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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82화 (282/325)

제582화. 거짓 선동

감영 쪽의 폭도들을 지휘하던 이는 아베 노부스케였고, 곡물저장소 쪽의 폭도들을 지휘하던 이는 야마자키 슌지였다.

감영 쪽의 폭도들이 소리만 높고 전투에 능숙하지 못했던 원인도 군무에 관한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아베 노부스케가 지휘를 한 까닭이었다.

그에 반해 곡물저장소를 급습한 폭도들의 경우 조선군에서 군관생활을 했던 야마자키 슌지가 지휘를 맡아 나름대로 일사불란한 작전 지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조선군이 비행선을 투입하면서 양쪽 모두가 막심한 피해를 입은 채 물러서야 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전투의 패배로 신일회가 주도한 폭동에 참여해온 야마구치시 백성들 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일정 기간 이상 훈련을 시켜 제법 군사적 역량을 키워놓았던 무장부 인원들이 다수 사망한 것은 큰 불안요인이었다.

더구나 야마구치시 좌포청과 우포청, 그리고 그 예하 부속 좌포분소들에서 탈취한 무기들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총이야 다시 쓰면 그만이지만 총탄이 떨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곡물저장소를 습격했던 폭도들이 사용하던 포가 비행선의 공격으로 모조리 파괴된 것도 심각한 화력부족을 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대규모 인원을 통한 인해전술밖에 답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 아베 노부스케는 선전담당인 스가 요시로오에게 만약에 대비해 수립해 두었던 선동계획의 실행을 지시했다.

아베 노부스케의 지시를 받은 스가 요시로오는 곧바로 비상행동에 들어갔다.

신민회의 골수 조직원들 중에서도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리 높은 이들을 20여명 정도 뽑아 미리 마련해 두었던 조선군복을 챙겨 입혔다.

엄격한 군수물자 관리체계를 갖고 있는 조선군에게서 빼낸 것은 아니었고, 조선군 군복과 유사하게 만든 사제군복인 셈이었다.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틀린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어두운 밤에 보니 구별이 어려웠다.

그렇게 조선군복을 입은 이들은 스가 요시로오의 명에 따라 곧바로 시모노세키 시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모노세키 일원에서 불길이 일고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감영과 곡물 저장소에 배치된 조선군들이 그 총소리에 놀라서 전원 전투배치에 임하는 등 소란을 떨었지만 이내 사태가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조선군들은 상황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나마 안전고도에 머물며 여전히 상공에 대기하고 있던 비행선들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쌍안경으로 열심히 살폈지만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다.

비행선들은 회항에 필요한 연료를 소모해가며 현재 감영과 곡물저장소 상공에 떠 있었다. 그것은 부유비행의 경우 연료소모가 극단적으로 적다는 것과 비행선 모함이 시시각각 시모노세키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합쳐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떠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비행대원들의 계산상 적어도 내일 정오 이전에는 모함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시간이면 비행선 모함들은 시모노세키 앞바다에 도착해 있을 터였다.

만에 하나 그것이 늦어지면 비행선들은 폭도들의 공격에 노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상에 착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비행선들이 상공에 떠 있었던 것은 상대적 병력 부족이 심각한 조선군 동료전우들을 야습에 노출되기 쉬운 야밤에 버려두고 철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아있던 비행선들은 전부 날틀03이었다. 비무장 상태였던 날틀04들은 전부 구주도의 기타큐슈로 철군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두 개의 전투비행선대의 날틀03들 전체가 남아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내일 정오를 기해 상공에는 비행선이 단 한 대도 떠있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각 전투비행선대는 무장사용량이 높은 10대의 비행선씩을 모함으로 돌려보냈다. 이것은 각 전투비행선대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들은 모함에서 무장과 연료를 채운 후 해가 뜨면 곧바로 각자의 임무지역으로 달려올 터였다. 지금 공중에 떠있는 10대씩의 비행선들은 그렇게 달려온 비행선들과 교대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 비행선들의 존재 덕에 자신들의 수십 배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폭도들과 대치한 상태에서도 조선군 병사들은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비행선들이 자신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안도감 덕분이었다.

