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화. 진격의 알키오네오스 (2)
공략집에도 기간토마키아란 단어가 등장했다. 안내인 여자는 분명 그랬지. 우리가 영웅이 되면 2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 말은 기간토마키아란 게 이런 몬스터 녀석들과 벌이는 대대적인 전쟁이라는 건가. 그리고 그 전에 그런 전쟁이 이미 한 번 치러졌고.
아직까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보다 저 녀석을 어떻게 해치울지 공략을 짜는 게 우선이었다.
대규는 영상을 보며 녀석의 공격법과 약점을 차근차근 숙지했다.
녀석의 철퇴 공격은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특히 녀석의 스킬인 연속 치기는 한 번 가격에 연속적으로 다섯 번을 때린다. 위력적이다 못해 가공할 정도의 파괴력. 어지간한 건물이나 야산은 한두 번의 공격으로 가루가 되었다. 빈틈도 없고, 빠르고,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이대로 덤볐다가는 하룻강아지가 범에게 달려드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마디로,
‘좆 된다.’
하지만 자신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대규는 보관함에서 활과 독화살을 꺼냈다.
[클리티오스의 활(희귀)]
[클리티오스의 뼈와 힘줄로 만들어져 내구력이 좋습니다. 첫 발의 적중률은 100%입니다. 10발의 화살마다 적용됩니다.]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전설)]
[아폴론이 헤라클레스에게 선물한 화살로 강력한 독을 품고 있습니다.]
공략집의 내용을 보면 놈의 약점은 양쪽 가슴에 있는 두 개의 심장, 그것도 오로지 헤라클레스의 독화살로 맞혀야만 죽일 수 있었다.
첫 발은 무조건 적중하는 활의 능력으로 심장 하나에 독화살을 꽂는다. 영상에서 보니 심장 한 개가 독화살에 마비되면 공격력이나 기타 능력도 상당히 저하된다.
활이야 근처 양궁장에서 몇 번 쏴 본 것이 다였지만, 쏴 본 경험이 있다는 것과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심장에 독화살을 맞아 놈이 괴로워하는 사이, 그 틈을 타 남은 화살들을 나머지 심장에 쏴 댄다.
높아진 근력이나 민첩과 운 수치까지 있는데, 그래도 네 발 중 한 발 정도는 맞겠지.
‘보스 몹이라 생각보다 쉽게 잡을 수 있겠는걸.’
이게 다 헤파이스토스 모루로 만든 화살 덕이다. 그걸 얻기 위해 히든 미션을 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대규는 지도를 띄우고 놈의 동태를 살핀다. 기둥에 숨은 채 화살 하나를 활에 건다.
지금이다!
핑!
푹!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이 파공음을 남기며 왼쪽 심장에 명중한다.
“크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왼 가슴 주변이 독 기운으로 번지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는 점점 검붉게 물들었고, 놈의 눈동자는 이미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대규를 발견한 알키오네오스.
“감히 네놈이 나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죽여 버리겠다.”
마주친 두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대규는 꿀꺽 침을 삼킨 뒤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놈의 남은 심장을 노렸다.
핑!
화살이 놈의 어깨를 스치며 빗나간다.
“크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 오는 알키오네오스.
핑!
또 하나가 빗나갔다. 마른침을 삼키며 또 하나의 화살을 빠르게 시위에 걸었다.
쉽게 명중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첫 화살의 적중률 100% 버프가 엄청난 거였다.
녀석의 철퇴가 그 사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급하게 네메시스를 활성화시키며 철퇴를 막았다.
쾅!
철퇴의 위력에 바닥을 사정없이 굴렀다. 생명력도 절반 가까이 깎였다. 방패에 튕겨 빗맞은 기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패가 없었다면 자신이 피떡이 되었으리라.
대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놈의 사정권에서 멀리 피해 회복약을 빠르게 먹었다.
뭔가 허전하다.
활과 화살이 없다.
자신이 있던 자리를 더듬어 보니 기둥의 잔해 근처에 활과 화살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방패를 활성화시키면서 손에서 놓쳐 버린 것 같았다. 보관함엔 마지막 화살 하나만 남아 있다.
하지만 활도 없이 놈을 어떻게 잡아야 하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이다.
그때 황금 양털 조끼가 생각났다.
[황금 양털 조끼(성장형)]
[제우스 신이 소유한 황금 양의 털가죽으로 만든 조끼로 착용자의 생명력이 10% 이하가 되면 황금 양털의 신묘한 기운이 발동해 5초 동안 무적 상태에 돌입합니다. 황금 양털의 기운은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됩니다.]
