 낀 건지 장사꾼들이 들어가기만 하면 6개월 안에 망해서 도로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들어갔던 상인들이 6개월을 못 넘기고 다들 나갔다. 명당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E등급일 게 분명했다.
대규 역시 처음 가게를 알아볼 때 저 건물에 들어갈까 망설였지만 소문을 듣고 찜찜해서 들어가지 않았었다.
‘그래도 한번 봐 볼까?’
지금 비어 있는 가게면 권리금이 없기 때문에 돈이 얼마 안 든다.
그리고 저곳은 지금 가게보다 평수가 훨씬 크다. 손님들은 스킬로 끌어모으면 되니까.
대규는 건물을 향해 명당의 눈을 시전했다.
건물의 정보가 눈앞에 떴다.
[준 빌딩(지하 1층~지상 3층)]
등급: A
향후 1년 이내 건물 값이 오를 확률: 100%
손님 증가율: 100%+α
재개발 여부: 서대문구에서 도로 확장 사업 기획 중(기밀 사항)
성공 가능 업종: 요식업
특이 사항: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아주 높음
A등급이라니!
대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A등급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 재개발 여부 항목이다.
서대문구에서 도로확장 사업을 기획 중. 저것 때문에 1년 이내 건물 값이 확 오르는 것 같았다.
도로 확장으로 이곳에 자동차 대로가 들어오면 당연히 손님의 유입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물론 기획이 확정되고 개발이 진행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개발이 확정된다는 발표만 해도 땅값이 오를 것이다. 소문으론 이 뒷골목을 확장해서 도로로 만들어 달라는 민원을 여러 번 넣었다고 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명당의 눈이 설명한 바로는 기획 중이란 것이다. 기밀 사항이라는 보조 설명도 있었다. 그럼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여태까진 골목 안쪽에 있어서 장사도 제대로 안 되고 들어오는 족족 다 망했지만 미래에는 분명 노른자가 될 건물이었다.
게다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니.
원래는 임대를 목적으로 알아봤는데 이 정도면 매매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은 시세도 별로 높지 않을 것이다. 은행에 대출을 받는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만약 명당의 눈이 설명한 대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건물을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니, 꼭 사야 한다. 이런 대박 물건을 알고도 그냥 있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일은 벌리고 해결은 부딪히면서 하라는 말이 있다.
대규는 근처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준 빌딩 시세가 어떻게 되나요? 물건 혹시 나왔습니까?”
“건물 매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님 임대를?”
“둘 다요.”
공인중개사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대의 경우 1층이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50만 원 입니다. 아마 지금 비어 있어서 권리금은 없을 테니 아주 좋은 기회죠. 그리고 나머지 층은…….”
더 들을 필요가 없어서 말허리를 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건물 매매는 얼마에 나왔습니까?”
“아이구… 건물 내놓은 건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시세는 15억 원 정도 하는데 건물주가 개인 사정상 13억 원에 아주 싸게 내놨습니다.”
그때 중개자의 속마음이 들렸다.
‘실매매자가 오면 건물주가 더 깎아 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일단은 이렇게 불러나 보자.’
더 깎아 줄 수도 있다고?
명당의 눈에 나왔던, 더 낮은 가격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대규가 머뭇거리자 중개인이 말했다.
“돈이 좀 모자라시면 감정가의 70% 정도는 대출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 그거에 맞춰서 자금을 준비하면 되실 겁니다.”
“그럼 대출이 어느 정도 되는 건가요?”
“감정가대로 하고, 뭐 이것저것 하면 현금 준비 금액은 6억 정도 준비하시면 될걸요.”
중개인의 속마음을 들어보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13억은 좀 대규가 매입하기엔 비싸다. 10억이면 적당할 텐데. 그렇게 되면 준비 금액은 3억으로 줄어든다.
현재 하루에 매출 1,000만 원 정도를 올리니까 열흘이면 1억 원이 좀 넘는다. 그 돈으로 계약금을 걸고 건물 매매 계약을 체결한다.
나머지 잔금은 한 달 뒤에 치르겠다고 하고 그동안 2억 원을 모으는 거다. 그럼 자신은 이 건물을 온전히 소유하게 된다.
문제는 건물주가 10억 원에 해 줄 것인가, 였다.
좀 전에 들은 중개인의 속마음으로 따져 보건대, 더 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약간 돈이 좀 모자라는데 조금만 더 깎아 주실 순 없나요?”
“시세에 비해서 이것도 싼 건데.”
중개인이 말은 저렇게 해도 속으론 여지가 남아 있었다.
“사장님,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한번 건물주에게 말이라도 넣어 주세요.”
중개인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거참, 젊은 양반이 넉살도 좋네. 그래, 얼마 정도 생각하십니까?”
일단 희망 가격보다 무조건 낮게 부르는 게 좋다는 말을 방송에선가 본 것 같았다.
“…8억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에이, 8억은 좀 심하신데요. 시세가 15억인데, 너무 후려치시네요. 지금 매매가 13억도 싼 건데…….”
부동산 중개인은 겉으로는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쳐 댔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8억은 좀… 10억이면 어떻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일단 건물주한테 얘기라도 해 봐야겠다. 나도 돈 좀 벌고 살자.’
대규는 속으로 미소를 지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한번 건물주에게 말이라도 해 주세요. 된다고 하면 일주일 뒤에 계약하러 오겠습니다.”
자신의 번호를 남긴 뒤 부동산을 나섰다.
속마음으로 미뤄 보건대 아마 10억 원에 계약은 성사될 것 같았다. 10억이면 대출이랑 이것저것 하면 3억 정도에 매입이 가능하다. 그 정도라면 한 달 안에 가능할 것 같았다. 혹시나 더 깎이면 좋고.
아무래도 건물주와 중개인은 재개발 계획에 대해선 모르는 것 같았다. 그걸 알면 저렇게 싼 값에 건물을 팔려 하진 않겠지. 확실히 재개발 기획은 명당의 눈을 통해 자신만 아는 것 같았다.
재개발이 돼서 도로가 뚫리면 저 건물 값이 배로 뛰는 건 순식간이다. 그 전에 저 건물을 매입한다. 그리고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미래에 가치가 훌쩍 뛸 건물들을 찾을 것이다. 이참에 부동산 재벌로 직업을 바꿔 볼까?라는 생각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자신이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확천금에 대한 동경도 없었다.
물론 이 능력을 이용하면 부동산 재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꿈인 요식업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이 건물을 매입해 탕꼬 본점을 그럴듯하게 차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숨겨진 명당들을 찾아내 지점을 개설할 것이다. 맛이야 입소문 양념으로 해결하면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1년 안에 박 주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외식 업체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일단 도형의 건물에서부터 나오자.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이라 그만 두고 나오기가 아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너질 확률이 높은 건물에서 장사한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설마 삼풍백화점 무너지듯 무너지진 않겠지? 모르겠다. 무너지기 전에 빨리 빠져나와야겠다.
시계를 보니 벌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 가고 있었다. 저녁 장사를 하기 위해 대규는 재빨리 탕꼬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