그렇게 조선군이 지상과 공중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시모노세키 시내의 화재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미 벽돌을 활용한 석조건물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다른 조선의 영토와 달리 일본 열도의 조선 영토들은 여전히 특유의 목조 건물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벽돌건물 등 주거지 개선사업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일본 열도에 거주하는 조선 백성들은 그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습도가 높은 일본 열도의 특성상 벽돌과 조선석회라 부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석조건물보다는 전통적인 목조건물이 환기와 습도 조절에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습도 조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화재에는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이번일로인해 그대로 노출되었다.

옆집에서 옆집으로 옮겨 붙으며 번진 불길이 시내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놀란 사람들이 달려 나와 불을 끈다고 난리였지만 화재 진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군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그렇게 뛰쳐나온 시모노세키 백성들을 무차별로 쏴죽였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시모노세키 시내 전역으로 조선군이 시모노세키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다는 소문이 번져나갔다.

폭동 참여에 미온적이던 이들은 물론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며 비난하던 이들까지 조선군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몽둥이나 농기구 등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닥치는 대로 집어 들고 몰려나왔다.

화재로 집을 잃은 이들과, 그 불길 속에서 가족을 잃은 백성들의 분노가 모조리 조선군을 향하고 있었다.

한밤의 시모노세키가 화재로 인한 불길과 백성들의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이당시 서남도의 관문항구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시모노세키는 폭동이 처음 일어났던 야마구치시의 세배에 이를 정도로 인구가 많았다.

그 많은 인구들 중 초기 폭동에 가세한 이들의 수는 대략 시모노세키 인구의 삼분지 일 정도였다. 물론 그 수도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모노세키의 모든 백성들이 폭도로 변해버린 듯 했다.

한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 단위를 훌쩍 넘는 시모노세키의 백성들이 그간 폭도들의 중심세력 역할을 하고 있던 야마구치시 백성들에게 본격적으로 가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횃불을 밝혀든 야마구치시의 백성들과 시모노세키의 백성들이 조선군이 지키고 있는 감영과 곡물저장소로 몰려나왔다.

그 어마어마한 폭도들의 수에 두 곳을 지키고 있었던 조선군 지휘부가 잔뜩 긴장했다.

이번에도 폭도들을 지휘하는 이들은 변하지 않았다. 감영 쪽은 아베 노부스케가, 곡물저장소 쪽은 야마자키 슌지가 지휘를 맡았다.

그래서인지 무작정 달려든 감영 쪽과 달리 곡물저장소 쪽은 몇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조선군이 방어거점으로 삼은 관리동을 포위하듯 들이닥쳤다.

가장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공중에 떠 있던 비행선들이었다. 그들이 얼마 남지 않은 기01 총탄을 모조리 퍼붓고, 잔여 공투탄을 투하했다.

단 한발의 공투탄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비행선들이 남은 덕에 자그마치 2백발의 공투탄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폭도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연속적인 폭발에 휘말려 폭도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지만 그 피해는 낮에 벌어졌던 융단폭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영악하게도 폭도들을 지휘하고 있던 야마자키 슌지는 수백 단위로 쪼개어 폭도들을 돌진 시켰고, 그 한 무리의 폭도를 제압하기 위해서 비행선들은 서너 발 이상씩의 공투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행대원들도 폭도들이 비행선이 보유한 공투탄의 소비를 높이려는 술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몰려드는 폭도들을 그냥 보내면 낮은 단층의 관리동에 방어거점을 마련해둔 조선군이 어려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결국 비행선들의 공투탄이 너무 이른 시간에 바닥나 버렸다.

