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화. 차원의 틈 (3)
커다란 외눈동자가 대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쿠에에엑!”
괴성과 함께 외눈박이 미니 키클롭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흉측한 이빨들 사이에선 끈적한 타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이마 한가운데 떡하니 박힌 외눈은 충혈되어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녀석은 나무 곤봉을 든 채로 대규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가게 안으로 뒷걸음치자 그놈 역시 쫓아오며 손에 들고 있는 곤봉을 거세게 내려쳤다.
꼼짝없이 죽었다. 주저앉으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쾅!
대규의 다리 사이, 소중한 부위 앞에 위치한 가게 바닥이 처참하게 파여 버렸다.
살았다.
생각보다 몽둥이의 타격점이 짧았다.
방금 전 공격은 빗나가기 힘든 공격이었다. 오죽하면 대규도 자신이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원근감이 떨어져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내용이 진짜였나.
녀석은 다시 내리치기 위해서 나무 곤봉을 머리 높이 쳐들었다. 대규는 왼쪽으로 몸을 틀며 피했다. 녀석의 곤봉은 한 발 늦게 대규가 있던 곳을 가격했다.
쾅!
애꿎은 바닥이 다시 파였다. 확실히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미니 키클롭스는 힘이 세지만 외눈박이기 때문에 원근감을 인지하는 능력과 시력이 낮습니다. 따라서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면 헛손질을 많이 합니다. 때를 노려 뒷목을 공격하면 쉽게 해치울 수 있습니다.>
대규는 공략집이 알려 줬던 대로 왼쪽으로 가는 척하며 오른쪽으로 피하는 훼이크 동작을 해 봤다. 녀석은 왼쪽을 향해 맹렬하게 헛손질을 했다. 공략집의 설명은 정확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며 왼쪽으로 빠진 뒤 녀석의 등 뒤 쪽으로 돌아갔다. 녀석은 대규의 동작에 속아 애꿎은 바닥을 내리쳤다. 녀석의 뒷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고기는 좀 썰어 봤지.’
그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빠르게 녀석의 뒷목을 그어 버렸다.
서걱-!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녀석이 쓰러졌다.
“허어… 정말로 해치웠잖아.”
정말로 내가 몬스터와 싸워서 이기다니.
공략집에 적혀 있는 내용대로 싸우니까 이겼다.
대박이다.
그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떴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나를 1 흡수하였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고? 마나를 1 흡수했고?
대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 보았다.
김대규(후보생)
Lv.1(경험치 10.00%)
생명력 110/110
마나 1/80
근력 7
민첩 6
지능 6
운 3(+5)
권위 5
경험치의 숫자가 10%로 올라갔다. 그럼 이 괴물을 10마리 죽이면 레벨 업을 한다는 거다
게다가 0이었던 마나도 1로 바뀌었다. 하지만 마나를 풀로 채우려면 이 짓을 앞으로 79번 더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때 쓰러진 미니 키클롭스의 사체에서 뭔가 빛나는 물건이 보였다.
그 물건을 보자마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떴다.
[회복 포션(하급)]
[사용 시 생명력이 30 회복됩니다.]
미니 키클롭스에 대한 공략 지식을 습득했을 때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조금 상승한다고 했었지.
대규는 회복 포션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이 회복 포션은 공략집대로 싸운다면 지금 당장은 별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보관함에 넣어 두자고.
“휴우…….”
첫 전투를 마치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살면서 또래들과 몇 번의 주먹질을 하거나 죽은 고기들을 수없이 칼질해 본 적은 있었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와 전투를 벌이고 그것을 죽인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몬스터라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이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 텐데. 우선 자신이 살고 볼 일이 아닌가.
대규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중식 칼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포탈로 가야 하는 건가.”
허공에 지도를 띄웠다. 하얀 점이 반짝이는 곳은 서울 시청 근처였다. 그쪽으로 가야겠군.
아니지. 대규는 하얀 점 주변에서 빛나고 있는 노란 물음표들을 주시했다.
그중 자신이 있는 위치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물음표를 손끝으로 터치했다. 그러자 작은 공략집이 지도 옆에 떴다.
-히든 미션 1-
장소: 연세 대학교 캠퍼스 내 중앙 도서관 2층
조건: 레벨 5 이상 입장 가능
미션 내용: 2층을 지키는 키클롭스들을 모두 해치워라(0/50).
보상: 닥튈로이의 반지
닥튈로이의 반지? 저게 대체 뭐지.
혹시나 하고 항목을 손끝으로 터치하자 설명이 주르륵 떴다.
<닥튈로이의 반지 (성장형 아티팩트)>
<크레타 섬의 정령으로 마술사이며 대장장이였던 닥튈로이가 만든 반지로 이것을 지니면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30% 상승합니다.>
성장형 아티팩트라니. 아이템이 성장한다는 건가? 어떻게 성장시킨다는 거지?
그건 아직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마 획득하면 알게 되겠지.
그것보다는 저 아이템을 어떻게 얻느냐가 더 시급하다.
