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화. 코사크 기병대
잠을 자다 달려 나온 코사크 병사들이 지휘관의 명에 따라 말을 꺼내는 사이, 시청 건물로 진입한 시크 수색대는 건물 안 계단에서 시청을 지키던 일단의 코사크 병사들과 조우했다.
한쪽은 올라가고 한쪽은 내려오다 마주친 이들은 너무 좁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병력이 맞닥트린 셈이었다.
협소한 공간의 제약으로 수탄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는 이내 돌진해온 코사크 병사들로 인해 좁은 계단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총을 물리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코사크 병사들은 나폴레옹이 코사크 병사 2만만 주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용맹한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상대는 전사를 영광쯤으로 생각하는 시크 교도들로 이루어진 조선 해병대였다.
다총을 어깨에 건 시크 수색대 병사들이 이내 시크 교도를 상징하는 단검인 키르판을 꺼내들고 코사크 기병대에 마주쳐나갔다.
좁은 계단에서 양측 공히 백여 명 정도씩 맞붙은 난전이었다.
근거리 전투 기술과 용맹, 그리고 저돌성이 유일한 무기가 되어 상대를 죽이는 혈투가 벌어졌다.
좁은 공간임에도 긴 칼을 귀신같이 휘두르는 코사크 병사들의 용맹도 사나웠지만 짧은 키르판을 전광석화처럼 휘두르는 시크 수색대의 단검 전투술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전투는 참혹했다. 양측의 접전 부위에서 피와 비명이 연속해서 뿌려졌다. 사람과 사람이 상대를 죽이려는 맹목적인 목표 하에 칼을 들고 격돌하는 구시대적 전투가 벌어진 탓에 좁은 계단은 곧바로 땀 냄새와 진득한 피 냄새로 가득 찼다.
결코 짧지 않은 혈투를 거친 후, 피로 뚫은 계단을 벗어난 쪽은 시크 수색대였다.
20여명 정도의 병사들을 계단에 주검으로 나둔 채 무기와 군번줄만 회수한 시크 수색대 생존병 80명이 백여 명에 달하는 코사크 병사들의 시신을 밟고 시청을 벗어났다.
그런 그들을 노리고 집결을 완료한 코사크 기병대 1천이 도시라는 것을 무시한 채 기마 돌격을 감행해 왔다.
코사크 기병대의 돌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조선군은 목표가 된 시크 수색대가 아니라 시청 인근의 다른 건물을 수색하고 있던 시크113대였다.
우쯔 상인회로 사용되던 건물의 수색을 끝마치고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창밖으로 대상건물을 찾던 시크113대 지휘관이 시청을 막 벗어나는 시크 수색대를 향해 돌진하는 코사크 기병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분산 이동 중이던 시크 수색대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고함을 쳐서 시크 수색대에게 위험을 알렸지만 거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쪽에서 연신 들려오는 총성과 폭발음에 묻혀서인지 시크 수색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위험을 경고할 수 없다고 상황을 판단한 시크113대 지휘관이 고함을 쳐 휘하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서쪽 창문으로 모두 붙어 몇 층에 있던 상관없다. 모조리 붙어!”
지휘관의 고함에 서쪽 대로와 접하는 창문 쪽으로 달라붙은 시크113대 병사들이 총기를 창문에 거치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코사크 기병대가 시113대가 들어있던 건물 앞으로 돌입해 왔다.
“발사!”
시크113대장의 명령에 다총과 현식총의 사격음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탕, 타다다닫당.
처음 통과한 수십을 제외하고, 그 다음부터는 시크113대가 머물고 있는 건물 앞을 지나자면 엄청난 총알세례로 구성된 탄막을 통과해야 했다.
그 탄막을 지나는 코사크 기병대가 무더기로 쓰러졌다.
90정의 다총과 10정의 현식총이 구성한 탄막은 상당히 치명적이어서 그 앞을 지나가는 코사크 기병대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만 했다.
코사크 기병대도 갑자기 나타난 탄막지대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리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이미 지휘관이 위치한 선두는 지나간 직후였고, 뒤는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코사크 기병대는 차례차례 탄막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피 튀기며 탄막을 통과해 달리는 이들, 탄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총탄에 쓰러진 이들이 마구 뒤섞여서 시크113대가 몰려있는 건물 앞은 아비규환의 장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며 자신들의 지척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자 시크 수색대가 뒤를 돌아보고는 놀라서 사격선을 구성한다고 난리였다.
