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05화 (305/325)

제305화. 태자비 폐위 주청 사태

시크 여단 수색대의 수색결과 프랑스의 국왕인 루이13세와 모후 마리 드 메디시스의 시신이 확보되었다.

다만 마리 드 메디시스의 시신의 경우 그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서 확실히 당사자인지는 확신 할 수 없었다.

그에 따라 시크 여단이 진행한 왕궁 점령 작전에서 포로로 잡힌 몇몇 시녀들의 통한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개별로 진행된 시녀들의 확인 작업에서 시신의 복색이 왕의 모후가 입고 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모든 시녀들이 말했다.

해당 상황을 조선군 최고사령부로 보고한 파리 진공부대에는 시신을 회수해서 리스본으로 귀환하라는 태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명령에 파리 진공부대는 시신을 챙겨 미련 없이 파리를 떠났다.

시가 중심부가 완전히 파괴된 파리에서 그렇게 조선군이 떠나자 파리의 백성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조선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조선군이 악마의 군대라는 소문은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경험한 조선군의 전투력은 소문 이상의 것이었기에 저들이 다시 돌아오지나 않을지, 그땐 자신들을 어찌 할지 한 없이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대다수의 파리 백성들이 파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자칫 머뭇거리다 조선군이 돌아와 살육을 벌일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렇게 파리가 버려지고 있었다.

파리 진공부대의 철수 명령에 대해 조선군 최고 사령부의 참모들의 반대가 거셌다.

참모들의 주장은 이참에 프랑스를 아예 점령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최고 사령부의 참모들은 남포르투갈도 감영과 최대치의 징집을 논의 중이었다.

이미 남포르투갈도 읍장 전원회의에서 오스만과의 전쟁을 결의하며 최대의 협조를 천명한 이후였기 때문에 남포르투갈도 장정들에 대한 최대치의 징집에 걸림돌도 없었던 까닭이다.

무장이야 리스본 전략물자 사전전개 창고에 비축된 것을 사용하면 되고, 모자란 것은 퀘벡 전략물자 사전전개 창고에서 보충 받으면 된다는 군수참모들의 주장도 더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참모들의 주장을 광해가 거부했다.

향후 국토 확장 계획에 의해 예정되어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대한 점령 작전을 제외하면 국가급 영토의 점령 전쟁에 더 이상 휘말릴 생각이 없다는 점을 광해가 명확히 한 것이다.

흔들림 없는 광해의 결심에 결국 최고사령부 참모들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선이 손을 뗀 프랑스는 왕과 모후, 그리고 왕실 가족들이 모두 세테 요새에서 사망한 탓에 상당한 혼란에 휩싸였다.

조선군의 진군로에 위치한 탓에 전쟁에 휘말렸던 프랑스 서북부를 제외하면 프랑스의 거의 모든 지역이 건재한 상태에서 왕실만 사라진 셈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절반을 잃었다고는 해도 정예군으로 구성된 5만의 병력이 여전히 에스파냐에 주둔하고 있기도 했고.

상황을 파악한 이후 가장먼저 움직인 것도 그렇게 에스파냐에 주둔하고 있던 5만의 프랑스군이었다. 그들이 에스파냐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회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중앙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이 군대의 지휘관들은 갈팡질팡했다.

왕실 가족들이 세테 요새에서 몰살당한 상황이라 누굴 새로운 프랑스의 왕으로 추대해야 할지 제각각의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격화되면서 프랑스로 회군하던 병력이 3조각으로 나뉘어버렸다.

프랑스군을 지휘하고 있던 페르디낭 포슈 장군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자는 장군들과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사보이아 공국의 사보이아 공작을 신왕으로 추대하자는 장군들의 대립이 가장 격했다.

수도 비슷해서 이들은 각기 2만씩의 병력을 지휘한 채 나뉘어 움직였다.

나머지 1만의 병력을 지휘하는 이들은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들로 그들은 일단 파리로 귀환한 후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 결정을 내리자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낸 무리였다.

