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후폭풍
태자의 수술을 위해 조선 각지의 최고 외과의원들이 신의주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태우고 오기 위해 황실 전용 비행선과 군 비행선들이 사방으로 날았다.
자그마치 32명의 외과 의원들이 모여 3번의 대수술을 거친 끝에 태자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수술이 벌어지는 동안 워낙 많은 피가 들어간 탓에 피가 모자라다는 소식이 신의주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황립 조선종합병원 앞에 헌혈을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백성들의 모습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충격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태왕과 태자비가 죽은 듯 누워있는 오라비의 모습에 울고불고 눈물바람인 5살의 공주와 함께 병상을 지켰다.
현장에서 익위사에게 사로잡힌 범인에 대한 취조가 포도청에서 벌어졌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고, 범인의 신상과 그가 몸을 담고 있던 조직에 대한 내용들이 속속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의 법인 조선대전은 고문을 금지한다.
하지만 범인에게 손을 쓰는 포교들도, 그것을 지켜보는 포청의 고위 관리들도 누구하나 고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그 결과를 받아든 포도청 중앙 수사대와 어사대 긴급조사단, 사간원 특수감찰대가 총출동했다.
아울러 포도대장의 특명을 받은 각지의 우포청 포교들이 몇몇 곳을 급습해 관련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잡혀 들어온 이들에 대한 조사와 추국이 살벌하게 벌어졌다.
조선에 존재하는 모든 신문들이 호외로 태자의 피격사실을 백성들에게 전했다. 그것으로 태자의 피격 소식이 신의주를 넘어 온 나라의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유럽인이 범인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유럽을 피바다로 만들자는 구호가 조선 각지의 거리를 채웠다.
사방에서 군에 자원하는 청년들로 각 지역 병무부 모병관이 북새통을 이뤘다. 심각한 병력부족으로 곤란을 격고 있던 군부로써는 모처럼 맞은 기회였지만 아직 이순신 함대와 함께 유럽에 머물고 있던 이순신 원수의 지시로 모병관들은 일제히 문을 닫고 지원을 받지 않았다.
일순간의 분노로 결정한 군 입대가 결국 긴 근무기간동안 후회로 채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모병관 앞엔 자신들의 지원을 받아달라는 청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이틀 후, 태자가 무사히 목숨을 구했다는 호외와 함께 범인의 신상이 알려졌다.
이름이 타츠오라고 알려진 범인이 열도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열도출신 조선인들이 사방에서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남간도에서는 이로 인한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범인은 태자 익위사로 근무하다 제대한지 3개월 된 퇴역군관이었다. 사망한 피해자가 술자리에서 범인에게도 무언가 사연이 있지 않겠냐고 하는 말에 격분해서 벌인 일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좌포청 포졸들에게 현장에서 추포되어 구금된 범인을 방면하라는 시위가 남간도를 넘어 만주 4도 전역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각지의 좌포청에선 열도출신들에게 가능한 집밖에 나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출신지를 가지고 차별행위를 할 경우 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는 경고문이 담긴 전단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포도대장의 특명을 받은 각 지역 우포청에선 조선의 모든 이장들에게 직접 찾아가 열도인들에 대한 차별, 또는 적대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을 다독여 달라는 청을 했다.
총리대신 명의로 출신지로 차별을 일삼는 이들에겐 일체의 선처 없이 법대로 처결하겠다는 포고문이 조선 각지에 나붙었다.
열도 출신 조선인들은 움츠러들었다. 단지 출신이 열도라는 것 때문에 지은 죄도 없으면서 죄인처럼 집밖으로도 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를 학당으로 보내지 못하는 이들까지 속출했다.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분노가 컸다.
태왕이 부재한 조정 회의에서 신의주 백성들 중에 열도 출신들을 모두 신의주 밖으로 이주시키는 안건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백성들에겐 차별하지 말라면서 정작 조정이 백성들을 출신지로 차별하는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조선 전체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
이 사태에 유럽은 덩달아 놀랐다.
초기 범인으로 유럽인이 지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위화도 국제거리가 외부와 차단되었을 정도였다. 긴급 출동한 신의주 좌포청 병력이 위화도로 들어가는 여섯 개의 다리를 차단했던 것이다.
직후 수천 명의 신의주 백성들이 도끼와 낫 등 보는 것만으로도 살벌한 것들을 들고 몰려왔기에 조금만 늦었어도 어떤 참극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조선의 젊은이들이 유럽을 피바다로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며 모병관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에 기겁을 했다.
각 대사관을 통해 해당 소식을 접했던 유럽은 일제히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최대한 조선에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후국들은 제후국들대로 기겁했다.
제후국의 세자도 아니고 조선의 태자가 조선 땅에서 총을 맞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범인의 신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유럽인에서 지금은 열도인으로 지목되었다. 문제는 그 범인이 속해 있었다는 단체가 밝혀지며 그곳에 소속된 이들이 연일 추포되어 잡혀 들어오면서 불거졌다.
무슨 인종 전시장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잡혀 들어온 범인들의 인적 구성에서 제후국들 중 빠진 나라가 없었던 것이다.
각 제후국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국 주재 조선 사무국의 협조를 얻어 추포된 이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인들에 대한 추포작전이 연일 벌어졌다.
혹여 이번 일에 연관이 있을까 싶어 선제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제후국들 중 그 어디라도 이번 일과 연관된 것이 밝혀지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제후국들 중 최강의 국력을 자랑한다는 후금도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후금의 경우는 다른 나라들보다 위기감이 더 컸다. 조선에서 잡혀 들어간 이들 중에 신의주에 머물며 신문물을 배우고 있던 후금 왕실의 종친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신의주에 머물고 있던 이유가 자그마치 후금 왕실의 추천이었다.