일부 병사들은 채 엄폐물이나 은폐물도 찾지 못한 노상에서 돌진해온 코사크 기병대와 맞닥트렸다.
퍽!
고속으로 질주하는 말에 부딪친 시크 수색대 병사가 형편없이 튕겨나가 떨어졌다. 그 위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코사크 기병대가 지나갔다.
1개 임무분대, 그러니까 2개 분대, 20명의 시크 여단 병사들이 코사크 기병대의 기마 돌격에 휘말려 형편없이 뭉개졌다.
그나마 나머지 3개 임무분대 병사들이 제각기 은폐물이나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긴 채 사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항을 시작한 시크 수색대에서 수탄이 날아들고, 다총과 현식총이 불을 뿜자 코사크 기병대의 기마 돌격은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1천의 규모가 유지되었다면 시크 수색대도 훨씬 위험했겠지만 다행히 시크113대가 구성한 탄막을 통과한 코사크 기병대는 이미 반토막이 나 있었다.
5백에도 못 미치는 코사크 기병에게 시크 수색대의 저항이 맹렬하게 퍼부어지며 선두를 무너트렸다.
수십 발의 수탄이 일제히 터지면서 선두에 섰던 30여명 남짓한 기병들이 일거에 무너진 것이 가장 컸다. 그들이 도로를 막으면서 일종의 장애물 역할을 해서 코사크 기병대의 돌격을 저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코사크 기병과 말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장애물 너머에서 시크 수색대가 맹렬하게 사격을 퍼부으며 저항을 계속했다.
마치 사전에 작전을 함께 짠 것같이 코사크 기병대가 탄막지대를 완전히 벗어나자마자 시크113대가 상인회 건물을 나와서 코사크 기병대의 후방을 막고 뒤에서 사격을 퍼부었다.
더구나 시크113대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구포까지 동원했다. 마차를 버리고 온 탓에 구포는 표준편제의 절반인 1문만 가지고 오고, 포탄도 6발뿐이었다.
하지만 한발 한발이 치명적인 공중폭발탄인 비격진천뢰였다.
광.
섬뜩한 폭음과 함께 코사크 기병대가 돌파력을 잃고 멈추어선 머리위에서 발사된 비격진천뢰가 폭발했다.
수십 개의 쇳조각이 무서운 속도로 아래를 향해 쏘아지며, 그 아래에 모여 우왕좌왕하던 코사크 기병을 사정없이 덮쳤다.
사람과 말을 가리지 않고 찢고, 꿰뚫고 지나간 쇳조각에 의해 사람과 말이 동시에 주저앉았다.
놀란 코사크 기병대 중 후미의 일부가 뒤를 막고 사격을 퍼붓고 있는 시크113대를 향해 돌격해 왔지만 그들은 10정의 현식총의 집중 사격을 받아 양측 거리의 절반도 줄이기 전에 녹아버렸다.
그러는 사이 6발의 비격진천뢰가 모두 코사크 기병대의 머리 위에서 작렬해 그들의 피를 빨았다.
비격진천뢰의 쇠비와 정방과 후방을 막고 퍼부어지는 시크 여단 병사들의 총알 세례에 넝마가 되어 길바닥에 구른 코사크 기병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자신들의 시신으로 막힌 길에서 시크 수색대와 시크113대 사이에 갇힌 코사크 기병대가 햇빛에 눈이 녹듯 양 부대의 사격에 녹아버렸다.
진득하니 흐른 피와 코를 찌르는 짙은 혈향을 남겨둔 채로.
회심의 일격이었던 1천 코사크 기병대의 돌격을 저지, 제거한 조선군들은 곧바로 수색과 추포 작전을 이어갔다.
우쯔 시내 전역에서 총소리와 수탄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
구봉길 상령이 인도하는 85수송비행선대는 다행히 급속도로 우쯔로 향해 진격하던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을 제대로 찾아왔다.
곧바로 멈춰선 시크 여단에서 2차 강습병력을 태우기 위해 85수송비행선대 소속 날틀041들이 하강해서 다시 4백 명의 완전무장한 병사들을 태웠다.
그런 날틀041들이 부상해 우쯔 쪽으로 날아가자 잠시 멈추었던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도 중단했던 진격을 다시 이어나갔다.
양쪽 모두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겨우 4백 명의 아군만이 우쯔에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차 강습부대에는 시크 여단의 부여단장이 탑승하고 있었다. 위험지역에 투입되는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부대의 규모가 단급에 가까워져 가면서 통합 지휘관이 필요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은 여단장이 오겠다고 나서는 것을 부여단장이 간신히 뜯어말리고 대신 자신이 왔던 것이다.
