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4화. 두려움
태자가 의식을 잃은 지 20일, 신성군을 찾아드는 대소신료들의 수가 자꾸 늘어갔다. 보다 못한 이항복이 신성군을 찾아갔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신성군이 병원을 찾아 광해를 알현했다.
그리고 그 밤, 태왕의 특명을 받은 어사대가 사방으로 움직여 수많은 대소신료들을 잡아 들였다. 그렇게 잡혀 들어간 이들의 죄목은 ‘대역죄’였다.
소식이 바람보다 빠르게 대소신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관리들이 바짝 얼어 몸을 낮추었다. 소식을 들은 종친들이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신성군만큼은 아니었지만 대신들과 접촉이 있었던 몇몇 종친들이었다.
그들이 병원에서 광해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었다. 다만 병원을 나온 종친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는 목격담이 적지 않았다.
잡혀 들어간 이들에 대해 어사대에서 추국이 벌어졌다. 황명에 의해 추국관은 총리대신 정인홍에게 맡겨졌다. 꼬장꼬장한 정인홍의 성품이 추국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추국장에 조선에서 사라졌다 여겨졌던 고문기구들이 다시 늘어섰다. 마치 근대적 조선의 법을 담은 조선대전 제정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 모양새였다.
추국장에선 매질이 가해지고 죄인들의 살을 인두로 지져졌다. 깨어진 자기파편 위에 꿇어앉은 이들의 무릎위로 돌이 얹혀 졌고, 의자에 묶인 죄인들의 주리가 틀렸다.
살이 타는 냄새와 매질 당하는 이들의 비명소리가 연일 추국장의 담을 넘었다.
보다 못한 사간원의 한 간원이 상소를 올렸다. 법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치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당장 중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상소를 받은 광해는 아무 답도 없었다.
첫 상소를 기점으로 사간원 간원들의 상소가 늘어갔다. 분노할 일임엔 분명하나 정도를 지켜달라는 애원이 담긴 상소들이었다.
여전히 광해는 아무소리가 없었다.
계속되는 추국장의 고문 속에서 결국 사망자가 나왔다. 심한 매질 속에 숨이 끊어진 것이다. 하지만 추국장의 고문은 계속되었다.
제후국 군왕들도 여전히 조선종합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조선에서조차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후국 군왕들은 자칫 태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들이 현장이 없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추국장에서 드디어 실토가 나왔다.
태자를 갈아치우기로 결정하고 신성군을 차기 태왕으로 삼자는 결의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관련자로 거론된 모든 이들이 잡혀 들어갔다.
이미 추포된 이들 외에도 수십 명의 관리들이 어사대에 의해 긴급 추포되어 추국장으로 보내졌다. 뼈가 부러지고, 무릎이 깨지고, 살이 찢어지는 이들이 추국장에서 대량 양산되고 있었다.
대사간이 병원으로 광해를 찾아왔다. 추국장의 고문을 멈춰달라는 청을 위해서였다.
대사간의 청을 광해가 거부했다.
“대사간.”
“예. 폐하.”
“짐이 잘못 하고 있다 믿는가?”
“어찌······. 하오나 정도가 있사옵니다. 폐하께오서 스스로 세우신 법이오니 그 법을 지켜 주십사 청하는 것이옵니다.”
“하면 그 법을 지키면 겁을 먹을 이들이 있겠는가?”
“겁······,이옵니까?”
“하면 추국장의 저 짓이 범인 잡자고 하는 일 같던가? 대사간은 이번에 나왔다는 실토가 정말, 사실일 것이라 믿는가?”
태왕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사간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오면 폐하께오서는 저들의 실토가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일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차기 태왕을 결의라······. 짐이 살아있는데 가당치도 않지. 아마 모여서 바꿀 수 있는 차비를 갖춰보자 정도였을 테니까.”
“하, 하온데 어이하시어······?”
“짐의 명이 없건 데 감히 보위에 대해 왈가불가한다. 이전이라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어, 어찌 감히······.”
“그렇지. 대사간과 같은 생각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와 다른 일이 생겼다. 왜라 보는가?”
“걱정이 들었던 것이 아니겠나이까?”
“걱정? 짐이 늙어 오늘 내일 한다던가? 아니면 이 나라에 황권을 이어받을 종친이 없어 급히 찾아야만 했다던가?”
“그, 그건······.”
답을 하지 못하는 대사간에게 광해가 말했다.
“작은 틈에 욕심이 일어선 것이다. 차기 군왕을 자신들의 손으로 세워 권세를 누려보겠다는 욕심. 그 욕심이 두려움을 이긴 것이지. 그러니 더한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설사 태자가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짐의 명이 있기 전에는 감히 움직이지 못 할 만큼의 두려움.”
“폐, 폐하······.”
“유럽에선 짐을 피의 군주라 하여 혈황이라 부른다지. 조선을 반석위에 올린답시고 죄 없는 수천, 수만의 생목숨을 끊어놓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 피 값에 몇몇을 더 얹는다고 무에 달라질까. 하니 대사간. 여기서 짐에게 이런 말을 전할 시간이 있으면 가서 대신들에게 전하게. 고개 처박고, 숨도 쉬지 말고 있으라고.”
