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화. 재개량 신기전, 신기전3형
파리 외곽에서 오흐쥬발 방어군을 정리한 부대가 복귀했을 때쯤 왕궁을 장악한 시크 여단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왕궁을 아무리 뒤져도 프랑스의 왕과 모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차 전투를 시행했다는 것에 한마디 하려던 11병단장은 죄 없는 전령에게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여단장에게 왕궁 정리하고 합류하라고 전하도록.”
“예. 장군님.”
복명한 전령이 다시 왕궁으로 달려가는 모습에서 고개를 돌린 11병단장의 시선이 센 강의 중심부에 우뚝 서있는 요새로 향했다.
왕궁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왕이 어디에 있을지 대충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테 섬에는 로마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요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1163년 건설하기 시작해서 180년 만에 완공된 이 대형 성당은 프랑스의 건축술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이었다.
솔직히 이런 정보는 파리 진공 계획을 짤 때 외교부를 통해 전달받은 것이 최초였다. 그 전에는 파리라는 도시도 잘 몰랐고, 그 도시 안에 있는 성당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11병단장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출전하는 그에게 태왕이 가능한 파리에서 파괴하지 말 것을 명령한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좌측에서 진입한 탓에 센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11병단장의 시선에 세테 요새는 섬 중앙, 노트르담 대성당은 섬 우측에 있었다.
양측의 거리는 2백보(약363M)도 채 안되어 보였다. 포병대의 포격이 정확한 편이긴 하지만 가끔 유탄이 발생하거나 포격으로 인한 화염의 불꽃이 사방으로 휘날려 화재가 번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결코 안전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리를 모두 끊어놓은 세테 섬으로 병력을 투입하자면 입게 될 피해가 눈에 뻔히 보였다.
한참 고심하던 11병단장이 통신관을 불렀다.
“대서양군 사령부로 지급. 비행선 투입 가능한지 문의 좀 넣어봐.”
“기종은 무엇으로 요청하면 되겠습니까?”
“날틀042이면 가장 좋고, 안되면 날틀 03도 상관없어.”
“예. 장군.”
복명한 통신관이 전신마차로 들어간 잠시 후, 답신을 받았던지 어두운 표정의 통신관이 돌아왔다.
“현재 이쪽으로 돌릴 수 있는 비행선은 수송용인 날틀041뿐이랍니다. 그것도 2대 뿐이랍니다.”
통신관의 보고에 11병단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날틀041의 화물적재칸에 현식총을 장착해 사격한 전례가 있다는 것은 해당전투의 기록을 읽어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으로 요새에 효과적인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세테 요새에 일정한 타격을 주자면 기01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통신관을 물린 11병단장이 근처에 있던 장갑마차를 두드려 기01 사수를 내리게 해 물었다.
“강변에서 저 요새까지 사격 되겠나?”
하늘같은 병단장의 물음에 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던 기01 사수는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답했다.
“예. 중사 조기광.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격이 닿을까가 아니라 효과가 있겠냐 그 말이야. 공중에서 쏘면 창문들에 사격을 퍼붓는 게 조금 더 수월하겠지만 여기선 각도 상 어렵지 않겠어?”
다시 던져진 11병단장의 물음에 세테 요새를 주의 깊게 관찰한 조기광 중사가 답했다.
“쉽진 않아 보이긴 합니다.”
“그렇지. 흠······. 그렇다고 손가락 빨고 있을 순 없겠지. 야! 구 상령.”
11병단장의 부름에 한창 휘하 참모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있던 부병단장이 달려왔다.
“예. 장군님.”
“장갑마차 한 열······. 아니다 20대만 강변으로 배치해. 저기 저 요새 좀 갈려보자.”
11병단장의 말에 세테 섬의 요새를 일별한 부병단장이 물었다.
“성벽이 두터워 보입니다만 차라리 포격을 하시죠.”
“그 옆에 있는 건물 보이냐. 노트······. 뭐라는 곳이라던데.”
“아! 정훈 군관에게서 사전 설명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보존하라고 명하셨고 말입니다.”
“그래. 저기다 포격했다간 아무래도 저 노트른지 뭔지 무사하지 못하지 싶다.”
병단장의 말에 양측의 거리를 가늠해보던 부병단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긴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갑마차들 집결 시키겠습니다.”
복명한 부병단장이 달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의 장갑마차들이 강변으로 늘어섰다. 집중 사격을 위해 말을 시내 쪽으로 돌려 세운 덕에 다닥다닥 붙은 장갑마차들의 기01이 뒤쪽으로 선회해서 세테 요새를 겨눴다.