놈이 휘두르는 철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점점 독이 퍼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해볼 만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활이 없으면 손으로 찔러 넣으면 된다. 요리 조리 피하며 기회를 엿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점프해 손으로 화살을 심장에 박아 넣는다.
최악의 경우 공격에 맞는다 해도 이 조끼면 5초간 무적 상태가 발동된다. 그 상태에서 빨리 점프해 녀석의 가슴에 화살을 찔러 넣는다면…….
대규는 마지막 남은 화살을 왼손에 쥐고 검을 뽑아 들었다.
콰쾅!
놈의 철퇴가 연속으로 가격하며 마지막 첨탑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기둥이나 첨탑도 다 부서지고 없었다. 더 이상 몸을 숨길 곳도 피할 곳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단둘만이 서 있었다.
쿵쿵쿵.
놈이 대규를 향해 달려들며 철퇴를 휘둘렀다.
“죽어라, 인간!”
그 순간 놈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며 플레임 체인 블레이드를 발목 쪽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휘리릭!
채찍처럼 날아간 5미터의 사슬이 족쇄처럼 녀석의 발목을 묶었다. 팔에 힘을 주자 사슬에 붙은 칼날 마디마디가 녀석의 굵은 발목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남은 힘을 짜내어 검을 잡아챘다.
휘감았던 체인 검날들이 불꽃을 일으키며 놈의 발목을 반쯤 도려냈다.
치이익.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놈이 균형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도약의 장화로 놈의 열린 오른쪽 가슴을 향해 연거푸 점프를 했다
“죽어랏.”
퍽!
놈의 팔꿈치에 정통으로 맞았다. 몸이 허공을 날았다. 연이어 놈의 철퇴가 날아들었다.
콰과과과쾅!
“커헉, 컥…….”
뼈가 다 부서지고 내장이 파열되는 것 같았다. 조끼의 효과가 발동도 되기 전에 죽을 것 같았다.
지나온 삶이 슬로비디오처럼 눈앞에 보였다.
그때 은은한 황금빛이 스며나오며 대규의 온몸을 투명막 형태로 휘감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져 위험합니다.>
<황금 양털의 무적 효과가 발동됩니다.>
[00:05]
조끼의 효과가 발동되면서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놈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죽은 줄 알았던 대규가 멀쩡히 달려들자 놈은 당황했다.
“크아아아아앙!”
놈은 당혹감에 뒷걸음질 치며 달려드는 대규에게 철퇴를 막무가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대규는 사정없이 두들기는 철퇴를 투명막으로 밀어내며 달려들었다.
[00:04]
타탓, 팟!
도약의 장화로 있는 힘껏 점프했다.
00:03…….
녀석의 오른쪽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00:02…….
들고 있는 마지막 화살을 높게 쳐들었다.
00:01…….
있는 힘을 다해 화살을 꽂아 넣었다.
팍!
[00:00]
<황금 양털의 무적 효과가 해제됩니다.>
퍽!
데이비드와 다른 영웅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대규가 맞았다. 입에선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대규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용암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떨어진 그의 몸으로 철퇴가 사정없이 두들겼다.
‘끝났구나.’
저 철퇴에 맞으면 영웅들은 물론 그 누구도 끝이다.
알키오네오스는 이제 영웅들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크르르르…….
“나를 따르라! 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말라!”
데이비드가 검을 높이 쳐들며 외치고 있었다.
그때.
쓰러져 있던 대규가 일어났다.
그의 몸 주변에선 은은한 황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대규는 알키오네오스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미친 듯이 철퇴를 휘두르는 알키오네오스.
데이비드는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했다.
‘이젠 정말 끝이다.’
깡! 깡!
철퇴의 공격이 대규의 몸을 맞고 튕겨져 나갔다!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타탓!
대규가 점프를 했다.
알키오네오스의 오른쪽 가슴에 마지막 독화살이 박혔다.
푹!
“끄어어어!”
알키오네오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쿵!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울림이었다.
용암석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맹렬히 튀었고, 영웅과 전사들은 방패를 들어 막았다.
짙은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그 속에서 차차 드러나는 한 사람의 그림자.
대규였다.
데이비드는 눈앞의 광경을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철퇴를 정통으로 맞았다.
눈앞의 광경을 부정하고 싶었다.
대규는 놈을 죽이며 얻은 경험치로 레벨이 오르며 몸이 회복되는 걸 느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놈을 해치우기 전에 무적의 효과가 끝나고 자신이 죽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그런데 보관함에 뭔가 들어온 것 같은데.
확인해 보니 빨간색의 손톱만한 보석 3개가 들어와 있다.
