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36화. 나도 건물주 (2)
그녀는 튀김 반죽을 뒤섞고 있는 대규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대규가 다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민망했는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사장님… 제가 방해했나 봐요. 저는 홀 쪽에 있을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홀 쪽으로 가면서도 눈으로 계속 주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사람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거야?’
아무래도 이번에 새로 업데이트된 공략집의 능력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공략집의 능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귓가에는 여전히 진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 거의 절박하게 갈망하는 수준이었다.
‘요리하고 싶다. 나도 요리하고 싶어! 요리하고 싶단 말이야!’
흠, 그렇게 요리가 하고 싶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조리학과를 다니고 조리사 자격증도 있다고 했다.
어디 한번 실력을 봐 볼까.
“저기요, 진희 씨.”
“네?”
“이리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오늘 주문한 재료가 많아서 저 혼자 준비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제가 반죽 만드는 동안 여기 야채들 좀 다듬어 주세요. 여분의 칼은 저기 있어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대규는 탕수육 반죽을 하면서 유심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타타탁.
칼날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야채들이 순식간에 썰려 나갔다.
‘생각보다 꽤 하는걸?’
어느덧 11시가 됐고, 상민과 진섭, 다른 친구들이 가게에 도착했다.
야채를 거의 다 다듬고 있던 진희가 상민을 보고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어? 진희 씨. 벌써 왔어요?”
“네, 매니저님. 일찍 와서 사장님 도와드리고 있었어요.”
그때 귓가에 상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대규, 이 자식. 설마 우리 진희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아, 그런데 진희 진짜 너무 귀엽다. 하악하악…….’
‘우리’ 진희라니.
그것보다 상민이 녀석의 속마음도 적나라하게 들리는 걸로 봐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상민은 진희에게 다가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진희 씨는 홀 서빙 담당이잖아. 이리 와요. 오픈조가 들어야 할 설명이 있으니까.”
“네, 매니저님.”
“하하,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오빠라고 해.”
“네, 오빠.”
진희가 웃으며 말하자 상민의 경박하게 들뜬 목소리가 웅웅 울려 퍼졌다.
‘오빠래, 오빠! 으히히, 기분 좋다!’
물론 상민의 표정은 엄청나게 젠틀했고, 대규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상민과 진희가 홀 쪽으로 간 뒤 대규는 그녀가 다듬어 놓은 야채들을 봤다.
야채들은 정갈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썰린 야채들의 두께나 길이는 꼭 자로 잰 것처럼 균등했다. 조리 전공과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일주일간 눈여겨봐야겠어.’
장사 준비를 마치자마자 가게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심 장사 시작이다!
얼마 후 친구들의 목소리가 홀 쪽에서 울려 퍼졌다.
“여기 크림 탕꼬 3인분!”
“매콤 마늘 탕꼬 2인분 추가요!”
오늘도 역시 출발이 좋다.
점심 타임에 미친 듯이 장사를 했다.
주문은 정신없이 들어왔고, 대규는 주방에서 혼자 닭고기를 튀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간 브레이크 타임이 되기 전 대규는 요리 스킬이 상급으로 올랐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바빠 입소문 양념을 시험해 볼 틈이 없었다.
장사가 너무 잘되자 직원들이 힘들어했고, 식사도 해야 해서 오후 세 시 반부터 다섯 시까진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로 했다.
이 틈에 입소문 양념을 시험해 볼까.
대규는 주방에서 상급 요리 스킬을 발휘해 국이나 찌개에 넣을 수 있는 다용도 양념장을 후딱 만들었다.
그리고 상민을 주방으로 불러 커다란 냄비를 준 뒤 라면을 끓여 보라고 했다.
참고로 상민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요리 고자였다.
“야, 왜 나한테 그런 걸 시키고 그래. 요리 잘하는 네가 하면 되잖아.”
그러면서 연신 홀에 있는 진희를 흘끔거렸다.
요리 고자답게 얼마 후 형편없는 라면이 완성됐다. 물의 양도 못 맞춰서 국물은 넘치고 면은 팅팅 불어 우동처럼 됐다. 딴엔 실력을 부려 본다고 계란도 풀어 넣었는데 처음부터 넣어 버려서 면발과 엉켜 죽인지 면인지 구분도 안 됐다.