“가능한 창문을 주로 노려라. 총탄이 안으로 튀면 뭐가 맞아도 맞겠지. 발사!”
병단장의 명령에 20문의 기01이 사격을 퍼부었다. 병단장의 지시대로 창문에 맞추려고 노력은 했지만 워낙 발사반동이 큰 무기이기 때문에 절반 이상은 요새 벽에 맞아 튕기거나 돌벽을 부수기만 했다.
그래도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총탄도 꽤 되었다.
5분 정도 사격을 가했지만 일부 성벽을 부수거나 외곽 성벽 위로 솟아오른 건물 지붕이 휑하니 부서진 것 외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병단장이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그 상태에서 한참 고심하던 병단장이 조선군 최고 사령부로 전신을 넣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보존 필요성 재고 요망>
파리 진공 부대에서 직접 최고 사령부로 도달한 이 전문은 곧바로 광해에게 보고되었다.
제목 뒤로 길게 이어져 있는 현장지휘관의 보고대로라면 노트르담 대성당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병력 피해가 불가피해보였다.
훗날 역사적 건축물로 분류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조선군의 손에 부서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을 뿐이지 그것을 지키자고 조선군 병사들의 목숨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문화를 중시하는 이들에겐 이해 못 할 생각일지는 몰라도 광해에겐 세상의 그 어떤 건축물보다 조선군 병사 한명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얼마 후, 11병단장은 조선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보낸 태왕의 전문을 받았다.
<결정권을 현장 지휘관에게 일임. 그대의 중심이 건축물이 아니라 병사에게 있길 바란다.>
자신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태왕의 답신에 미소를 그려 보인 11병단장이 목청껏 소리쳤다.
“야! 포병대장. 깡통 가져와!”
11병단장의 명령에 포병대장이 병사들을 부려 보급마차들 사이에 섞여 있던 묵직한 마차를 강가로 이동시켰다.
11장갑병단 마차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마차 6대가 그렇게 센 강의 강가로 이동해왔다.
조선을 출발하기 직전에 장원에서 실전 적응성 검증을 부탁해오며 건네 온 이 무기는 사실 병단장 입장에선 달가운 무기는 아니었다.
마차 무게만 2천관(약7.2톤)이나 나갔기 때문이다. 장갑마차도 1,330관(약5톤)이 넘어가는 그 무게 때문에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원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2천관 무게의 신형 무기는 조금만 땅이 질어도 바퀴가 빠져 진격에 애를 먹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전 배치되기 이전의 시험생산 된 증명용 무장이기 때문에 탄약은 2차례의 추가 사격이 가능한 분량만이 딸려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무장에 장착되어있는 것까지 합해 3차례 사격하면 그냥 무거운 쇳덩이에 지나지 않는 무기였던 셈이다.
그래서 11병단장이 붙인 별명이 깡통이었다. 탄을 모두 발사한 이후엔 쓸모없는 깡통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등장한 무기에 씌워진 방수포가 벗겨지자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기전3형이라 불리는 재개량 신기전이었다.
장원에서 신기전2형이라 부르는 개량형 신기전의 경우 사거리는 15리(약6km), 착탄지역은 목표 반경 3리(약1km)내외였다.
그에 반해 재개량 신기전인 신기전3형의 경우엔 광해가 재개량을 요구한 성능을 살짝 넘어 사거리는 30리(11.7km), 착탄파괴지역은 목표반경 5리(약1.9km)로 확대되었다.
삼포용 3치(약90mm) 작렬탄두에 추진용 장약통을 연결한 형태의 로켓 20발이 장착되는 것은 신기전2형과 같았지만 사거리의 연장을 위해 추진용 장약통의 길이가 더 길어졌고 비행 안정성 향상을 위해 후미에 접이식 날개가 달렸다.
이 접이식 날개는 발사통 안에서는 접혀 있다가 발사된 직후 용수철의 힘에 의해 펼쳐져 고정되는 형태로 로켓의 직진성을 상당히 많이 개선시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로켓의 수를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강가로 나온 신기전이 말들에서 분리되었다. 워낙 후폭풍이 큰 무기라 말들이 메여있는 상태로는 사격을 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차의 몸체 여섯 곳에서 펼쳐진 지지대가 마차의 수평과 안정성을 강화했다. 그렇게 방렬이 완료되자 11병단장이 목표로 세테 요새를 지목했다.