여전히 몰려나오는 폭도들은 새카맣게 남았는데 더 이상 퍼부을 공투탄이 없었던 것이다. 급한 대로 긴급타전을 날려 모함에 도착해 급유와 재무장에 여념이 없었던 귀환 비행선들을 준비되는 대로 신속히 재출동 시켜 달라고 요구를 하긴 했지만 그들이 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몇 가지 이유로 출항이 늦어졌던 비행선 모함들이 이제야 대마도 인근 해상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01 총탄은 물론이고, 보유한 공투탄들을 모조리 사용한 비행선들이 선수를 돌려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모함에서 보급을 받아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계산상 연료가 다 소모되기 전에 모함에 닿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행선들은 모함을 찾아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장 수천이 훌쩍 넘어가는 폭도들에게 휩쓸려가는 조선군 동료전우들을 두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초기 곡물저장소에 방어선을 친 조선군의 방어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면 제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운이 없으려 그랬는지 해당 지휘를 맡고 있었던 내금위 상령이 흥건한 땀을 닦기 위해 잠시 철모를 벗은 순간, 폭도들 속에 숨어있던 저격병의 사격에 머리를 맞고 절명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사분란하게 내려가던 작전지휘가 잠시 끊어졌고, 그것에 당황한 6대 생존병사들이 겁을 집어먹었던지 자신들이 맡고 있던 좌측방어선을 내팽겨 치고 뒤로 물러섰다.

급한 대로 다음 계급의 상급자가 지휘를 이어받으면서 명령체계는 다시 섰지만 명령 없이 뒤로 물러선 6대 생존병들로 인해 방어선이 무너졌다.

새 지휘관은 임경업 준령에게 즉시 해당 방어선을 재국축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냈다.

조선제일검이라는 칭호를 받는 지세창의 직전제자라 불릴 정도로 검술 실력이 탁월했던 임경업에게 그 임무를 맡겼던 것은 해당 지역의 전투가 완전한 난전이 될 것을 간파한 까닭이었다.

명령을 받은 임경업은 곧바로 1개 분대의 위사들을 이끌고 6대가 철수하면서 무너진 방어선으로 달렸다. 그는 관리동까지 물러나 변명을 해대는 6대장의 목을 그대로 처 날렸다.

목을 잃은 6대장의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6대의 생존병들 사납게 노려보며 임경업이 외쳤다.

“어떻게든 적을 막아라! 공을 세우지 않는 자는 모조리 이자처럼 적정 명령 불복종의 죄를 물어 참수할 것이다!”

그 말을 남겨놓고 위사들을 지휘해 무너진 방어선으로 달려가는 임경업을 멍하니 바라보던 6대 생존병들이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남아서 미적거렸다가는 방어선을 돌파한 폭도들에게 둘러싸여 죽던지, 아니면 임경업의 칼에 죽을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폭도들이 넘어오기 시작한 방어선에 도착한 임경업과 위사들이 칼을 꺼내들고 과감히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주변으로 피가 뿌려지고 폭도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그런 임경엄과 위사들의 과감한 공격 덕에 주춤, 돌파 당하던 방어선이 완전히 뚫리지 않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곳에 헐레벌떡 달려온 6대 병사들이 합류하면서 그들이 허락 없이 철수하면서 덧없이 버려졌던 방어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6대 병사들이 보기에 내금위 위사들은 완전히 전투기계들이었다.

칼로 주변을 도륙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달려들던 이들에게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더구나 그렇게 날린 화살들은 깃이 달린 정식 화살들이 아니라 근처의 나무를 깎아 만들어 두었던 급조목전들이었다.

그 목전들의 세례에 달려오던 폭도들이 힘없이 무너지자, 이번엔 일제히 수탄이 날았다.

콰과과쾅!

십여 번의 자잘한 폭음이 울리자 전방 1백 척(약30M) 거리의 적들 대부분이 주검이 되어 나뒹굴었다. 수탄의 폭발여력에 휘말려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거리를 벌여놓자 곧바로 내금위 위사들이 다총을 꺼내 거치하고는 사격을 개시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방어선 주변의 폭도들을 쓸어버리고 방어선을 재구축해 내는 내금위 위사들의 모습을 6대 생존병들이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정신 차려!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시간에 적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방아쇠를 한 번이라도 더 당겨라!”

임경업의 호통에 6대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방어사격에 집중했다.

무너져가던 좌측방어선을 임경업을 위시한 이들이 다시금 공고히 한 곡물저장소의 전투가 전 방향에 걸쳐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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