공략집의 메시지가 떴다.
<젬스톤(레드)>
<레드 등급 젬스톤은 제2 타르타로스에서부터 몬스터를 해치우면 적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광물입니다. 이를 이용해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개당 가치는 그레이 등급 젬스톤 50개와 동일합니다.>
그레이 등급 젬스톤 50개라니.
잘못 본 거 아니지?
일단 영웅들이 늘어서 있는 3층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데이비드는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대규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건 막 후보를 벗어난 초보 전사의 자세가 아니다.
데이비드는 대규를 멈춰 세운 뒤 물었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식당 주인입니다.”
대답을 마친 대규는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데이비드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것저것 물어볼 테고 귀찮은 일이 발생할 테니까.
영웅들과 전사들 틈에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영웅들과 이번 원정을 하면서 더욱 늠름하게 성장한 것 같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해진 가죽 갑옷이 보였다. 차원의 틈 오르트로스의 탑에서 자신이 건넸던 갑옷이다. 아직도 더 나은 아이템을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새삼 자신의 운수치를 실감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지영이 입을 벌려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주변이 캄캄해졌다.
데이비드와 대규를 포함한 제1 타르타로스에 있는 모든 전사와 영웅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제1 타르타로스를 성공적으로 점령했습니다.]
[미션 완수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번쩍!
푸른 마법진이 암흑 속에서 솟아올랐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대규와 안내인 여자 단둘뿐이었다.
안내인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대규 씨, 대단하군요. 알키오네오스를 해치우다니. 그 누구도 초보 전사가 잡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알키오네오스를 잡은 덕에 빠르게 영웅으로 승급됐군요. 축하드립니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다.
메시지창이 떴다.
[미션 4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전사에서 영웅으로 등급이 올라갑니다.]
상태창을 불러 봤다.
김대규(영웅)
Lv.29(경험치 95.00%)
생명력 670/670
마나 220/220
근력 35(+5)
민첩 34(+7)
지능 34(+5)
운 4(+5)
권위 6
이름 옆에 적힌 전사란 글자가 영웅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알키오네오스를 잡아 얻은 경험치와 미션 보상으로 레벨이 4단계가 올라 레벨은 최종적으로 29가 됐다. 아직 박 주부 수준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알키오네오스를 홀로 잡은 실력자다.
“알키오네오스를 혼자 잡은 특별 공로로 선물 상자 2개 외에 보관함을 20개 늘려 드립니다.”
안내인 여자가 말하자 허공에 두 개의 상자가 떠올랐다.
보관함을 보자 20개가 더 추가되었다.
첫 번째 상자를 열자 거기엔 그레이 등급 젬스톤 20개가 있었다. 대규는 젬스톤들을 보관함에 넣었다.
두 번째 황금 선물 상자를 열었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나온다고 했지.
촤아악-
상자를 열자 빛이 뿜어져 나왔고 거기엔 칠흑같이 까만 갑옷 한 벌이 놓여 있었다. 투구와 일체형인 갑옷이었다.
갑옷 표면은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흑린갑(黑鱗甲)(전설)]
[제1 타르타로스의 용암에서 추출한 탄소강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비늘 갑옷. 일반 혹은 희귀 등급 무기로는 이 갑옷에 흠집조차 낼 수 없음.]
[상하 투구 일체형. 물리 방어력 30%, 마법 저항력 30%, 회피율 10% 상승.]
[추가 효과 ‘투명화’: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명하게 숨길 수 있음. 움직이면 투명화가 해제됨.]
투명화.
아주 유용한 효과였다. 가만히 서 있으면 투명해진다니. 적을 본 뒤 가만히 서 있어서 투명해지면 공략 영상을 안전하게 숙지할 수도 있고, 다가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기습할 수도 있다.
다른 효과들도 훌륭했지만 이 투명화 효과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한 달 뒤에 소환합니다. 돌아가셔서 보상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안내인 여자가 말했고 대규가 물었다.
“네? 사흘 뒤에 다시 소환되는 것 아닙니까?”
“당신 덕분에 제1 타르타로스가 생각보다 일찍 점령돼서 정비를 해야 할 것들이 생겼거든요. 참, 현실 세계로 돌아가시기 전에 젬스톤을 파시겠습니까? 개당 1,000만 원입니다.”
“안 팝니다.”
대규는 딱 잘라 말했다.
젬스톤으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아쉽군요.”
여자가 말하자 대규는 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이 젬스톤을 매입하는 주체는 대체 누구입니까?”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나왔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저놈의 직무 유기 고질병.
궁금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럼 현실 세계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