그 말을 던져놓은 광해가 거칠게 용포자락을 치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그런 광해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대사간에게 승정원 도제조인 이항복이 다가섰다.
“놀라셨습니까?”
“예? 아! 예. 폐하께오서 대신들에게 저리 진노하고 계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어찌 모르셨습니까? 거론된 이들 중 병원으로 찾아온 신료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오나 병원은 외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병원 밖에 무리지어 선 백성들을 보셨습니까? 밤을 새워 기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 조정 대신들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그건······.”
“폐하의 진노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세요. 누구도 찾아와 백성들처럼 태자 전하의 쾌유를 빈 대신들이 없습니다. 신성군을 비롯해 종친들을 찾아 후일을 도모하기 바쁜 이들은 많았어도 말입니다. 소관도 저기 저렇게 서성이며 기다리는 제후국 군왕들에게 부끄러울 지경이었으니 폐하께서야 오죽하셨을까요.”
이항복의 말에 시선을 돌린 대사간의 눈에 병실 앞에 죽 늘어서 앉아있는 제후국 군왕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는 북미 원주민 고유의 복장을 한 북미연합국의 대표까지도 속해있었다.
나라밖엔 태왕의 권위와 두려움이 먹혔지만 정작 조선 내부에선 그 두려움이 희석되어 엷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정착된 법을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태왕의 말처럼 욕심이 모든 것을 이겨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의 대소신료들이 태왕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생각이 그에 이른 대사간은 아무소리도 할 수 없었다.
“흐음······.”
“간원들에게 상소를 그만 두라 명하세요. 그걸 쓸 시간이 있으면 병원 앞에 와 태자 전하의 쾌유나 빌라고 말입니다.”
이항복도 그 말만 던져두고는 병실 앞으로 돌아갔다. 힘없이 물러나온 대사간이 궐로 돌아간 직후, 간원들의 상소가 끊어졌다.
그렇다고 간원들이 이항복의 말처럼 병원으로 몰려와 태자의 쾌유를 빌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대전 앞마당에 관복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석고대죄를 드렸다.
자신들의 무심함의 죄를 청한 것이다.
그 무심함이 황실의 존엄과 위엄을 감히 법의 뒤에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까닭이었다.
의미를 알아차린 대신들 중 일부가 그 석고대죄에 동참하고, 또 일부는 병원으로 달려왔다. 비로소 병원 앞 인파에 대신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실 창문에 서서 묵묵히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광해에게 이항복이 대전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석고대죄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광해가 씁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야 정신들을 차린 모양이로군.”
“폐하······.”
“추국을 중단하라 하게.”
“하오면 죄인들은······?”
“잡혀 들어온 모든 이들의 수사를 포도청으로 넘기게.”
사간원과 어사대가 태왕 직속이라면 포도청은 조정 직제로 총리대신 휘하다. 법을 초월하는 황명으로 움직여지는 기관이 아니라 정식 법으로 다스리라는 의미였다.
“고문으로 죽은 이들은 어찌 처결하올까요?”
“그들의 죄도 다시 살피라 명하게.”
“예. 폐하.”
이항복이 명을 받아 나가자 광해의 눈매가 가라앉았다.
자식이 병석에 누워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마저 정치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하아······. 황좌가 뭐라고.”
그런 광해의 귀로 태자비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전하. 전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태자비의 음성에 놀라 고개를 돌린 광해의 시야로 눈을 껌벅이다 완전히 뜨는 태자의 모습이 보였다.
“호야!”
광해가 황급히 태자에게 다가섰다.
*****
27일 만에 태자가 정신을 차렸다.
태자는 다행히 말도 또렷했고, 기억도 명확했다. 의원들이 하나같이 기적 같다고 입을 모았을 정도였다.
소식을 들은 제후국 군왕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가득했다. 자칫 태자가 잘못 되었을 때 연관된 이들로 인해 제후국들에 어떤 피바람이 몰아쳤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태자를 직접 병문안 한 제후국 군왕들이 광해의 명에 따라 귀국길에 올랐다. 두 달 후로 예정되어있는 제국 최고회의에서 다시 만나자는 광해의 약속을 받은 채였다.
태자는 놀랍도록 빠른 회복을 보였다.
의식을 되찾은 지 보름 만에 퇴원하여 궐로 복귀했다. 그렇게 궐로 돌아가는 태자를 축복하는 백성들로 신의주 대로변이 가득 찼을 정도였다.
태자는 피격을 받았던 이답지 않게 마차의 창문 박으로 상체를 내밀고 손을 흔들어 백성들에게 화답했다.
그 모습에 익위사를 포함한 내금위 위사들이 기겁을 했지만 백성들은 열광했다. 피격 시도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태자의 배포에 환호하는 백성들의 함성으로 대로가 떠나갈 것 같았다.
궐로 돌아온 며칠 후, 태자는 다시금 밀행을 나섰다. 상호와 익위사의 거센 반대도 태자의 뜻을 꺾지 못했다.