대규는 다른 물음표들도 손끝으로 눌러보았다.
-히든 미션 3-
장소: 이화 여자 대학교 ECC 중앙 통로
조건: 히든 미션 1, 2를 클리어한 자만 입장 가능
미션 내용: 비공개
보상: 비공개
히든 미션 1, 2를 클리어해야 한다고? 게다가 미션 내용과 보상은 비공개라고 적혀 있었다. 나머지 하나 남은 물음표도 눌러 보았다.
-히든 미션 2-
장소 : 홍대입구역 내부
조건: 레벨 5 이상 입장 가능
미션 내용: 역사 내의 오르트로스를 모두 해치워라(0/50).
보상: 네메시스의 방패
보상 아이템 항목을 터치하자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떴다.
<네메시스의 방패(성장형 아이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피가 깃든 방패로 공격자가 입힌 데미지의 5%를 반사 데미지로 돌려줘 타격을 입게 만듭니다.>
방패라. 게다가 공격자가 입힌 데미지를 반사 데미지로 돌려준다니. 게다가 성장형 아이템이다.
탐나는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르트로스라는 건 대체 무슨 몬스터일까? 뭐, 한번 보면 공략창이 알려 주겠지.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연세 대학교 캠퍼스에 있다는 히든 미션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으니까.
대규는 지도를 보면서 다른 후보생들이 근처에 있는지 살펴봤다. 영등포 일대에 파란 점 3개가 모여 있었다. 이들이 오기 전에 빨리 히든 미션을 클리어해야겠다. 물론 그들은 이 히든 미션의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우연히 알게 될 수 있으니 그 전에 빨리 클리어해야지.
레벨 5 이상만 입장할 수 있다니, 우선 레벨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도를 다시 보자 연세 대학교로 가는 길목에 몬스터들이 몇몇 배회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녀석들을 하나씩 해치우면서 착실히 레벨 업을 달성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대규는 중식 칼과 웍을 쥐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가 있는 뒷골목은 몹시 휑했다. 평소 보이던 취객이나 노숙자도 보이지 않아 꼭 유령 도시처럼 음산했다.
그래도 그의 마음속에는 작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어쨌든 그는 미니 키클롭스 한 마리를 해치운 경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게다가 그에 대한 공략 지식도 습득한 상태고 적의 위치를 나타내 주는 신기한 지도도 있다.
대규의 마음속에서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이곳에선, 자신이 노력하기만 하면 많은 보상을 얻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노력한 만큼 보상은 확실하게 주는 곳이다.
뼈 빠지게 노력해도 얻는 건 쥐똥만큼도 없었던 현실과 달랐다.
마음속으로 벌써부터 현실 세계에서 박 주부보다 훨씬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상을 하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도를 보자 앞에 보이는 건물 앞쪽에 작은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미니 키클롭스다.
대규는 칼을 쥐고 천천히 건물 앞쪽으로 다가갔다.
운 좋게도 녀석은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녀석의 뒤로 다가가 칼을 휘둘렀다. 그제야 인기척을 알아챈 녀석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서걱-!
붉은 외눈이 박힌 머리통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사체 한쪽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칼의 형태를 한 무기였다.
대규가 그것을 집어들자 메시지창이 떴다.
[바람의 숏 소드(일반+1)]
[바람의 기운을 품은 숏 소드로 적을 빠르게 공격합니다. 민첩 1이 상승합니다.]
민첩이 1 상승하면 뭐가 좋은 거지?
온몸에 묘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대규는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민첩이 1 상승해 있었다. 경험치와 마나도 올라 있었고.
김대규(후보생)
Lv.1(경험치 20.00%)
생명력 110/110
마나 2/80
근력 7
민첩 6(+1)
지능 6
운 3(+5)
권위 5
대규는 숏 소드를 쥔 채 허공에 한번 휘둘러 봤다. 왠지 팔의 움직임이 중식 칼을 휘두를 때보다 더 가벼워지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좌우로 몸도 움직여 보았는데 가볍고 빨랐다.
‘나름 쓸 만하군.’
게다가 지금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칼보다도 유용했다. 중식 칼은 생김새의 특성상 베기 위주로만 공격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숏 소드는 베기뿐만 아니라 찌르기 공격도 가능했다.
‘칼을 이걸로 바꾸자.’
중식 칼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숏 소드를 집어 든 뒤 공략집의 지도를 불러냈다.
저 아래쪽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근처에 작은 붉은 점 두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두 마리?
심지어 붉은 점들은 천천히 대규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칠까.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잠깐 동안 망설이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숏 소드도 지니고 있고, 완벽한 차원의 틈 공략집도 갖고 있다. 게다가 민첩이 1 상승했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대규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숏 소드를 힘차게 휘둘렀다.
휘잉-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멋졌다.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좋아, 그렇다면 레벨 업을 하러 가자!”
대규는 지도에 찍힌 붉은 점 두 개를 따라 오피스텔 건물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