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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3화 (23/294)

# 23

23화. 돌아온 현실 (2)

-차원의 틈 공략집-

물품명: 8호 닭 100마리

원산지: 국내산, 태국산

<본 물품은 국내산 생닭 20마리와 태국산 냉동 닭 80마리로 구성됐습니다.>

<태국산 냉동 닭은 회색으로 표시됩니다.>

대규는 다시 포장된 닭들을 바라봤다. 포장 맨 위쪽, 즉 보이는 위치에 놓인 닭들을 제외하고 그 아래쪽에 있는 닭들은 죄다 흑백 영화처럼 회색으로 보였다. 마지막 히든 미션에서 가짜 황금 상자들을 봤을 때처럼.

설마 현실 세계에 대한 공략이 업데이트된다는 말이 이런 거였나.

식재료의 원산지와 상태 같은 건 웬만한 전문가도 알아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그걸 눈앞에 표시해 준다니.

아니지. 지금은 공략집의 위력에 놀라서 감탄할 때가 아니다.

대규는 가게를 오픈한 후 이곳에서 항상 닭을 사왔다. 그런데 여태 생닭이라 믿고 샀던 닭들에 냉동 닭이 섞여 있었다니!

사실 냉동 닭은 물에 해동시켜서 생닭과 섞어 놓으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힘들다. 대신 뼈째 튀기게 되면 냉동 닭의 경우 뼈가 시커멓게 변하는데 이걸로 냉동 닭과 생닭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대규의 경우 발골을 해서 뼈는 버리고 살만 발라내 요리를 했기 때문에 그간 냉동 닭을 알아채지 못했다.

교활한 박 사장은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냉동 닭을 몰래 섞어 팔고 있었던 것이다.

“김 사장, 뭐 잘못됐어?”

박 사장이 웃으며 묻자 대규는 포장된 닭들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이거 정말 국내산 생닭 100마리 맞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박 사장은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난 김 사장한테 항상 국내산 생닭만 팔았다구! 이거 봐, 여기 닭들 보면 딱 봐도 때깔과 신선도가 다르잖아!”

박 사장은 일부러 포장 위쪽에 있는 생닭 중 한 마리를 꺼내 든 뒤 더욱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이것 좀 보라니까. 내가 여기서 닭을 몇 년이나 팔았는데. 젊은 사람이 힘겹게 장사한다고 해서 일부러 싱싱한 걸로 넣어 줬는데 말이야. 의심이나 하고! 그럼 못써!”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박 사장의 큰 목소리 때문에 지나가던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래?”

“몰라. 싸움이라도 났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박 사장은 한술 더 떠서 더욱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봐, 김 사장. 저기 닭튀김집 보여? 저기도 내가 10년 동안 닭 대주는 집이야. 의심되면 이 닭 갖고 가서 한 번 튀겨 봐. 자네도 닭튀김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튀겨보면 생닭인지 냉동 닭인지 알 거 아니야!”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 보도록 하죠.”

대규는 회색으로 보이는 닭들 중 한 마리를 포장에서 꺼내 들며 말했다.

“이걸로 튀기겠습니다.”

냉동 닭을 들고 닭튀김집으로 가려는데 박 사장이 닭을 급하게 뺏어 들면서 소리쳤다.

“됐어, 안 팔아! 장사도 더럽게 못하는 주제에, 일주일에 100마리도 사갈까 말까 하면서!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이렇게 팔아주는데 의심이나 하고. 괘씸한 녀석! 너한텐 이제 닭 안 팔 테니까, 당장 꺼져!”

그는 대규가 든 냉동 닭을 뺏어간 뒤 포장 닭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으려고 했다. 대규는 그를 가로막고 닭100마리가 들어 있는 캐리어를 통째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8호 닭이면 정확하게는 751~850g의 무게를 가진 닭이다. 즉 평균 800g이라고 해도 100마리면 80kg이나 되는 무게다. 캐리어 무게까지 합치면 거의 100kg에 가깝다.

“우와, 저 사람 뭐야? 씨름 선수야?”

주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찍어 대기 시작했다.

키 작은 박 사장이 깡충깡충 뛰면서 손을 허공에 내저으면서 떠들어 댔다.

“그거 안 내려놔? 안 내려놓으면 도둑으로 신고할 거야.”

“대신 신고해 주면 나야 고맙지. 도둑이 누군지 밝혀 보자고요, 박 사장님.”

대규는 닭을 들어 올린 채로 튀김집으로 걸어갔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튀김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닭을 튀김집 앞에 내려놓고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말했다.

“OO상회 박 사장님이 여기 닭들이 전부 생닭이라고 주장하는데, 생닭인지 냉동 닭인지 튀겨 보겠습니다.”

대규가 냉동 닭을 네 마리 꺼내 들고 튀김기로 향했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역시 튀김기로 우르르 향했다. 박 사장이 생닭을 들고 쫓아왔지만 늦었다.

