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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79화 (279/325)

제279화. 공중제압

6대 7분대와 9분대가 엄폐호에서 폭발탄 공격을 버티기 시작한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폭발탄 공격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폭도들이 보유한 포탄이 떨어지고 있던가, 아니면 본격적인 보병투입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줄어들었던 폭발탄 공격이 다시금 강해지기 시작했다. 부분대장과 시선을 맞춘 7분대장이 분대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전진 포격이다. 곧 적 보병이 들이닥친다. 전원 소총사격과 백병전에 대비하라!”

7분대장의 외침에 긴장한 표정의 분대원들이 저마다 총검을 꺼내 총구에 부착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적의 전진포격은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진포격은 아군 보병의 전진속도에 맞춰 그 전방에 포격을 퍼붓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포병의 사거리와 탄종이 제한적인 이 시대에는 조선군과 대한제국군만이 사용하는 전술이다.

물론 사거리의 한계로 인해 조선군과 대한제국군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 오듯 쏟아지던 폭발탄 공격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조준!”

7분대장의 고함소리에 7분대원들이 일제하 엄폐호 위로 거총하며 일어섰다. 그런 7분대원들의 시야로 새카맣게 몰려오는 폭도들이 보였다.

사격을 명령하려던 7분대장보다 인접한 9분대장의 명령이 더 빨랐다.

“사격!”

어찌나 큰 소리로 외쳤는지 그 소리에 7분대원들까지 사격을 시작했다.

어차피 사격을 명령할 생각이었기에 7분대장도 다시 한 번 ‘사격’을 외치고는 곧바로 자신도 사격에 참여했다.

조선 육군의 기본 무장인 다총은 10발 들이 탄창을 채용하고 있었다. 다총이 개발된 초기엔 흑색화약을 채용한 총탄이 사용되면서 탄창 하나를 사격하면 곧바로 총신을 청소해야만 재사격이 가능했다.

흑색화약의 경우 목탄이 들어가기 때문에 화약 찌꺼기인 탄매가 다량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보급되기 시작한 신형 총탄에 채용된 무연화약도 탄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흑색화약과 비교하자면 새발의 피였다.

장원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다총에 무연화약을 채용한 신형 총탄을 사격할 경우 15개의 탄창을 비우는 동안에도 사격에 큰 지장을 줄 정도의 탄매가 끼지 않았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못한 탄창 숫자에서 총탄 걸림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긴 했지만 여러 차례의 시험결과 평균은 15개였다.

그에 반해 일반 육군 보병이 실전 배치 이전에 지급받는 탄창의 개수는 병사 1인당 10개다. 그걸 다 쏠 때까지는 탄 걸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7분대와 9분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다총을 쏘고, 탄창을 갈고는 다시 사격을 이어갔다. 겨우 16명의 저항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총알세례가 다가오는 폭도들에게 쏟아졌다.

7분대와 9분대가 전진 배치된 좌측 엄폐호와 본부분대가 주둔한 관리동의 거리 때문에 구포나 현식총의 지원사격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7분대와 9분대의 외로운 저항이 이어졌다.

격렬한 저항에 잠시 주춤 거렸던 폭도들 속에서 ‘돌격’이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자 이내 수백 명의 무장폭도들이 ‘와’하는 함성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총탄 세례에도 불구하고 돌진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결코 일반 백성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엄폐와 은폐를 번갈아 사용하며 달려오는 폭도들의 움직임이 조선군 훈련소를 거친 대한제국군이라고 보기에도 다소 부족했다.

그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길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능숙했던지 부족했던지 적은 달려오고 있었고, 서로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돌격에 7분대장은 현식총의 부재가 아쉬웠다. 지금과 같은 적의 돌격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가 바로 현식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는 무기에 목을 맬 수는 없는 노릇. 적이 1백척(약30M) 안으로 들어오자 7분대와 9분대장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수탄!”

