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손아귀로 들어오다
마드리드를 향해 고속 기동하고 있던 5만의 속칭 ‘대서양군 마드리드 공략군’ 중 기마대는 1만을 조금 상회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후금과 할하, 북원의 병력이었다.
그간 보병인 다른 병력과 보조를 맞추며 진군하던 이 병력에 대서양군 사령관인 이억기의 명령이 떨어졌다. 급속 기동하여 바다호스에서 마드리드로 회군중인 에스파냐군을 요격하라는 것이었다.
명령을 받은 기마대가 본대와 떨어져 나갔다. 이들은 마드리드를 멀리 우회하여 바다호스에서 급속 이동 중인 에스파냐군을 향해 직진했다.
이 공략군 기마대가 회군중인 에스파냐군의 정확한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기동할 수 있었던 것은 대서양군 사령부가 바다호스에서 철군하는 에스파냐군을 날틀041을 보내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에스파냐군의 정확한 위치를 대서양군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기마대는 본대와 떨어져 기동한지 이틀 만에 회군 중이던 에스파냐군 3만과 조우했다.
조선군 기마대의 특징은 보병과 마찬가지로 포격을 우선 실시한 후 기마대 전투가 시작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선 육군 전투교범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군의 전투교범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는 대한제구군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병단급 부대였던 대서양군 기마대는 3백문의 이포를 방렬하여 기다리다가 적이 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일제 포격을 가했다.
3천보(약5.4km)의 사거리를 갖는 이포의 집중포격은 상당히 거셌다. 화염탄과 산탄포탄이 뒤섞인 이 포격에 에스파냐군은 황급히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물러나는 에스파냐군을 향해 기마대가 기동을 시작했다.
이열종대로 에스파냐군의 좌측으로 진출한 기마대는 달리면서 나총 사격을 퍼부었다. 대서양군 기마대는 기마총은 물론이고, 나총도 함께 소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사거리가 짧은 기마총보다 말을 달리며 사격하기에 번거롭기는 하지만 나총이 간 사거리로 인해 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일총과 달리 나총은 8연발 리볼버 탄창을 채용하고 있었기에 그 8발을 다 쏠 때까지는 달리며 재장전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장점을 살린 공격이었다.
에스파냐군도 사격선을 형성하고 달리는 대서양군을 향해 대웅사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4백보(약727M)에 달하는 나총과 달리 에스파냐군이 사용하는 스냅펀스 록 건(snaphance-lock gun)의 사거리는 150M 내외가 고작이었다.
에스파냐군으로써는 나름대로 신형무기를 장비한 셈이었지만 여전히 전장식에 가스 누출이 많은 이 총은 조선보다 질이 떨어지는 화약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사거리에서는 조선군의 화기에 훨씬 못 미치고 있었다.
하긴 조선의 선진 화약기술을 따라올 나라는 아직은 없었으니까.
이것은 에스파냐군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에스파냐군이 사격한 총탄은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에 단 한발도 도달하지 못한 반면,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가 사격한 총탄은 모조리 에스파냐군을 유린했던 것이다.
수백, 수천의 병사들이 단 한차례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 주검으로 남았다.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는 크게 반전하며 다시 에스파냐군 우측으로 달렸다. 그러며 다시금 사격을 퍼부었다.
좌측을 달리며 4발, 우측으로 달리며 4발을 사격한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는 그대로 자신들의 포병들이 벌여선 지역으로 이동했다.
총렬을 청소하고 다시 총을 장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는 말에 탄 채 나총의 총렬을 청소하고, 재장전하는 훈련을 받아온 부대였다. 그래서인지 전원이 능숙하게 말에 탄 채 총렬을 청소하고 재장전을 진행했다.
그 모든 것이 종료되자 지체 없이 다시 기동을 시작, 이전과 마찬가지로 좌측을 달려 나가 반전해서 다시금 에스파냐군의 우측을 치며 돌았다.
