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31화 (31/294)

# 31

31화. 헤파이스토스의 모루 (1)

동굴 안은 캄캄했다. 심지어 동굴의 내벽과 솟아오른 바위들조차도 숯덩이처럼 까만색이었다.

만져 보니 숯덩이 같은 바위와 벽에는 작은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아무래도 용암석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옆에 위치한 돌벽으로 지어진 성 ‘기간테스의 성’도 까만색이었지. 아무래도 같은 용암석으로 지어진 성인가 보다.

동굴의 길은 몹시 비좁았다.

지도창을 켜자 저 앞에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붉은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빨리 해치워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웅들과 다른 전사들이 기간테스의 성으로 열심히 돌진하고 있을 것이다.

힘 스킬을 발동하자 근육이 감전된 듯 강렬하게 펌핑됐다. 간만에 느끼는 기분에 전율이 느껴졌다.

샤샤샥-

스륵스륵-

앞쪽에서 자이언트 곤충 부대들이 기어 오고 있었다.

거대한 사마귀, 거미, 지네…….

완전 괴물 곤충 박물관 수준이다.

곤충들은 간만에 동굴로 찾아온 먹이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쉬익, 쉬익.

몸통이 2미터가 넘는 자이언트 스파이더가 거미줄을 쏘아 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놈의 주먹만 한 여덟 개의 눈과 마주쳤다. 녀석은 타액을 질질 흘리며 입을 쩍 벌리고 대규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대규는 녀석의 거미줄과 이빨을 피해 도약의 장화로 허공을 딛고는 순간적으로 놈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지금이다.

“비산의 결계!”

쿠르르르르르.

“키익?”

투명한 결계막에 갇힌 곤충들이 고개를 돌렸다.

번쩍!

번쩍!

번쩌억!

“키이이익!”

수백 개의 빛의 검날이 동굴 속에 비처럼 쏟아져 곤충들의 머리 가슴 배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산산조각 나는 자이언트 곤충 부대.

해충 박멸 완료.

세스코도 이렇게 완벽하겐 못할 거다.

지도를 보자 거대하게 있던 붉은 점은 사라져 버렸다. 역시 비산의 결계. 덕분에 시간이 많이 절약됐다.

차곡차곡 들어오는 경험치와 마나는 덤.

곳곳에서 반짝이는 아이템들이 떠올랐다. 물론 공략집이 알아서 착착 수거해 준다.

지도를 보자 나머지 몬스터들은 간간히 떨어져 있었다. 높아진 근력으로 하나씩 신속하게 처리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클리티오스는 동굴 가장 안쪽에 있었다.

다른 점들보다 유난히 커다란 붉은 점.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녀석을 해치우고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을 제작해 기간테스의 성으로 간다. 남들보다 더 빨리!

대규는 동굴 안쪽을 향해 달려갔다.

동굴 안쪽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벽에는 온갖 망치들과 대장장이의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꼭 동굴이 아니라 대장간에 온 것 같았다.

[히든 미션 장소에 진입했습니다.]

[미션: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를 지키고 있는 거인 클리티오스를 해치우십시오. 0/1]

장소는 제대로 찾아온 거 같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동굴 벽면을 따라 몸을 숨기며 붉은 빛이 일렁이는 곳으로 향했다.

저 안쪽에서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거대한 거인이 앉아 있었다. 손에는 거대한 철퇴를 쥐고 있었다.

크기는 차원의 틈에서 만났던 폴리페모스와 비슷했지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클리티오스(Clytios)

보상: 높은 경험치와 마나, 낮은 확률로 희귀 아이템이나 스킬 드롭

특징: 신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패해 제1 타르타로스의 레툼 화산 동굴 안에 영원히 갇히게 된 거인족. 지능이 있으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다. 철퇴를 사용하며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빠르고 정확한 공격이 위협적임.

보유 스킬: 게미누스 에고(geminus ego)-자신의 분신을 한 명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 30분. 분신 능력(본체의 70%).

<클리티오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클리티오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클리티오스로부터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클리티오스 분신은 회색으로 보입니다.>

<클리티오스의 약점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Yes/No?>

Yes!

대규는 클리티오스의 눈에 띄지 않게 울퉁불퉁 튀어나온 동굴의 벽 틈에 숨어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영상과 설명을 보고 나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놈의 분신술이 오히려 이용하기 좋은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신에게 공격을 하는 척 하다가 본체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 도약의 장화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목이나 심장을 공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는 네메시스의 방패를 활성화하고는 검을 꺼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는 마침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앉아 있던 클리키오스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인간을 보자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인간이로군.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지?”

저 거인 녀석, 말을 원시인처럼 할 줄 알았는데 능숙하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왔느냐고 물어봐야지.”

클리티오스가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등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에게 잘못했다고 했느냐?”

클리티오스가 말을 마친 순간 녀석의 몸이 둘로 갈라졌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녀석이 하나 더 생겼다.

공략집 말대로 분신을 만들었다.

그때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 흑백사진처럼 회색으로 표시됐다.

차원의 틈 세 번째 히든 미션의 황금 상자와 식품 도매시장에서 닭들을 봤을 때처럼.

‘회색이 분신이다!’

그때 녀석들이 동시에 철퇴를 휘둘렀다.

휘익!

제기랄, 왜 저렇게 빨라.

영상을 볼 때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속도감이나 위력이 다르게 느껴졌다.

