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35화. 나도 건물주 (1)
눈을 뜨자 탕꼬였다.
대규는 침대 매트리스에 누워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보관함을 불렀다. 타르타로스에서 얻었던 장비들과 아이템들은 모두 그곳에 안전하게 있었다. 이제는 차원을 넘나드는 것에 적응되었는지 처음처럼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것도 없었다.
그는 보관함과 주변을 둘러보고 일어나 테이블에 앉아서 차분하게 타로타로스에서의 일과 얻은 보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략집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도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는 직접적인 기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타로타로스에서 미션을 완수하고 현실로 돌아올 때 가장 기대하던 것이기도 하다.
<공략집을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업데이트시키려면 그레이 젬스톤 30개가 필요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Yes!
<공략집이 성공적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려면 레드 젬스톤 5개가 필요합니다.>
레드 젬스톤 5개.
알키오네오스를 겨우 붙잡았을 때도 3개만 나왔는데.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업데이트 단계가 있다니까 기대감도 샘솟았다. 또한 레드 젬스톤은 다음 타로타로스에 가면 또 얻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업데이트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방법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업데이트가 됐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매 시장에서 냉동 닭을 구별하거나 파워 블로거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특정 상황이 닥쳐야 업데이트된 능력을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젬스톤은 그레이 6개에 레드 3개.
성장형 아이템들을 성장시킬 차례다.
우선 그 전에 이번 소환에서 얻은 것들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우선 클리티오스를 죽이고 얻은 스킬 ‘명당의 눈’.
보유 스킬란을 보니 요리 스킬 밑에 위치해 있었다. 대규는 스킬 설명을 다시 읽었다.
[명당의 눈(하급)을 습득하였습니다.]
[명당의 눈: 명당을 판별해 줍니다. 마나 소모 10.]
부동산 업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런 명당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설명만으론 장사가 잘될 곳을 알려 주는 건지, 땅값이 확 뛸 곳을 알려 주는 건지 불확실했다.
궁금하면 한번 해 보면 된다.
대규는 가게 밖으로 나가 건물을 바라보며 스킬을 시전했다.
[이도형의 건물 5]
투자 가치 없음. 주거 목적으로도 부적합함.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등급을 업그레이드하십시오.]
뭐야, 이게 전부야?
투자 가치가 없다는 말이 땅값이 안 오른다는 뜻인지 장사가 안된다는 뜻인지 불확실했다. 뭐, 다 쓰러져 가는 건물 상태를 보면 당연히 주거 목적으로도 부적합할 테고.
하급이라 그런지 설명이 매우 불친절했다.
아직은 이 스킬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당장은 모르겠다. 또한 스킬 등급을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르겠고.
요리 스킬처럼 무턱대고 땅마다 보러 다니면 등급이 오를까?
손끝으로 스킬명을 눌러 봤다.
<젬스톤을 통해 스킬의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레이 젬스톤 3개 소모.>
<다음 스킬 등급은 명당의 눈(중급)입니다.>
<명당의 눈(중급): 명당의 등급을 5단계로 표시해 더 상세한 설명을 해 줍니다. 마나 소모 10.>
5단계 등급 표시에 상세한 설명.
그런데 특이했다. 젬스톤을 통해 스킬 등급을 올리다니.
지금 남아 있는 그레이 젬스톤은 6개니까 당장이라도 중급으로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은 이 명당의 눈이란 스킬의 위력이 어떤 건지 실제로 알지 못했다. 불친절한 설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게다가 지금 당장은 써야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장사야 지금 상태로도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잘되고 있으니, 당분간은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일단 나중에 올리기로 하자.’
그럼 이제 성장 아이템들 차례다.
자신의 몸에 걸치고 있는 아이템 3개를 바라봤다. 반지와 팔찌 모양의 방패, 그리고 황금 양털 조끼. 이것들은 벗어서 보관함에 둘 수 없었다. 완전하게 귀속이 돼서 항시 자신의 몸에 딱 붙어 있었다.
그전의 공략집에선 이들을 성장시키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업데이트된 공략집에선 그 설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략집을 떠올렸다.
우선 닥튈로이의 반지부터 살펴봤다.
<닥튈로이의 반지(성장형)(중급)>
<크레타 섬의 정령으로 마술사이며 대장장이였던 닥튈로이가 만든 반지로, 이것을 지니면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50% 상승합니다.>
<하급 저주를 해제할 수 있게 됩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20%나 더 상승한다. 그리고 하급 저주를 해제할 수 있다는 추가 효과까지 붙는다. 게임이나 공포 영화에 나오는 흑마법계열의 저주를 말하는 건지, 저주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용할 듯싶었다.
다른 아이템들도 차례로 살펴봤다.
<네메시스의 방패(성장형)(중급)>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피가 깃든 방패로 공격자가 입힌 데미지의 10%를 반사 데미지로 돌려줘 타격을 입게 만듭니다.>
<복수의 여신이 저주를 발동시켜 상대방의 무기가 방패를 가격할 때마다 5% 부식됩니다.>
<황금 양털 조끼(성장형)(중급)>
<제우스 신 소유 황금 양의 털가죽으로 만든 조끼로 착용자의 생명력이 10% 이하가 되면 황금 양털의 신묘한 기운이 발동해 7초 동안 무적 상태에 돌입합니다. 황금 양털의 기운은 하루에 한 번 발동됩니다.>
네메시스의 방패는 반사 데미지가 10%로 오른다. 게다가 방패를 가격한 무기들을 5%씩 부식시킨다니. 방패로 스무 번을 막으면 그 무기는 완전히 부식돼 산산이 조각난다는 뜻이다. 놀라운걸.
