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차원의 틈 (1)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싸인 곳에 대규는 서 있었다.
이곳은 어디지? 주위를 둘러봐도 눈이 멀어 버린 것처럼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그런데 발밑에서 은은한 불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발밑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있었고 그는 그 마법진의 가장자리 한쪽에 서 있었다.
그때 눈앞에 뜨는 메시지창.
[‘차원의 틈’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이곳이 ‘차원의 틈’이란 말인가!
그는 미친놈처럼 주변을 둘러봤지만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말고는 암흑뿐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한 형체가 움직였다.
다른 사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한 마법진의 테두리를 빙 둘러서 대규를 포함해 총 일곱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 역시 당황하는 걸로 보아 자신처럼 지금 이곳에 막 도착한 것 같았다.
이곳으로 안내했던 여자는 거대한 마법진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의 발밑에선 더욱 밝은 빛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법진의 빛을 받은 여자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혹시나 해서 볼을 꼬집어 봤지만 아플 뿐이었다.
마법진의 테두리에 서 있는 나머지 여섯 사람을 바라보았다.
여자 두 명에 남자 네 명.
나이는 물론이고 생김새나 풍기는 분위기도 제각각이었다.
한 명은 신촌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평범한 여대생처럼 생겼다.
나머지 한 명은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작은 계란형의 얼굴은 귀엽게 생겼지만 어딘가 당찬 기색이 엿보였다. 적당한 키에 비율이 좋았으며 슬림하게 빠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낯선 곳에서 함께 선택된 사람끼리 인사를 나눠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 같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고개를 돌리자 네 명의 남자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사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키가 180인 대규보다도 더 크고 온몸에 문신이 있는 근육덩어리 녀석이었다.
딱 봐도 뒷골목 양아치 건달 같았다.
건달 녀석은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평범한 대딩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위협적인 목소리로 씨근덕거렸다.
“뭘 봐, 이 새끼야.”
눈이 마주친 대딩은 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기분이 나빠졌다. 어딜 가나 저런 녀석들이 있다. 특히 그가 장사를 하는 신촌의 뒷골목에도 저런 건달들이 존재했다.
저런 놈들은 상대를 하면 더더욱 시비를 걸며 쫓아온다. 그러니까 상종을 안 하는 것이 답이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니까.
나머지 남자들을 관찰했다. 한 명은 비리비리 마른 체격에 안경을 낀 남자였다. 얼굴도 하얗고 곱상하게 생긴 게 꼭 골방 샌님처럼 생겼다.
그리고 배가 나온 아저씨같이 생긴 남자.
마법진의 중앙에 서 있는, 여기 있는 모두를 이곳으로 데려온 여자가 입을 열었다.
“차원의 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안내인입니다. 오늘 이후 저를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명심해 두길 바랍니다. 우선 제안을 수락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여러분들에게 선물 상자가 지급될 겁니다.”
그러자 7명의 눈높이에 작은 선물 상자가 둥둥 떠올랐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엔티크 보물 상자 같았다. 성인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직육면체에 뚜껑은 반원형이고 상자 전체엔 금박이 입혀져 있었으며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은은한 황금빛이 감도는 게 열기만 해도 금은보화와 진기한 보물들이 가득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선물 상자를 열기 전에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우선…….”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음속으로 상태창, 이라고 외쳐 보십시오. 생명력과 마나를 제외하곤 5라는 수치가 평균이니까 이걸 기준으로 각자 자신의 능력을 평가해 보십시오.”
대규는 그녀의 말에 따라 마음속으로 상태창을 외쳤다. 그러자 이상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김대규(후보생)
Lv.1(경험치 0.00%)
생명력 110/110
마나 0/80
근력 7
민첩 6
지능 6
운 3
권위 5
근력이 높은 건 아무래도 요리사란 직업 때문인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서서 칼질을 하고 무거운 재료들을 들어 나른 결과랄까. 그나저나 생명력과 마나라니!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는 건가. 물론 수치는 0에 불과했지만.
게다가 운은 다른 수치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젠장, 역시 나는 운빨이 없는 녀석이었어. 그러니까 건물주도 잘못 만나고 장사도 제대로 안 됐지.
그나저나 권위라는 건 대체 뭘까? 나름 한 가게의 사장이라고 5라는 수치가 나온 건가? 그래 봤자 평균 수치일 뿐이다.
그때 맨 밑에 있는 새로운 창이 눈에 들어왔다.
[보유 스킬]
요리(하급): 패시브 스킬로 요리 시 항시 발동됩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스킬이란 게임에서 보면 보통 간지 나는 특수 공격 기술이거나 방어술이었다. 하지만 스킬명이 요리? 그것도 하급? 패시브? 그럼 항상 발동되는 스킬이란 건가? 현실의 직업이랑 상관이 있는 건가?
