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야간 강습
시크 여단에는 여전히 과거의 명맥을 이어오는 수색대가 존재했다.
여단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이들로 구성되는 이 수색대는 1백 명으로 이루어진 대급 부대로 1차 강습 전력으로 가장 먼저 선정된 부대이기도 했다.
시크 여단은 그 수색대를 포함 4개 대, 4백 명을 비행선에 태웠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비행선에 오른 4백 명의 시크 여단 병사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날틀041 20대가 아직 어둠으로 가득한 하늘로 부상한 직후, 공중에서 대기하던 날틀043 3대의 호위를 받으며 우쯔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별처럼 작게 빛나는 비행등을 반짝이며 멀어지는 비행선들을 바라보는 11병단장에게 부단장이 말했다.
“현재시간 오전 3시, 비행선 도착 예정시간은 1시간 후인 오전 4시입니다.”
하늘이 여전히 어두울 시간이다. 비행대원들은 목적지를 찾는데 애를 먹겠지만 적에게 비행선의 접근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시간이었다.
군용 회중시계(懷中時計)를 확인하며 보고하는 부병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11병단장이 시크 여단장을 돌아봤다.
“다음 강습 병력은 준비 해 둔 것인가?”
“예. 4개 대 4백 명을 선발해 두었습니다.”
“이동 간 조우 탑승이 될 것이다. 우왕좌왕 하지 않도록 미리 해당 부대의 마차병을 제외시켜 두도록.”
“예. 그리 조치해 두겠습니다.”
거의 완벽한 조선말을 구사하는 시크 여단장의 답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11병단장이 지시했다.
“전 병력 완전무장한 채로 마차 탑승 대기한다. 우리도 강습이 개시될 4시에 맞춰 우쯔를 향해 전속으로 돌진할 것이다.”
“예. 장군!”
시크 여단장과 부병단장의 복명이 울리고 이내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 병사들이 완전무장한 채 마차에 올라 대기에 들어갔다.
어딘가에 있을 우쯔의 정찰병이 비행선에 탑승해서 날아가는 이들을 보았겠지만 아직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은 아직 출발 할 수 없었다. 가능한 최대한 늦게 적에게 조선군의 목적지가 알려지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
날틀043의 조종석에 앉은 구봉길 상령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강습 비행선 부대의 선도를 구봉길 상령의 비행선이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긴 폴란드 비행은 처음인 85수송비행선대의 비행선이 선도를 맡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어둠으로 가득한 상태에서는.
비행선이 개발된 이래로 각종 계기의 개발과 보급이 이루어져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비행에 필요한 모든 계기가 완전히 갖추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당장 고도계조차 아직 모든 비행선에 보급되지 않았다. 날틀05 계열에는 부착되어 있다지만 아직 신뢰성은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시계비행이 거의 불가능한 지금과 같은 야간 비행에서 참고할 만한 계기는 기압계와 나침반이 유일했다.
실제역사에서는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토리첼리(E. Torricelli)가 1643년에 처음 고안해 냈던 기압계는 조선이 그보다 30여년 빠른 1615년에 개발에 성공했다.
장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하고 시험비행선에서 상당시간 운용한 결과 신뢰성이 확보되었다는 판단 하에 비행선에 보급된 것이 바로 올해인 서기 1616년 초였다.
이 기압계가 배치되기 이전까지 고도는 비행대원들의 경험에 의한 시야추정으로 측량되었다. 문제는 저고도는 나름 정확한 편이었는데 고고도에서는 그 정확성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것에 애를 먹던 비행대원들은 이 기압계를 고도 측정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은 떨어진다는 것에 착안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현재 날틀05 계열 비행선에 장착되어 실전 적응 시험 중인 고도계도 그런 특성을 이용해 기압을 고도로 변환 표시하는 형태의 계기였다.
그렇게 기압계로 대략적인 고도를 확인하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여 비행선을 조종해 가는 구봉길 상령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지상에서 뜨문뜨문 작게 빛나는 무리들은 아마 도시나 마을들 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목표 삼아 날아갈 수는 없었다.
구봉길 상령은 오로지 나침반의 방향과 비행시간으로 환산한 거리만으로 우쯔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지점의 지상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있다면 그곳이 우쯔이길 구봉길 상령은 비행 내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께 빌고 또 빌었다.
