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12화 (312/325)

제312화. 슐라흐타(Szlachta)

폴란드의 세임은 말 그대로 의회다. 다만 의회라고는 하지만 시민들에게 선출된 이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폴란드의 세임은 일종의 집단 과두정치체제의 일환이었다.

이들이 폴란드의 실권을 잡게 된 시점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이었던 지그문트 2세가 서기1572년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서 부터였다.

권력의 공백을 자신들이 선출한 선거왕으로 메꾼 듯 했지만 실제로는 세임이 거의 모든 권력을 행사했다.

참정권을 얻은 하위 귀족과 젠트리라 불리는 중산 자유민들로 구성된 슐라흐타들이 중심이 된 이 세임엔 전통적인 폴란드의 대귀족들도 참여해 있었다. 그들도 세임의 실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세임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비드고슈치에서 조선군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폴란드의 자랑이자 폴란드군의 핵심이었던 윙드 후사르가 전멸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세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조선군은 비드고슈치를 돌파하여 고속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받은 세임은 자신들의 거취를 선뜻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군의 진군로가 바르샤바인지 우쯔인지 명확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선택한 진군로가 어정쩡해서 어느 방향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타고 남하 중이었던 것이다.

이미 한차례 바르샤바를 버리고 우쯔로 옮겨온 전력이 있는 세임으로써는 다시 우쯔를 버리고 또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자꾸 시민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살기 위해 도주해 다닌다는 비난이 일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쯔의 수비를 맡고 있는 2천의 코사크 기병대가 조선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러시아 용병대 격인 코사크 기병대의 전투력은 믿을 만 했지만 충성심은 믿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더구나 그 전투력이라는 것도 지금 다가오고 있는 조선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공산이 높기도 했고. 그렇기에 세임은 조선군의 진군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탈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다.

광해가 세임의 의원들인 슐라흐타들을 추포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왕이라 불리는 폴란드의 왕이 명분을 위한 얼굴마담이라면, 입법권과 외교,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임은 실질적인 폴란드의 통치기관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해는 슐라흐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그들을 통해 세임을 정당한(?) 방법으로 해산시킴으로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아예 분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 사살하거나 폭살할 경우, 그들의 후계자들이 다시 슐라흐타의 지위를 내려 받아 또 다른 세임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도 생포를 우선시하는 추포 작전을 짜두고 있었다. 그렇게 가능한 살려서 잡아가야 하니 도망가지 않게 신경을 써서 진군로를 정해 이동했다.

“이제 분기점에 다가와 갑니다. 분기점에서 우쯔로 진로를 잡으면 적의 정찰병이 대번에 우리의 목적지를 알아차릴 겁니다.”

지휘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부단장의 말에 11병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얼마나 되지?”

“상륙지였던 그드니아에서 확보한 지도에 따르면 분기점에서 우쯔까지는 대략 190리(약71km)입니다.”

기동화 된 조선군의 하루 진군 거리가 3백리(약118km)였으니까 절반을 조금 넘는 거리였다.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세임이 도주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란 의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보다 그 놈들이 도망가는 게 더 빠르겠어.”

“소관의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무슨 수를 내긴 내야 할 듯 합니다.”

“어떻게?”

“그에 관해서 비드고슈치를 떠나기 전에 시크 여단장이 했던 이야기, 아직 기억하십니까?”

“뭐, 공중 투입?”

“예. 서남도 반란 사태 때 시모노세키에서 내금위와 510단이 실제로 실행한 작전이니 가능성은 있지 않겠습니까?”

“510단이 수행했다지만 그들은 증원 병력이었고, 격렬한 전투가 수반되는 초기 강습은 내금위가 도맡았다고 들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혹시 전투력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래. 공중 투입을 통해 병력을 투사할 경우, 한 번에 아무리 대규모 강습을 통해도 겨우 수백이야. 그들로 다음 강습까지 자신들보다 월등히 많은 적과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최소 수 시간을 버텨야 해. 내금위 새끼들이 평소에 재수 없이 굴긴 하지만 그 놈들은 근접전투력에 있어서는 진짜배기인 놈들이니까. 하지만 시크 여단 애들이 그 정도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그래도 일반 해병대 애들보다는 확실히 다른 놈들이긴 하지 않습니까?”

시크교의 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을 가치로 여긴다. 전장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이들이니 전투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는 이들이긴 했다.

그로 인해 유연성이 부족해서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되는 전투에서까지 피를 본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공중 투입 외에는 별달리 방법도 없어 보이는데 일단 한번 믿어보시죠.”

부단장의 권유에 한참동안 고심하던 11병단장이 분기점에서 숙영할 것을 명령했다. 그 명령이 전파되고, 얼마 후 도착한 분기점에서 전 병력이 멈추어 숙영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는 더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늦은 오후, 11장갑병단으로부터 대서양군 사령부로 날틀041의 지원이 요청되었다. 시크 여단 병력 중 일부를 우쯔로 공중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이다.

대서양군 사령부의 참모들도 그냥 돌진하면 세임이 우쯔를 버리고 다시 도주해 모습을 감출 것이라는 11장갑병단장의 우려에 공감했다.

따라서 대서양군 사령부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국경 인근의 경비부대 보급임무에 투입되어 있던 날틀041들을 노리치 비행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항속거리상 폴란드로 직접 날아갈 수는 있겠지만 다시 회항할 수 있을 정도의 연료가 남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날틀041들은 노리치 비행장으로 먼저 가고, 그 다음에 다시 폴란드로 진입하도록 명령받고 있었다.

