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화. 히든 미션 (1)
건물 9층.
“흐아앗!”
서걱-
서걱-
서걱-!
쉴 새 없이 칼날이 움직였고 여기저기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대규는 칼을 든 채 가볍게 착지해 검에 묻은 피를 털었다. 등 뒤에서 미니 키클롭스의 머리통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이제 끝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온몸에 잔 상처들이 많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대규는 쌓여 있는 미니 키클롭스 사체들의 숫자를 세며 여유롭게 포션을 마셨다.
하나, 둘, 셋, 넷… 무려 열세 마리!
한 시간 전만 해도 겨우 한 마리를 잡으려고 끙끙거렸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내가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니…….’
대규는 방금 전 보았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미니 키클롭스에 대한 공략(상급)을 습득하였습니다.>
<미니 키클롭스에 대한 공격력이 총 50% 상승합니다.>
차원의 틈 공략집.
거기에서 파생된 각 몬스터에 대한 공략 등급.
등급이 올라갈수록 공격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레벨 업에 따른 스탯 상승만 해도 대단한데 거기다가 추가 공격력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급 공략을 습득하자 한 번에 열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쓸어버릴 수준으로 성장했다.
‘쉽다. 평생 싸움이라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참, 경험치부터 확인해야지!’
김대규(후보생)
Lv.5(경험치 4.00%)
생명력 190/190
마나 100/100
근력 11
민첩 10(+1)
지능 10
운 3(+5)
권위 5
5레벨 달성.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드디어 첫 목표에 도달했다.
히든 미션 입장 조건은 레벨 5 이상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히든 미션에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마나도 가득 찼다. 아직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흠, 지금 당장 히든 미션을 하러 가도 되나?’
대규는 공략창을 펼쳤다.
-히든 미션 1-
장소: 연세 대학교 캠퍼스 내 중앙 도서관 2층
조건: 레벨 5 이상 입장 가능
미션 내용: 2층을 지키는 키클롭스들을 모두 해치워라(0/50).
보상: 닥튈로이의 반지
키클롭스?
미니 키클롭스와 뭐가 다른 걸까.
문득 좀 전에 골목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몬스터가 떠올랐다. 미니 키클롭스와 똑같이 생겼지만 덩치는 2미터가 넘었던.
‘그걸 50마리나 잡아야 한다고?’
절대 무리다.
한 마리도 아니고 50마리라니. 그것도 건물 한 층에 50마리.
떼로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완전 사람 죽이려고 만든 미션이네. 거의 함정 수준이잖아.’
그렇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
히든 미션의 보상이 너무 탐났으니까.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30% 높여 준다는 보상 닥튈로이의 반지!
반지 하나 끼는 것만으로 웬만한 갑옷보다 훌륭한 방어력을 갖출 수 있다.
결국 답은 레벨과 키클롭스에 대한 공략 등급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대규는 미니 키클롭스 사체들 주변에서 빛나는 포션병을 주웠다. 생명력 회복 포션보다 작은 이 포션병들은 마나 회복 포션으로 건물의 6층부터 종종 나오기 시작했다.
[마나 회복 포션(하급)]
[이 포션을 복용하면 마나 포인트가 20 회복됩니다.]
마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 챙기고 봤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유비무환 정신이 필요하다.
아이템을 챙긴 뒤 건물을 빠져나온 대규는 근처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히든 미션을 위해선 지금과는 다르게 전투를 해야 했다.
5레벨이 된 후 미니 키클롭스 녀석들이 주는 경험치는 고작 1%. 물론 이걸로 레벨을 올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실상 노가다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결국 키클롭스라는 놈을 잡아야 했다.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녀석에 대한 공략 등급을 올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다른 후보생들의 움직임이었다.
히든 미션의 보상도 보상이지만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포탈에 1등으로 도착하는 것도 중요했다. 둘 중 뭐가 더 나은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지도창을 띄웠다.