두 분대장의 외침에 병사들이 일제히 수탄을 꺼내 줄을 당겨 마찰식 뇌관을 작동시킨 후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엄폐호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자잘한 진동과 폭음이 동반되며 폭발여력에 휘말린 흙무더기가 쏟아지는 속에 비명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사격!”

폭발이 끝나자마자 울린 7분대장의 명령에 병사들이 다시 엄폐호 밖으로 총을 거치하고 사격을 재개했다.

다가오던 적의 모습은 다시 1백척 밖으로 물러나있었다. 적이 후퇴한 것이 아니라 수탄의 폭발에 전진해 왔던 적이 도륙당한 것이다.

그렇게 수탄 투척과 사격이 2차례 정도 더 번갈아가며 진행되었다.

엄폐호 전방 1백척 거리에 적군의 시체가 쌓였다. 그 시체들을 밟고 적이 다시 돌진해 왔지만 이번엔 투척할 수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을 파악이라도 했는지 폭도들의 돌격은 이전보다 더 광범위하고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그에 맞서 사격하는 7분대와 9분대의 병사들 속에서 ‘막창’이란 단어가 속출했다. 음식을 뜻하는 이름이 아니라 조선군에서 사용하는 음어(陰語)로 마지막 탄창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사실 7분대와 9분대의 분전을 지켜보고 있었던 6대장은 두 분대를 지원하기 위해 좌측 참호에서 철수했던 5분대를 다시 투입하려 했다.

문제는 노도처럼 밀려드는 적의 공세를 보고는 5분대가 투입을 거부했다는 점이었다.

분대장은 물론이고 5분대원 전원이 대장의 명령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군법에 명기되어 있는 ‘비상식적인 명령까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조항을 들어 적법한 행동임을 강변하기 까지 했다.

군법에서 지정한 ‘비정상적’인 명령이란 무고한 백성들을 향한 공격이거나, 무장반란에 참여하라는 명령 같은 것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5분대는 나아가면 죽는 것이 뻔한 자리로 가라는 명령을 ‘비정상적’ 명령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실랑이를 길게 할 시간적 여유 따윈 없었다. 좌측에 전진 배치된 7분대와 9분대가 분전을 하고 있었다지만 전면과 우측은 전진 배치되어 있던 분대가 모조리 철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두 방향으로 폭도들이 사정없이 밀어닥쳤다.

7분대장은 자신들이 버티면 포격이 관리동에 닿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예상은 틀렸다.

전면과 우측을 돌파한 폭도들이 일부 포를 끌어다 관리동을 직접 타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면과 우측으로 밀어닥친 폭도들의 공격에 7분대와 9분대는 전면은 물론이고, 측면과 후면에서도 공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8명뿐이 안 되는 분대원들을 쪼개 세 방향의 적을 방어하느라 7분대와 9분대가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총탄이 떨어지는 병사들이 속출하면서 암울한 표정이 깃들었다.

그런 7분대와 9분대의 엄폐호 속으로 기어코 적이 들이닥쳤다. 뒷발에 힘을 주고 기다리던 분대원들이 총검을 찌르고 개머리판을 휘둘러 적을 척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체계적인 총검술 동작들이 도움이 되는 듯 보였지만 엄폐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적의 수가 분대원들의 수를 가뿐이 넘는 수준이 되면서 이내 개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사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이려 몸부림치는 이들의 광기가 엄폐호 안에 휘몰아쳤다.

적의 뼈에 박혀 부러진 총검을 버리고 단검을 꺼내 쑤시고 찌르는 조선군 병사에서, 둘 셋씩 달라붙은 적의 손을 이로 물고, 손가락으로 눈을 후벼 파며 저항하는 조선군 병사들까지 속출했다.

그런 중과부족 속에서 하나둘 조선군 병사들이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적이 엄폐호로 쏟아져 들어간 지 겨우 몇 분 만에 7분대와 9분대의 저지선이 돌파 당했다. 그렇게 좌측면까지 돌파당한 6대는 후면을 제외한 전좌우, 세 방향에서 가해지는 맹공에 직면했다.