현재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군벌이 되어버린 이 세조각의 세력과 연계하기 위해 프랑스의 각 지방의 귀족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다.

중심을 잡아줄 왕가가 사라진 이상 살아남기 위해, 또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분주했던 것이다.

프랑스가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 호기를 주변국들은 누구도 이용하지 못했다. 접경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 모두가 전쟁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와 함께 직접 조선의 영토였던 포르투갈을 공격했던 에스파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퀘벡에 대기하고 있던 5만의 대한제국군에 투입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퀘벡을 출발한 이 병력은 곧바로 포르투갈 주둔 연합전대의 호위 하에 에스파냐의 북부인 산탄데르에 상륙했다.

제후국에서 파견한 왕무급 호위함으로 이루어진 연합전대의 상륙포격 후에 개시된 일제 상륙작전으로 5만의 대한제국 병력이 에스파냐의 북부에 발을 디뎠다.

문제는 전력을 기울여 동원한 6만의 병력 중 절반에 달하는 3만을 잃은 에스파냐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전의 대(對)에스파냐 전쟁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군은 직선으로 마드리드를 향해 진격했다. 가로막는 것은 무조건 격파하고 전진하는 거침없는 이 진격에 마드리드는 패닉상황에 빠졌다.

바다호스 지역에 머물고 있던 3만의 에스파냐군이 급속도로 회군하고, 각 지역에 머물고 있던 잔여병력의 집결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대한제국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랐다.

기동화 되어 있는 조선군과 달리 대다수가 보병인 대한제국군임에도 하루에 40km가까이 진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20km 남짓한 에스파냐군 이동속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무서운 진군속도였다.

이 에스파냐와의 전쟁은 단지 에스파냐에게만 곤혹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종류는 달랐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조선 본토에서도 이 전쟁으로 인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론에 불씨를 지핀 것은 사간원이었다.

적국의 공주를 태자비로 두고 있을 수 없다는 한 간원의 상소가 그 시발점이었다.

그 상소에 대해 태왕이 아무런 답이 없자 사간원 간원들의 상소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그것은 대신들로까지 번져나갔다.

조선의 법은 연좌제를 인정하고 있었다.

아비의 죄는 아들의 죄였고, 가족의 죄였다. 그렇기에 삼족, 또는 구족을 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에스파냐의 대조선 전쟁 행위는 태자비의 죄이기도 했다.

사간원은 그것을 물고 뜯었다.

비열하거나 인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시대의 법으로는 그것이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광해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냥 ‘아니 된다’ 떨 처낼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태에 대해 가장 놀라고 당황한 것은 태자비인 안 도트리슈 공주였다.

자신이 태자비로 있는 조선을 모국인 에스파냐가 공격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자와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 충격은 굉장히 컸다.

놀람과 당황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안 도트리슈 태자비는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태자비의 곁을 태자가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를 기다려 사간원의 관리들이 들이닥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던 태왕과의 시간을 빼먹을 정도로 태자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런 태자를 어느 날 밤, 광해가 침전으로 불렀다.

태자는 주저하는 태자비의 손을 잡고 태왕의 침전으로 들었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태자비의 절을 받은 광해가 안쓰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은 게냐?”

“흐흐흐흑.”

괜찮냐는 물음에 눈물부터 보이는 태자비를 태자가 다독였다.

“아바마마······.”

자신을 애타는 음성으로 부르는 태자의 눈빛만으로도 자신이 확인하고자 했던 것을 물을 필요가 없음을 알아차린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네 치세 내내, 아니 네 아들의 치세까지도 발목을 잡을 게다. 이겨낼 수 있겠더냐?”

“제 아내도 지키지 못한 자가 어찌 황실과 나라를 지키겠나이까. 소자, 어떤 상황에서도 태자비를 지킬 것이옵니다.”

“하면 되었다. 내일 대전조회에 참석하거라.”

광해의 말에 굳은 결심을 담은 태자가 고개를 숙였다.