황금 양털 조끼는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무적 상태가 5초에서 7초로 늘어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대규는 알키오네오스를 상대할 때 이 조끼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봤다. 무적 상태가 2초나 추가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괜히 성장형 아이템들이 아니었구나. 위력이 대단한걸.’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공략집에 따르면, 각 아이템들을 성장시키려면 그레이 젬스톤이 각 5개씩 필요했다.
따라서 총 필요한 그레이 젬스톤은 15개.
하지만 지금 갖고 있는 그레이 젬스톤은 6개뿐이다.
‘레드 젬스톤 1개가 그레이 젬스톤 50개 가치랬지. 이거 하나를 그레이 50개로 교환시켜 주면 안 되나…….’
그때 공략집이 떴다.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이용하면 레드 젬스톤을 그레이 젬스톤으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단, 분해하기 위해선 그레이 젬스톤 5개가 필요합니다.>
이 말은 모루를 이용해 레드 젬스톤 1개를 그레이 젬스톤 50개로 교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그 비용으로 그레이 젬스톤 5개가 들어가게 된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교환 비용으로 5,000만 원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비용이 상당하군.’
하지만 성장형 아이템들의 성장 효과가 5,000만 원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레드 젬스톤을 2개 더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템들은 타로타로스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는 소중한 아이템들이다. 자신은 목숨과 돈을 저울질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일단 하나만 바꾸자.’
대규는 모루를 보관함에서 꺼낸 뒤 그레이 젬스톤 5개와 레드 젬스톤 1개를 올려놓았다.
<헤파이스토스의 모루가 젬스톤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촤아악.
모루 위에서 빛이 일었고, 어느새 그 위에는 그레이 젬스톤 50개가 놓여 있었다.
일단 15개를 이용해 반지와 방패, 황금 양털 조끼를 성장시켰다.
각 아이템들은 젬스톤을 흡수하자마자 잠깐 동안 은은한 황금빛을 발했다.
빛이 사라진 뒤 공략집으로 아이템 설명을 보니 업그레이드가 잘 이뤄졌다. 아마 실제 효과는 다음번 타르타로스 소환 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 다시 소환될 때까지 한 달 동안 열심히 장사를 해야 한다. 임시로 간판만 떼어 버린 김치찌개집에 새로 달 간판도 주문해야 하고.
대규는 모루와 나머지 젬스톤들을 보관함에 잘 넣어 둔 뒤 공략집을 띄워 요리 스킬의 달성도를 확인했다.
<요리를 통해 경험치를 얻을수록 스킬의 등급이 오릅니다(760/1000).>
<다음 등급은 상급입니다.>
<요리(상급):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추가 옵션으로 입소문 양념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상급 스킬을 습득하면 제일 먼저 저 입소문 양념을 제작해 보고 싶었다. 어떤 음식이라도 저 양념만 들어가면 입소문을 내고 싶어질 정도로 맛있어진다고 했지.
상급을 획득하기까지 남은 달성도는 240. 요리를 1인분 완성할 때마다 달성도는 1씩 오르지만 숙련의 장갑을 낀 자신은 두 배로 올릴 수 있다.
그럼 120인분을 만들면 상급으로 오른다는 것.
운이 좋으면 내일 점심 장사를 끝내고 달성할 수 있다. 테이블이 4개뿐인 기존의 탕꼬에선 저녁 장사까지 해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옆의 김치찌개 가게까지 공간을 확장시킨 상황이니까 점심 장사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현실로 돌아왔으니 본업에 충실해야지.’
대규는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박 사장에게 닭 500마리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은 뒤 접이식 침대에 누웠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9시.
대규가 막 박 사장에게 재료 주문 전화를 넣었는데 누군가가 가게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가게 문을 열자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아르바이트생 진희가 보였다.
“가게 오픈은 11시부터인데 왜 지금 오셨어요?”
“일찍 출근했어요! 재료 손질이라도 도와드리려구요. 저 기본적인 재료 손질은 할 줄 알아요!”
“이제 막 재료 주문했는데요.”
“그럼 청소라도 할게요! 걸레랑 빗자루는 어디 있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11시부터…….”
진희는 대규의 말을 자르며 열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시급은 안 주셔도 돼요!”
대규는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가만히 바라봤다.
열정만은 엄청나다. 하지만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해 낼지는 또 별개의 문제다.
‘어쨌든 본인이 저토록 하고 싶어 하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다.’
청소 도구가 있는 곳을 알려 주자 진희는 청소를 시작했다.
얼마 후 주문한 닭고기와 재료들이 도착했고, 대규는 주방에 가서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대체 업데이트된 공략집의 능력은 무엇일까?
재료들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그전처럼 물품명과 원산지만 표시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장님, 청소 다 했어요!”
어느새 진희 홀 쪽에서 싹싹하게 말했다. 가게 전경을 둘러본 대규는 놀랐다. 청소 대행 업체를 부른 것처럼 깔끔해졌다. 윤기가 흐르는 마룻바닥엔 얼굴이 거울처럼 비칠 정도였다.
“수고했어요. 좀 쉬어요.”
“사장님, 지금 재료 다듬으시는 거예요?”
대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방 쪽으로 다가온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헉, 벌써 저 닭들 발골 마치신 거예요?”
재료가 도착한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500마리의 닭이 완벽하게 발골된 상태로 주방에 놓여 있었다.
초인적인 근력과 민첩성 덕분에 이 정도 발골은 이제 식은 죽 먹기였다. 대규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커다란 보울(bowl)에 튀김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희는 계속 주방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도 해 보고 싶다.’
응?
“진희 씨, 뭐라구요?”
“네?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잘못 들었나.
하지만 잠시 후,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나도 요리해 보고 싶다. 저 주방에서 일하고 싶어……. 아니, 하다못해 저 야채라도 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히 진희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