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5화. 모스크바 초토화 작전
부여단장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여관이었다.
그곳을 시크 수색대를 비롯해 초기 우쯔에 투입되었던 병력들이 포위한 채 간간히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부여단장의 등장에 선임지휘관이었던 시크 수색대장이 군례를 올렸다.
“결사.”
“결사.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부여단장님.”
“상황은?”
“적 수비대의 기병돌진을 분쇄한 이후에 살아남는 놈들이 이쪽으로 퇴각한 탓에 쫓아왔습니다.”
“이곳으로 생존병들이?”
“예. 아무래도 저곳에 슐라흐타들이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거 폭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예. 그래서 공투탄 말고 기01로 저기 이층에 누각처럼 생겨서 툭 튀어나온 곳을 두드려봤으면 합니다.”
“저긴 왜?”
“적이 저곳에 저격병을 다수 두어 운용하는 탓에 접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현식총으로 무린가?”
“두꺼운 목재를 썼는지 현식총으로는 별달리 타격을 입힐 수 없었습니다.”
“그럼 비행선 사격으로 저곳을 무력화 시키고 돌입하려고?”
“예. 폭격이 안 되니까 그 방법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좁은 건물 안에서의 전투는 상당한 아군의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작전이다.
위험성이 너무 높지만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다 우쯔 주변의 적이 몰려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니 수색대장의 판단이 옳은 셈이었다.
부여단장이 생각을 고르는 사이 연락을 받은 날틀043이 여관 상공에 도착했다.
수색대 통신병이 나서서 수신호로 기01 사격을 요청했다. 아직 지상군이 사용할 휴대용 무선전신기가 없는 까닭이었다.
문제는 목표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그것은 수색대장이 현식총 사수를 시켜 목표가 될 지점을 사격하게 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타다다다다당.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현식총이 두들기는 목표를 조종석에서 확인한 구봉길 상령이 소리쳤다.
“야! 고 중사. 지금 현식총이 때리는데 봤냐? 2층의 툭 튀어나온 곳.”
“예. 봤습니다.”
기01 사수인 고 중사의 답에 구봉길 상령이 명령했다.
“그래, 거기. 갈겨버려!”
구봉길 상령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01 사격음이 들려왔다.
퉁두두두두두둥.
현식총에 비해 훨씬 무겁고 둔중한 연속발사음이 울리며 두꺼운 목재로 둘러싸인 여관 발코니에 기01 총탄 세례가 퍼부어졌다.
두꺼운 장미목재로 만들어진 발코니 벽이 뚫리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있던 코사크 저격병들은 장미목재를 단박에 뚫고 들어온 3분의 2치(약20mm) 총탄에 벌집이 되어버렸다.
수십 발을 퍼붓고 사격을 멈춘 비행선의 기01을 확인한 수색대장이 대기하고 있던 분대에 수신호를 주자 이내 해당 분대가 여관입구로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병력의 현식총들이 엄호사격을 퍼부었다.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퍼부어진 현식총 사격으로 인해 코사크 병사들이 고개도 내밀지 못하는 사이 현관가까이 수색분대가 접근하자 엄호사격이 정지했다.
현관으로 돌입할 아군에 대한 피탄 위험 때문이었다.
그렇게 엄호사격이 끊긴 현관에 도착한 수색분대원들이 문 옆으로 붙더니 안으로 수탄 서내 개를 던져 넣었다.
쾅콰광.
수탄 폭발음을 확인한 수색분대원들이 일제히 총을 쏘며 현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몇 개의 분대가 함성을 지르며 현관을 향해 달렸다.
그 사이 나머지 병사들이 여관 창문들을 향해 집중적인 엄호사격을 실시해서 코사크 병사들이 아예 고개도 내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관 안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속에는 조선군의 다총과 그보다 낮은 또 다른 총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적의 반격이 있다고 판단한 수색대장의 눈빛에 대기 하고 있던 다른 부대 소속 병력 수십 명이 현관으로 돌진했다.
내부 진입병력의 증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마저 안으로 사라진 여관에서 다양한 총격음과 고함, 욕설이 난무했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이 창문들에 가하는 엄호 사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여관은 자그마치 2개 대 2백 명을 투입하고서야 간신히 제압이 되었다. 사살한 적병은 5백여 명. 그 작은 여관에 그만한 병력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적군의 저항이 격렬해서 조선군의 피해도 상당했다.
여관을 제압하며 전사한 시크 여단 병사들의 수는 40명에 육박했다.
다행인 점은 시크 수색대의 작전이 성공해서 폴란드의 세임을 구성하는 슐라흐타들을 모조리 생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색대원들이 포박하고 눈을 가린 슐라흐타들을 2차 강습 후 우쯔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날틀041, 5대에 나누어 태우고는 날틀043 1대를 선두에 세운 채 노리치 비행장으로 귀환했다.
그 때엔 2차 강습으로 우쯔에 발을 디딘 시크 여단 병력이 우쯔 전역을 점령한 후였다.
그렇게 우쯔를 점령한 채 기다리길 몇 시간, 드디어 장갑마차를 선두에 세운 본대가 도착했다.
11병단장과 시크 여단장은 1차 강습부대가 우쯔 수비대를 거의 괴멸직전까지 몰아갔다는 것에 상당히 놀라고 고무된 표정이었다.
11병단장이 선임지휘관으로써 시크 수색대장과 그 휘하 병사들을 크게 칭찬했다. 11병단장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조선군 최고사령부에 이들에 대한 훈장 수여를 상신했을 정도로 굉장히 기뻐했다.