이 사태를 얼마나 중하게 보았던지 후금은 세자 홍타이지를 조선으로 급파해 후금이 이번 일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로 했다.
4품의 호군, 그러니까 장군 계급으로 조선군 원수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누르하치의 장남인 추옌의 도움을 받아 조선군 비행선 편으로 신의주까지 날아온 홍타이지는, 태자의 병실을 지키고 있던 태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초췌한 모습의 태왕 앞에 엎어진 홍타이지는 후금이 이번일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수십 번도 더 이야기했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말했다.
“세자.”
“예. 페하.”
“부왕은 잘 지내시는가?”
“예? 아! 예.”
“짐이 그와 나누어마시던 마유주가 그립다 전하게. 그리고······. 이런 일로 다시 오지 말게. 세자의 얼굴을 보는 것은 기쁨이나 이런 일로, 이런 모습으로는 아닐세. 짐이 그대의 부왕을 믿는 마음이 결코 그리 낮지 않음이니.”
그 말과 함께 엎드린 홍타이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준 태왕은 힘없이 병실로 들어갔다.
그날 병실 앞에서 홍타이지는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눈물이 어떤 뜻에서 흘린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귀국한 직후, 누르하치가 직접 태자의 병문안을 위해 신의주를 방문한 것만으로 후금 왕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주조선 후금대사와 조선 외교부 대신의 안내를 받으며 조선종합병원으로 들어서던 누르하치는 무거운 표정으로 서성이는 명왕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와 있었소이까?”
“어서 오시오.”
하긴 명왕은 사사로이는 태자의 외숙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가 흉수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세자에게 국정을 맡기고는 조선으로 왔던 것이다.
“폐하는 뵈었소?”
누르하치의 물음에 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안이 많이 상하셨더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소. 태자는 어찌 보셨소?”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 명왕이 답했다.
“의식이 아직 없소.”
그 말에 누르하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흠······.”
“폐하께서 나오십니다.”
수행한 외교부 대신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든 누르하치의 시선으로 과거 남창에서 보았던 얼굴의 반쪽이 되어버린 태왕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폐, 폐하!”
놀라는 누르하치에게 광해가 슬픈 미소를 그려보였다.
“왔는가.”
“요, 용안이 어찌 이리······.”
“자식이 누워있으니 그리 되더군.”
“폐하······.”
걱정스럽게 부르는 누르하치의 음성에 광해는 그저 힘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고맙다며 돌아가 쉬라는 말에도 누르하치와 명왕은 병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을 위해 병원에선 몇 개의 입원실을 비워 숙소로 내주어야 했다.
제후국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후금과 명의 왕이 문병을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나머지 제후국들의 군왕들이 일제히 신의주로 향했다.
상황이 벌어진지 보름 만에 제후국의 군왕들이 모조리 신의주 종합병원에 모여 태자의 쾌유를 빌었다.
문제는 그 긴 시간 동안에도 태자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혼수상태인 시간이 길어지면서 의원들 사이에서는 태자가 의식을 차리더라도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것을 전달받은 조정이 침묵에 휩싸였다.
자칫 차기 조선의 태왕으로, 차기 대한제국의 황제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이가 올라설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공론화 시킬 수도 없었다. 자칫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 태왕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문제는 입 밖으로 내진 않아도 그것을 예상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몇몇 고위 대신들이 종친들과 회동을 갖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특히 신성군과 접촉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왕인 선조의 넷째 아들이자 태왕인 광해의 이복동생이기도 한 신성군은 장인이 조선육군 총사인 신립이었다.
신립이 여전히 자리보전하여 누워있다지만 그 인맥이 조선육군 전역에 뻗어있었다. 따라서 태자의 유고로 신성군이 새로이 황위를 이어받을 신분이 된다면 정통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군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성군에 바짝 접근하는 대신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주시하던 정인홍이 이항복과 논의해 여전히 유럽에서 전쟁의 뒤처리를 도맡고 있던 이순신의 귀환을 요청했다.
자칫 군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진 것이다.
두 사람의 요청에 이순신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있고 없고는 군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군을 믿으라는 말을 두 사람에게 남겼다.
이순신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불안했다. 결국 이항복이 삼군 총사들 중 유일하게 현재 조선에 남아있던 해군 총사 우치적을 찾았다.
해군 총사부로 직접 자신을 찾아온 이항복의 모습에 우치적은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항복은 자신과 총리대신의 우려를 전달했다. 그 우려에 우치적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조선군은 폐하의 군대이옵니다. 신립 장군이 아니라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폐하의 명이 아니고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체계는 갖춰져 있습니다. 원수께서도 그것을 아시기에 유럽에 남아 계신 것이옵니다.”
이순신과 같은 말을 하는 우치적에게 이항복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녕 그러하겠소?”
“소장을 믿으십시오. 아니 소장이 아니라 폐하를 믿으십시오. 폐하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선군입니다.”
“장군까지 그리 말씀하시니······. 그나저나 이 원수께선 이 상황에서도 왜 유럽에 남아 있는 것이오?”
“유럽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이번 일에 연관된 것으로 찍혀 보복 전쟁이 벌어질까 두려운 것이지요. 그 탓에 원수께서 중심을 잡고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하면 새로운 전쟁이 유럽에서 터질까봐 머물고 있다는 소리요?”
“전쟁을 벌이는 것은 두려울 것이 없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 폐하께 걱정 한 가지를 더 얹어드릴 수 없노라 시면서······. 그러니 믿고 기다리시지요.”
우치적 해군 총사의 말에 이항복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