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8화. 진압군 투입
조선군에 통합지휘소 체계가 있다면 조선의 행정을 담당하는 의정부에는 종합상황실이 있었다.
총리대신이 장(長)을 맡는 이 종합상황실은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종합적으로 보고받고 관리하는 일종의 통합 행정체계인 셈이었다.
대대적인 보급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무선전신소가 확충된 지역은 시 단위까지였다. 읍 단위는 아직 여러 가지 이유로 보급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예하 리와 읍에서 벌어진 일들을 인편으로 취합한 시는 무선전신으로 각도의 감영으로 보고했고, 그렇게 취합된 보고내용을 다시 신의주에 위치한 종합상황실로 보고했다.
리와 읍은 몰라도 시 단위에서 벌어진 일은 나름대로 실시간으로 보고되는 체계가 수립된 것이다.
그로인해 야마구치시의 소요 사태가 발생된 직후 조선 의정부 종합상황실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종합상황실은 인접한 지역 전체에 위기 대응반을 가동하도록 조치하고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었다.
물론 해당 사안에 대해서 태왕인 광해에게 보고도 되었다.
광해는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총리대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 달리 명은 없었다.
그것은 포도청의 보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군과 의정부만큼이나 포도청도 각 지방 포도청들과 체계적인 연락체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황도인 신의주에 위치한 포도청은 흔히 포도대장이라 부르는 3품의 포도청장이 장이다. 포도청의 직제 상 실행 부서인 좌포청과 우포청을 함께 거느리는데 이들은 모두 지역 부서다.
그러니까 중앙 좌포청과 중앙 우포청이란 존재하지 않고, 경기도 좌포청과 황해도 우포청처럼 도를 단위로 둔다.
다만 황도인 신의주와 행궁이 설치된 구경(한성), 서경(베이징), 동경(하얼빈), 남경(대판, 오사카)의 경우엔 좌포청과 우포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들 행궁이 설치된 지역은 예전에 일국의 수도였거나 그에 준하는 도시들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규모가 컸고, 인구도 상당히 많았던 까닭이다.
그리고 시 단위에 좌포분청과 우포분청을, 읍 단위에 좌포분소를 두었다. 특이한 것은 읍 단위는 우포분소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포청이 수사 및 정보 수집기관인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만 해도 조선의 범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무런 포도청 조직도 들어가지 않는 리 단위의 치안은 마을에서 운용하는 자치군에 맡겨졌다. 과거 정왜전쟁 중에 관매도에서 구키의 해적함대를 쫓아 보냈던 조직인 자치군은 원래 도서지역에 설치하는 준군사조직이다.
하지만 관매도 전투이후, 그 효용성을 높이 평가한 광해가 온 조선에 자치군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명했고, 그에 따라 아무런 치안조직도 없는 리 단위에만 설치하게 되었다.
자치군이 준군사조직이다 보니 훈련도 군에서 맡고, 무장도 군에서 보급한다.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한 리에 보통 20명 내외로 구성된다.
생업을 영위하면서 훈련과 자치군의 임무를 병행해야 하지만 보상은 쥐꼬리만 해서 인기는 없었다. 그로인해 주로 마을의 청, 장년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맡았다.
평시 지휘는 이장이 하고, 유사시 관할 좌포분소나 인근 군부대에서 보내진 인원이 지휘한다. 그런 자치군에게 리 단위의 치안이 맡겨진 것이다.
포도청의 연락체계는 군이나 의정부의 체계와 상당히 유사해서 각 시에 설치되어 있는 포도분청까지는 전신소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각 시까지는 포도청의 명이 일사분란하게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따라서 포도청도 야마구치시의 소요 사태와 그에 따른 각 포도분청들의 대응과 피해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해 광해에게 보고했다.
여기에 더해 이순신이 원수부에 취합된 상황을 보고했다.
전체적인 현재 상황의 파악은 좋았는데 초기 분석이 아쉬웠다.
