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화. 포탈 (2)
온통 암흑뿐이었는데 발밑에서 은은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정신을 차리니 바닥엔 거대한 마법진이 있었고 대규는 가장자리 한편에 서 있었다.
‘이곳은……!’
처음 차원의 틈에 진입했을 때 후보생 7명을 모아 놓고 안내인 여자가 설명을 했던 장소와 같았다.
[‘제1 타르타로스’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제1 타르타로스.
마법진의 중앙에는 긴 생머리의 안내인 여자가 서 있었다. 차원의 틈에 진입했을 때와 같이 정장 차림이었다.
“김대규 씨, 첫 번째 미션 완수와 포탈을 최초로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무표정에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정말 축하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때 메시지창이 떴다.
[미션 1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후보생에서 전사로 등급이 올라갑니다.]
상태창을 불러 봤다.
김대규(전사)
Lv.15(경험치 87.00%)
생명력 370/370
마나 130/145
근력 21
민첩 20(+5)
지능 20
운 3(+5)
권위 5
이름 옆에 후보생이라 적혀 있던 글씨가 바뀌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창을 바라보는데 안내인 여자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후보생 기간 중에 레벨을 15까지 올렸다니. 놀랍군요.”
“내 레벨이 당신에게 보이는 겁니까?”
“그래요.”
설마 공략집도 눈에 보이는 건 아니겠지.
“혹시… 당신 눈에 내 레벨 말고 다른 것도 보입니까?’
“다른 게 더 보여야 하나요?”
그녀는 딱딱하게 대답한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여튼 안내인이라면서 이쪽이 정작 궁금해 하는 건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는다. 직무유기의 달인이라니까.
그런데 그녀의 저 대답, 묘하게 신경 쓰인다.
“일단 첫 번째 미션을 달성한 대가로 개인 보관함을 열 칸 늘려 드리겠습니다.”
안내인 여자가 이렇게 말한 뒤 대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인벤토리를 불러보니 정말로 보관함이 열 칸 늘어나 있었다.
그녀는 이제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두 개의 작은 선물 상자가 나타났다.
상자들은 전에 차원의 틈에 진입했을 때 받았던 것과 동일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받을 보상들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상자들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놈의 보상을 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던가.
첫 번째 선물 상자에 다가가자 메시지창이 떴다.
[제1 타르타로스 포탈 진입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 상자가 지급됐습니다. 열어 보시겠습니까?]
상자를 열자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갑 한 쌍이 나왔다.
[숙련의 장갑을 얻었습니다.]
숙련의 장갑?
장갑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숙련의 장갑(희귀)]
[이 장갑을 착용하면 숙련의 버프를 받아 경험치를 두 배로 얻게 됩니다.]
숙련의 버프를 받아 경험치를 두 배로 얻게 된다니 꽤 쓸 만한 아이템이다.
이놈의 세계는 레벨이 오를수록 똑같은 몬스터를 잡아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해 버린다. 특히 레벨이 10이 넘어간 이후에는 키클롭스나 오르트로스를 아무리 죽여도 들어오는 경험치가 쥐똥 수준이었다. 따라서 더욱 강한 적이 나타나 주지 않는 이상 레벨을 올리기 위한 노가다는 결국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경험치를 두 배로 얻게 된다면 노가다를 하는 양도 그만큼 줄어들고 더 빨리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되니 이 장갑은 그야말로 유용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미션을 달성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선물 상자의 보상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포탈 선착자 추가 보상 상자엔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 들어 있을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선착자 추가 보상으로 지급된 두 번째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속엔 엄지손톱만 한 회색 돌 세 개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젬스톤(그레이 3개)을 습득하였습니다.]
대규의 눈동자가 커졌다.
히든 미션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그 젬스톤!
이걸 여기서 얻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돌 하나를 집어 들자 공략집의 설명이 좌르륵 떴다.