지도를 서울 전역이 보이도록 축소한 다음 후보생들의 위치를 알려 주는 파란 점들을 찾았다.
영등포 일대에 있던 세 개의 파란 점은 보라매 공원 근처로 가 있었다. 같이 움직이는 걸로 봐선 파티를 구성한 것 같았다.
노원구 근처에는 두 개의 파란 점이 반짝였다. 하나는 노원역 근처에서, 하나는 창동역 근처에 있다. 붙어 있진 않은 걸로 보아 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 한 명은 잠실 롯데월드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 그 부근에서 반짝이던 파란 점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혹시 죽은 건가.’
그런데 막 사라진 점이 신천역과 잠실역 사이의 아파트 단지에서 나타났다. 아무래도 죽었다가 최초의 장소에서 부활한 듯싶다.
대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죽으면 다시 부활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일단 내가 포탈에서 제일 가깝다.’
심지어 영등포에 있던 녀석들은 보라매 공원 쪽으로 이동한 걸 보니 포탈이 시청에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 하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다.
차원의 틈 공략집이 있는 자신처럼 이들의 눈에 지도가 보이는 것도 아닐 테니.
아마 이들은 지금 몬스터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 다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무리해서 히든 미션과 1등으로 포탈에 도착하는 것을 모조리 해낼 생각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헤매고 있는 걸 보니 욕심이 생겨났다.
* * *
지도를 따라 이층짜리 작은 건물을 우회하자 도끼를 들고 홀로 뒷골목을 배회하는 키클롭스의 모습이 보였다. 싸우려고 마음먹으니 덩치가 훨씬 커 보였다.
거대한 덩치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근육들은 위협적으로 꿈틀거렸고, 흉측하게 벌어진 녀석의 입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타액들이 질척하게 떨어졌다.
녀석의 약점은…….
<키클롭스도 외눈박이기 때문에 원근감을 인지하는 능력과 시력이 낮습니다.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약점인 눈알을 깊이 찌르면 즉사합니다.>
기본적으로 미니 키클롭스와 비슷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죽이는 방식은 달랐다.
저렇게 커다란 놈의 눈을 어떻게 찌르라는 거지.
물론 눈이 큰 만큼 대충 얼굴을 찌르면 찔릴 것 같긴 한데 그러려면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저렇게 무시무시한 녀석을 상대로 근접전이라니.
지금이라도 미니 키클롭스를 잡아 노가다를 하며 레벨 업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키클롭스의 외눈동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쿠아아악!”
“으아아악!”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이 손에 쥔 도끼를 맹렬히 휘둘렀다. 팔이 거대한 원을 그렸고, 도끼의 날이 대규의 몸을 향해 내리꽂혔다.
미니 키클롭스들이 휘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머리 위로부터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내리치는 도끼의 위력은 작은 집 한 채를 반으로 쪼개 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했다.
급한 대로 방패를 들어 막았다.
콰앙!
“키익!”
“어?”
생각보다 공격이 약하다. 당연히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 녀석, 설마 덩치만 크지 별거 아닌 거 아냐?’
“크아악!”
녀석이 포효하며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공격의 궤적이 눈에 들어온다. 슬쩍 한걸음 뒤로 빼자 녀석이 휘두른 도끼가 콘크리트 바닥에 박혔다.
콰아앙!
“헉!”
바닥이 박살 나며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위력이다.
‘절대 약한 놈이 아니다.’
저런 파괴력을 지닌 놈이 약할 리가 없잖아.
그러면 결론은 하나.
‘내가 강해졌다. 상상 이상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번 해보자.
휘익!
깡!
녀석의 공격을 방패로 막고,
“으하앗!”
그대로 힘을 주어 밀었다. 키클롭스가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된다.
“키엑?”
녀석은 당황한 듯 아무렇게나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쾅!
도끼날이 대규 옆의 건물 벽을 후려쳤다. 외벽이 부서지며 갈라졌고 시멘트 조각들이 주변으로 마구 튀었다.
