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화. 태자의 선택
조선 조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해는 관서도의 독립을 승인했다.
서남도에 벌어진 것과 같은 일이 관서도에서도 이행되었다. 조선은 모래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가지고 관서도에서 철수했다.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백성들의 손에 의해 뽑힌 관찰사와 시장들의 행태가 미온적이었다는 것이 지적되며 조정에서 선거제 폐지를 주청해 올렸다.
대국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쫓는 백성들에게 나라의 경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청의 주요 골자였다.
광해는 조정 대신들의 주청이 담긴 상소를 그저 읽고 덮었을 뿐이었다.
서남도와 관서도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던 일부 제후국들에게서 대한제국 이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세금을 걷어가는 것에 대한 반발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 이참에 그 일을 중단시키자는 것이었다.
일부에서 걷어가는 것보다 많이 투입될 때도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반대를 피력했지만 사대주의자라는 맹공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특히 위구르와 준가르에서 그와 같은 일이 강하게 일어났다. 티베트에서도 신성을 다시 찾아 독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조선만이 아니라 대한제국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광해를 보다 못한 이순신이 독대를 청했다.
이순신의 독대는 광해에 의해 거부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생경한 일에 낙담하는 이순신을 이항복이 찾아왔다.
“독대가 거부되어 놀라셨을 것으로 압니다.”
“놀랐다기보다는 걱정이 됩니다. 폐하께오서 언로를 막으신 것이 아닌가, 심려되니까요.”
“말을 듣기는 하십니다. 연일 사간원의 대사간과 사간들이 간언을 싫어하는 내색 없이 들으시고, 대신들의 상소도 다 읽으시니까요.”
“그럼에도 말씀이 없으신 겁니까?”
“아무래도······. 황후 마마의 그림자가 너무 큰 모양입니다.”
여전히 황후의 죽음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말에 이순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이순신에게 이항복이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자신의 명으로 죽어나가는 이들을 혈육의 죽음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십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으신 것이지요. 어진 마음이니 그것을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흐음······.”
자신의 말에 깊은 시름을 토해내는 이순신에게 이항복이 물었다.
“군은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이율배반적이게도 서남도와 관서도에서 철수하면서 군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12병단과 13병단, 그리고 51병단과 해병3여단도 본래의 주둔지로 회군했고, 서남도와 관서도를 관장하던 52병단도 구주도로 철군해서 예비 병력으로 삼았습니다. 추가적인 상황에 대비할 여력이 생긴 셈이지요.”
“하와이에 나가 있는 내금위장은 언제 돌아옵니까?”
“다음 달 하와이 원주민들로 구성된 단급 해병부대가 창설 되는대로 철군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위구르와 준가르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조선 사무국에 나가있는 무관들을 통해 상황을 보고받으며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대응 방법은 있으신 겁니까?”
“유사시 투입할 병력은 있으니 아직 괜찮기는 한데······. 대서양군에 나가있는 해당 제후국의 병력이 일으킬 소요가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문제도 일어나기 전에 해당 병력을 제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한제국군은 각 제후국 출신들을 뒤섞어 단위부대를 구성한다. 흔히 백인대라 부르는 기본적인 전술단위인 ‘대’ 단위만 가도 각 제후국 출신들이 뒤섞여 있었다.
말들이 잘 통하지 않는 이들을 섞어 놓기 위해 훈련소에 있는 동안 조선말 교육을 시행한다. 조선말로 소통을 하라는 뜻이다.
그것으로 조선말을 제후국 전체로 퍼트리고, 대한제국이 하나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조처였다.
그로인한 성과도 적지 않아서 적어도 대한제국군 출신들은 대한제국을 하나의 거대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문제는 그런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자국 왕실이나 조정보다 대한제국의 명을 우선시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아직까지는 전자의 명에 더 충실한 성향을 보였다. 대한제국보다는 가까운 자국 정부의 명을 쫓았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하간 그렇게 뒤섞인 탓에 일부 제후국에 문제가 생기면 거의 모든 부대에 섞여 있는 해당 제후국 출신들이 문제가 되었다.