그리고 다시 포병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와 재장전.
이 행동을 3번째 반복하자 견디다 못한 에스파냐군이 마지막 수단으로 돌격을 감행했다. 에스파냐군 지휘관들도 조선군의 포병대를 향해 돌격했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스파냐군의 돌격은 막 자신들의 좌측으로 4번째 지나가는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를 향해 이루어졌다.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과 함께 에스파냐군의 절반이 뛰쳐나왔다. 요란하게 총을 쏘며 돌진하는 에스파냐군을 본 기마대 지휘관이 방향을 바꿀 것을 지시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가 일제히 방향을 바꿔 달려 나오는 에스파냐군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돌진하며 순식간에 8발의 나총을 모두 사격한 기마대가 나총을 집어넣고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돌격.
말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며 마주 돌진해 오던 에스파냐군과 충돌했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에스파냐군의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사격을 통제하다가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가 충분히 사거리에 들어왔을 때 일제 사격을 퍼부어야 했다.
하지만 에스파냐군 병사들은 돌진을 시작한 순간, 흥분과 공포에 눌려 마구 사격을 하며 뛰기 시작했다. 총알이 닿지도 않는 거리에서 불필요하게 총을 쏜 셈이었다.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 지휘관이 머뭇거림 없이 마주 돌격을 명령했던 것도 그런 에스파냐군의 모습을 목격한 까닭이었다. 마주 돌진해도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양측의 충돌은 끔찍한 결과를 드러냈다.
기마전투에 있어 여진, 그리고 몽골은 거의 정점에 다다른 민족이다. 수천 년을 말위에서 싸워온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투력이 완벽하게 투사된 돌격에 에스파냐군이 속절없이 녹아났다.
더구나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는 그렇게 돌진해온 에스파냐군 절반을 도륙한 다음 미련 없이 말을 돌려 물러났다.
전원이 총을 들고 사격선을 구성한 채 기다리던 나머지 절반의 에스파냐군에겐 관심도 두지 않았다. 대부분 기마대는 이런 경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은 병력을 향해 몰려오기 나름이다.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던 에스파냐군 지휘부로써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말위에서 먹고 자는 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까닭이었다.
전투 시에만 말을 타는 유럽의 기마대와 삶이 말 위에서 이루어지는 여진과 몽골족으로 이루어진 대서양군 기마대의 냉철함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절반으로 줄어든 에스파냐군은 재차 이어진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의 이격공격, 다시 말해 상대의 무기는 닿지 않는 거리에서 행해지는 사격을 통한 공격에 결국 백기를 내걸었다.
버텨봐야 죽음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드리드가 애타게 기다리던 에스파냐군 3만이 절반으로 줄어든 채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의 포로가 되었다.
마드리드는 대서양군 마드리드 공략군에 의해 포위되었다.
마드리드 공략군은 대략 1천5백보(약2.7KM)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드리드를 포위했다. 그것은 에스파냐가 보유한 그 어떤 무기도 닿지 않는 거리였다.
그 모습을 성벽위에서 바라보던 마드리드 수비대는 조선군의 후방을 바다호스에서 귀환하고 있는 자국군이 들이쳐 주길 바랐지만 그 희망은 뒤늦게 합류한 마드리드 공략군 기마대에 이끌려 도착한 에스파냐군 포로들의 모습과 함께 힘없이 사라졌다.
마드리드 공략군은 항복하라며 마드리드에 이틀의 시간을 주었다.
그 사이 마드리드 공략군은 1천2백문의 이포를 마드리드의 성벽을 삥 둘러싸며 배치하는 것은 물론 일부지역에 포대를 올려놓을 단을 만들었다.
주변의 흙을 퍼서 단을 쌓는 이 방식의 포대는 정왜전쟁 시 치른 오사카성 공략전에서 조선군 공병대가 터득한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높게 쌓은 단에 에스파냐군 포로들을 끌고 뒤늦게 합류한 기마대의 이포들이 배치되었다. 한 개의 단에 30문씩 모두 10개의 단에 3백문이 배치되었다.