<젬스톤은 타르타로스에서 몬스터를 해치우면 적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광물로 이를 이용해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색깔에 따라 젬스톤의 등급이 달라집니다.>
공략집의 설명대로였다.
색깔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단 말만 빼고는.
이 회색빛의 그레이 젬스톤이 어느 정도 수준의 등급인지는 설명에 나와 있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젬스톤을 바라보자 공략집이 떴다.
<그레이 젬스톤은 가장 하급 등급 젬스톤으로 제1 타르타로스 이상에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젬스톤의 등급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레이-레드-블랙-그린-블루-???>
역시나 했는데 제일 하급이었군. 하지만 그게 어디야.
대규는 일단 그레이 젬스톤들을 인벤토리 한편에 귀하게 모셔 뒀다.
그때 안내인 여자가 대규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대규의 이마에 갖다 댔다.
“뭡니까?”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후보생 기간 중 단 한 번도 죽지 않았고 놀라울 정도로 큰 성장을 보이며, 7명의 후보생 중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건 그 대가로 지급될 선물이에요.”
그러고 보니 죽으면 평가에서 감점된다고 말 했지.
그 평가라는 게 대체 뭔지 모르겠고, 누가 점수를 매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대규는 가슴이 살짝 벅차올랐다.
자신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니.
감격에 눈물이 찔끔 날 뻔도 했다. 학교 다닐 땐 맨날 반 꼴찌를 면치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선물이라면서 왜 내 이마에 손을 대고 있는 겁니까?”
우우웅-
여자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대규의 몸속으로 흡수됐다.
얼마 후 메시지창이 떴다.
[운과 권위가 각각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레벨이 2단계 상승합니다.]
여자가 그의 이마에서 손을 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규는 상태창을 불러 확인했다. 레벨은 17이 됐고 운과 권위는 각각 9, 6으로 올라 있었다.
레벨이 오른 것보다도 운과 권위가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가면 정말 로또를 사 봐야겠다.
안내인 여자는 다시 마법진 중앙으로 돌아간 뒤 그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대규 씨가 갈 곳은 제1 타르타로스입니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포탈 자체가 제1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포탈이랬으니까.
“제1 타르타로스는 수많은 몬스터 중에서도 거인족들이 모여 있는 곳 입니다. 후보생 기간 중 키클롭스 몬스터들을 배치한 것도 제1 타르타로스에 빨리 적응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거인족이라.
대규는 자신이 첫 번째 히든 미션에서 상대했던 7미터의 거인 폴리페모스의 분신을 떠올렸다. 역시 녀석의 본체는 제1 타르타로스에 있는 것 같았다.
폴리페모스의 본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왔다.
“내가 거기서 뭘 하면 됩니까?”
비장한 목소리로 묻자 안내인 여자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은 그곳을 무사히 통과하기만 하면 됩니다.”
“무사히 통과만 하면 된다고요?”
“네.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타르타로스에서부터는 죽어도 부활이 되지 않으니까요.”
확실히 그가 여태까지 전투를 벌였던 차원의 틈보다는 훨씬 위험한 곳 같았다. 하지만 그는 히든 미션 아이템에 힘이여, 솟아라!, 비산의 결계 같은 뛰어난 스킬들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뭘 해야 할지 척척 알려 주는 믿음직스러운 공략집도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헤쳐 나간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것보다 제1 타르타로스라면 제2, 제3의 타르타로스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앞으로 그것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통과한 후에는요?”
그러자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예리한 질문이군요.”
그녀는 대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통과하면 김대규 씨 당신은 인간 영웅으로 거듭나 ‘제2차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해 싸울 자격을 얻게 됩니다.”
“제2차 기간토마키아요?”
“더 이상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당신이 소환될 곳은 제1 타르타로스의 입구입니다.”
발밑의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에게선 이상한 힘이 느껴지는 군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말을 마친 안내인 여자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곧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파도처럼 촤악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