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화. 죽어 마땅한 놈 (2)
대규는 보레아스의 검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나중에, 언젠가 다른 장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기서 죽이게 되면 곧 부활해서는 금세 이곳까지 달려올 테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놓고 그냥 이곳에 처박아 두는 것이 최선이다.
팔다리를 뭉개 놓았으니 포션도 못 먹을 거고,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이렇게 버려 두고 가면 나중에 몬스터들이 녀석을 뜯어먹을 것이다.
“$&*#^)*%_… 아… &^*.”
입안이 다 뭉개져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여 달라고? 절대 그럴 수 없지.
이제야 분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겸사겸사 이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것보다 저 녀석은 현실 세계였다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을 건달 녀석인데.
난 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진 걸까?
그때 부상당한 지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규는 창고에서 자신의 생명력 회복 포션을 꺼내 그녀의 입에 넣어 줬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대규에게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그녀는 원영이 사라진 곳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나 때문에 원영 씨가.”
대규는 그런 그녀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여기선 강한 자만 살아남습니다.”
“…그래요. 어쨌든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대규는 그녀에게 인사를 한 뒤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때 지영이 그를 붙잡았다.
“저기요, 대규 씨.”
“……?”
“당신과 같이 다녀도 될까요?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해도 괜찮아요. 전 단지… 생명의 은인이신데 저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습니다. 저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합니다. 그럼.”
잠깐, 이 여자가 시청에 먼저 도착하면 어떡하지? 이곳 홍대입구와 시청은 꽤 거리가 가깝다.
그렇다고 히든 미션을 안 하고 가자니 보상이 아깝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도를 띄웠다. 일단 다른 후보생들의 위치를 보니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대규는 뒤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지금 가려는 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지영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어디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연약한 외모와는 달리 뿜어내는 기세는 당찼다. 자신의 몫은 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전투에서도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쌍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들과 싸웠던 여자였지.
그녀는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것 같았다. 둘이 같이 다닌다면 히든 미션을 더 빨리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히든 미션에 입장할 수 있는 레벨은 되는 걸까?
대규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대호를 봤을 때처럼 공략창이 떠올랐다.
-차원의 틈 공략집-
이름: 이지영(후보생)
상태: Lv.5(5%)
특징: 근력은 떨어지지만 민첩과 지능이 높음.
성향: 심지가 올곧으며 의지력이 뛰어남.
장비: 메티스의 쌍검(민첩 +5)
보유 스킬: 바람의 걸음(하급)-순간적으로 빠르게 3미터를 이동하는 보법. 마나 5 소모.
<이지영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이지영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이지영은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제거할 경우 즉사합니다.>
순간적으로 빠르게 3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니. 좋은 스킬이었다. 히든 미션 시 비산의 결계를 쓰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저 스킬을 이용하면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제거할 경우 즉사한다니.
최대호 녀석 때도 봤던 내용이지만, 다시 보니 여간 살벌한 게 아니다.
‘그럼 일단 히든 미션이 끝날 때까지만 같이 다니도록 하자. 그때까지만 함께하는 거야.’
대규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도 따라오신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영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좋아요. 그럼 파티를 맺기로 하죠.”
그들은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안으로 들어섰다.
역 안은 현실 세계와 똑같았다.
대규는 지도창을 띄웠다. 히든 미션 장소를 표시하는 노란색 물음표 마크가 반짝이는 곳은 정확히 지하 2층. 전동차가 다니는 승강장이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전철역은 황량했다. 지영과 대규의 발소리가 스산함을 더했다. 지영은 긴장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여차하면 발검을 할 자세를 취하면서 따라왔다.
이번 미션의 내용은 오르트로스라는 몬스터를 50마리 해치우는 것이다.
오르트로스는 어떤 몬스터일까?
첫 번째 히든 미션의 경우 미션 대상이었던 키클롭스를 미리 만나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공략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략 등급을 높이는 것도 가능했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아직 오르트로스를 맞닥뜨린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공략을 습득하지도 못했다.
히든 미션 장소에 들어서서 몬스터를 만나자마자 공략집을 숙지하고 신속하게 전투를 벌여야 한다. 공략집이 공격력 10%의 상승과 약점을 알려 주기는 하겠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규와 지영이 지하 2층 승강장에 발을 딛자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캄캄한 암흑이 그들을 둘러쌌다.
암흑이 가시자 그들의 눈앞엔 거대한 5층 탑이 솟아나 있었다.
지영은 놀란 눈으로 대규와 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떻게 지하철역에 이런 탑이 있을 수 있지요?”
대규는 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차원의 틈이니까. 상상 이상의 일들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겁니다.”
지영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탑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닫히며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두 번째 히든 미션 장소에 진입했습니다.]
[미션: 오르트로스를 모두 처치하십시오. 0/50]
역시 창을 본 지영이 대규에게 물었다.
“히든 미션? 오르트로스? 이게 다 뭐예요?”
“쉿!”
대규는 급히 손짓을 하며 기둥 사이로 몸을 숨겼다. 지영도 그늘진 벽으로 몸을 낮추며 숨었다. 저 멀리 탑 안쪽에서 짐승이 낮게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머리가 둘 달린 시커먼 괴물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개처럼 생긴 몬스터였는데 몸집은 거의 사자만 했고, 두 개의 머리통 뒤에는 뱀들이 마치 갈기처럼 잔뜩 돋아나 있었다.
대규의 눈에 공략집이 떴다.
-차원의 틈 공략집-
몬스터 이름: 오르트로스(Orthrus)
보상: 소량의 경험치와 마나, 낮은 확률로 중급 아이템 드롭
특징: 타르타로스의 거인족 티폰의 아들로 게뤼온의 붉은 황소 떼를 지키는 괴물견. 발이 빨라 민첩하고 후각이 몹시 뛰어나며 머리에 달린 뱀들은 서서히 마비되는 독을 품고 있음. 게다가 뛰어난 재생력을 지니고 있어 사지가 절단돼도 계속 재생됨. 일단 문 사냥감은 쉽게 놓지 않음.
<오르트로스에 대한 공략(하급)을 습득했습니다.>
<오르트로스에 대한 당신의 공격력이 10% 상승합니다.>
<오르트로스로부터 중급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조금 높아집니다.>
<오르트로스는 오른쪽 머리를 절단해야 재생력이 사라집니다. 오른쪽 머리가 잘려 재생력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나머지 머리를 베어 버리면 즉사합니다.>
사지를 절단해도 재생되고, 머리 뒤에 돋아난 뱀들은 마비 독까지 품고 있다. 키클롭스보다 몸집은 작았지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타액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공략집에 나온 대로 일단 물리면 뼈까지 으스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스킬이 있지.
‘힘이여, 솟아라!’
속으로 스킬명을 외치자마자 전류가 돌듯 짜릿하게 몸의 근육들이 펌핑됐다. 그는 지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나서지 말고 뒤에 있어요. 특히 녀석들 머리에 난 뱀들에게 물리지 않게 조심해요. 몸을 마비시키는 독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놈은 오른쪽 목을 베지 않으면 계속해서 재생하니까 그것도 알아 두고.”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