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7화. 히든 미션 2 (1)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공략집을 갖고 있다고 사실 대로 말할 순 없고.
대답을 하는 대신 보레아스의 검을 뽑아 들고 가까이 있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눈치채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놈은 공략집에 적힌 대로 몹시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은 대규의 공격을 피하며, 두 개의 주둥아리를 동시에 쩌억 벌렸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잖아.
급한 대로 자신과 가까이 있는 왼쪽 머리를 검으로 베었다. 숨 좀 돌리려는데 왼쪽 머리가 잘려 나간 단면에서 새로운 머리가 솟아올랐다.
엄청나게 빠른 재생력.
재생된 머리가 대규의 왼팔을 콱 물었다.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아프다.
“크윽, 이 똥개가!”
녀석은 설명대로 한 번 문 사냥감을 쉽게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였다. 왼쪽 머리가 대규의 팔을 물고 있는 탓에 약점인 오른쪽 머리는 완전 무방비 상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서걱-!
힘 스킬로 상승된 근력 때문에 오른쪽 머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잘려 나갔다. 대규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팔을 물고 있는 왼쪽 머리도 마저 베어 버렸다.
좋아, 이걸로 한 마리는 끝.
하지만 왼팔에는 아직도 녀석의 송곳니가 깊게 박혀 있었다.
으윽, 아파 죽겠다.
그런데 왜 피가 안 나지? 게다가 상처도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
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괜찮습니다.”
괜히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놀라울 정도로 괜찮다.
아무리 가죽 갑옷이라도 이 정도 공격이라면 뚫리고 피가 철철 흘렀을 텐데.
송곳니를 뽑아냈지만 팔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약한 긁힌 정도인 것 같달까.
‘설마 이 반지의 효과인가?’
대규는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닥튈로리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물리 방어력 30%를 올려 준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군!
웬만한 갑옷보다 방어력이 훨씬 훌륭했다. 게다가 상하의로 착용한 가죽 갑옷 덕에 방어력은 추가로 20% 더 상승했다.
오르트로스에게 직방으로 물렸는데 이 정도라면 앞으로 이 히든 미션을 수행하면서 큰 상처를 입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탑 꼭대기에 나타날 보스 몬스터까진 장담할 순 없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상처는 없지만 고통은 있는 그대로 다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크윽…….”
대규는 고통을 삼키며 나머지 한 마리의 오르트로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덤벼라, 멍멍아.”
“크르릉, 컹컹!”
녀석은 살벌하게 달려왔다. 머리통이 두 개니 주둥아리도 두 개. 두 주둥이가 쩌억 벌어졌다. 뱀들은 머리 위에서 쉬익쉬익 소리를 내며 혀를 날름이고 있었고.
다시 왼팔을 내주고 녀석을 잡아 볼까?
아니다. 녀석들이 운 좋게 팔을 물어 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러다가 뱀에게 물려 마비 독에 걸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대규는 검을 쥐고 녀석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지영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린 부분이 정말 재생됐다. 아주 빠르게. 그보다 더 놀란 건 대규의 능력이었다.
자신을 도와 키클롭스들과 싸울 때도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머리를 잘라도 바로 재생되는 몬스터에게 부상을 입고도 단칼에 해치워 버리다니.
이 남자와 같이 행동하기로 한 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강한 존재에게 붙어서 얌체처럼 보호나 받겠다는 마인드가 아니었다. 이 차원의 틈이란 곳에선 그의 말대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다. 빨리 강해지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약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죽음, 혹은 그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해.’
지영은 자신의 스킬 바람의 걸음을 사용해 오르트로스의 코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메티스의 검으로 녀석의 앞발을 있는 힘껏 베어 버렸다. 죽이진 못해도 시간은 벌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크릉, 컹!”
앞발을 잘린 녀석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하지만 녀석의 앞발은 새로 자라나고 놈은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사이 대규는 높게 점프해 오르트로스의 등을 타고 단칼에 오른쪽 머리부터 왼쪽 머리까지 베어 버렸다.
스걱!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탑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앞에 경험치와 마나가 채워졌다는 메시지창이 떴다. 경험치와 마나는 키클롭스를 해치웠을 때와 동일하게 채워졌다. 현재 레벨이 10이라서 5%의 경험치에 마나는 1만 채워졌다.
아무래도 이 머리 둘 달린 괴물은 키클롭스와 동급 수준의 몬스터인 것 같았다.
힘 스킬을 쓰니 무리 없이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네 발 짐승에 계속 재생되는 신체 구조 때문에 키클롭스보다 상대하기 좀 더 까다롭긴 했지만.
“휴…….”
대규는 보레아스의 검을 검집에 넣고 지도창을 띄웠다.