튀김기에 들어간 닭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름에 튀겨지고 있었다.

지글지글.

대규가 맨손으로 튀겨진 닭들을 집어 들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물론 닥튈로이 반지 덕에 살짝 뜨겁기만 했다.

살을 발라내고 검게 변한 뼈들을 진열장에 올려놓았다.

턱!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며 웅성댔다.

“경찰을 불러요. 완전 사기꾼이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OO상회에서 내가 닭을 사면 내가 닭이다, 닭.”

박 사장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여기서 잘못되면 영업 정지는 물론이고 이게 다 알려지면 손님이 다 떨어져 나가 망할 수도 있다.

원래 이 짓을 계획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가게 운영이 힘들어져 딱 한 번 했던 것이 횟수가 점점 늘어나 버렸다. 이익에 눈이 어두워졌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돈에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털썩!

그는 무릎을 꿇고 대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김 사장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러게,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하면 좋았잖아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바지 찢어지겠네. 이거 놓으시고 법대로 합시다, 법.”

“오늘 주문 생닭으로 바꿔서 100마리 사죄의 의미로 그냥 드리겠습니다. 제발 신고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 * *

사람들이 없는 주차장 한구석.

저 멀리 박 사장이 캐리어를 끌고 왔다.

그는 좀 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굽실거리며 대규에게 말했다.

“김 사장님, 차 어디 있습니까? 하하하, 이거 제가 대신 실어 드릴 테니…….”

“됐어요. 여기 두고 가세요. 직원이 차 갖고 올 겁니다.”

직원이 차를 갖고 오긴 개뿔. 자동차는커녕 밀린 건물세도 못 내고 있는데.

하지만 이제 자동차는 필요 없었다. 만능 보관함이 있으니까.

물론 이 인간 앞에서 그걸 보여 줄 필요는 없다.

결국 신고는 하지 않았다.

오늘 주문한 생닭 100마리를 공짜로 준다는 말과 차후 주문은 원가로 공급하는 것은 물론 가게까지 배달 서비스를 해 준다고 해서 신고를 물린 건 절대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이 불쌍해서 봐준 것뿐이다.

“아이고, 그럼요! 직원이 당연히 가지러 오시겠죠. 다음부턴 전화로 주문해 주시면 바로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서비스도 드리고~”

“또 냉동 섞어서 보내려구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김 사장님, 앞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대규가 쏘아붙이자 그는 더욱 허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저러다 허리디스크 걸리겠다.

“그럼 전화 드릴 테니 그만 들어가세요.”

“네네, 전화 주십시오. 그럼 살펴 들어가십쇼!”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빈 캐리어를 끌고 비굴할 정도로 공손하게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식품 위생과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박 사장은 빠르게 태도를 바꿨다. 게다가 오늘은 박 사장의 약속대로 무료 서비스를 해 줬다.

빼앗다시피 한 거 아니냐고?

신고 안 한 걸 고맙게 여겨야지. 만약 신고했으면 가게는 거덜 났다. 그리고 박 사장과 약속한 대로 한 것뿐이다. 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럼 이제 재료들을 개인 보관함에 담아 볼까.

다른 재료들도 보관함에 차곡차곡 넣었다.

재료들을 다 넣자 개인 보관함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현실에서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정말 편리한걸.’

버스를 타고 다시 신촌의 가게로 돌아온 뒤 재료를 다듬으며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하면서 카운터 테이블 위에 놓인 요리 실력 상승 포션을 바라봤다.

저 포션을 사용하면 오늘도 놀랄만한 매상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인 걸까?

‘공략집을 현실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면…….’

도매 시장에서 겪었던 것처럼 몬스터가 난무하는 저쪽 세계뿐만 아니라 이곳 현실에서도 공략집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을 해야 한담?

그건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옛날보다 재료 손질이 훨씬 쉬운걸.’

민첩이 올라 옛날보다 더 빨리 칼질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근력도 올라서 쉬지 않고 닭을 발골해도 지치지 않았다.

맞다. 올라간 운 수치를 확인해 보기 위해 로또를 사기로 했는데 깜빡했다.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그때 불현듯 자신의 상태창 아래에 표시된 보유 스킬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힘이여, 솟아라!와 비산의 결계 아래쪽에 있는 스킬.

맨 처음 차원의 틈에 진입했을 때부터 있었던 자신의 패시브 스킬.

요리.

상태창을 불러 스킬에 대한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요리(하급): 패시브 스킬로 요리 시 항시 발동됩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이라니. 다시 봐도 기분 나쁜 코멘트다.

그런데 이놈의 요리 스킬은 패시브 스킬인데도 차원의 틈에서 한 번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그것보다 애초에 요리가 스킬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나 싶어 스킬명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봤다.

그때 공략집이 떠올랐다.

<요리를 통해 경험치를 얻을수록 스킬의 등급이 오릅니다(0/300).>

<숙련의 장갑을 착용하고 사용할 시 두 배의 요리 경험치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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