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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집을 습득하셨습니다-2화 (2/294)

# 2

2화. 그녀의 제안 (1)

불타는 금요일 밤.

거리를 가득 채운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들, 술집마다 꽉꽉 들어찬 인파, 쉴 새 없이 부딪히는 술잔들. 오늘도 신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신촌의 명물 거리에서 한참 벗어난 뒷골목의 뒷골목의 뒷골목.

대규가 있는 이곳만 빼놓고 말이다.

김대규, 27세.

신촌의 음식점 ‘탕꼬’의 사장. 뒷골목 중에서도 뒷골목이지만 신촌은 신촌이다.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긍정적인 성격에 노력파라 여기저기 음식점 알바와 주방 보조를 하며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골집을 처분하고 차린 가게였다.

27세에 사장이란 직함은 확실히 간지난다. 그런데 탕꼬가 뭐냐고?

탕꼬란 그가 개발한 음식으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탕수육과 치킨을 접목시킨 것이며, 이 가게의 이름이기도 하다. 솔직히 좀 구리긴 하지만 한 번만 들으면 절대 잊어먹지 않을 괜찮은 상호명이라고 애써 위안 삼았다.

가게 앞문엔 대문짝만 하게 패널이 세워져 있고 촌스러운 음식 홍보 사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탕꼬: 세기말 음식계의 전설]

구린 이름과 그보다도 더 구린 패널 탓일까?

가게엔 손님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항상 윙윙거리는 파리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게 낼 때 빚으로 당긴 대출금은 이자와 함께 점점 늘어만 가고, 처량할 정도로 적은 수입으론 가게 월세를 내기도 빠듯했다.

그날도 대규는 오픈 준비를 위해 재료를 열심히 손질 중이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뜨는 이름.

‘좆물주 새끼.’

비장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김 사장. 지금 가게 앞인데 잠깐 나와 봐.”

부아앙-

끼익!

요란스러운 배기음에 이어지는 요란한 정차음.

대규는 한숨을 쉬며 가게를 나섰다. 정말이지 어지간하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녀석이다.

건물 밖으로 나가 보니 붉은색 오픈카가 보였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대규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건물주 이도형이다.

옆에는 반쯤 헐벗은 여자가 타고 있었다.

제기랄. 팔자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김 사장, 월세 언제 줄 거야?”

이도형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지금 몇 개월째인지 알지?”

“6개월… 입니다.”

“그럼 씨발, 알아서 줘야 할 거 아냐.”

“다음 달에는 꼭 드리겠습니다. 이번 달만 봐주시면…….”

“어머, 이 아저씨 너무 뻔뻔하다.”

반쯤 헐벗은 여자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재수 없는 년. 저건 분명 실리콘 가슴일 거야.

“김 사장, 젊은 나이에 고생하는 건 알겠는데, 좀 너무하는 거 아냐? 이렇게 장사가 안 되면 일찍 접든가, 아니면 좀 더 노력을 해 보든가 해야지. 맨날 손님도 없는 가게에 처박혀서 그렇게 있으면 뭐 장사가 될 것 같아?”

‘누가 들으면 존나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양반으로 알겠네. 나랑 나이도 같은 새끼가…….’

대규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지로 누르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달 치는 어떻게든 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조금만…….”

“언제 줄 건데?”

“그게…….”

“새끼가… 우린 땅 파먹고 사는 줄 알아? 건물주도 서민이야! 우리도 먹고살아야 할 거 아니야!”

서민 좋아하네.

이 좆물주 새끼가 신촌에 소유하고 있는 건물만 다섯 채다. 부모가 강남과 분당에 소유한 건물만 해도 2,000억이 넘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원래 이 건물의 주인은 도형이 아니었다.

예전 주인이 있을 때 이 건물의 월세는 80만 원. 그때는 그럭저럭 빚은 지지 않고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 전 건물이 갑작스레 팔렸다. 말이 건물이지, 3층짜리 주택을 상가로 개조해서 만든 뒷골목의 허름한 건물이었다. 전 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는 일부러 안 받고 이자를 불려 강제로 빼앗았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하는 짓으로 봐선 진짜일 확률이 높았다.

이도형은 새로 오자마자 월세를 150만 원으로 올렸고,

“못 내겠으면 나가!”

세입자들을 협박했다. 이대로 쫓겨나면 시설비도 못 건질 테니까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놈의 자식은 반반한 여자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치근댔다. 자신의 건물 세입자들 중 알바든 직원이든 가리지 않고 치근거렸고, 심지어 옆 가게 김치찌개 여주인에게 ‘월세 못 내겠으면 다른 걸 제공하든지’라고 말하는 걸 직접 듣기도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김치찌개 여주인은 가게를 팔지도 못하고 그냥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규와 세입자들은 이놈을 ‘좆물주 새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뒤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도형 앞에서 대규는 뱀 앞의 개구리 신세일 뿐이다.

“제,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음 달까진 갚겠습니다.”

“오늘 내보내려고 했는데 봐준다. 이달 말까지 밀린 월세 다 갚아. 아니면 그냥 쫓아낼 줄 알아.”

도형이 손가락으로 대규의 머리를 꾹꾹 찔러 댔다.

“오빤 너무 마음이 착해.”

돈이 착한 거겠지.

“감사합니다!”

대규는 허리를 바닥까지 숙였다.

“빌어먹을!”