이 탑은 5층으로 구성된 탑. 이곳에서 총 50마리의 오르트로스를 해치워야 하는데 첫 층에서는 2마리만 나왔다면 앞으로 위층부턴 떼로 몰려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층에는 대여섯 마리, 3층에는 10마리가 넘었다.
그리고 4층에는… 언뜻 봐도 20마리가 넘었다.
이건 뭐 개 사육장도 아니고.
뭐 다행히 키클롭스 수준의 몬스터라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저 정도로 우글우글 몰려 있다면 최근에 얻은 광역 공격 스킬 비산의 결계를 시험 삼아 한번 써먹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근두근한걸.
레벨이 겨우 5인 그녀에겐 위험할 수도 있었다. 여기선 2마리라 괜찮았지만 떼거지로 녀석들이 몰려나온다면?
‘빨리 중급 공략을 습득하는 게 좋겠군.’
몬스터의 숫자로 봤을 땐 3층까지 싹쓸이 하면 중급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아이템을 챙겨 볼까.
목이 잘린 오르트로스들의 시체 위에서 두 개의 빛이 떠올랐다. 중급 생명력 회복 포션이 사이좋게 두 개 나왔다.
대규는 한 개는 자신이 챙기고 하나는 지영에게 건넸다.
“괜찮아요. 당신이 해치웠잖아요.”
그녀는 극구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임승차자처럼 얹혀 가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녀는 맑은 눈동자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싸우고 싶어요.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으니까.”
확실히 용감한 여자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하면 아까처럼 스킬을 써서 순간 이동으로 피하세요.”
“어떻게 아셨죠?”
“스킬이 아니면 그렇게 순간 이동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맞아요. 눈썰미도 좋으시네요.”
대규는 지영에게 포션 한 병을 내밀었다.
“도움을 줬으니 이건 정당한 당신 몫입니다. 받으세요.”
지영이 신기하다는 듯 회복 포션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몬스터와 전투를 벌였을 땐 열 번에 한 번 꼴로 떨어질 뿐이었는데. 당신과 함께 있으니 자주 드롭하네요. 역 앞 도로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그런가? 몬스터를 잡으면 당연히 주는 걸로 알았는데. 공략집을 얻을 때 운 수치가 올라간 것이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현실로 돌아가면 정말 로또를 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규는 아이템을 챙긴 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고 있는 거대한 오르트로스들의 사체를 옆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댕강 잘린 머리통들과 머리에 나 있는 뱀들을 구석으로 치우고 있는데 공략집 창이 눈앞에 떴다.
<오르트로스의 뱀독>
<오르트로스의 갈기 뱀에는 두 개의 긴 송곳니 잇몸에 독샘이 있습니다. 송곳니를 제거하고 짜내면 독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독은 칼날이나 화살촉에 묻혀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생명력 회복 포션에 오르트로스의 독을 세 방울 섞으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뱀들이 품고 있는 독인가 보다.
그런데 독을 추출할 수 있다고? 게다가 그걸 무기에 발라서 사용하고 해독제까지 만들다니 솔깃해지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위층에서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면 뱀들에게 물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때를 대비해 해독제를 만들어 놓는다면 엄청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대규는 오르트로스의 갈기 뱀들의 아가리를 벌린 뒤 녀석의 송곳니들을 손으로 잡아 뽑아 버렸다.
대규는 갈기 뱀의 송곳니 자리에서 독을 추출한 뒤 하급 생명력 포션에 섞었다. 그러자 포션 빛이 어둡게 변했고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비 독 해독제를 획득했습니다.]
오, 된다.
혹시 비법 소스 제조법 같은 건 안 알려 주려나?
그럼 현실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일단 해독제를 만들어 챙긴 뒤 보레아스의 검날에 남은 독을 살살 묻혔다.
“뭘 하는 거죠?”
“당신도 해요. 마비 독이니까 묻혀 두면 싸울 때 유용할 겁니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자신과 같이 차원의 틈에 처음 떨어진 후보생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게 능숙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괜한 걸 캐물을 시간에 이런 유용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배워 두는 것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조심스레 메티스의 쌍검 날에 독을 묻혔다.
“이제 다 된 것 같군요.”
대규는 독을 묻힌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 위층으로 올라갈 때다. 지도창을 키고 2층을 확인하니 정확히 여섯 마리의 오르트로스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녀석들이 튀어나올 겁니다. 만약 위험한 상황이 되면 스킬을 써서 뒤로 빠지세요.”
“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금보다 더 많은 녀석들?
사자만한 크기의 저 개들을 한 마리만 봐도 두려운데, 더 많이 튀어나온다니.
‘그래도…….’
지영은 위층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 대규를 흘끗 바라보았다.
싸움도 능숙하고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는 이 남자.
어쩐지 믿음이 간다.
지영은 대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