상민은 자신이 끓인 라면을 한입 먹어 보더니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대규 역시 한 젓가락 먹어 봤다.
미각 테러 수준이다.
“상민아, 일단 홀에 나가 있어 봐.”
상민이 홀에 나가자 진섭과 친구들이 물었다.
“배고파 죽겠다, 전상민! 라면은 어디 있어?”
상민은 진희의 눈치를 살피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야야야, 식사로 무슨 라면이냐… 우리 밖에 가서 사 먹자! 첫 브레이크 타임 기념으로 내가 쏠게!”
상민은 진희와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사이 대규는 라면 냄비에 자신이 만든 양념을 넣은 뒤 국물 맛을 봤다.
이럴 수가! 맛이 확 달라졌다!
대규가 냄비를 들고 나오자 진섭과 친구들이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우와~ 라면이다!”
진희 역시 냄비 쪽으로 향했고 상민은 이제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 야, 이거 진짜 전상민이 끓인 거 맞아? 국물 맛 죽이는데.”
“면발은 좀 그런데 진짜 국물 하난 끝내준다. 장난 아닌데!”
심지어 진희는 한 젓가락 먹더니 라면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SNS에 사진을 올리고는 상민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며 말했다.
“상민 오빠! 이거 정말 맛있어요. 제가 먹어 본 라면 중에 최고!”
“어, 어… 그래? 하하하! 내가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이지!”
열심히 라면을 흡입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본 대규는 혀를 내둘렀다.
이게 입소문 양념의 효과란 말인가!
상민이 끓인 맛없는 라면도 이 정도 평가를 받는데 평범한 음식에 이 양념을 더한다면…….
그렇다면 정말 지점을 차려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양념이 있으면 자신 혼자 닭을 바쁘게 튀겨 댈 필요 없이 다른 주방 아르바이트를 고용해도 된다. 탕수육 소스는 자신이 만들어서 끼얹으면 맛은 변함없이 좋을 테니까!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 한 명만 더 있어도 엄청나게 장사의 효율이 높아질 것이다.
‘주방 보조라…….’
대규는 라면을 먹고 있는 진희를 바라보았다.
오후 11시 장사를 종료했다.
넉넉할 줄 알고 500마리를 주문했는데 오늘도 역시 마감 시간보다 빨리 떨어졌다. 가게 청소를 하고 진희에겐 아침 2시간 일한 것만큼 시급을 더 쳐서 일당을 줬다. 그녀가 거절했지만 챙겨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희 씨, 내일도 2시간 일찍 올 수 있어요? 주방일 간단히 가르쳐 줄게요. 시급은 쳐 줄테니.”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그러자 상민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웬 주방? 진희 씨는 홀 담당이라구.”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 꿈이 주방에서 일하는 거였어요. 매니저님, 아니 상민 오빠! 저 주방에서 일하면 안 돼요?”
애교 섞인 눈빛으로 상민을 쳐다보는 진희. 곧 상민의 얼굴이 풀어졌다.
“뭐,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규는 친구들과 진희가 가게를 나서는 걸 배웅했다. 상민은 진희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가고 있었다. 속마음을 들어 보니 아주 단단히 반했다. 뭐, 연애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가게 일만 열심히 해 준다면야.
가게 안으로 들어와 매상을 확인했다.
1,012만 원.
오늘 하루 장사한 것만 1,000만 원이 넘다니. 보조 주방을 두고 포장 판매가 많아지자 판매액이 기적에 가깝게 올랐다.
아무리 김치찌개집을 터서 점심부터 장사를 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매출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대규는 그전처럼 기뻐하면서도 의기를 다졌다.
입소문 양념을 이용해 진희를 주방 보조로 쓰면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건물 2층도 싹 임대해서 장사를 하고 싶었다.
근데 어젯밤 명당의 눈으로 봤던 내용이 걸렸다.
투자 가치 없음. 주거 목적으로도 부적합함.
물론 자신의 요리 스킬 때문에 손님은 많으니까 망할 걱정은 없다.
하지만… 더 좋은 곳에 가게를 내서 장사를 한다면?
