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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77화 (277/325)

제277화. 야마구치시 소요 사태(3)

6대의 2분대와 3분대는 창고 정면에 배치되어 완전한 개활지에 배치되어 있는 셈이었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엄폐호를 파기는 했지만 깊이도 얕았고 교통호는 구성하지도 못했다.

각 분대 당 1정 씩 배치되어 있던 현식총은 진즉에 적의 포격으로 흙주머니로 쌓아두었던 진지와 함께 날아가 버려서 분대원들도 2명의 현식총 사수들을 잃고 8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동일한 상황에 처한 2분대와 3분대는 적의 산탄포탄과 화염포탄 사격에 고개조차 내밀지 못하고 엄폐호에 고착되어 있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대장은 뭐하는 거랍니까!”

거칠게 소리치는 부분대장의 말에 분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대장도 방법이 없을 거다. 일포의 사거리를 제압할 무기가 우리에겐 없으니까.”

“그럼 그냥 이렇게 당해야 하는 겁니까?”

“작전예규대로라면 우리에게 돌격제압 명령이 내려왔겠지만······.”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폭발탄 세례 때문인지 아니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한 상황이라 대장이 결심을 하고 있지 못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령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미친! 저 폭발탄 세례 속을 뛰어서 돌격하라고요? 그따위 명령이 내려오면 전 안 따를 겁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대장이 내려와서 뛰라고 하세요!”

군인이 명령을 거부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부분대장의 말에 분대장은 오히려 동조하고 있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이 상황에서 그런 명령은 다 죽으라는 것과 같으니까. 아마 내가 명령해도 뛰어나갈 애들도 몇 없을 거고.”

“창고 없다고 굶어죽는 상황도 아니고, 괜히 목숨 걸 필요는 없죠. 명령 내려오기 전에 물러서죠. 괜히 여기서 버티다가 애들 다 잡기 전에 말입니다.”

부분대장의 요청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가 황급히 몸을 숙인 분대장이 작렬하는 폭발탄의 폭발 여력으로 흩어져 쏟아지는 흙더미를 맞으며 답했다.

“철수 명령은 없었잖아.”

“명령 기다리다가 애들 다 죽으면 그땐 누가 책임집니까? 우리분대 기 중사는 애가 태어난 지 이제 백일입니다. 나 준사는 아내가 임신 중이고요. 하 준사는 홀어머니만 남아계십니다. 더 합니까?”

모병제로 전환된 이후 군역병이 남아있는 부대는 거의 없었다. 그로인해 가장 낮은 계급이 군부에만 존재하는 10품의 관리인 준사였다.

과거에는 군역을 마치고 군에 남은 고참 병사들에게 주어지던 이 계급이 모병제로 입대한 병사들의 가장 첫 계급이 되었다.

그로인해 10품에 두 가지의 명칭이 더 생겼다. 바로 중사와 상사다. 구분은 근무 연수로 하며 3년차부터 중사, 5년차 이상이 상사다.

계급장은 준사를 뜻하는 세로막대기 하나 위에 역갈매기(∧) 하나가 붙으면 중사, 두 개가 붙으면 상사다.

물론 모든 관리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근무연수가 차도 징계를 받은 기록이 있으면 그 벌점에 따라 승진을 못하는 수도 생긴다.

당연히 벌점이 높으면 강제 불명예제대가 되기도 한다. 관리들이 품행에 조심하는 이유였다.

병사 5명씩을 묶어 오(伍)라 하는데, 10명으로 구성되는 1개 분대엔 2개의 오가 존재했다. 과거엔 준사가 그 오의 장을 맡고 있었지만 계급체계가 변한 이후로는 상사가 오장을 맡았다.

부분대장도 상사로써 22오의 오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대장의 말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분대원들을 일별한 2분대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분대원들의 안타까운 개인사도 개인사지만 모두가 방어사격은커녕 고개도 내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는 것도 부분대장 말마따나 좋은 방법은 아닌 듯 했다.

“철수는 가능 하겠어?”

2분대장의 물음에 부분대장이 답했다.

“우리만으로는 어렵죠. 옆에 주둔한 3분대와 함께 뛰면 어찌어찌 살아가는 놈이 많지 않겠습니까?”

“목표를 여러 개로 늘여서 생존자수를 높이자는 건가?”

“예. 그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부분대장의 답에 잠시 갈등하던 분대장이 고함을 쳐 3분대장을 불렀다.

“야! 이 준위.”

폭발탄이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굉음 속에서도 용케 음성이 전달되었는지 3분대장의 답이 들려왔다.

“왜?”

“우린 철수할까 하는데 너희는 어쩔래?”

“철수? 철수 명령 내려왔냐?”

“아니. 자의 철수다!”

2분대장의 고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던지 3분대장은 잠시 당황으로 침묵했다. 그런 3분대장에게 2분대장이 다시 고함쳐 물었다.

“이렇게 뭉그적거리다 애들 다 잡지 싶은데 어쩔래?”

2분대장의 고함소리에 분대원들을 돌아본 3분대장은 분대원들 모두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알았다. 언제 뛸래?”

3분대장의 답에 부분대장과 눈을 맞춘 2분대장이 외쳤다.

“1분후. 내가 셋을 외칠 때 일제히 뛰어서 관리동 쪽으로 철수 한다.”

“좋아!”

3분대장의 답이 들려오고 이내 2분대원들과 3분대원들이 준비를 갖추자 2분대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나, 둘, 셋!”

2분대장의 구령에 맞춰 2분대와 3분대가 일제히 엄폐호에서 나와 뛰기 시작했다. 그들을 노리고 폭발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몇몇이 폭발여력에 휘말려 나동그라지면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다행히 2개 분대의 생존병력이었던 16명 모두가 관리동 뒤로 철수 하는데 성공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들에게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부장이 뛰어내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돌아온 거야?”