방패를 올리기도 이미 늦었다.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다.

휘잉!

대규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온 철퇴들이 머리에 닿기도 전에 미끄러지듯 옆으로 빗겨 버렸다.

클리오티스가 자신의 공격이 허공을 친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살았다.’

정신을 차리고 도약의 장화를 이용해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갑옷에 옵션으로 붙은 회피율 5%가 발동한 것 같았다. 적의 공격을 100번 중 5번은 피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겨우 5%인 그 옵션이 운 좋게도 발동된 것이리라.

“죽어랏!”

이놈도 말을 하네.

회색의 분신이 쿵쿵거리며 달려들었다.

너한텐 관심 없다.

쾅! 쾅! 쾅!

철퇴가 머리 위에서 비처럼 쏟아졌고 대규는 민첩하게 그것들을 피했다.

녀석은 분신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격이 빠르고 자로 잰 것처럼 정확했다.

이대로 계속 둘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위험했다.

도망치는 척하며 연속 도약으로 멀리 떨어졌다.

“멍청한 거인 새끼야. 신에게 대들었다가 쫓겨나 갇혀 있는 꼴이 아주 볼만하구나!”

“뭐라고?!”

본체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그만 인간 하나 상대하는 주제에 분신술이라니! 너희 거인 새끼들은 덩치만 크지, 쫄보구나!”

눈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외쳤다.

“인간 주제에 우리 위대한 기간테스 족을 무시하다니. 죽어랏!”

어마어마한 목청에 동굴 전체가 울렸다.

녀석은 분신과 함께 쿵쿵거리며 대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니 녀석의 태도는 완전히 흐트러졌다.

분신 역시 이성을 잃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철퇴들이 눈앞을 갈랐다.

‘됐다!’

위력적이지만 도약의 장화로 쉽게 피했다. 당황한 녀석은 냉정과 평정심을 잃은 탓에 정확했던 공격에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쪽에선 반대로 침착하게 천천히 해치우면 된다.

녀석은 흥분하자 철퇴를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자기 딴에는 강력한 한 방을 노리는 것이었지만 대규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팟!

대규는 일부러 분신 쪽으로 점프했다가 도약의 장화를 이용해 허공을 딛고 본체 쪽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놈의 동공이 커지며 크게 흔들렸다. 위험을 직감한 것이리라.

서걱-!

정확하게 심장을 노렸지만 녀석의 대응도 빨랐다. 녀석의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신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더니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인간 자식!”

완전히 광분한 녀석들은 본체 분신 가릴 것 없이 다시 한 번 급하게 철퇴를 내리꽂았다. 부상을 입었지만 엄청난 위력. 저걸 아무 생각 없이 맞았다간 아무리 물리 저항력이 높은 갑옷을 입었다 해도 온몸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하지만 안 맞으면 장땡이다.

보레아스의 냉기 때문인지 동작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피하는 것도 수월했다.

공격이 빗나간 탓에 녀석들은 고꾸라질 듯 몸을 휘청거렸다.

이때다.

탓, 탓, 탓!

점프!

검을 쥐고 있는 팔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저 아래 본체 녀석의 뒷목이 훤히 보였다.

서걱-!

촤아악!

검날이 허공을 가르자 피가 파도처럼 솟구쳤다.

“으으… 인간 녀석이 감히…….”

툭.

목이 잘렸는데도 말을 한다. 분신이 말했나.

거대한 본신의 몸통이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지자,

우아아아아, 끼엑!

분신은 괴성을 지르며 사라졌다.

허공에 검을 한 바퀴 휘두른 뒤 검집에 넣었다.

[클리티오스를 해치운 대가로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나를 20 흡수하였습니다.]

[제1 타르타로스의 히든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당신의 레벨이 추가로 1단계 상승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레벨이 22가 됐다. 미션의 보스 몬스터답게 대량의 경험치로 레벨이 오르고 보상으로 또 올라서 2단계나 오른 것이다.

온몸이 경쾌하니 가벼웠다.

녀석의 사체 위로 빛을 내며 아이템이 떠올랐다.

그쪽으로 다가가려는데 개인 보관함이 반짝였다.

클리티오스를 죽이고 얻은 아이템을 벌써 수거한 것이다.

그래도 나름 제1 타르타로스의 중간 보스니까 좋은 아이템을 주겠지?

스킬북이다!

대규는 책장 앞표지를 봤다.

[명당의 눈]

표지를 넘겼다.

[명당의 눈을 습득하였습니다.]

[명당의 눈: 명당의 위치를 판별해 줍니다. 마나 소모 10.]

명당의 위치를 판별해 주는 스킬이라니!

장사가 잘될 곳을 알려 준다는 건가? 아님 미래에 땅값이 확 오를 곳을?

장사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자에도 용이할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스킬을 써 봐야 알겠지만.

“빨리 알키오네오스를 해치우고 현실로 돌아가야겠다.”

저 멀리 까만 용암석으로 만들어진 모루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모루를 집어 들었다. 무거운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가벼웠다. 이제 공략집에서 헤라클레스의 독화살 재료를 볼 수 있겠군.

<헤라클레스의 독화살>

<알키오네오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독이 묻은 화살.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활: 단단한 뼈, 질긴 힘줄, 그레이 젬스톤 1개>

<화살: 단단하고 날카로운 송곳니, 치명적인 독, 뜨거운 용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