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3화 (3/294)

# 3

3화. 그녀의 제안 (2)

메시지창을 본 대규는 놀라서 눈을 비볐다. 그러자 메시지는 사라졌다.

우울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니까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두들기며 결심했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남은 20여 일 동안은 최선을 다하자.’

포션은 테이블 위의 그릇들과 함께 치우면서 주방에 놔두고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리어카 노점이라도 할 돈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식당을 접게 된다 하더라도 이대로 포기하고 주저앉기는 싫었다.

가게 앞에 시식 코너라도 만들어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게 어떨까.

지금은 넋 놓고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체면 따윈 중요한 게 아니다.

재료를 다 다듬은 대규는 시식용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가서 가스 불을 올렸다.

그때 포션이 눈에 들어왔다.

대규는 손을 뻗어 포션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좀 전에 봤던 메시지가 다시 눈앞에 떴다.

[요리 실력 상승 포션(하급)]

[이 포션을 복용하면 12시간동안 다음의 효과가 지속됩니다.]

1) 복용자가 만든 음식의 맛이 조금 향상됩니다.

2) 복용자가 만든 음식을 먹은 대상은 최소 3인의 지인에게 입소문을 내게 됩니다.

마시면 정말로 저 효과가 나는 걸까?

아니, 마시고 죽는 건 아닐까?

약 먹고 죽으나 쫓겨나서 굶어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이판사판 개판이다.

대규는 유리병을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보라색 액체를 마셨다. 꿀꺽꿀꺽.

맛은 없었다. 남은 한 방울까지 다 긁어 마셨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이런 걸 믿은 내가 바보지.”

대규는 빈 유리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요리 실력 상승 포션(하급)을 복용해 당신의 요리 능력이 조금 향상됐습니다. 포션의 지속 효과 시간이 표시됩니다.]

[11:59:59]

눈을 깜빡이자 메시지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지, 이건?

효과가 시작된다는 건가?

그럼 어디 한번 인생을 걸고 만들어 보자.

튀김 냄비에 기름을 콸콸 부었다. 곧 기름 온도가 적당해지자 그는 닭고기들에 튀김 반죽을 묻혀 기름에 넣었다.

자글자글.

기름이 끓는 소리가 좁은 가게를 가득 메웠다. 얼마 후 요리가 완성됐다.

그가 음식을 접시에 담아내자 ‘띠링’ 하는 알림음이 들렸고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요리가 완성됐습니다.]

[포션(하급)의 버프를 받은 탕꼬: 포션(하급)의 버프를 받아 ‘김대규의 탕꼬’보다 더 맛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 콧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지만 손님은 끌 만합니다. 이것을 먹은 대상은 최소 3인의 지인에게 입소문을 내게 됩니다.]

[11:02:48]

메시지를 본 대규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그럭저럭 손님은 끌 만해? 저런 재수 없는 코멘트를 봤나.

대규는 그릇에 담긴 막 완성된 요리를 바라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튀김은 평소와 똑같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튀김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앗 뜨거… 헉!”

튀김 한 조각을 씹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와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규는 솔직히 맛집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과하게 리액션을 보이는 건 구라라고 생각해 왔다. 입에 넣자마자 ‘워매!’ 하는 진짜 소울이 들어가지 않은 가짜, 일명 자본주의 리액션.

하지만 이건…….

“맛있다! 확실히 맛있어!”

이런 맛은 나 혼자 알고 있으면 안 된다. 그건 이 음식에 대한 모독이자 죄악이야.

대규는 저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접시의 음식을 사진 찍은 뒤 자신의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체 톡방에 미친놈처럼 사진과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야, 대박! 이거 진짜 맛있다!]

그러자 친구 놈들이 답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친놈, 지가 지 음식보고 맛있다고 추천하네. 자추자코냐.

-대낮부터 왜 난리냐. 낮술함?ㅎ

대규는 메시지를 날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남은 음식을 바라보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이거 시식용으로 준비해야지!’

그는 남아 있는 튀김을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르고 예쁜 그릇에 담았다. 오후 4시가 되자 그는 가게 문을 열고 테이블을 앞에 가져다 뒀다. 가게 오픈은 원래 오후 5시였지만 시식을 위해 1시간 일찍 연 것이다.