부여단장으로써는 자칫 강습작전에서 여단장이 전사할 경우 입게 될 부대의 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피 말리는 1시간 남짓의 비행시간 끝에 도착한 우쯔는 푸르스름하니 밝아오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 해가 머리를 보이고 있으니 곧 아침 햇살이 우쯔를 온통 비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접근한 우쯔는······.
선도기를 조종하고 있던 구봉길 상령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요란한 총소리는 여전히 도시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성벽위에 빼곡했던 적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강습위치로 삼았던 자리엔 폭격화염으로 인해 그을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미 강습 착륙했던 지역은 저에게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날틀041의 크기상 안전하게 착륙 가능한 공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1차 강습지로 사용되었던 지역에 다시 나급 화염탄 1발만 투하되었다.
적을 사멸하고 강습지를 보호할 요량이 아니라 그저 강습지역을 표시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대장선이 홀로 1발만 투하한 것이었다.
쾅!
곧바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불길이 조금 잦아들자 구봉길 상령이 85수송비행선대에게 강습 개시를 요청하는 전문을 송신하도록 지시했다.
선도기로부터 강습개시 요청을 받은 85수송비행선대의 날틀041들이 차례차례 하강해 병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우쯔로 투입되는 병력은 시크 여단 내에서 제법 전투력이 좋다고 소문난 부대들을 추려 구성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대급으로 구성했다지만 소속이 시크 여단 휘하 5개 단에서 중구난방으로 선정되었다.
그들이 2차 강습 병력들 중 가장 먼저 우쯔 땅에 발을 디딘 부여단장을 시작으로 우쯔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첫 비행선에서 내린 병사들이 부여단장의 지시를 받으며 강습지 보호 임무에 들어갔다.
20대의 날틀041 중 3대째가 내려앉았을 때였다.
“당장님 저기!”
부조종사의 놀란 음성에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준 구봉길 상령의 시선으로 일단의 무장병력이 황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적일 경우 강습지에 착륙한 아군 비행선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구봉길 상령이 고함쳤다.
“야! 고 중사 10시 방향 미확인 무장부대. 조준하고 발사 대기해!”
“알겠습니다!”
마주 고함을 쳐 답한 고 중사가 비행선 아래에 장착된 기01 총좌를 선회시켜 목표를 조준하는 동안 구봉길 상령은 재빨리 쌍안경을 들어 접근 중인 병력을 확인했다.
“아! 야, 고 중사 명령해제. 명령해제! 아군이다. 사격 하지 마!”
구봉길 상령의 고함소리에 하마터면 회전발사기를 돌릴 뻔 했던 고 중사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안 강습지로 달려온 조선군 병사들이 부여단장과 조우했다.
“결사!”
달려온 병사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젊은 상사의 군례에 부여단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마주 부대구호를 붙였다.
“결사. 어떻게 되어가나?”
부여단장의 물음에 3명의 수하들과 함께 달려온 젊은 상사가 재빨리 답했다.
“현재 적 수비대를 한 건물에 몰아넣고 격멸전 수행 중입니다만 저항이 너무 강해서 고착되어 있습니다. 날틀043의 지원을 대장님께서 요청하셨습니다.”
젊은 상사의 답에 부여단장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적 수비대를 한곳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예.”
“아니 이곳 우쯔의 수비대가 대체 얼마나 되었기에······?”
“1천은 확실히 넘었고, 2천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모두 한 건물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긴 했는데 적이 도심에서 1천 가까운 기마대를 운영하다가 아군의 탄막에 걸려 전멸당한 탓에 정리가 쉬웠습니다.”
2천 가량의 적군 중 1천이 그렇게 정리되었다면 남은 적군은 1천. 4백 조선군이면 그 정도는 찜 쪄 먹고도 남는다.
이 놀라운 전공과 상황에 반색을 띠며 부여단장이 물었다.
“자네 소속이 어딘가?”
“수색댑니다!”
상사의 답에 부여단장이 말했다.
“일단 날틀043엔 지원 요청을 넣겠네. 그리고 날 그곳으로 안내해 주게.”
“예.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젊은 상사의 답에 막 착륙해 병사들을 내려놓고 있는 4번째 비행선에 날틀043에 지원요청을 넣어달라고 부탁한 부여단장은 곧바로 젊은 상사의 안내를 받으며 우쯔 수비대를 몰아넣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