그것보다 기분이 나쁜 건 저놈의 코멘트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
대규가 눈을 깜빡이자 상태창은 사라졌다. 여자는 계속해서 대규와 청년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생명력, 마나, 근력, 민첩, 지능은 레벨이 오르면 기본적으로 오릅니다. 물론 아이템의 옵션에 따라 수치가 상승될 수도 있습니다. 마나는 지능의 영향도 받지만 각종 스킬에 필요한 것이니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마나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여자에게 물었다. 네 명의 남자 중 빼빼 마르고 안경을 낀, 학자같이 생긴 남자였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마나란 스킬이나 마법을 사용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의 일종 입니다. 마나가 높아질수록 고급 스킬이나 마법을 시행할 수 있게 되겠죠. 그리고 차원의 틈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돌아갔을 때도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고?
그럼 마나를 이용해서 게임처럼 엄청난 요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건가? 이게 정말이라면 대박이다. 하지만 지금 마나의 수치가 0으로 표시되는데, 이걸 어떻게 올려야 하지?
이번에는 대규가 중앙의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표시된 마나의 수치가 0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관리한단 말입니까?”
“그 방법은 곧 알게 될 겁니다.”
제기랄, 저 여자, 제대로 알려 주는 건 하나도 없군. 안내인이라면서. 대규는 알려 주지 않는 건 직무유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녀는 대규를 포함한 7명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이제 사흘에 한 번씩 이곳 ‘차원의 틈’으로 소환될 겁니다. 7명이 동시에 같이 소환될 수도 있고, 각자 따로 소환될 수도 있구요.”
“대체 우린 이곳에서 뭘 하게 되는 거요?”
문신 건달 녀석이 안내인 여자를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건들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건달 녀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보생 기간 동안에 당신들은 죽어도 부활할 수 있지만 그만큼 차후 평가에서 감점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게 될 겁니다.”
후보생 기간?
그러고 보니 아까 상태창에 뜬 자신의 이름 옆에 후보생, 이라고 적혀 있었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차후 평가는 뭐고 감점은 뭐란 말인가.
그보다 더욱 불안한 것은…….
‘죽어도 부활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럼 각자의 선물 상자를 열어 보시죠.”
그녀는 7명을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
대규가 선물 상자 쪽으로 손을 뻗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떴다.
[‘차원의 틈’ 진입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 상자가 지급됐습니다. 열어 보시겠습니까?]
다들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마나에 대해 물어봤던, 안경 낀 학자 타입의 남자가 먼저 상자를 열었다.
그가 상자를 열자 안쪽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나온 것은 작은 유리병 5개.
“회복 포션이로군요.”
여자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복 포션이라니. 좀 전의 상태창과 스킬창도 그렇고, 무슨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한 명이 선물 상자를 열자 나머지 사람들 역시 너도나도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씨발… 이거 진짜 칼이잖아…….”
건달 녀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녀석의 상자 속에서 나온 것은 손잡이와 칼날 가운데 보석이 박힌 롱 소드였다. 칼을 집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여자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은 편이군요. 희귀한 아이템 ‘파워 소드’를 받다니.”
저런 건달 녀석이 희귀한 아이템을 받다니. 대규는 파워 소드를 들고 위험하게 휘두르는 건달 녀석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며 자신은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바랐다.
대딩 녀석이 상자를 열고 있었다. 그의 상자 속에서는 갑옷이 들어 있었다. 멋있어 보이는데 이걸 만져도 되는 걸까? 대딩은 주변을 둘러본 뒤 떨리는 손으로 상자 속의 갑옷을 만졌다.
“헉!”
그가 갑옷에 손을 대자마자 투구까지 풀세트로 갖춰진 일체형 갑옷이 그의 몸에 저절로 입혀졌다. 손만 대면 저절로 입혀지는 신기한 갑옷이었다. 대딩은 연신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갑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여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선물 상자를 안 여신 분들은 마저 여세요.”
포니테일의 그녀도 선물 상자를 열었다. 하얀빛이 튀어나왔고 그녀는 요란한 감탄사를 내뱉었던 다른 녀석들과 달리 조용히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날렵하게 잘 빠진 검 두 자루, 쌍검이었다.
“‘메티스의 쌍검’이로군요. 역시 희귀 아이템이죠. 당신들은 대부분 운이 좋으시네요.”
포니테일 그녀는 아이템을 들고 자랑스럽게 난리를 쳤던 건달이나 대딩 녀석과 달리 가만히 안내인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전쟁이라도 참여하는 건가요? 왜 물건들이 죄다 이런 것들뿐이죠?”
하지만 안내인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이젠 저 말이 친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게 된다.
이제 대규의 차례였다. 대규는 자신의 선물 상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심 좋은 아이템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건달 녀석이 뽑았던 파워 소드가 솔직히 맘에 들었다.
아니다. 죽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차라리 방어구가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라면 역시 칼이지.
멋진 검이나 한 자루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선물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상자 속의 물건은 대규의 예상과 달리 무기도 아니고 갑옷도 아니었다.
“으잉?”
그건 야구공 크기의 빛나는 구슬이었다.
[아카나의 구슬을 얻었습니다.]
아카나의 구슬?
그는 구슬을 손에 쥐었다. 혹시 마력이 깃든 구슬 같은 건가? 검보단 못해도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 주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태창의 수치들도 변화가 없었다.
그때 메시지가 떴다.
[아카나의구슬(등급: ???)]
[??? 알 수 없음 ???]
이게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