그리고 반죽을 묻힌 닭고기와 휴대용 가스버너, 냄비를 갖고 나와 즉석에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지나가던 여고생 두 명이 가게 앞으로 다가왔다.

“우와, 냄새 짱이다. 아저씨, 하나만 먹어 봐도 돼요?”

대규는 젓가락으로 그릇의 튀김을 집어 소스에 찍은 뒤 시식용 그릇에 이쑤시개를 꽂아 건넸다.

“그럼요. 많이 드세요!”

여학생들은 시식용 음식을 집어 먹은 뒤 소리쳤다.

“헐! 이거 개존맛! 대박!”

“아저씨, 저희 이거 한 접시 먹을래여. 들어가도 돼요?”

얼마 만의 손님인가! 감격의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탕꼬 한 접시가 나오자 그녀들은 핸드폰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은 뒤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1인 1접시씩 해치운 뒤 포장까지 해 갔다.

시식 테이블 앞에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야~ 이거 죽이는 맛인데.”

“이거 진짜 맛있다!”

“여기 포장도 되나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 * *

매장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가게 밖에는 사상 최초로 대기 손님까지 생겼다. 혼자 일하는 게 도저히 무리였던 대규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야, 가게 일이 너무 바쁜데 빨리 와서 좀 도와줘라.”

“병신아, 뻥치지 마. 맨날 파리만 날리는 가게가 바쁘기는 무슨.”

“거짓말 아니야, 쫌 빨리! 아, 네네… 잠시만요!”

전화하랴 손님들 주문 받으랴, 음식 만들어 내랴 너무 바빴다. 손님들은 대규를 보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알바생이 없어?

대규는 친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너무 바빠. 도와줘. 상민이도 데려와라. 피시방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을 텐데.”

“너하고 술 한잔할 시간 없어. 우리 취업 준비해야 해.”

빌어먹을. 대규는 전화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야, 일당 10만 원씩 줄 테니까, 빨리 와!”

“…10만 원? 정말이냐? 그럼 콜!”

대규는 급한 대로 대기 손님들을 위해 가게의 남는 의자를 밖에 놔뒀다. 심지어 포장을 해 가는 손님들도 엄청 많았다. 10만 원이란 소리에 친구들은 바로 달려왔다. 그들은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헐, 이게 무슨 일이래.”

“파리만 날리더니 대박이네 미친 거 아냐?”

“놀랄 시간 없어! 빨리 들어와서 도와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영업이 끝나고 마감까지 도와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봉투에 10만 원에 2만 원씩 더 넣어 보낸 뒤 가게 문을 닫자 새벽 2시였다.

평소엔 재료가 남아돌아 주방에 잔뜩 쌓여 있었는데 오늘은 텅텅 비어 있었다. 대규는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매출액을 계산하다가 깜짝 놀랐다.

총 245만 6천 원!

테이블 4개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만 가게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다! 더군다나 재료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더 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지 않고 모두 포장을 해 간 덕분에 이런 기적적인 매출을 올린 것이다.

재료비나 관리비, 친구들의 수고비를 주고도 순이익이 어림잡아 80만 원 정도였다. 남은 23일 동안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총 1,840만 원의 이익이 남는다!

헐.

어마어마한 숫자에 대규는 입을 떡 벌렸다. 월세는 150만 원, 밀린 6개월 치 900만 원을 좆물주 새끼에게 갖다 줘도 1,000만 원 가까이 남는다!

가게를 차리고 처음으로 나온 어마어마한 액수에 대규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가 않았다.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크게 성공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뒷골목의 뒷골목도 벗어나 손님들의 접근성이 좋은 명물거리 대로로 진출해 가게를 낼 수도 있다. 아니지, 이대로라면 건물을 떡하니 사서 월세 걱정 없이 장사를 할 수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는 술을 꺼내 자축의 잔을 들었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00:00:00]

[요리 실력 상승 포션(하급)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오후 3시쯤에 그 포션을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정말 이 모든 게 포션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녀가 말했던 ‘제안’이란 대체 뭘까? 설마 내 목숨… 은 아니겠지.

목숨을 내놓는 것만 아니라면 그 제안이 뭐든지 수락해 버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된다면!