우쯔에서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은 곧바로 병력을 태우고 바르샤바를 향해 전속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세임을 구성하는 슐라흐타들을 전원 추포하여 후송한 이상 이제 남은 것은 선거왕이라 불리는 폴란드의 왕 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육군이 상륙하길 기다리고 있던 폴란드군은 조선 폭격비행선대의 폭격에 노출되어 다수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바르샤바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다려오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폴란드에서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이 우쯔에서의 작전을 마무리하고 한창 바르샤바로 진격하던 시기, 노리치 비행장에서는 제105중폭격비행선단이 이륙하고 있었다.
날틀053, 20대로 구성된 제105중폭격비행선단에게 내려진 명령은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완전히 파괴하라는 것이었다.
대당 2백발의 공투탄을 적재하는 날틀053의 폭장력을 감안하면 이들 제105중폭격비행선단이 가진 공투탄의 수가 무려 4천발이다.
이것은 대당 20발을 적재하는 날틀03으로 치면 2백대를 동원한 폭격작전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들이 노리치 비행장을 출발해 러시아로 기수를 잡았다. 잉글랜드의 노리치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대략 6천리(약2,356km) 정도의 거리였다.
날틀053의 항속거리가 3만리(약11,781km)에 달하기 때문에 무보급 왕복 비행도 가능한 거리였다. 하긴 이 긴 비행시간 때문에 러시아 폭격에 투입된 것이었으니까.
모스크바까지의 비행시간은 편도 비행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 긴 비행시간을 소화하기 위해 날틀053의 조종사들은 교대 조종 방법을 택했다. 말하자면 주종종사와 부조종사가 교대로 조종을 맡는 것이었다.
기01 사수와 항법사, 기관사도 교대 근무에 들어갔다.
사실 2개조가 확보되었다면 모두 탑승해서 비행대 전원이 교대근무를 하는 식으로 운용했겠지만 현재 조선은 비행대원의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었기에 2개조를 배치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날틀043들에 비행대를 1개조씩만 배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날틀053에도 1개조씩의 비행대만 배치되었다.
따라서 날틀053의 비행대원들은 자체적으로 교대근무를 시행하면서 장거리 비행에 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날아서 모스크바를 지척에 둔 곳에 도착하자 모든 비행대원들이 정위치 되었다.
단장의 지시에 항법사가 무선전신을 통해 조선 최고 사령부로 모스크바 상공 도착을 알리고, 최종 폭격 결정을 요청하였다.
모스크바는 이미 6년 전쯤인 서기 1610년에 지금 한창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이 휘젓고 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에게 탈탈 털렸던 도시였지만 그때의 상흔을 모두 치료했는지 러시아 최대, 최고의 도시답게 재건되어 있었다.
당연히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고 있을 도시였기에 완전 파괴를 명령받은 이상, 최종 결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잠시 후, 최고 사령부에서 도착한 답신을 통신병의 임무를 겸하는 항법사가 읽었다.
“모스크바 초토화 폭격의 개시를 최종 명령한다는 태왕 폐하의 직접 명령입니다.”
항법사의 말에 비행선단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행선단 전기에 해당 전문 통지하고, 융단폭격 대열로 모스크바 상공 진입 개시한다.”
단장의 명령에 항법사가 휘하 전기에 무선전신을 보냈다. 이내 2열 횡대로 늘어선 제105중폭격비행선단이 폭탄창을 연채 모스크바 상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날틀053의 진입고도는 3천척(약909M)이었다. 이것은 통상적인 폭격고도보다 낮은 것이었는데 이유는 각 비행선당 1백발씩 탑재하고 있는 나급 공투탄의 투하고도가 바로 3천척인 까닭이었다.
초기 화염폭발탄에서 시작한 전통적인 심지 발화방식을 택하고 있는 나급 공투탄의 폭발 시간에 맞춘 투하고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다수의 모스크바 시민들과 병사들은 점심나절의 화창한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드는 날틀053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틀053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탄의 모습까지도 선명하게 보았다.
맨 처음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미처 몰랐던 모스크바 시민들은 첫 폭발과 함께 점점이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이며 떨어져 내리는 수백발의 검은 물체가 폭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귓가를 울리는 폭음과 도처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 속에 사람들의 비명이 파묻혔다.
전형적인 융단폭격이었다. 진입부터 외곽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차례차례 폭탄을 떨어트리며 완전히 모스크바를 짓뭉개버렸다.
날틀053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회해서 다시 모스크바 상공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기01을 폭탄 대신으로 쓰듯 지상을 쓸면서 이동했다.
수많은 시민들과 병사들이 그렇게 쏟아지는 기01 세례에 죽음을 맞이했다. 약한 목조 건물들 중 일부는 무차별로 쏟아지는 기01 세례에 무너지기도 했다.
하긴 그냥 두었어도 온 도시를 채운 채 번지고 있는 화염이 조만간 집어 삼켰겠지만.
동일한 수의 가급 공투탄과 뒤섞여 자그마치 1천발의 나급 공투탄이 쏟아진 모스크바는 완전히 화염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나급 공투탄에 충진 되어있다가 불이 붙어 쏟아진 인화물질들로 인해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있는 불길은 좀처럼 물로 꺼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불을 끄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민들과 병사들의 머리위로 기01 세례가 퍼부어진 탓에 진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탓에 더 크게 번진 불길로 모스크바가 완전히 화염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렇게 온통 불길로 뒤덮인 모스크바를 제105중폭격비행선단의 날틀052들이 천천히 빠져나와 멀어져갔다.
몽골과 폴란드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침략에도 나름 잘 버텨왔던 모스크바가 완전히 파괴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