점점 욕심이 생긴다.
이곳에서 진희를 고용해도 벌 수 있는 돈은 아무리 많아도 일일 1,500만 원을 버는 것이 한계.
이 건물 자체는 너무 낡고 주방 시설도 비좁게 되어 있다. 김치찌개집까지 터 봤자 30평이 채 안 된다.
지금보다 평수가 크고 주방도 넓은 곳에서 장사를 한다면… 커다란 맛집처럼 하루 매출이 3,000만 원을 넘을 수도 있다.
한번 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걸 업그레이드해 봐?
[젬스톤 3개를 사용해 스킬의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Yes.
[명당의 눈(중급): 명당의 등급을 5단계로 표시해 더 상세한 설명을 해 줍니다. 마나 소모 10.]
그리고 나가서 다시 가게를 본다. 그전과는 다른 메시지창.
[이도형의 건물5]
등급: E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장사 전혀 안됨.
미래에 건물 값이 오를 확률 전혀 없음.
건물의 내구도가 떨어지고 있음.
역시 내가 요리를 못해서 장사가 안 되는 게 아니었군!
그나저나 E등급. 5단계라고 했으니까 A등급부터 있다는 뜻인 듯했다. 그럼 E등급이 최고 등급일 리가 없다. 이 건물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결국 E등급은 최하 등급이란 뜻이다.
최하 등급이라니. 정말 좋지 않은 장소다.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건물이랄 때부터 알아봤지만 돈이 원수다.
돈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들어왔지만 정말 이런 거지 같은 건물로 월세를 받는 도형이 더 미워졌다.
게다가 건물의 내구도가 떨어지고 있다니. 워낙 낡은 건물이라 설마 무너지진 않겠지. 도형 그 자식은 이런 걸 알면서도 전혀 고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2층을 확장하는 것보다 돈을 더 모아 높은 등급의 가게로 옮기는 게 낫겠다.
가만, 이 스킬의 상급 능력은 어떤지 궁금한걸.
혹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금 당장은 헐값이지만 나중에 가치가 높아질 숨겨진 명당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공략집으로 상급에 대한 설명을 알아봤다.
<명당의 눈(상급): 명당 등급별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마나 소모 10.>
<등급별로 땅값 상승률, 손님 증가율, 재개발 여부 및 성공 가능 업종 등 기타 사항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오! 엄청나다.
이거 스킬 하나면 장사로 성공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재벌도 될 수 있겠다.
당장 업그레이드하자.
공략집을 보니 상급으로 업그레이드하려면 그레이 젬스톤 20개가 필요하다. 지금 남아 있는 그레이 젬스톤은 33개.
하지만 젬스톤 20개면 2억 원으로 적은 돈이 아니다.
그래도 이 스킬의 효과는 2억 원을 훨씬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젬스톤은 타르타로스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아낄 때가 아니다. 과감하게 투자하자!
[명당의 눈이 상급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상급이 되었으니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이도형의 건물 5]
등급: E
향후 3년 이내 건물 값이 오를 확률: -10%
손님 증가율: 0%(단, 특수 효과 스킬 사용 시 변화될 수 있음)
재개발 여부: 없음
성공가능 업종: 없음
특이 사항: 6개월 뒤 건물이 무너질 확률 70%
헐. 땅값이 안 오르는 줄은 알았지만 오히려 떨어진다니.
게다가 더 무시무시한 건 특이 사항이다.
6개월 뒤 건물이 무너질 확률이 70%라니.
마침 그때가 재계약 시즌이니 계약 연장하지 말고 빨리 나와야겠다. 70%라 꼭 무너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불안하다.
사실 대규는 나중에 이 건물을 매입해서 장사를 하려고 했다. 여긴 뒷골목 건물이라 신촌 건물치곤 가격도 쌌다. 2층까지 얻어서 세 달 정도 바짝 일하고 대출을 끼면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특이 사항 항목을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당장 내일부터 브레이크 타임에 주변의 땅과 건물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혹시 내가 없어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탕수육 양념들을 만들어 놓고 자야겠다. 이 입소문 양념 하나만으로도 맛은 낼 수 있으니까.
대규는 상급 요리 스킬로 주방에서 탕수육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