이렇게 높게 쌓은 단에 배치된 포들은 그 높이를 이용해 성 안으로 포탄을 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포를 보유한 조선군이었다면 고각 사격, 그러니까 곡사가 가능했겠지만 고각사격이 불가능한 이포를 보유한 대한제국군이 높은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포탄을 투사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준비를 갖춘 공략군은 에스파냐의 최종 결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틀의 시간이 지나 마드리드가 한 답은 ‘항복 거부’였다.
무선전신을 통해 퀘벡의 대서양군 전방지휘소에서 보고를 받은 이억기는 지체 없이 공격을 명령했다.
사령관의 최종 명령에 따라 대서양군 마드리드 공략군의 포격이 개시되었다. 전부 합쳐 1천5백문의 이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특히 성벽을 향한 조선군의 포격은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인 일점포격이었다. 빙 둘러 배치되었다고는 해도 일정구간을 나누어 하나의 좌표에 포격을 몰아 쏜 것이다.
그렇게 일점포격을 받은 성벽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나둘 무너져가는 성벽으로 인해 에스파냐군은 상당한 피해와 동시에 막대한 사기 저하에 시달려야했다.
애써 성벽으로 올려 보냈던 징집병들이 겁에 질려 도주하는 이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더구나 높게 쌓은 단위에 배치된 이포들이 사격한 포탄들이 성안으로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화염이 치솟았다.
그렇게 치솟은 화염은 이내 성내의 화재를 불러일으켰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온 성민들과 군인들 속으로 마드리드 공략군이 발사한 산탄포탄들이 떨어졌다.
쾅콰과광!
산탄포탄의 폭발과 함께 불을 끄려고 몰려들었던 성민들과 에스파냐 군인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성내에 일어난 화재를 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건물에 불이 붙어도 불을 끌 수 없게 되자 불은 온 성내로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이거나, 석조와 목조를 혼합해 지은 건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마드리드 대화재라 불리게 되는 불길이 마드리드 전역을 집어삼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길은 마드리드 중심부의 왕궁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저기서 궁인들과 왕궁 방어를 맡은 병사들이 불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불길은 계속 번져나가기만 했다.
왕궁을 둘러싼 모든 지역이 불길에 휩싸인 까닭이었다.
온 성내가 불바다가 되자 백성들이 성벽 쪽으로 몰렸다. 수만 명이 불길을 피해 몰려나온 탓에 성벽 아래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게 백성들이 몰려온 성벽을 마드리드 공략군의 포격이 연신 때렸다. 일부에선 그렇게 일점사격을 받은 성벽이 무너지면서 뒤에 몰려있던 백성들을 깔아뭉갰다.
그런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자 결국 버티다 못한 마드리드 수비대가 성문을 열고 탈출을 시작했다. 마드리드 공략군의 포격이 시작된 지 겨우 1시가 만이었다.
그렇게 탈출하는 마드리드의 백성들을 마드리드 공략군이 차례차례 맞아 분류하고 일부는 포박하여 격리했다. 포박당한 이들은 건장한 사내이거나 아니면 에스파냐군 병사들이었다.
그렇게 탈출하는 마드리드 백성들을 분류하던 한 병사가 지휘관에게 달려왔다. 그 병사의 보고에 지휘관이 달려가고, 이내 기찰군교(헌병 또는 군사경찰)들을 호출했다.
일단의 기찰군교들이 달려오자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의 신병을 인도했다. 그들을 인도받은 기찰군교들은 꽤나 정중히 상대를 대했다.
그러게 이동한 이들이 마드리드 공략군 지휘부에 도착하자 이내 마드리드 공략군이 대서양군 사령부에 무선전신을 타전했다.
<펠리페 3세와 왕실 가족의 신병 확보>
에스파냐 왕실 가족이 그렇게 조선의 손아귀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