선도를 선 구봉길 상령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비행선의 조종사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워낙 어두워서 앞이나 곁에서 날고 있는 비행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종사들은 비행선 정방과 후방에 붙어있는 작은 비행등을 기준삼아 동료 비행선의 위치를 가늠하여 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비행해야 했다.
비행선의 부력을 통한 긴 비행시간 덕에 야간비행이 자주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긴장하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자칫 공중에서 비행선들끼리 충돌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비행대가 긴장한 가운데 시간이 흐르고. 구봉길 상령은 자신의 시야로 다가오는 작은 불빛들이 제발 우쯔가 맡길 여전히 신께 기도했다.
공중 폭격과 달리 하강 강습이 동반되어야 했기 때문에 적이 자신들의 접근을 가능한 늦게 알게 하기 위해 비행선들은 내연기관을 최대한 저속으로 가동시켜 소음을 줄이려 노력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조용한 새벽에 비행선 23대가 장비한 내연기관과 바람날개 돌아가는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긴 하겠지만 말이다.
도시의 불빛을 향한 하강의 선두는 구봉길 상령과 함께 따라온 103폭격비행선단 소속 날틀043 3대가 섰다.
하강 신호를 85수송비행대에 통보한 후 천천히 내려가면서 구봉길 상령이 고함을 쳤다.
“야! 고 중사. 경비병부터 훑는 거다. 혹시 성벽위에 발리스타나 공중 사격 가능한 중병기가 있으면 그것들부터 박살내고!”
“예! 알겠습니다!”
마주 고함쳐 답한 고 중사는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성벽위의 흐릿한 불빛에 기대어 사격 목표를 선정하기 위해 기01 총좌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던 순간 대형 발리스타를 발견한 고 중사가 기01 총좌를 돌려 조준하고는 그대로 회전발사기를 돌렸다.
퉁투둥둥둥둥둥둥.
묵직한 기01의 사격음이 터져 나오면서 성벽위에 배치되어 있던 폴란드군의 발리스타 주변으로 총탄이 빗발치듯 떨어졌다.
구봉길 상령의 대장선만이 아니라 다른 두 대의 날틀043이 장비한 기01들도 각자의 목표를 잡아 사격을 개시했다.
하늘에서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성벽위로 총탄이 쏟아지자 수비병들이 놀라서 황급히 움직였다. 이내 성벽 위는 물론이고 놀란 도시의 시민들이 횃불들을 밝히면서 도시가 빛으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도시의 대략적인 규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성곽과 그 안에 들어있는 가옥들의 수가 상당한 대도시였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직감에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던 구봉길 상령이 도시 안 공터 하나를 찾아 그 주변으로 나급 공투탄 2발씩을 투하하도록 명령했다.
곧바로 3대의 날틀 043에서 2발씩의 나급 공투탄이 투하되어 공터 주변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나급 공투탄에 들어있던 인화물질들로 크게 일어난 불길이 마치 공터 주변을 대낮처럼 밝혔다. 상공에서 대기하던 85수송비행선대의 날틀041들이 그 불빛을 목표삼아 강습하강을 개시했다.
3대의 날틀043들이 품자 형태로 그렇게 확보된 강습구역을 둘러싸고 사방으로 기01 세례를 퍼부어 적 보병의 접근을 차단했다.
아울러 비행선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보이는 모든 것에 기01세례가 퍼부어지고 있었다.
그런 엄호 사격을 받으며 맨 처음 하강한 날틀041에서 문이 열리고, 시크 수색대 소속의 병사들 20명이 뛰어내렸다.
그들이 사방으로 사격을 가하며 강습구역 보호 작전에 들어갔다.
이후 차례차례 내려온 날틀041들에서 병력이 1백을 넘어가자 소수의 강습구역 엄호 병력을 남겨둔 채 시크 수색대가 하강하면서 보아두었던 도시의 가장 큰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세임의 슐라흐타들이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다행히 수비대 병력이 놀라고 당황한 탓에 큰 위기 없이 강습이 마무리되었다. 4백 명의 시크 여단 병력을 내려놓은 비행선들이 지금쯤 돌진을 시작했을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을 찾아 비행에 나섰다.
그러니 이젠 2천의 코사크 수비대와 수만의 폴란드인들이 우글거리는 우쯔에 달랑 4백 명의 조선군만 남겨진 셈이었다.
