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27화. 새로운 모험 (1)
도형이 간 후 김치찌개집까지 손님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바빠졌다. 상민과 진섭, 다른 친구들 역시 쉴 틈 없이 서빙 중이었다.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 손님 진희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북적북적한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말 장사 잘되네. 나도 나중에 이런 가게를 차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조리학과를 다니며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 꿈인 요리학도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소문난 맛집을 혼자 찾아와 음식을 먹으며 맛을 분석했다. 많이 먹어 봐야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
“헉!”
뭐가 이렇게 맛있어?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추천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입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평범한 닭고기에 소스 같은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지?”
자신도 이런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그때 벽에 붙은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저 아르바이트생으로 써 주세요!”
진희는 서빙하던 상민을 다짜고짜 붙잡고 말했다.
“예, 예?”
“대규야 ! 아니, 사장님. 알바 지망생 왔다… 요.”
상민이 주방에 있는 대규를 불렀다.
자세히 보니 꽤 귀엽게 생긴 아가씨였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쯤 되려나.
“혹시 사장님이세요? 저 진짜 일 잘할 자신 있어요! 다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력도 많아요!”
“지금 바빠서 그러니… 일단 연락처 남겨 두고 가세요.”
대규는 이렇게 말한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진희가 그의 소매를 붙잡고 사정했다.
“사장님, 저 정말 여기서 일해 보고 싶어요! 저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조리학과 다니거든요. 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상민이 다가와 말했다.
“야, 뽑자, 뽑자. 귀엽게 생겼잖아.”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요리도 할 줄 안다잖아. 대규야, 아니 사장님, 제발 뽑아 주세요. 남자들밖에 없어서 아주 칙칙합니다. 근무 환경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알았어. 알았다구! 이봐요, 그럼 일단 일주일 정도 같이 일하면서 지켜보도록 할게요.”
대규가 말하자 진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상민도 옆에서 외쳤다.
“아싸, 대규야, 고맙다!”
“니가 왜 고마워해?”
“아니, 뭐 하하…….”
머쓱하게 웃은 상민은 진희에게 다가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전상민이라고 이 가게의 고객 관리 팀장 겸 매니저란다. 메이터 디(Maitre d’)라고도 하지.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가워.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우선…….”
온갖 폼을 잡고 열심히 설명하는 상민의 모습을 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그날 장사를 종료하고 정산을 했다. 도형이 왔다간 후 김치찌개 가게까지 손님을 받아서 매상이 꽤 올랐다. 장사를 끝내고 애들을 퇴근시킨 뒤 단숨에 김치찌개집 간판을 떼어 버렸다. 높아진 근력이 이럴 때 꽤 유용하다.
그나저나 도형이 자식이 뭐라고 난리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허락해서 다행이었다. 하긴 비어 있는 건물에 들어가서 돈 준다니까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겠지.
오늘 하루의 매상은 총 748만 원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의 가게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사람도 생겼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자신의 가게 이름을 쳐 봤다.
자동 검색어 완성도 된다!
인터넷에 좌르륵 떠있는 글들과 음식들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 정말로 성공했구나. 그것도 며칠 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고생했던 걸 제대로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더욱 성공하고 싶었다.
‘정말 뿌듯하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오늘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 지 사흘째.
드디어 타르타로스로 진입하는 날이었다. 솔직히 사흘 동안 정신없이 장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대규는 매상을 개인 보관함에 넣으며 생각했다.
‘제1 타르타로스로 저절로 소환된다고 했지. 일단 정리하고 준비를 하자.’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차원의 틈은 현실 세계와 비슷했는데 그곳도 그럴까? 어쩌면 현실과 완전 다른 이 세계 공간일지도 모른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공략집이 있으니까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타르타로스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는 당연히 더 많은 보상들을 얻어올 것이다. 차원의 틈만으로도 이런 보상을 얻었는데.
어느새 두려움은 가셨다. 대규는 접이식 침대를 편 뒤 똑바로 누웠다.
눈을 감자마자 주변이 암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팟.
암흑 속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마법진.
[제1 타르타로스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마법진의 한가운데는 안내인 여자가 서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대규를 포함한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일전에 봤던 후보생들. 아, 이젠 전사들인가?
가죽 갑옷을 입은 지영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자 그녀 역시 눈인사를 했다. 공략집으로 상태를 보니 레벨이 12였다. 예전에 비해 훨씬 당당해진 느낌이었다. 가슴… 아니 눈빛도 강해진 것 같았고.
갑옷을 입은 대딩 원영의 모습도 보였다. 7레벨이었다. 저 성격에 여러 번 죽고 고생깨나 한 것 같았다.