“계속 버텼다간 벌집 되게 생겼는데 어쩝니까. 방법이 없었습니다.”

2분대장의 항변이 끝나기도 전에 측면에 배치되어 있던 분대들도 퇴각해 왔다.

“너희들은 왜!”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부장에게 분대장들이 답했다.

“2분대와 3분대가 철수하기에 철수명령을 내리신줄 알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분대장들을 바라보며 부장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폭발탄 공격에 마땅히 대응책이 없는 상황에서 고착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던 찰라 정면에 배치되어있던 분대들이 철수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것을 기회로 삼아 명령이 없음에도 퇴각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욕설을 퍼부어준 부장이 황급히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런 부장에게 6대장이 황급히 물었다.

“왜 온 거래?”

“고착되기 전에 빠져나온 모양입니다.”

답하기 전에 시모노세키 우포분청장을 슬쩍 일별했다는 것에서 차마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6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마디로 두려워서 도망쳤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투에 나선 군인들이 죽음이 두려워 맡은 지역을 버리고 도주한 것이다.

제대로 보고되면 군법회의를 면키 어려운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한두 개도 아니고, 측면에서 물러선 분대까지 6개가 넘는 분대가 명령도 없이 철수했다. 그들을 모두 군법에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전투력이 일반 부대에 비해 낮은 지원대라 해도 이정도면 자신의 지휘력 부재를 인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들한테 관리동 후면 좌우로 참호를 파서 저지선 형성하라고 해. 놈들이 돌격하면 관리동 후면으로도 공격이 집중될 테니까.”

“예. 대장님.”

명령을 받은 부장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대장의 시선이 전방으로 돌려졌다.

일포를 통한 폭발탄 공격은 철수하지 않고 남아있는 분대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6대 소속 10개의 분대는 관리동에 2개, 전방에 2개, 측방인 좌우로 3개씩 6개의 분대가 배치되었었다. 그중 아직까지 퇴각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대는 2개뿐이었다.

좌측 선두의 7분대와 그 바로 옆 분대인 9분대였다. 두 분대 모두 기찰대(헌병 또는 군사경찰) 병력이다. 그러니까 6대는 물론이고, 550단에서 가장 기강이 강한 분대라는 뜻이었다.

그런 두 분대 중 7분대의 부분대장이 엄폐호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분대장에게 기어서 다가왔다.

“분대장님 우리도 철수 하죠.”

이전보다 맹렬하게 터져나가는 폭발탄 세례로 쏟아지는 흙더미를 맞으며 외치는 부분대장에게 7분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

“우리가 아무리 기찰대라 군기를 엄중히 지켜야한다지만 이러다 애들 다 잡겠습니다.”

부분대장의 불만어린 음성에 7분대장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군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이곳과 관리동과의 거리는 1천5백보(약2.7km), 적 포대와 우리와의 거리는 대략 8백보(약1,4km)다. 우리가 있으니까 관리동이 직접적인 포격을 받지 않는 거다. 여기서 우리가 철수하면······.”

“관리동은 석조 건물 아닙니까. 놈들이 전진 배치해 와서 폭발탄 공격을 퍼붓는다고 해도 일포의 폭발탄으로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단층이라 옥상이 너무 낮다. 일포가 아무리 고각사격이 안 된다지만 작은 경사로만 설치해도 옥상에 포탄 투사가 가능할 거다. 대한제국군 출신들로 예상되는 놈들이 그 정도를 모를 리 없지.”

“옥상에 몇 발 떨어진다고 달라지겠습니까?”

“옥상이 제압되면 구포의 사격위치를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적 보병의 접근이 수월해진다. 그건 방어 위치가 관리동으로 줄어드는 우리에겐 치명적일 거다.”

“하지만 창문에서 현식총으로 방어하면······.”

“남은 현식총은 2정을 보유한 본부분대를 합해서 3정일 거다. 우리 분대를 포함해서 별도로 진지를 구축했던 현식총은 모두 날아갔으니까.”

그렇게 남은 3정으로는 창문으로 좁아진 시야각 안에서 적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다. 다가오는 적의 수가 많아질 것이란 뜻이었다.

“그래도 우리 대 병력 전체가 모여 있으니 방어는 되지 않겠습니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부분대장에게 7분대장이 말했다.

“부분대장도 알겠지만 수탄은 좌포청에도 보급된 무기다. 일포에 가총까지 가진 놈들이 그걸 안 챙겼을 리 없지. 만에 하나 건물에 접근한 적이 수탄을 창문 안으로 던져 넣기라도 하는 날에는······.”

뒷말을 잇지 않아도 그 참상을 부분대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관리동에 배치된 현식총이 제거되면 양측의 접근전 화력은 같아진다. 다총이나 가총이나 접근전에서는 비슷한 양상이니까.

물론 탄창을 채용한 다총이 연발 사격 등,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는 있긴 할 거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적이 피해를 무릅쓰고 돌격이라도 하는 날에는······, 백병전이다.

적과 아군 사이의 무장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는 병력 수와 병사 개인의 전투력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아무리 좋게 봐도 백병전에서 지원대인 6대의 전투력은······, 신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듯한 부분대장에게 7분대장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버텨줘야 하는 거다. 우리가 물러서면 6대 전체가 위험해진다. 버티자. 버텨야만 한다. 애들에게 주지시켜줘라. 부분대장.”

7분대장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부분대장이 분대원들에게 분대장의 뜻을 전하기 위해 움직였다.

비슷한 일이 9분대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지원대 병력에 비해 야전 전술 훈련을 조금 더 많이 받은 기찰대였기 때문일까? 적어도 7분대장과 9분대장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악착같이 버티는 통에 폭도들은 좀처럼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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