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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2화 (22/294)

# 22

22화. 돌아온 현실 (1)

“헉!”

대규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몸을 일으키자 그의 가게 탕꼬였다.

‘모든 게 다 꿈이었나?’

차원의 틈에 타르타로스, 그리고 몬스터와의 전투라니. 말도 안 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혹시 그 여자가 애초에 탕꼬에 찾아왔던 것부터가 모두 꿈 아니었을까?

‘그럼 내 매상 245만 원은?’

대규는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나 카운터의 금고를 확인했다.

매상 245만 원은 그대로 있었다.

휴우, 이건 꿈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빈 포션 병이 보였다. 병 안에는 술이 반쯤 담겨 있었다.

그래.

기적적인 하루 매상을 확인한 후 기쁨에 젖어 저 포션 병을 행운의 병이라고 여기며 정성스레 닦은 뒤 술을 따라 마셨지. 그러고 있는데 그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차원의 틈으로 나를 끌고 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과 개인 보관함을 불러 보자 눈앞에 좌르륵 떴다. 보관함 안에는 자신이 차원의 틈에서 지녔던 무기들과 갑옷, 아이템들이 곱게 저장돼 있었다.

그 중에서 날이 빠진 중식 칼과 망가진 웍이 보였다.

차원의 틈에서 초반부 무기로 썼던 그의 조리 도구들이었다.

‘정말 이 모든 게 진짜 일어난 일이란 말이야?’

그것보다 대체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걸까. 이곳에서 그녀를 따라 차원의 틈으로 간 게 아주 오래전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본 대규는 깜짝 놀랐다.

새벽 3시.

그 여자가 이곳에 찾아왔던 시간도 분명 새벽 3시였다.

‘말도 안 돼.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고?’

혹시나 하루 이상 지난 건가 싶어 핸드폰을 확인해 봤지만 아니었다.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저쪽 세계에서 흐른 시간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사흘 뒤에 다시 소환된다고 했다.

그것도 타르타로스의 입구에서.

뭘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당장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캄캄한 새벽 3시. 일단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보관함을 닫으려는데 그중에서 하나의 아이템이 보였다.

하급 요리 실력 상승 포션.

차원의 틈에서 언젠가 미니 키클롭스를 죽이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안내인 여자는 분명 차원의 틈에서 얻은 보상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 포션의 위력은 어제 하루 동안 톡톡히 확인했다.

‘좋아. 그럼 이걸 오늘 장사에도 사용해야겠다.’

그럼 적어도 어제 만큼의 매상을 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규는 신나는 마음으로 그 포션을 꺼내 카운터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살짝 아쉬워졌다.

이 포션으로 하루 더 매상은 올릴 수 있겠지만, 그다음엔?

차원의 틈 세계에서 공략집을 활용해 빠르게 강해졌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러고 싶었다. 고작 하급 포션을 통해 하루 매상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성공하고 싶었다. 이 뒷골목을 벗어나 신촌 거리,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박 주부만큼 유명해져서 요식 업계의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휴우,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그때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을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업데이트시키려면 그레이 젬스톤 3개가 필요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젬스톤 3개를 사용하면 공략집이 업데이트된다니.

그리고 지금 공략집이 메시지를 보여 준다는 것은 차원의 틈처럼 현실에서도 공략집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단 말인가.

원래는 젬스톤으로 히든 미션에서 얻은 성장형 아이템들을 각각 성장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공략집 메시지창을 보니 마음이 강하게 흔들렸다.

히든 미션 성장형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공략집 덕분이었다. 아이템뿐인가. 단기간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게 성장한 것도 다 공략집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이 공략집을 활용한다면 차원의 틈에서처럼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타르타로스에 진입하고 나서부턴 적은 확율이지만 젬스톤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템들은 그때 성장시켜도 늦지 않을 것이다.

‘Yes!’

개인 보관함에서 젬스톤 3개가 사라졌고 메시지창이 떴다.

<공략집이 성공적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려면 그레이 젬스톤 30개가 필요합니다.>

젬스톤 30개라니. 게다가 다음 단계 업그레이드도 있단 뜻이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지도창을 불러 봤지만 서울 전역의 지도만 뜰 뿐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봐도 똑같았다.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하는 게 좋겠다. 게다가 내일 장사할 식재료도 다 떨어진 상태라 아침 일찍 도매 시장에 가야 했다.

대규는 한쪽 테이블을 치운 뒤 접이식 침대를 펴고 그 위에 누웠다.

* * *

상암동에 위치한 식자재 도매 상가.

이 도매 상가는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곳으로 온갖 식재료를 다 팔았다. 육류, 생선 등 기본적인 재료부터 온갖 과일, 야채에 부재료, 주방 식기들까지 팔지 않는 것이 없었다.

대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도약의 장화를 신고 달리면 순식간에 갈 수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현실에서 섣불리 그 장화를 신고 점프라도 했다가 사람들 눈에 띄면 인터넷에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다.

상가에 들어가자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크고 작은 가게들이 좌르륵 모여 있었다.

그는 그 중에서 국내산 생닭과 수입 냉동 닭을 동시에 취급하는 단골 도매점으로 갔다.

가게의 박 사장은 통화 중이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대규가 왔다는 걸 확인했지만 인사도 하지 않고 계속 통화 삼매경이었다.

“예에, 이 사장님, 5호 500마리요? 당연히 국내산 생닭이죠! 제일 좋은 놈들로 골라서 보내 드릴 테니 걱정 마십쇼! 예예, 감사합니다.”

5호 닭을 사용하는 걸 보니 삼계탕집인 것 같았다. 어느 가게인지 부럽다. 하루 500마리면 매상이 얼마냐.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제야 아는 척을 하는 박 사장.

“어이구, 최 사장! 오랜만이야~”

“저 김대규입니다.”

“아, 맞다! 김 사장이었구나. 내 정신 좀 봐. 미안.”

말과 달리 태도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심지어 단골손님인데도.

하긴, 도매상들이 장사 안 되는 소규모 가게 사장들 이름까지 기억할 리 만무하다. 잘나가는 사장들에겐 간도 빼 줄 것처럼 굽실굽실 허리를 굽히지만 대규처럼 장사 안 되는 소규모 가게에 심지어 나이가 젊은 사장이라면 마지못해 상대하는 것이 그들의 생리다.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뭘 드릴까?”

“8호 국내산 생닭으로 100마리 주세요.”

“아, 100마리? 아이고 김 사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100마리를 주문하자 박 사장은 아까와는 태도가 달라져 굽실거렸다.

그는 냉장고로 가서 포장된 닭들을 캐리어에 싣고 나왔다.

“자, 여기 말씀하신 국내산 생닭 100마리 나왔습니다~ 차 갖고 왔으면 주차장으로 갖다 줄까? 아님 퀵으로?”

평소 같으면 퀵 서비스 택배로 부쳤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재료를 넘겨받은 뒤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보관함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퀵비도 줄이고 일석이조다.

대규는 포장된 닭들을 바라봤다.

그때 공략집이 눈앞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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