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75화 (275/325)

제275화. 야마구치시 소요 사태(1)

서남도와 관서도 일대에서 일본 열도인들은 신민이고, 역량이 뛰어난 민족이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계몽운동을 시작한 신일회(新日會)라는 조직이 처음 서남도 야마구치(山口, 산구)시에 나타난 것은 3년 전인 광무 11년의 일이었다.

계몽 방식이 민족성을 자극한다는 것에서 조금 위험하긴 했어도 특별히 폭력적이라든가, 다른 민족과의 차별을 주장한다는 등의 구호가 없었기에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는 서남도 좌포청 산하 야마구치 좌포분청 차원에서 관리되어 왔던 작은 백성조직이다.

이 조직을 처음 이끌었던 인사는 이름조차 모르는 한 작은 절의 승려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산구지역 명문가 출신인 아베 노부스케와 스가 요시로오가 이끌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화가 시작된 것은 작년 초쯤이었다. 공공조직이었던 신일회가 사조직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의 사상이 이전과 조금 다른 기류로 흐르기 시작했다.

조선의 지배체제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을 규합하고, 그들을 통해 일본열도 전역에 조선본토의 수탈로 인해 일본 열도인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선전선동을 이어갔다.

오히려 조선본토의 막대한 자금이 일본열도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되고 있었기에 완전히 거짓 선전이었지만 일본 열도인들은 너무나 쉽게 그 선전선동에 넘어갔다.

일본열도에서 수탈해간 물자로 조선본토가 훨씬 문명화되고, 조선 본토인들이 더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신일회의 선동에 분노하지 않는 일본 열도인들이 드물었던 것이다.

황도인 신의주는커녕 조선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이들이 마치 눈앞에서 조선의 광경을 본 것처럼 분노하며 떠들어댔다.

소문이 소문의 꼬리를 물고 확대재생산까지 되면서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정당한 생각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문제로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었는지 그와 같은 이야기들은 저변으로 낮게 깔리며 소리 없이 번져나갔다.

특히 신일회의 활동이 잦은 서남도와 관서도 일대에 그런 소문으로 인한 불만이 팽배해져갔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그런 사실과 다른 생각에서 생겨난 불만들이 공공연하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일본열도, 특히 서남도와 관서도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된 이유가 근거 없는 소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서남도 우포청에서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직 발생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던 12월 6일, 한밤의 야마구치시 일원의 한 저택 지하.

“어찌 되었나?”

아베 노부스케의 물음에 스가 요시로오가 이마에 가득한 땀을 훔치며 답했다.

“제대로 처리했습니다.”

“소문은?”

“어제부터 내기 시작했으니 오늘 부터는 제대로 번지기 시작할 겁니다.”

“사람이 많이 죽어서는 안 되네.”

“독을 적당히 풀어서 죽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스가 요시로오의 답에 아베 노부스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부는 준비 되었나?”

아베 노부스케의 물음에 한쪽에 서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야마자키 슌지가 답했다.

“8백 명의 사수가 완전 무장한 채로 대기 중입니다.”

“훈련은?”

“구형 조총으로 시켰으나 교관들은 대한제국군 출신들이라 무기고를 탈취하면 곧바로 조선의 신형 무기에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내일이다. 내일 분노한 신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그 뒤에서 무장 공작을 펼칠 것이다. 최우선 목표는······?”

“야마구치시 좌포분청 무기고입니다.”

“맞다. 정보대로면 그곳에 가형 소총 2백문이 보관되어 있다. 그곳을 습격해서 무장한 후 곧바로 이곳, 조선군 전략물자 창고를 덮쳐야 한다.”

“경비대를 끌어낼 미끼 부대도 준비 되어 있습니다.”

“위험한 임무다. 그들이 흔들리지 않겠나?”

아베 노부스케의 질문에 아마자키 슌지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들은 새로운 일본을 위해 장렬히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좋다. 새로운 일본을 위해.”

“새로운 일본을 위해!”

작게 구호를 외친 이들이 흩어졌다.

12월 7일, 야마구치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독환자가 쏟아졌다. 대량의 환자들이 몰리면서 야마구치시에 위치한 1개의 병원과 5곳의 의원들이 중독환자들로 넘쳐났다.