동일본과 나고야 사태 때에는 그래서 해당 지역의 소식을 완전히 차단했었다.
그때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었기에 그대로 먹혔지만 이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제국군 병사들 모두가 그런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고야와 동일본 사태로 경험한 까닭이다.
이순신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이순신에게 이항복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대신들이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무슨······?”
“의금부를 열기위한 중의를 모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해가 등극하면서 의금부는 사정기관에서 황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견제 수단으로 탈바꿈했다. 의금부가 나서면 최악의 경우 광해로부터 황권을 박탈할 수도 있었다.
지금 조정의 대신들이 그 논의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발칙한!”
대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이순신에게 이항복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시겠지만 의금부는 의정부의 대신들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랬다. 현재의 조선 황실법에 의하면 의금부는 총리와 부총리, 그리고 육부대신들, 거기에 원수와 각 군 총사, 거기다가 각 대양군 사령관들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의정부 대신들이 아무리 결의를 해도 군부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뿐인가, 의금부가 가동되어 결정을 내놓으면 그 일이 마무린 된 시점에 의금부에 소속된 전원은 자결해야만 한다.
섣불리 의금부를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런 의금부를 조정 대신들이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높다는 반증이었다.
“외교부의 보고에 의하면 위구르와 준가르만이 아니라 다른 제후국들의 움직임도 여상치 않다합니다. 그 중에서도 할하의 움직임이 불온하다더군요.”
“할하는 원수부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만 당장 칼의 방향은 조선이 아니라 북원으로 향할 겁니다. 몽골의 일통을 갈망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이후는 조선으로 칼을 돌릴 가능성이 높긴 하겠습니다만.”
“하나가 터지면 연속적으로 터져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폐하만 굳건 하신다면 모든 제후국이 다 반기를 들어도 헤쳐 나갈 수 있겠으나 폐하가 저러고 계시니······.”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지요. 도제조께서 총리대신과 상선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총리대신과 상선을요?”
“예. 부탁드립니다.”
이순신의 부탁에 이항복은 사람을 보내 이순신의 사가로 총리대신과 상선을 청했다.
총리대신이야 조정의 대신이니 서로 사가에서 의견을 나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선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태왕인 광해의 측근 중 측근인데다 대신들과의 접점이 그리 많은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선은 태왕의 곁을 벗어나지 않기로 유명한 인사였다.
그런 이를 이순신의 부탁을 받은 이항복이 청했던 것이다.
이순신의 사가로 이항복이 청했다는 것은 이순신과 이항복이 연명으로 청했다는 것을 뜻했다. 나고야도 관찰사로 나가있는 이원익을 제외하면 태왕이 가장 총애하는 두 신하가 만나길 청한 일이었다.
총리대신도, 상선도 거부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자신의 사가로 모인 사람들에게 이순신이 생각지 못한 일을 제의했다.
“구, 군사력 증강이요!”
놀라는 총리대신에게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은 조만간 격랑에 휩싸일 공산이 큽니다. 그것에 대비하자면 군사력 증강은 필수적입니다.”
“하나 폐하께오서······.”
“폐하의 재가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다수 일 것이라는 점은 압니다. 그렇기에 두 분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순신의 답에 총리대신인 정인홍이 물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나, 어떤 형태로 군사력을 증강할 요량이신 겁니까?”
“병력은 이미 유사시 동원 가능한 예비군이 있으니 훈련을 강화하는 선에서 유지하고 장비를 확충하고자 합니다.”
“장비······요?”
“예. 비행선들을 대량으로 제작하고자 합니다.”
이순신의 답에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행선은 상당히 고가의 무기로 압니다만.”