*****

다음 날 조회가 열린 대전 앞에는 대사간을 비롯한 사간원 관리들이 연좌 농성을 벌였다. ‘태자비를 폐하소서’라는 구호를 연신 외쳐대는 사간원 관리들의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대전에서 열린 조회의 공기는 무겁고 또 무거웠다.

더구나 이해 당사자인 태자가 황좌 바로 아래에 앉아있었기에 그 무거움은 한층 더했다.

이내 태왕인 광해가 들어오자 모두가 허리를 접고 예를 표했다.

그런 대신들의 예를 받으며 대전으로 들어선 광해가 황좌 바로 밑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일어선 태자를 확인하고는 황좌에 착석했다.

“평신(平身).”

상선 알지의 외침에 대소신료들이 허리를 펴고, 태자가 자리에 앉았다.

직후 대신들 간의 눈빛이 교화되더니 총리대신이 나섰다. 그가 이 날카로운 사안에서 총대를 메기로 한 모양이었다.

“폐하. 사헌부의 주청이 연일 거세옵니다. 처결을 내려주소서.”

총리대신의 주청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그것에 대해 처결을 내릴 생각이었소. 경들은 들으라.”

광해의 말에 대신들의 허리가 굽혀졌다.

“하명하소서. 폐하.”

대신들의 말에 광해가 말을 이었다.

“사간원의 주청과 대소신료들의 상소가 정당한 법적 근거에 의함을 인정한다. 하나.”

광해의 말에 표정이 밝아지던 대소신료들의 얼굴이 ‘하나’라는 단서에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태왕의 입에서 앞서 말한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이 떨어졌다.

“사간원의 주청은 가납하지 않는다. 태자비의 죄는 태자가 짊어지고 갈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거든 태자에게 직접 허락을 받으라. 이후 짐에게 태자비의 폐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리는 자, 삭탈관직 하여 유배에 처할 것이다.”

“하오나 폐하.”

당장 튀어나온 총리대신의 말을 태왕이 손을 들어 막았다.

“하고자 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안다. 그 말이 타당하다는 것도 안다. 하나 다시 말해도 내 결정은 마찬가지다. 이 사안의 결정은 태자가 한다. 그 책임도 태자가 진다. 설득은 짐이 아니라 태자에게 하라.”

태왕의 말에 총리를 비롯한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자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태자가 황좌의 광해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혀 보인 후 대신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대들은 아비와 모국에서 버림을 받은 아내를 버리라 내게 말하는가?”

“태, 태자 전하!”

당황하는 총리대신의 음성위로 태자의 말이 이어졌다.

“왜? 태자비의 뒷배가 없어진 탓인가? 아니면 내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가? 겨우 이역만리 떨어진 유럽의 나라가 돕지 않으면 훗날 내가 조선을, 제국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할 것으로 보였던가?”

이제 14살에 불과한 태자의 몸에서 일국의 군왕에게서나 볼법한 신위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 태자의 위엄에 총리대신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황급히 몸을 굽혔다.

“어, 어찌 그리 망극한 생각을 하겠나이까. 단지 조선의 법이······.”

“법이 만인에 평등하다 하나 어찌 그 법에 따라 아내를 버린단 말인가? 총리는 아내가 죄를 지었다하여 내치겠는가?”

“그, 그것은······.”

“어찌 총리도 하지 못하는 일을 국본인 내게 하라 말하는가! 그것이 정녕 날 위하고 황실을 위함인가? 혹, 이것으로 황실을 흔들려는 의도는 아닌가!”

거침없이 내지르는 태자의 말에 대소신료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태자는 누가 뭐래도 차기 조선의 태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다. 다른 소생이 없는 광해의 상황 상,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지금 차기 조선의 태왕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조선의 대소신료들에게 네들이 이번 일을 기회로 감히 날 흔드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물음이었다.

그것에 말을 하지 못하는 대소신료들을 일별한 태자가 단 아래로 내려가 신하들 사이를 가로질러 대전의 문을 열더니 엎드려 ‘태자비를 폐하소서’라 외치고 있던 사간원 관리들을 오연히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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