쓰레기통에 버렸던 빈 포션병을 떠올랐다. 쓰레기통을 미친 듯이 뒤져 포션병을 찾았다. 온갖 쓰레기와 오물 찌꺼기가 묻어 더러운 병을 싱크대에서 정성스레 닦으며 생각했다.

이건 행운의 병이다. 어마어마한 보물! 여기에 물이나 술을 따라 마시면 오늘 같은 기적적인 일이 또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는 병을 신줏단지 모시듯 아주 정성스레 닦은 뒤 그것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몹시 경건한 태도로 쭉 들이켰다.

그때 드르륵, 소리가 나며 가게 문이 열렸다.

어제 봤던 그 여자였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대규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요?”

“그, 그보다 당신은 누구…….”

그녀는 무시한 채 말했다.

“제안을 받아 들일지만 대답하세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자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대답하라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제안이 뭔지 알아야 수락을 하든지 말든지 하죠.”

그 말에 그녀가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녀의 입이 열렸다.

“저를 따라 ‘차원의 틈’으로 와 주세요.”

‘차원의 틈?’

그게 뭐지? 대규가 혼란스러워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제안은 다른 자에게 가겠죠. 수락하시겠습니까?”

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가?

하지만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빨리 대답해 주세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말이 없으면 거부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 가게 밖으로 나가려 했다. 다급하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물어봤다.

“이봐요, ‘차원의 틈’이 대체 뭡니까! 최소한의 설명은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녀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말 그대로 차원과 차원 사이의 틈을 말하는 거죠.”

장난하나. 누가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차원의 틈’이란 얘길 듣자마자 머리에 떠올린 건 판타지 소설이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두 개의 차원이 충돌하기 전에 나타나는 완충 지대를 ‘차원의 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용사나 마법사, 뭐 그런 캐릭터들이다.

한마디로 이곳 신촌의 뒷골목에서 탕수육 치킨을 만들어 파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단 말이다.

“그럼 왜 하필 나인 겁니까?”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은 우연히 선택된 것일 뿐. 그리고 당신은 수락 혹은 거부만 할 수 있죠. 이후에는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론 보상도 달라지겠죠.”

보상이라면…….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제안을 받아들인 다면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꿈이라…….

그녀가 건넸던 포션을 떠올렸다. 설마 보상으로 그런 포션을 계속해서 지급해 준단 말인가?

그러자 그녀는 또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요리 실력 상승 포션뿐만이 아니죠. ‘차원의 틈’에는 더 엄청난 보상들이 존재합니다. 그 보상들을 이용하면 당신의 가게는 한 달 안에 이 신촌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 될 거예요. 그리고 최소 1년 안엔 지금 떠들썩하게 유명한 박 주부보다 훨씬 잘나가는 맛집 경영자가 될 겁니다. 모든 건 당신에게 달려있지만.”

“그게 정말입니까!”

대규의 눈동자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박 주부라니!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경영자였다. 본명은 박종완. 처음엔 고깃집으로 프랜차이즈를 시작해 지금은 중국집, 분식집, 포장마차, 그리고 카페까지 발을 넓히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요리사 자격증도 없지만 일반들에게 친숙한 레시피로 음식을 요리해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 박 주부란 별명을 얻은 유명 인사였다.

심지어 강남의 한 골목엔 그의 프랜차이즈 매장들로만 이뤄진 ‘박 주부 골목’이 있을 정도로 요식업계에선 엄청나게 잘나가는 거물이었다. 그리고 대규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 주부처럼 될 수 있다고? 그것도 겨우 1년 안에?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대답하세요. 없으면 거부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제안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손님들이 몰려들어 자신의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했을 때 느꼈던 그 희열과 뿌듯함! 그는 가게를 처음 개업했을 때처럼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가 방금 한 말, 한 달 내에 신촌 최고의 맛집이 되고, 1년 안에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요식업계의 큰 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지만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포션의 효과를 이미 보지 않았던가!

“대답이 없군요. 그럼 거부한 걸로 알고 가겠습…….”

“잠깐만요!”

대규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제1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차원의 틈에 진입하게 됩니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일렁이며 사라지고 암흑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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