그렇다고 그 4백 명의 조선군이 진지를 구성해서 방어를 다진 것도 아니다. 이 겁 없는 조선군 병사들은 곧바로 각자의 목표를 선정해서 세임 수색 및 추포 작전에 돌입했다.
물론 완전한 적지였기 때문에 병력은 철저하게 대급으로 뭉쳐서 이동했다.
이내 그들과 우쯔 수비대인 코사크 기병대간의 교전이 벌어졌다. 구형이긴 했지만 소총을 보유한 코사크 기병대의 사격에 맞서 조선군 시크 여단 병사들이 다총으로 제압사격을 퍼부었다.
도시가 온통 총소리로 가득해졌다.
세임의 슐라흐타들은 요란하게 총소리가 울려나온 순간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구나 폴란드군이나 코사크 기병대가 가지고 있는 소총과는 전혀 다른, 빠르고 경쾌한 총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가 조선군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없이 깔아놓은 정찰병들의 눈을 어떻게 속이고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군이 우쯔로 들이닥친 이상 어떻게 하든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탈출 준비는 사전에 모두 갖춰두었었기에 슐라흐타들은 빠져나갈 기회만을 엿봤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이 들이닥친 것인지 사방에서 총질인데다 시크 여단 병사들이 던진 수탄으로 도처에서 폭발까지 일어나는 터라 섣불리 숙소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세임이 임시 회의장으로 삼은 것은 도시 중심부에서 슬쩍 비켜난 위치의 작은 여관이었다. 슐라흐타들은 그 여관을 중심으로 수십 채의 민가들을 징발해서 숙소로 삼았다.
도시에서 가장 크고 탄탄한 시청건물도 있었지만 조선군의 비행선이 날아온다면 가장 먼저 폭격을 맞을 건물이 시청이라는 판단에 따라 오히려 중심부에서 떨어진 지역에, 누가 봐도 허름한 여관과 민가에 여장을 풀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임의 판단은 제법 정확해서 실제로 강습으로 도시에 침투한 시크 여단 병사들도 도시 중심부의 큰 건물들 위주로 수색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수색을 우선시한 시크 여단 병사들을 향해 우쯔의 수비를 맡고 있던 코사크 기병대가 몰려들고 있었다. 시가전이 벌어진 때문인지 코사크 기병대도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양측의 교전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크 여단 병사들의 우위가 명확했다.
처음엔 다총과 현식총, 그리고 수탄으로 이어지는 시크 여단의 제압사격에 걸려 큰 피해를 입은 코사크 기병대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자신들의 사거리 너머에서 무더기로 총알 세례가 퍼부어지니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가끔 막대기 같은 게 날아오면 큰 폭발로 이어져 주변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코사크 기병대는 조선군 쪽에서 뭐만 날아오면 피하기 바빴다.
거기에 더해 조선군의 움직임이 상당히 민첩했다. 건물을 재빨리 제압하고 다음 건물로 이동하는 속도에 거침이 없었던 것이다.
창문들로 수탄 투척한 후, 폭발이 일어나면 문을 작은 휴대용 파성퇴로 격파, 재빨리 제압사격 실시하며 진입 후 점령.
멀리서 지켜보던 코사크 기병대 지휘관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조선군의 움직임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훈련을 거쳤는지 여실히 증명되는 움직이었던 것이다.
이동 간 갑자기 코사크 기병대를 만나도 조선군은 당황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대응해 왔다.
너무 가까이서 조우하면 수탄으로 접근 병력을 일소한 후, 다총 사격으로 완전 제압. 약간의 거리만 주어져도 현식총을 활용한 제압사격으로 오히려 조우한 코사크 기병대가 도주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결국 비슷한 수, 또는 약간 많은 정도의 병력을 동원해서는 조선군과 결전을 벌여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코사크 기병대 지휘관이 말을 끌어오도록 지시했다.
무슨 생각인지 조선군은 이 도시 안으로 소수의 병력만 침투시킨 채 물러갔다.
그러니 저들만 격퇴시키면 당장은 도시의 안전을 확보 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했던 코사크 기병대장은 자신들의 장기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1천 명가량이 보병 상태로 대응하는 사이 나머지 1천명이 말에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