그랬다. 비행선을 제작하는 철도 알루강이라는 특수합금이 사용되는데다가 기낭을 만드는 천도 대량으로 필요하고, 특수처리도 해야 해서 상당한 비용을 요구했다.
거기다 헬륨기체는 휴스턴에서 전량 실어와야만 했다. 그 모든 비용을 합하면 비행선 한대를 만드는 돈이 정경달급 경비함 한척을 건조하는데 들어가는 돈과 맞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맞습니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 말끝에 이순신의 시선이 상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상선은 재빨리 알아차렸다. 황실자금을 뜻하는 내탕금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환관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제 명이라 해도 내탕금을 관리하는 환관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 수를 내어볼 터이니 상선께선 힘을 좀 실어주시구려.”
“어찌 하시려고요?”
걱정스러운 상선, 알지의 물음에 이순신이 무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태자 전하를 뵈올까 생각 중입니다.”
이순신의 말에 참석한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태왕을 두고 태자를 움직인다. 태왕이 알게 되면 그 뜻이 어디에 있었든지 모반이라 몰아붙여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런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 본 것처럼 이순신이 말했다.
“설마 단지 살아남고자 여기 오신 것은 아니실 것이라 믿습니다.”
자신의 안위나 챙기지 말라는 이순신의 그 말에 참석한 이들의 표정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이후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논의한 뒤 사람들을 돌려보낸 이순신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황궁으로 들어 태자를 만나길 청했다.
이순신의 독대가 청원되었다는 말을 상호(尙弧, 태자전 장번 환관)에게 들은 태자가 잠자리를 걷고 이순신을 맞았다.
이제 13살이 된 태자 호는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이순신을 바라봤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 인겁니까?”
“전하께 소신이 올릴 청이 있어 들었나이다.”
“원수께서 제게요? 말씀 해보세요.”
태자의 물음에 이순신이 말했다.
“전하. 내탕금을 움직여주소서.”
이순신의 말뜻을 알아듣기 위해 한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태자가 물었다.
“아바마마 모르게 아바마마의 돈을 쓰고자 하시는 겁니까?”
“송구하오나 그러하옵니다.”
“왜요? 아바마마시라면 원수께서 수백억 원으로 당과를 사먹으려 하니 내어달라 해도 주실 분이시거늘, 어찌 아바마마가 아니라 제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폐하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원수께서 나서신 것을 보아하면 군에 쓰실 요량이신 듯 한데 왜 아바마마께오서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신단 말씀입니까?”
“폐하께오서는 더는 백성의 피를 원치 안으시옵니다.”
“하면 저는 백성들이 피 흘리는 것을 바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백을 죽여 천을 살리시옵소서. 전하.”
바짝 엎드려 간하는 이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자가 물었다.
“정확히 어디다 쓰실 생각이십니까?”
“비행선을 대량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순신의 입에서 비행선이 거론되자 언젠가 부황인 광해가 눈앞의 이순신과 자신을 함께 데리고 장원으로 구경 갔던 비행선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어제일 같은데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기억의 상념에서 빠져나오며 태자가 물었다.
“그 비행선으로 무엇을 하실 요량이십니까?”
“그것들로 흔들리는 제후국들을 다잡을 생각이옵니다.”
“비행선만 가지고 있다고 흔들리는 제후국들이 바로서지는 않을 테고 쓰실 요량이시군요.”
“어디가 되었든 가장 먼저 이탈하는 제후국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이옵니다.”
이순신의 답에 잠시 생각하던 태자가 물었다.
“제게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흘 후 다시 찾아뵙겠나이다.”
“고맙습니다.”
태자의 말에 이순신은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이순신이 물러간 직후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태자가 일어섰다.
“아바마마께 갈 것이다. 길을 잡아라.”
태자의 명에 상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하. 너무 늦은 시간이옵니다.”
“나와 아바마마의 사이에는 시간의 구애는 없다.”
단호한 음성으로 상호의 걱정을 꺾은 태자가 거처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