열두 군데의 자상을 입은 채 엄폐호에 구부러져 있는 7분대장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피거품이 계속 입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예상 중에서 하나가 맞아 들어갔다.

폭도들이 영악하게 포좌 앞에 경사로를 설치해서 관리동 옥상에 대한 포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 포격음을 들으며 일어나려 애를 쓰던 7분대장의 움직임과 숨소리가 결국 멈추었다.

그렇게 숨이 끊어져 퀭하게 풀어진 7분대장의 눈동자에 비쳐진 하늘에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비쳐지고 보였다.

그것을 마지막에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7분대장의 입가로 설핏 미소가 깃든 것 같아 보였다.

*****

바람의 영향으로 시모노세키에 먼저 도착한 것은 날틀03으로 이루어진 11전투비행선대와 12전투비행선대였다.

두 비행선대는 시모노세키 상공에 접어들면서 갈라져 11전투비행선대가 감영으로, 12전투비행선대가 곡물저장소가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양 비행선대 공히 지상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조선군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피아식별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자칫 아군의 공격에 아군이 희생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상 상황파악을 위해 너무 고도를 낮추면 폭도들이 무장했다는 가총의 사격권에 들어갈 수도 있었기에 비행선들은 안전고도를 3천척(약909M)로 설정하고,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물론 일포의 경우엔 그보다 더 긴 사거리를 가졌지만 대공 포격 능력은커녕 고각포격 기능조차 가지지 못한 일포가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을 향해 발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3천척의 고도로 접근하던 11비행선대는 감영을 둘러싸고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는 폭도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다행히 감영은 아직 점령되지 않았다. 3층 옥상에 설치된 구포와 현식총을 이용한 맹렬한 포격과 저지 사격이 효과를 보고 있었던 데다 감영의 창문 요소요소에 사격거점을 마련한 병사들의 총격이 이어지며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11비행선대 대장의 지시로 20대의 비행선이 일렬횡대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렬횡대를 갖춘 채 감영 상공으로 진입하면서 비행선 탑승부 하부에 장착된 기01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사거리가 1천보(1.8km)에 달하는 ‘기01’ 20정의 공중사격에 감영을 향해 돌진하던 폭도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제야 하늘에 떠있는 비행선들을 발견한 조선군 병사들이 옥상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열세에 처해있던 조선군의 입장에선 천군만마의 등장이었지만 폭도들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쏟아진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대월전선에 투입되었던 대한제국군 병사들 중에서 철군한 것은 동일본 출신들뿐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동원된 대한제국군은 아직도 대월에 주둔 중이었다.

변심의 여지가 남아있을 수 있다고 의심되는 대월에 대한 일종의 무력시위이자 위협행동이었다.

대한제국 군사부를 겸하는 조선군 원수부는 항복한 대월의 저항 의지가 완전히 꺾인 것을 명확히 확인할 때까지 대한제국군을 철군시키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취해진 조처였다.

그로인해 폭동에 참여한 대한제국군 출신들 중 대월전전에서 비행선을 목격했던 대한제국군 병사 출신이 섞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나고야 왕국에서 흘러들었던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도와 마주쳐 전투를 수행 중인 5대와 6대는 물론이고, 조선군 원수부도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그렇게 폭도들에게 합류한 이들 속에는 사실 조선군 출신들도 섞여 있었다.

서남도 출신 조선인들인 그들 속에서도 불만분자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나마 그들이 있었기에 하늘에서 가해진 공격에 대한 공포는 폭도들의 지휘부에 한해서는 곧바로 사라졌다. 조선의 최신 무기라는 설명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폭도들은 아니었다.

천벌이 쏟아졌다고 믿는 이들이 속출했다. 본토인들과 달리 하늘을 나는 비행선을 처음 본 이들이 대다수였던 데다 아직도 개화가 늦은 이들이 주로 이번 폭동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폭도들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그들을 따라 비행선이 전진하면서 폭탄창을 열었다.

아무리 사람이 빨리 뛴다고 해도 비행선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어느새 물러서는 폭도들을 따라잡은 비행선들에서 공투탄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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