출궁 보고를 받은 광해도 아무소리 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것에 꺾여 태자가 주저앉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태자의 밀행이 조금 우스워졌다.
딴에는 모른 척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수군수군 거리는 백성들의 음성이 바람결에 고스란히 저자를 걷는 태자의 귀로 들려왔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태자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하긴 최근 들어 신의주에서 태자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빈번하게 나돌았다. 소지하고 다니면 어지간한 사고는 비켜간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신이 백성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회생한 태자의 얼굴 그림이 일종의 부적이 된 셈이었다.
또 하나, 백성들 중 밀행을 나온 태자를 은근히 따르는 무리가 생겼다. 신경이 곤두섰던 수행 익위사가 곧바로 조사한 결과 ‘태자 보위대’라는 이름도 거창한 자경대였다.
밀행을 나온 태자의 안위에 해가 되는 일을 백성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막아내겠다는 일념에서 만들어진 자발적 조직이었다.
대부분이 퇴역한 군관 출신이거나 은퇴한 포교나 포졸들로 구성된 이 조직은 나름대로 지휘체계와 동원 체계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였다.
수행하는 익위사로부터 그와 같은 보고를 들은 태자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태자는 밀행을 접고 환궁해야 했다. 무언가 수를 내기 전에는 다시 밀행을 나가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태자 피격사태로 맞았던 위기와 혼란은 수습되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대소신료들 사이에서 잠시 잊혔던 태왕에 대한 두려움은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왔다. 대소신료들의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고, 조회가 열릴 때면 감히 태왕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태자 피격사태가 원만히 해결됨으로써 비로소 안정을 찾은 유럽에서 이순신이 회군했다. 대서양 함대 소속의 고왕급 비행선 모함 1척을 제외한 11척의 비행선 모함은 그렇게 회군하는 이순신 함대를 따라 조선으로 향했다.
그 속에는 대량의 전마를 잃은 11장갑병단도 속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도양 함대와 시크 여단도 회군했다. 그들은 마드라스에서 분리되어 남았다. 광해가 시크 여단의 공훈을 높이 사서 전원 일 계급 특진과 함께 부대 표창을 내렸다.
시크 여단장이 그 특진대신 신기전 3형의 배치를 간곡히 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장계를 받은 광해가 크게 웃으며 특진도 유지하고, 신기전 3형의 배치도 약속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날, 마드라스의 시크 여단 주둔지에서 태왕 폐하 만세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순신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 며칠 후, 병석에 있던 신립이 세상을 떠났다.
광해가 크게 슬퍼하며 친히 조문을 했다. 신하의 장례에 참석한 태왕의 모습에 신립의 가문이 무한한 광영으로 삼았다.
신립은 죽기 전 잠시 의식을 차린 그 짧은 시간에 태왕에게 자신의 사위인 신성군의 안위를 부탁하는 서신을 남겼다.
자신의 딸과 사위인 신성군에겐 항상 자중하고 자중하여 황실에 누가 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울러 자식들과 가문에는 온 몸을 다 바쳐 황실의 안위를 지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일세를 풍미했던 장수가 그렇게 충신으로 죽었다.
좋지 않은 일은 연이어 온다더니 병석에 있던 곽재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실제역사와 마찬가지로 향년 66세의 나이였다.
광해는 곽재우의 장례에도 친히 조문을 했다.
조선은 큰 장수 둘을 그렇게 짧은 기간에 연이어 잃었다.
그렇다고 조선은 상실감과 슬픔에 발목을 잡혀 주저앉지 않았다. 곧바로 새로운 총사들이 임명되고,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대월 전선에서 복귀한 정기룡이 육군 총사에 임명되고, 부총사로 임명된 정충신이 복귀한 정기룡을 대신해 대월 주둔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었다.
북미 서부 점령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해병대와 함께 회군한 부총사 김덕령이 2대 조선 해병대 총사로 임명되었다.
그간 총사 대리직을 수행하던 아원이 해병대 부총사가 되었다. 조선본토 출신 이외의 사람이 군에서 부총사급 직위에 오른 첫 사례였다.
군부에서 본격적인 출신지 파괴 인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승진해서 유일하게 인도인 출신으로 장군 계급장을 단 시크 여단장에게 제2 시크 여단 창설이 명령되었다.
시크 교도들의 충성심을 확인한 광해가 시크 여단을 확대해서 인도양군의 핵심 전력으로 삼고자 했다.
광해가 제3회 제국 최고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하와이 점령 작전에 나가있던 지세창이 점령군과 함께 회군했다.
지세창은 쉴 사이도 없이 후금의 합비로 출발하는 태왕을 호종했다. 휴가를 주며 쉬라는 자신의 황명을 어기면서까지 참여한 지세창에게 태왕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자리를 비우는 태왕을 대신해 태자 호가 대리청정을 맡았다. 태자는 이순신 원수와 총리대신의 보필을 받아 태왕이 없는 조선의 정사를 도맡았다.
태자가 병석에서 일어난 지 한 달 보름만인 광무15년, 서기1617년 4월 말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