대서양군 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은 난데없이 분기점에 주저앉아 비행선들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사이에도 날틀043으로 이루어진 조선의 폭격비행선단들은 폴란드의 주요 도시들을 연신 폭격하고 있었다.

대서양군에 배치된 수송용 비행선들인 날틀041들은 모두 제85수송비행선대에 소속된 기체들로 대부분의 조선 비행선들이 그렇듯이 내금위 특수비행대 예하였다.

이 85수송비행선대가 대서양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잉글랜드의 노리치까지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7시간이었다.

노리치에서 재급유를 실시한 85수송비행선대는 곧바로 폴란드로 향했다.

대서양군 사령부는 이 85수송비행선대의 엄호를 위해 103폭격비행선단에서 3대의 날틀043 비행선을 떼어내 딸려 보냈다.

그중에는 103폭격비행선단의 단장인 구봉길 상령의 대장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험한 임무에 부하들만 보낼 수 없다는 그의 자원을 대서양군 사령부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3대의 날틀043이 크게 품(品)자 형태로 벌여선 가운데에 자리한 85수송비행선대의 날틀041들이 비행했다. 자위용 무장인 기01 조차 없는 날틀041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런 강습 엄호임무에는 폭격용인 날틀043보다는 기01 3문을 장비한 지상포격용 날틀042가 더 적격이겠지만 그들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간 국경선 방어 임무에 투입되어 있어 외부로 돌릴 수가 없었다.

에스파냐 왕실이 추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면서 사실상 에스파냐의 지도부가 와해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다수의 고위 귀족들은 건재했고, 그들은 적지 않은 군사동원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 동맹국과의 전투가 벌어진 모든 전선에서 조선군이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상당히 위험한 우세였다.

오스만에서는 이순신 함대와 날틀03으로 이루어진 전투비행선대들로만 전투를 수행 중이었다. 진흙탕 전투가 될 것이 뻔한 오스만으로 투입할 정도의 지상군을 조선이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파리를 격파하고 부르봉 왕조를 아예 절단 낸 이후엔 그냥 버려두었다. 프랑스에서 지속적으로 작전을 펼칠 지상군을 투입할 여력이 조선에 없었기 때문이다.

폴란드도 오스만과 비슷하게 주요 공격수단은 날틀043으로 이루어진 폭격비행선단들이었다.

지상군을 투입했다고는 해도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뿐이었고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상군 투입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그나마 에스파냐 전선에는 대서양군 5개 병단과 동맹군인 잉글랜드군 3만이 투입되어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었지만 상대인 에스파냐는 마음만 먹으면 수십만의 대병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였다.

프랑스, 에스파냐, 오스만, 폴란드,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러시아와 신성로마제국까지.

모두가 유럽의 대국들이자 육군 강국들이었다. 이들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조선이 동원한 지상군은 겨우 7만5천뿐이었다.

그리고 예비군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현재 상황에서 조선군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병력이었다.

아마 이런 조선의 제한사항들을 빈 동맹국들이 알았다면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력적 우세를 통해 결사적으로 항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비행선들의 맹폭과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으로 이루어진 고속 진공부대의 강력한 펀치력에 놀라 제대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아직 공격받지 않은 러시아와 신성로마제국조차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속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이 큰 오스트리아와 달리 독일에 산재한 여러 소국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이번 대 조선 전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것이 표출되면서 일부 소국들에서 반 합스부르크, 반 황제파란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가는 아직 황제에게 충실하게 협력하고 있는 독일의 여러 소국들과 힘을 합해 그런 반란분자들을 제압해야 했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마티아스는 조선과의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내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것이 신성로마제국의 마티아스 황제의 손발을 묶어두고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는 한술 더 떠서 10만이나 하는 대병력을 오스만 땅에서 잃어놓고서도 다른 빈 동맹에 대한 구원에 나서지 않았다.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조선에 대항하기는커녕 그들은 조선군이 상륙할 경우에 대비해 곧 닥칠 겨울을 이용해 격퇴하고자 이미 청야전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발트해로부터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의 우물이 파괴되고, 식량이 소거되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그렇게 조선을 향해 달려드는 대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싸우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조선은 그런 러시아에 지상군을 들여보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겨울의 러시아가 어떤지 지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광해는 그 혹독한 추위 속으로 조선의 병사들을 들여보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광해는 날틀053이라는 괴물 폭격비행선들을 러시아로 투입하기로 했다.

제작이 완료되고 며칠간의 시험비행을 성공리에 마친 날틀053 20대가 일제히 거제 건선단지를 출발해서 잉글랜드의 노리치 비행장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행해지는 조선군의 모든 비행선 작전은 노리치 비행장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폭격비행선이라는 새로운 기종으로 분류되는 날틀053은 날틀05의 외형을 그대로 내려 받았기 때문에 부푼 식빵처럼 생긴 날틀03, 그리고 날틀043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그 유려한 곡선형의 선체를 이끌고 하늘을 날아가는 날틀053의 모습은 일견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날틀053 20대로 이루어진 제105중폭격비행선단이 노리치 비행장에 도착하던 시간, 제85수송비행선대가 폴란드에 대기 중이던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의 상공에 막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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