의정부 종합상황실도, 포도청 종합지휘소도, 그리고 조선군 원수부도 야마구치시의 상황을 불만분자들에 의한 단순 폭동 정도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서남도 좌포청과 우포청의 병력이 투입된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진압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원수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서남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부 군병력 중 2개 대 병력을 추가 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보고를 올리는 것에서 조선 조정 차원의 조치는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 서남도 좌포청과 우포청 병력이 전멸한 것 같다는 보고가 도착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더구나 군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투입한 2개 대가 폭도들의 공격에 고립되었다는 소식에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문제는 이미 출동한 2개 대 외에 별도의 병력을 추가 투입할 여력이 서남도에 없다는 사실이 보고되자 묵묵히 듣고, 고개만 끄덕이던 광해가 드디어 눈을 빛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지원할 병력은 어디에 있소?”
광해의 물음에 이순신이 답했다.
“남경(대판, 오사카)에 새로 배치되기 시작한 52병단 소속 단급 부대 3개가 있나이다.”
“그들을 투입하는데 얼마나 걸리겠소?”
“기동화 된 육군의 하루 진격거리는 비전투의 경우 평균 100리(약39km) 정도이오나 긴급 전개의 경우 120리(47km)까지도 가능 하옵니다. 그것을 1천2백리에 달하는 남경과 시모노세키의 거리를 감안하여 계산하면······. 9일이 조금 넘게 걸리옵니다.”
이미 상황이 시작되었을 때 대응전략을 수립하면서 확인한 수치들이라 이순신의 답엔 막힘이 없었다.
“9일······. 너무 오래 걸리는구려.”
“독촉을 하오면 하루 이틀 정도 더 줄일 수는 있겠사오나 그 이상은 무리일 것이옵니다.”
그래도 7, 8일이나 걸린다는 뜻이었으니 다를 것이 없었다. 잠시 고심하던 광해의 눈길이 자신의 뒤에 시립해 있는 내금위 부장에게로 향했다.
“내금위에 위사들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광해의 물음에 아직 지세창이 하와이에서 귀환하지 않은 까닭에 내금위의 지휘를 맡고 있던 내금위 부장이 답했다.
“2천이 완편 되어 있나이다.”
“그중 사격과 검술 모두에 능한 자들로 속히 2백을 추리도록 하라.”
“충!”
군례를 올린 내금위부장이 뛰어나가자 광해가 이순신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원에 수송용으로 제작된 날틀04 10대가 있소. 그들을 즉시 황궁으로 불러들이시오.”
광해의 말에서 그 속내를 짐작한 이순신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답은 이순신이 했지만 달려 나간 것은 배석해 있던 원수부 고위 무관이었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순신이 자리를 비울 수 없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왕의 명은 그렇게 달려 나간 무관을 통해 전달될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광해가 이순신에게 물음을 추가로 던졌다.
“비행선 모함들은 어디에 있소?”
“현재 완도 앞바다에서 훈련을 진행 중이옵니다.”
“완도 앞바다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소?”
광해의 물음에 이순신이 속으로 계산해보더니 답했다.
“늦어도 9시간이면 도착하옵니다.”
“왕복도 가능하겠소?”
“완도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대략 1천리(약392km) 정도의 거리옵니다. 3천리의 순항거리를 가진 날틀 03이라면 충분히 왕복 비행이 가능하옵니다.”
“즉시 모든 비행선을 무장 만재시켜 시모노세키로 보내시오. 유사시에 대비해 비행선 모함들도 시모노세키로 향하게 하여 귀환거리를 줄이시오.”
“명을 받잡나이다.”
이번에도 다른 고위무관이 뛰어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광해의 명령들이 포도대장에게도 쏟아졌다.
“포도청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되오?”
“현재 우베와 미네, 두 시의 포도분청들이 병력을 집중하고 대기 중이긴 하옵니다만 그 수가 8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현재 투입을 망설이고 있나이다.”
포도청 병력은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고 무장되어 있다고는 해도 준군사조직이라 군처럼 전투에 특화된 이들이 아니다.
따라서 수천으로 상정되는 무장한 폭도들을 상대로 겨우 80명의 준군사 조직을 투입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피해가 더 클 뿐일 터였다.