양아치 최대호.
8레벨이다. 동교 로터리에 버려 두는 바람에 레벨이 겨우 2단계 올랐을 뿐이다. 대규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썩으며, 이를 갈았다. 그가 눈에 힘을 주자 대호는 겁에 질린 듯 고개를 숙였다.
‘겁은 내면서 까불어요.’
그리고 맨 처음 소환됐을 때 봤던 안경 낀 학자 타입의 남자도 있었다. 레벨은 10이었다.
‘근데 왜 다섯 명뿐이지? 평범한 여대생과 배 나온 아저씨는 어디 가고?’
그때 마법진 한가운데 있던 안내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들은 후보생 기간을 무사히 수료하시고 전사로서 제1 타르타로스에 오게 됐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어디 있는 거죠?”
지영이 묻자 여자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평가에서 탈락됐습니다. 차원의 틈에서 있었던 기억과 능력을 잃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죠.”
그랬던 거군.
“일단 타르타로스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자는 다섯 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탈락자들처럼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 계속 남을 것인지 말입니다.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타르타로스에서부턴 죽어도 부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게 됩니다.”
그 말에 대규를 제외한 나머지의 표정이 굳었다. 특히나 원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물론 돌아가는 걸 선택하시면 여러분은 이곳에서의 기억은 물론 얻은 보상이나 능력도 모두 사라집니다.”
타르타로스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하지만 자신은 공략집 때문에 절대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젬스톤 3개로 업데이트도 시켰다.
보상을 받아 공략집을 더욱 업데이트하면 죽지 않는 것은 물론 더 빨리 강해지고 현실 세계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남들은 죽음이 두렵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전 계속 남겠습니다.”
대규가 말하자 안내인 여자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속한 결정이로군요. 다른 분들은?”
지영은 대규를 바라봤다.
어떻게 저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걸까.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인데 두렵지도 않은가?
그와 같이 싸울 때도 느꼈던 거지만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김대규, 저 남자에겐 두려움이나 공포 등을 초월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게 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차원의 틈에서 대규와 헤어진 이후 미친 듯이 노력해서 레벨을 올렸다.
“…저도 남을게요.”
그녀가 대답했고 안내인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양아치 최대호는 남겠다고 대답한 대규와 지영을 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저 연놈들이 남겠다고…….’
안내인 여자의 말대로 타르타로스는 정말 위험한 곳 같았다. 하지만 차원의 틈에서 받은 보상과 능력을 지니고 현실로 돌아온 그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 단번에 조직의 서열 넘버2가 됐다.
다음번에 현실로 돌아가면 두목을 제압해 조직 전부를 먹을 작정이었다.
‘게다가 김대규 저 새끼한테 복수도 해야지.’
대규에게 맞은 곳이 아직도 쿡쿡 쑤셨다. 대호는 절대 자신이 당한 일을 잊지 않는 인간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지금은 저 새끼에게 맞설 수 없지만 어떻게든 쫓아가서 죽여 버리고 말 거다. 어차피 부활도 안 된다니까 잘됐다.
대규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강자의 뒤통수를 치는 방법은 많았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전문 분야였다.
‘저 새끼를 족친 뒤 죽이고 저 계집애도 덤으로 같이 죽인다. 물론 그때 못 한 일도 하고. 흐흐.’
대호는 가죽 갑옷을 입어 몸매가 드러난 지영을 음흉한 눈빛으로 훑으며 말했다.
“나도 남겠소.”
학자 타입의 남자도 남겠다고 했다. 이제 원영만 남았다.
원영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의 보상은 상상초월이었다. 그는 부잣집의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태생적으로 몸이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심했다. 하지만 능력이 개방되고 몹시 건강해졌다.
하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자신이 타르타로스에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차원의 틈에서도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현실에 돌아온 사흘 동안 그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게다가 거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 거다. 부활도 안 되고 진짜 죽는다.
‘죽고 싶지 않아!’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돌아갈래요. 저와는 잘 맞지 않는 거 같아요… 흐흑…….”
“알겠습니다. 그럼 김원영 씨가 얻은 보상과 기억을 지우겠습니다.”
안내인 여자가 원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왔고 얼마 후 원영의 모습은 사라졌다.
현실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았다.
대규는 원영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를 겁쟁이라고 욕하고 싶진 않았다. 원영 같은 사람은 현실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최대호 저 자식이다.’
지금은 자신의 눈빛을 회피하고 있지만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공략집을 이용해 놈의 상태창을 봤지만 자신과의 레벨 차이는 엄청났다.
놈이 무슨 짓을 벌인다면 제대로 밟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