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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91화 (291/325)

제291화. 입조(入朝)

조선의 갑작스런 기지개는 내전에 휩싸여있던 동일본에게도 꽤나 강한 충격을 가했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자국파의 위기감이 급격히 상승했다. 다시 주고쿠와 간사이 지방으로 불리기 시작한 두 지역의 해안가를 연일 포격하고 있는 조선의 함대가 금방이라도 동일본으로 진출해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비행선들이 언제 동일본 하늘을 뒤덮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동일본 주재 조선 대사관 무관부의 움직임이 하루가 다르게 분주해지고 있었다.

양 진영의 정보, 특히 쇼군인 우에스기 카게토라를 위시한 자국파의 주장 내용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위기감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조선이 자국파의 주장에서 동일본 침공에 대한 명분을 찾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이들이 급격히 이자키 후지하루가 이끄는 제국파로 기울었다. 그들 중에는 자국파를 이루던 간토 지방의 유력 가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헤쳐모여가 시작된 것이다.

세력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나가는 것을 목도한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불안감이 높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신의 목숨은 둘째 치고, 가문 전체가 결단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반란에 대한 조선의, 대한제국의 형벌은 9족을 참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9족이면 사실상 일문이 멸족 당한다.

더구나 지금의 분위기대로라면 조선은 본보기를 원할 것이다. 걸리면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우에스기 카게토라가 이자키 후지하루에게 만남을 청했다. 양측의 병력이 맞붙은 전장의 한복판에서 각기 두 명의 호위병만을 대동한 거의 독대의 형태를 취하는 만남이었다.

이자키 후지하루가 그 만남에 응했다.

“일단 내 제의에 응해주어서 고맙소.”

“대화는 언제라도 환영하니까요.”

이자키 후지하루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우에스기 카게토라가 말했다.

“조선이······. 달라지고 있소.”

그 말에 이자키 후지하루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조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선의 인내를 일부에서 힘이 약화되었다고 지레짐작했을 뿐이지요. 조선은 지금도, 그리고 이전에도 강했습니다.”

“이전에도 강했다라······.”

작게 중얼거리는 우에스기 카게토라에게 이자기 후지하루가 물었다.

“침묵하던 태왕의 말 한마디에 조선의 태도가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이 두려워합니다. 그 힘이 지금에서야 나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흐음······.”

답 대신 침음을 흘리는 우에스기 카게토라에게 이자키 후지하루가 말을 이었다.

“조선은, 태왕은 그냥 기다려 준 것입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벌인 소요였기에, 형제라 믿는 대한제국의 제후국들이 벌인 일이었기에. 스스로 다시 되돌아올 시간을 준 것이었지요. 다만 그걸 제대로 읽지 못했던 이들의 선택이 잘 못 되었을 뿐이지요.”

자신을 향한 비난과 같은 말이었기에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반박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은 이자키 후지하루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동일본을 조선의 칼날아래에 바칠 생각이시오?”

“어찌 제가······. 쇼군께서 이리 대화로 나오신 이상 함께 살아날 방법을 찾아보아야지요.”

이자키 후지하루의 말에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표정이 다소 펴졌다. ‘함께’란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에스기 카게토라와 이자키 후지하루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그 대화가 마무리 된 직후, 조선 주재 동일본 대사가 조선 조정에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입조를 알려왔다.

부르지도 않았음에도 스스로 달려오고 있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 동일한 일을 동일본도 선택한 것이다.

아울러 내전이 끝났음도 고해왔다.

조선 조정은 동일본 보국 장군, 그러니까 후오코쿠쇼군인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입조를 허락했다. 물론 그가 입조했을 때 태왕의 알현이 성사될 지는 그 당시 태왕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태왕의 부름으로 달려오고 있는 위구르와 준가르, 그리고 할하의 군왕인 칸들과는 달리 그들은 스스로 입조를 택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태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가 지들이 만나고 싶다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것은 지금 달려오고 있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우에스기 카게토라는 두 말 없이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살아남자면 태왕 앞에 엎드려 죄를 청하고, 사면(赦免)을 받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진행되어가고 있는 동안 대서양군을 포함해 조선군에 복무하고 있는 서남도와 관서도 출신 병사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던가, 조선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해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은 기회를 준 것은 조선을 위해, 또 태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온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배려였다.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독립한 주고쿠와 간사이로 귀환하길 원했다. 고향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달리 상당수 병사들이 조선에 남기를 희망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돌아갔을 때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알아차린 것이다. 일부에선 고향에 머무는 가족들을 데려올 수 없는지를 문의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와 같은 보고를 접한 광해는 고심 끝에 남기로 한 병사의 아내와 자식들에 한해서만 조선으로의 이주를 허락했다.

그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후, 관서도, 그러니까 지금은 간사이라 불리는 지역 출신의 한 병사가 올린 상소가 광해 앞에 놓였다.

자신은 조선에 남길 희망하지만 그리되면 관서도엔 노모가 홀로 남게 되니 제발 노모를 조선으로 모셔올 수 있게 해달라는 애원이 담긴 상소였다.

그 상소에 마음이 움직인 광해가 다른 자손이 없이 남겨지게 되는 부모에 대해서는 이주를 추가로 허락하는 황명을 내렸다.

얼마 후,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감사의 인사와 찬사로 도배된 병사의 상소가 다시 올라왔다. 그 상소를 읽은 광해가 조선에 남기로 한 관서도와 서남도 출신 백성들을 다른 조선의 백성들이 차별하지 않도록 각별히 살피라는 명을 조정 대신들에게 내렸다.

하긴 언제나 그랬다.