이번엔 정말 월세를 못 내면 쫓겨나게 생겼다.

솔직히 식당을 처음 차렸을 땐 이 신촌 거리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맛집의 사장님이 될 줄 알았다.

비록 테이블 4개짜리의 좁아터진 가게지만, 알바생도 없이 혼자 주방부터 홀까지 다 일하며 일궈 왔다. 나중엔 꼭 성공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결과는 빚더미를 잔뜩 껴안고 쫓겨나게 생겼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탕수육 치킨 요리인 ‘탕꼬’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자마자 대규는 그걸 개발하기 위해 알바를 하며 틈틈이 온갖 요리책과 인터넷 영상들을 보며 독학을 해 중식, 한식 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시험에서 심사의원들도 감탄을 할 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고, 결국 탕꼬를 개발했다. 주변인들의 시식 반응도 성공적이었다.

요리사 자격증까지 딴 자신이 식당을 짠! 하고 차리면 온갖 먹방 프로그램과 맛집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올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심지어 ‘배부른 녀석들’, 혹은 ‘일요 미식회’ 같은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고 나중에는 자신이 직접 방송에도 출연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중국, 유럽, 미 대륙을 강타하는 세계 최고의 맛집 브랜드로 성장할 거라는 야심찬 꿈까지 꿨다.

그건… 꿈일 뿐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잠도 줄이고 온몸을 혹사시키면서 미친 듯이 노력했건만 결과는 겨우 이거라니.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과거의 나날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욱 바삭하고 맛있는 튀김 반죽의 황금 비율을 찾기 위해 각종 전분이나 밀가루를 손목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반죽했던 일.

비장의 소스를 만들겠다고 온갖 재료를 찾아 발에 물집이 잡혀 터질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던 일.

최적의 튀김 온도와 시간을 찾아내기 위해 양손은 튀김 기름에 데인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했던 고생…….

하지만 자신이 최고의 맛집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있어서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죽도록 노력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거리였다.

좆물주 새끼가 말한 이달 말일 까진 20여 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땡전 한 푼 없이, 아니 빚더미를 잔뜩 껴안은 채로 쫓겨나 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

결국 손님들은 돈 많은 녀석들이 좋은 자리에 번드르르하게 차려 놓은 그럴듯한 레스토랑으로 간다. 맛이 없어도 블로그에서 분위기 좋은 맛집이라고 빨아 주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이 후미진 뒷골목을 돌고 돌아 찾아오는 사람들은 애초에 극소수였다. 단골이 생긴다고 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찾아오면 감지덕지해야 할 지경이다. 돈이 조금 더 많아서 대로변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번째 골목 정도에 식당을 차렸다면 이렇게 처참하게 망하진 않았을 텐데.

결국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오로지 노력만 해 봤자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열심히 살아온 게 너무 분했다. 노력한 게 너무 분했고, 꿈을 품었던 자신도 너무 분했다.

그냥 자신의 인생, 아니 존재 자체가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꼬르륵-

그 와중에 요란하게 울리는 배 속의 소리마저도 분했다. 빌어먹을.

‘기왕 망한 거 배터지게 먹기라도 하고 죽자!’

그는 가게 문을 잠근 뒤 한 상 가득 차리고는 물잔에 따른 소주를 비워 냈다.

크아, 술맛은 쓰디썼다.

오늘이 생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긴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문이 잠겼는데 어떻게 들어왔지?’

술에 취해 게슴츠레해진 대규의 눈이 확 커질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단정한 정장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쭉쭉 빵빵한 몸매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달걀형의 작은 얼굴에 오뚝한 코, 선홍빛의 도톰한 입술.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싸다구를 후려갈길 정도로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여자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서자 정신이 들었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당신, 누구십니까?”

하지만 여자는 대규의 물음에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용건만 간단히 말씀드리죠.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제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리고 꿈을 이룰 수 있다니.

대규는 그녀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제안은 뭐고… 아니 그것보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까만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대규의 질문엔 관심도 없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작은 유리병을 올려놓았다.

둥근 유리병 안에는 보라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일단 이 포션을 사용해 보세요. 제안은 내일 다시 와서 하기로 하죠.”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가게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잠깐만요!”

어안이 벙벙해진 대규는 가게를 나가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그는 테이블 위로 엎어져 버렸다.

* * *

“헉!”

대규는 눈을 번쩍 떴다.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얼굴 위로 아침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빌어먹을! 얼마나 잔 거야.

‘내가 미쳤지. 하루라도 더 벌어야지.’

테이블 위에는 전날 밤 그가 먹은 음식들과 술병들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정말 이상한 꿈이었다. 꿈이라지만 가게에 찾아왔던 여성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났다.

정말 예쁜 여자였다. 그런 여성이 실제 가게 손님으로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단골까지 된다면…….

그런 므흣한 생각을 하며 테이블 위를 치우고 있는데 그릇들 사이에 놓인 물건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보라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

저건 분명 꿈속에서 그녀가 놓고 간 물건이다.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 유리병을 잡았다.

그러자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요리 실력 상승 포션(하급)]

[이 포션을 복용하면 12시간 동안 다음의 효과가 지속됩니다.]

1) 복용자가 만든 음식의 맛이 조금 향상됩니다.

2) 복용자가 만든 음식을 먹은 대상은 최소 3인의 지인에게 입소문을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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