곧바로 장원에서 파견된 포병대원들과 기술자들이 사격통제반의 각종 기구를 동원해 방위와 각도를 찾자 그것에 맞춰 신기전의 방향과 각도가 맞추어졌다.
‘다각 목표물 획득체계’라는 기다란 이름의 장치를 장착한 신기전3형은 몸체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한 발사기를 갖춘 데다 70도의 초고각 사격도 가능했다.
이내 조준완료가 보고되자 11병단장의 발사명령이 떨어졌다.
직후 요란한 로켓발사음이 센 강의 강가를 가득 채웠다.
자그마치 120발의 로켓이 요란한 소성을 이끌고 순차적으로 삽시간에 발사되며 세테 요새를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장거리 비행성능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의 목표에 순식간에 120발의 로켓을 퍼붓는 신기전3형의 화력엔 명령을 내렸던 11병단장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추진력을 위해 담겨있던 장약이 많이 남은 상태에서 목표에 도달하면서 장약이 함께 폭발해서 9치 작렬탄을 훌쩍 넘기는 파괴력이 발휘되었다.
120발의 로켓에 집중포격을 당한 세테 요새는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부서져 무너져 내리고, 이곳저곳에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다.
솔직히 강가로 포를 방렬해 집중 포격해도 비슷한 파괴력을 보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신기전3형을 사용했던 것은 태왕의 시원시원한 명령에 흥이 돋은 까닭이었다.
그래서 운용상 제한 사항 때문에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신기전3형을 사용한 것인데 그 파괴력은 11병단장의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과 같은 파괴력을 단시간에 얻자면 적어도 2백문 이상의 삼포를 방렬해 일제 포격을 퍼부어야 가능한 규모였던 것이다.
그것을 단 6대의 신기전3형이 이루어내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말로 신기전3형 2백문이 일제포격을 퍼부었다면······.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일어났다.
신기전3형의 사거리와 탄착범위를 잘 운용한다면 파리정도의 대도시도 완전 파괴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기전3형을 바라보는 11병단장의 시선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본국으로 귀환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신기전3형을 대량으로 배치 받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런 11병단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탄마차가 접근한 신기전들은 새로운 로켓을 장탄한다고 분주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장탄을 완료한 신기전들이 발사준비 완료를 보고해왔다.
장탄 시간이 생각 외로 길다는 것에 다소 실망감이 들긴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재사격의 파괴력을 다시금 확인한 11병단장의 생각은 확실하게 굳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치 받고야 말겠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단 2차례의 신기전3형의 포격을 받은 세테 요새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강가에 우뚝 서있던 요새는 거의 완전하다싶게 무너져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다행해 우측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신기전3형에 장착되는 로켓의 직진성이 개선된 데다 사거리가 짧아 로켓의 분산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덕이었다.
마침 르부르궁에서 철군해 합류해온 시크 여단장이 놀란 토끼눈으로 다가왔다.
“이, 이거 뭐, 뭡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말조차 더듬거리는 시크 여단장에게 11병단장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우리 부대의 신형 무기일세. 신기전3형이라고 부르지.”
자신이 깡통이라 불렀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었는지 신기전3형의 몸체를 두드리는 11병단장의 표정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대단하군요. 겨우 두 번 사격하는 거 같던데 요새를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그렇지. 내가 그래서 애지중지 했던 거라네.”
11병단장의 말에 여기까지 오는 내내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신기전3형을 장비한 장원 소속 시험포대의 포대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크 여단장은 욕심이 가득 든 눈빛으로 신기전3형을 바라봤다. 그도 신기전3형의 집중파괴력에 매료된 것이다.
하긴 어느 부대의 지휘관이 욕심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시크 여단장을 바라보던 11병단장이 말했다.
“하차 전투 벌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이런 말은 좀 그렇긴 한데, 저 섬에 병력 좀 전개시켜 주겠나.”
“수색입니까?”
무슨 생각인지 반색을 보이는 시크 여단장의 모습에 그가 과거 용맹을 떨쳤던 시크 수색단의 단장 출신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 11병단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철저하게 뒤져서 프랑스 왕을 찾아주게. 죽었든 살았든 상관없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장군님.”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보인 시크 여단장이 부대로 돌아간 직후, 일단의 병사들이 기동마차에서 하차하더니 그대로 강물로 들어갔다.
근처에서 배를 수배하는 행위도 없었다. 방수포로 총을 둘둘 둘러싼 병사들이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이 강으로 들어가 세테 섬을 향해 헤엄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저돌적인 모습에 11병단장은 그저 맥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