확실히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린다.
하지만 안 맞으면 그만이다.
후잉!
후잉!
녀석은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지만 대규는 여유롭게 공격들을 피하며 숏 소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녀석의 약점이라는 외눈을 공격하는 건 쉽지 않았다. 도끼 공격을 피하는 건 쉽지만 저 공격을 뚫고 얼굴을 급습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문제는 2미터가 훌쩍 넘는 키다. 차라리 미니 키클롭스 녀석들처럼 키라도 작았더라면…….
…그렇다면 키를 줄이면 되잖아!
대규는 키클롭스가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틈을 타 녀석의 등 뒤로 재빨리 몸을 돌렸다.
몸을 틀면서 강하게 숏 소드를 휘둘렀다.
“으하앗!”
촤아악!
검이 녀석의 무릎 뒤 오금을 베고 지나갔다. 녀석의 가죽은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전력을 다한 대규의 공격을 버텨 내진 못했다.
“키이익!”
녀석이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좋아!’
대규는 지체하지 않고 검을 거꾸로 잡고 놈의 등판을 타고 뛰었다.
키클롭스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도끼를 휘두르기엔 너무 늦었다.
“죽어라!”
대규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녀석의 눈알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체중과 회전력을 실은 칼날이 눈알을 파고들었다.
푸우욱!
“끄어어억!”
칼날이 녀석의 뒤통수를 뚫고 삐져나왔다. 안에서 뇌수가 터지며 붉은 외눈에선 끈적거리고 기분 나쁜 회백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크르르르…….”
“허억!”
대규는 뒤로 물러섰다. 키클롭스의 거대한 몸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졌다.
쿵!
“…해치웠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나를 2 흡수하였습니다.]
털썩.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대규는 뇌수가 흘러나온 키클롭스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2미터가 훌쩍 넘는,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
그걸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렸다. 미니 키클롭스를 잡을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이 느껴졌다.
“나 진짜 엄청 강해졌어…….”
새삼스럽게 공략집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공략집만 있으면 앞으로 어떤 녀석이 나타나더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태창.”
김대규(후보생)
Lv.5(경험치 14.00%)
생명력 190/190
마나 100/100
근력 11
민첩 10(+1)
지능 10
운 3(+5)
권위 5
경험치가 10% 쌓였다. 미니 키클롭스 10마리분의 경험치다.
이 정도면 확실히 키클롭스를 잡는 편이 낫다.
‘처음이라 좀 긴장했을 뿐, 생각보다 수월하게 잡았어.’
천천히 전투를 복기해 보면 사실상 대규가 압도한 전투였다. 힘, 스피드, 공격력 어느 하나 앞서지 않은 게 없다.
대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부턴 네 녀석들이 경험치 밥이다.”
대규는 사체의 눈알에서 숏 소드를 빼낸 뒤 검날에 묻은 것들을 닦았다. 그리고 주변에 빛나는 물건이 없나 살폈다. 미니 키클롭스보다 훨씬 센 몬스터인 만큼 아무래도 아이템 역시 더 좋은 게 나올 것이다.
숏 소드도 좋지만 더 좋은 무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갑옷 같은 방어구가 나오는 것도 좋고.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사체 위에서 반짝이는 건 작은 책 한 권이었다.
“뭐지, 이건?”
대규는 작은 책을 손에 들었다.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스킬북을 얻었습니다.]
[스킬북의 책장을 열면 해당 스킬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힘이여, 솟아라!]
힘이여, 솟아라!라니. 직관적인 이름이다.
근력 스탯을 올려 주는 기술일 거라 생각하며 대규는 책장을 열었다.
[스킬 힘이여, 솟아라(하급)!를 습득하였습니다.]
[힘이여, 솟아라!: 이 스킬을 사용하면 30분 동안 근력이 10 상승합니다. 마나 50이 소모됩니다.]
근력이 10이나 상승한다니.
잘못 본 것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