수사를 담당하는 야마구치시 우포분청 포교와 포졸들이 병원으로 나와서 중독환자들의 중독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원인이 물로 지목되었다.

대부분 3군데의 우물물을 길어먹는 이들에게서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여도 다른 우물을 이용한 이들에게서는 중독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곧바로 좌포분청과 연계해 해당 우물들에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우물의 독성물질 검사에 들어갔다.

다만 독성물질 검사와 같은 검증능력을 갖춘 연구시설은 서남도에서는 감영이 있는 시모노세키시에 위치한 왕립 서남도 종합병원뿐이 없었기 때문에 체취한 물을 시모노세키로 보냈다.

해당 검사 결과가 나오면 대체적으로 무슨 독이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독성물질을 추적하여 조사를 벌일 예정이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움직여갔다.

야마구치 백성들 사이에서 조선 본토인이 우물에 독을 푸는 걸 봤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어제부터 조용히 번지던 소문이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유언비어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오늘 벌어진 일과 규합되면서 굉장한 파급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야마구치시 우포분청이 해당 소문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움직이던 시기, 야마구치시 좌포분청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백성들을 단속하기 위해 분주했다.

처음엔 수십 명에 불과했는데 곧바로 수백 명이 되고, 종래엔 수천 명이 길거리로 나와 웅성거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모여든 인파에 불과했는데 그 속에서 몇몇 사람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는 것을 보았다고 소리치면서 상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험악해진 분위기는 소요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좌포분청 소속 포졸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 뒤돌아서있던 동료포졸을 향해 일본도를 휘두르려는 한 사내를 발견한 좌포분청 소속의 포졸이 급한 마음에 일권총을 발사했다.

탕!

군중 속에 있던 한 사내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물러섰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서 달려온 포교에게 포졸이 사정을 설명했다.

“저자가 칼을 들고 휘두르며 위협해서 어쩔 수 없이······.”

“칼? 칼은 어디에 있는가?”

포교의 물음에 포졸이 손짓을 하다 굳어졌다.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내의 주변 어디에서도 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당황하는 포졸을 손가락질하며 살짝 물러서 있던 군중 속에서 몇몇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칼이라니! 우린 보지도 못했다!”

“다짜고짜 총으로 쐈다.”

그 말끝에 군중 속에서 생각지 못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조선본토인이 무고한 일본 열도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

“어제 독을 푼 것도 조선본토인이다!”

말도 안 되는 고함소리들에 군중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당황한 좌포분청 포졸들과 포교들이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겁을 먹으면 더 강해지는 것이 군중심리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포교와 포졸들이 황급히 일권총을 꺼내들었지만 잠시 주춤 거렸을 뿐, 그것이 오히려 군중들을 자극했다.

‘우리도 쏴죽이라’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몇몇 사람들을 시작으로 군중이 포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포졸들이 권총을 쏘면서 비명과 욕지거리, 그리고 함성이 거리에서 마구 뒤섞였다.

이날 현장에 출동했던 아먀구치시 좌포분청 소속 포교와 포졸들의 대다수가 성난 군중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 속에 조선 본토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가 야마구치 태생의 일본인들이었다.

근무 중 순직한 포교와 포졸들의 수는 27명, 총원이 30명 남짓한 야마구치시 좌포분청 포교의 9할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간신히 현장에서 도망친 좌포분청 포졸 몇이 우포분청으로 달려와 상황을 알렸지만 우포분청 포졸들이 무장을 채 갖추기도 전에 폭도로 변한 군중이 우포분청을 덮쳤다.

좌포청과 나란히 서있는 우포청 건물에서 한동안 함성과 총성, 그리고 비명소리가 퍼져 나왔다.

조선군이 대양군 체제로 변경되면서 조선군의 대부분이 본토군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면서 약간의 주둔 배치 변경이 조선군에 가해졌다.

과거 서남도와 관서도를 주둔지역으로 두고 있던 55병단이 유구 및 그 외 일본 열도에 속한 부속 도서를 주둔 지역으로 받고 이동해 가고, 그간 북해도에 주둔하고 있던 52병단이 이동해 왔다.