잘못 이끄는 누군가로 인해 그를 믿고 따른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화뇌동한 이들에게도 죄가 있다지만······. 몰라서 그런 것을 악착같이 단죄할 수는 없었다.

광해의 황명에 조정 대신들이 별다른 반대 없이 ‘황은이 망극하여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와 같은 광해의 뜻을 이해한 까닭이었다.

3월 중순. 대전 바닥에 숨 가쁘게 달려온 위구르와 준가르, 그리고 할하의 칸이 바짝 엎드려 황좌에 앉은 채 오연히 내려다보는 광해의 처분을 기다렸다.

“내 믿음이 부족했음이더냐?”

담담한 광해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물음을 받은 세 나라의 칸은 두려움에 고개를 처박았다.

“어찌······. 아니옵니다. 폐하.”

마치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똑같이 울려나오는 세 칸의 답에 광해가 물었다.

“한데 어찌 그리 하였더냐?”

세 나라의 칸은 답을 하지 못했다. 무어라 답한 단 말인가. 그저 함께 고개를 처박으며 용서를 구했다.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정녕 죽고자 하는가?”

광해의 음성에 들어있는 섬뜩한 느낌을 알아차린 세 칸이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사, 살려 주소서. 폐하!”

바닥에 엎드려 바들바들 떠는 세 나라 칸보다 오히려 대신들과 함께 시립해 있던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 동일본 보국 장군인 우에스기 카게토라가 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명색이 일국의 군왕들인 칸이 단순히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고개를 처박고 살려 달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것밖에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면 지금처럼 격랑에 휩싸였던 시기에 군왕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자국 백성들의 목숨도 함께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국의 산야가 온통 피로 물드는 것은 막아야 했으니까.

그런 세 칸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광해의 옆, 황좌보다 한 계단 아래에 놓인 의자엔 태자가 의젓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광해가 태자를 부른 까닭이었다.

그런 태자를 바라보며 광해가 물었다.

“짐은 저 셋은 물론이고 저들의 나라에 사는 모든 남녀노소 백성들의 사지를 잘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 만천하에 저들의 잘못을 고하고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태자의 생각은 어떤가?”

생각이상의 과격한 태왕의 말에 놀란 세 칸의 머리가 일제히 거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쿵.

그런 세 칸의 모습을 바라보던 태자가 조용히 일어나 광해를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보인 후 답했다.

“소자 또한 공적으로는 폐하의 신하, 그러한 소자가 어찌 폐하의 뜻과 다를 수 있겠나이까. 다만······.”

“다만?”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는 것에도 예와 단계가 있다하니 어찌 만천하의 어버이이신 폐하께오서 부족한 자식을 향해 회초리부터 드시겠나이까? 먼저 좋은 말로 타일러 그 경계를 내리시옵고, 그럼에도 다음에 같은 망종을 보인다면 그때 비로소 말씀처럼 저들과 저들을 따르는 백성의 사지를 잘라 그 죄를 치르게 하심은 어떠한가, 감히 아뢰옵나이다.”

말이 길고 사나웠으나 결국 이번만은 봐주라는 이야기였다.

“백성을 대하는 태자의 마음이 곱고 어질구나. 허나 그 곱고 어진 마음을 저 무지몽매한 자들이 알기는 할까? 이미 노예로 삼아 직접 다스릴 수도 있었음에도 그리 하지 않은 짐의 배려를 배덕으로 갚은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기에 다시금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을지, 짐은 그것이 걱정이다.”

광해의 말에서 살아날 구멍을 보았을까, 세 나라의 칸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며 외쳤다.

“하해와 같은 은혜를 내려주신다면 미천한 소신들이 그 은혜를 뼈에 새기고, 자손만대로 전해 충심으로 따르며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갚겠나이다. 살펴주소서. 폐하.”

자칫 잘못 하면 온 나라의 백성들의 사지가 잘려나가게 생긴 상황에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애원하는 세 나라 칸의 음성에 광해를 향해 무릎을 꿇어앉은 태자가 말을 보탰다.

“이번 한번만 더 은혜를 베푸소서. 폐하.”

태자의 그 모습을 따라 이항복이 무릎을 꿇고 앉아 태왕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번 한번만 더 은혜를 베푸소서. 폐하.”

그것이 신호라도 되었던지 대전의 동쪽, 그러니까 동반에 서있던 문관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굽혀 외쳤다.

“이번 한번만 더 은혜를 베푸소서. 폐하.”

그런 문관들과 달리 서측, 그러니까 서반에 길게 늘어서 있는 무관들은 허리춤의 칼을 한손으로 부여잡고 오연히 버티고 섰다.

말로써 반대치 않았으나 동의하진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전혀 다른 분위기가 대전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갈라져 묘한 압박감을 자아냈다.

광해가 등극한이래 조선의 무관들은 대전회의 때 의전용 정복과 패검이 허용되었다. 만약에 대비해 검을 착용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라진 것이다.

물론 허락된 검이 전투용이 아니라 날이 없는 의전용에 불과했지만 검술을 긴 시간 연성한 무관들에겐 그조차도 살상 가능한 무기가 된다.

그만큼 광해가 조선의 무관들을 믿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 무관들의 오연한 자세가 태자와 함께 무릎 꿇고 앉아 선처를 호소하는 문관들과 달라, 세 칸과 세 제후국의 용서를 원하는 기류가 조선 조정에서 합일 되지 않았음을 내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세 나라 칸이 받는 압박감은 훨씬 컸다.

조선이 문관들로 구성된 의정부와 무관들로 이루어진 군부의 영향력이 똑같이 반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제후국에 미치는 영향은 의정부보다 군부의 입김이 훨씬 강했다. 그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바짝 엎드려 있는 세 나라 칸을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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