“그들은 폭동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는데 역량을 집중시키도록 하시오.”
“예. 폐하.”
고개를 조아리는 포도대장에게서 시선을 거둔 광해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현재 일어난 야마구치시의 소요 사태를 이시간부로 반란으로 선포하는 바이오. 군은 즉각 대응하여 반란군을 토벌하되 불필요한 살생은 가능한 억제토록 하시오.”
그간의 고심이 묻어있는 광해의 명에 이순신을 비롯한 군부 고위 무관들의 허리가 곧바로 접어졌다.
“명을 받자옵나이다!”
이후 이순신을 비롯한 군부 무관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즉각적으로 움직이라는 광해의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황궁에 도착한 수송용 날틀 04 10대에 무장을 갖추고 대기 중이던 내금위 위사 2백 명이 올라탔다.
내금위 위사들은 광해의 특명에 의해 다총과 일권총. 수탄은 물론이고 칼에 활까지 갖춘 중무장 상태였다.
이들의 임무는 감영과 곡물저장소에 고립된 조선군을 지원하는 것에 있었다. 언제 적과의 백병전으로 내몰릴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총격전은 물론이고, 창검을 쓰는 난전에도 능한 내금위 위사들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날틀 04의 최고속도를 감안하면 이들도 완도 앞바다에서 출발할 날틀 03들과 비슷한 시간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황궁에서 부상해 남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는 비행선들을 바라보는 광해와 대소신료들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
원수부로부터 즉각적인 출격 명령을 받은 2척의 고왕급 비행선 모함들은 출격준비로 온 갑판이 분주했다.
훈련 중이었지만 무장은 무기고에 만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투탄과 기01 총탄을 비행선에 싣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행대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급유상태를 확인하고 각종 장치들을 재점검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장사들이 각 비행선마다 가급 공투탄(공중투하폭탄) 20발씩을 채웠다.
1발의 가급 공투탄의 파괴력이 일장함포에서 쓰이는 9치 작렬탄의 5배에 달하는 파괴력을 가졌으니 파괴력만 놓고 따진다면 1대의 비행선엔 자그마치 9치 작렬탄 1백발이 실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기01 총탄 1천발이 추가로 실린다.
연속사격일 경우 2분이면 모두 소진될 양이었지만 무게의 제한을 가진 비행선의 특성상 더 많은 총탄을 실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그 때문에 자신의 요구로 기01 3정을 장착해 개조된 지상포격용 날틀04-2, 그러니까 날틀 042를 추가로 동원하고 싶어 했지만 해당 비행선들로 구성된 91지상지원 비행선대는 아직 대월에 주둔 중이었다.
그로인해 연속적으로 비행선 모함을 출발하는 비행선들은 날틀03뿐이었다. 거의 1시간이 걸려 2척의 비행선 모함에서 40대의 날틀03이 날아올랐다.
그들이 일제히 남쪽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여전히 비행선의 비행방식은 시계를 통한 시계비행이다. 나침반과 백분의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장거리 비행의 경우 목표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었다.
그로인해 비행선의 항법사들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서로 편대간 무선전신을 통해 항로를 수정하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대월 전투에 참여했던 11전투비행선대와 신규로 창설된 12전투비행선대로 이루어진 이 두 비행선대는 완도 앞바다에서 시모노세키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들과 달리 신의주 황궁에서 이륙한 날틀04 수송형 10대는 조선의 하늘을 관통해서 남해로 접어들고 있었다.
비행선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부력도 강해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압력이 낮아지고, 공기저항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고 한정 없이 올라갈 수 없는 이유는 공기가 희박해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행선의 최고 운용고도는 9천9백자(3km), 권장 최고고도는 6천6백자(2km)다.
문제는 이것을 정확하게 측정할 계기나 장비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의 경우 조종사들의 감에 의존하는데 이 감을 구비하기 위해 비행대원들은 다양한 고도에서 실측과 검증이 반복되는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조종사들은 다행히 6천자 이하의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감에 의존해 높이 올라온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아군들이 지금도 하나둘 죽어나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