다만 북해도를 새로이 관할 주둔지로 배정받은 53병단의 이전이 예상치 못하게 늦어지면서 52병단의 이동 전개도 지연되고 있었다.

야마구치시에서 소요사태가 시작된 다음 날인 12월 8일까지 서남도와 관서도로 이동한 52병단 소속 부대는 10개 단에서 3개뿐이었다.

그조차도 관서도의 감영인 대판(오사카)에 몰려있었다.

따라서 이때 서남도 관할에 남아있는 조선군 병력은 주둔지 이전업무를 위해 남겨진 55병단 소속인 1개 대에 불과했다.

1개 대급 병력이 5개의 주둔기지에 흩어져 남겨졌기 때문에 각 기지마다 20명 안팎의 경비 병력과 군수군관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시모노세키 항구 한편에 조성된 제13전략물자 사전 전개창고에는 이동 배치되어 올 52병단 병력과 주둔교대를 기다리고 있는 55병단 예하 550단 소속 3개 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현재 서남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정규군인 셈이었다.

이 병력에 비상이 발령되고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서남도 감영이 위험에 처했다는 긴급보호 요청을 받은 550단 지휘부에서 창고 경비대로 명령이 내려온 것이었다.

상급부대인 550단의 명령을 받은 창고장은 곧바로 전 병력에 비상을 발령하고, 그중 2개 대를 무장시켜 기동마차편으로 출동시켰다.

다총과 수탄, 그리고 1개 대당 11정의 현식총과 2문의 구포로 무장한 2개 대가 급히 창고가 있는 항구인근에서 감영이 있는 시모노세키 시내로 달렸다.

새벽의 시모노세키 시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도무지 뭐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인지 출동한 조선군 병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조선군 병사들에게 서남도 감영의 관리들이 한 설명은 아연실색할 내용이었다. 야마구치시의 긴급지원요청을 받고 전날 출동한 서남도 좌포청과 우포청 병력이 전멸당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을 전멸시킨 야마구치시의 폭도들이 현재 시모노세키로 몰려오고 있으며 총포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따라 붙어 있었다.

1개 대는 감영에 방어선을 치고, 1개 대는 태왕의 특명으로 유사시를 대비해 대량의 곡물을 쌓아둔 저장창고로 향했다.

서남도의 백성이 2달간 소비할 정도의 양이 쌓인 창고가 서남도 곳곳에 10여 군데 정도 설치되어있었는데 시모노세키에도 한 개의 저장창고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감영에서는 그곳이 폭도들에게 털리지 않도록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이때만 해도 배치된 조선군 병력은 큰 위기감이 없었다. 무장했다지만 일반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날이 밝으면서 시작된 폭도들과의 시가전으로 조선군 경비대에 뼈저리게 다가왔다.

광해가 등극한 초기의 조선군은 절대적으로 모든 지역의 병력을 뒤섞어 부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주둔지역이 넓어지면서 군 생활 몇 년간 단 한 차례도 자신의 집으로 휴가를 가지 못한 장병이 나오는 등 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그에 따라 원성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조선군도 몇 년 전부터는 출신지 인근 부대로 배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 열도를 관할지로 두고 있던 5전단의 경우 소속 병력의 8할이 일본열도 출신들이었다. 나머지 2할도, 조선 본토에서 넘어온 이주민, 또는 만주 4도에서 이주해온 만주출신 조선인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지금은 모두 해외6도라 불리는 조선의 영토가 된 일본열도에 살고 있는 조선 백성들이었지만.

여하간 그에 따라 5전단 예하 55병단 소속이었던 전략물자 전개 창고 경비대 병사들도 대부분 일본열도 출신들이었다.

그들과 야마구치시에서 시작된 폭도들 사이에서 시가전이 벌어진 것이다.

곤란했던 것은 그 시가전에 시모노세키 백성들의 참여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선본토인들이 일본 열도인들을 죽였다는 시모노세키 백성들의 주장이 군중심리에 얹어지면서 분노로 바뀐 탓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의 저변에는 얼마 전부터 번지기 시작한 소문들로 인해 심화된 조선본토인들에 대한 막연한 박탈감, 그리고 시기심이 깔려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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