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직언(直言)
동일본에서 선거가 준비되는 동안 해군 총사부에서 신형 비행선 탑재 구축함의 탐색개발이 진행되었다.
말이 거창해서 탐색개발이었지 실제 시험선을 제작하거나 설계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고, 해군 총사부 내의 연관 부서 무관들이 모여 일종의 토론을 거쳐 외형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 논의 결과 신형 비해선 탑재 구축함의 외형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수용하는 비행선이 날틀03으로 결정된 상황에서 맞추다보니 구축함으로는 수용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높이의 문제였다.
온달급 구축함의 길이는 원형인 온조급과 마찬가지로 250척(약76M)으로 80척(약24M)의 길이를 가진 날틀 03을 수용하는 것엔 큰 무리가 없었다.
어차피 기존에 수용하고 있던 날틀 02의 경우에도 길이가 70척(약21M)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이의 차이가 너무 컸다. 날틀 02의 높이가 20척(약6M)인 것에 반해 날틀 03의 높이는 커진 기낭의 부피 때문에 45척(약13M)에 달했다.
이정도 높이의 격납고를 구축함 후미에 만들면 배의 균형이 무너져서 운항 상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결론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에 따라 유리급 순양함보다는 작고, 온조급 구축함보다는 큰 비행선 탑재 전투함이 새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사실 이것은 고뇌의 결실이었다. 순양함급 이상으로 비행선 탑재 전투함을 만들 경우 발생할 대규모 비용으로 인해 아예 계획이 좌초될 것을 우려해 구축함보다는 크나 순양함보다는 작다는 어정쩡한 설계 사상을 제시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사항을 보고받은 이순신과 원수부의 참모들은 해당 함선의 필요성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보고된 함선의 규모가 어정쩡하다는 인식을 받은 까닭이었다.
해군은 넓어진 작전 구역에 비해 오히려 함선 수는 이전에 비해 적어진 점을 들어 비행선의 광역 정찰 및 공격 능력을 활용한 입체 전술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육군도 긍정적이었다.
비행선 모함을 대량으로 장비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한 육군은 1척 내지 2척의 비행선 탑재 전투함이 육군 작전지역 인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항공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표명했던 것이다.
해군도 적극적으로 육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작전 예규를 만들겠다고 호응하면서 육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해병대는 아예 해당 함선을 한두 척이라도 해병강습함대에 배속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적극 찬성이었다.
이렇게 삼군이 모두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원수부 회의에서는 무리 없이 통과되었다.
그로써 이 사안이 조선군 최고 사령부로 넘어왔다.
조선군 최고 사령부에는 군부 무관들로만 구성된 통합지휘소와 별도로 몇 개의 하부조직을 거느리고 있는데 신형무기 도입을 검토하고 추진하는 기관도 그런 하부조직 중 하나였다.
‘전투발전단’ 흔히 전발단이라 불리는 이 조직은 예비역 장군들과 재무부에서 은퇴한 재무전문가들, 그리고 장원의 원로 연구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성원 전원이 나이들은 있었지만 경력면에서는 프로스페셜이라 불려야 할 이들이었던 셈이다.
그런 전발단이 태왕의 명으로 원수부에서 올라온 비행선 탑재 전투함의 개발 요청서를 검토했다.
최근 들어 1척으로 단독 작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는 해군의 주장은 작전일지 등을 검토한 결과 사실로 판명되었다.
더구나 이렇게 배치된 함선들은 어느 구역을 집중 방어하지도 못했다. 넓은 구역의 정찰과 경계임무가 부여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이럴 때 해당 작전구역 중 두 곳 이상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해군의 주장도 타당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이전처럼 여러 척이 작전을 하다 몇 척씩 갈라져 파견하는 방법을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군은 1척이 전투함 본체와 탑재 비행선으로 나뉘어 작전을 펼칠 수 있는 형태의 비행선 탑재 전투함을 보유하길 원했다.
문제는 그걸 원하면서도 해군이 제시한 신형 비행선 탑재 전투함의 크기가 순양함보다 작아야 한다는 제약을 걸어두었다는 점이었다.
전발단의 전문가들이 검토한 결과 이럴 경우 비행선 탑재함에 장비될 수 있는 무장의 부족으로 인한 전투력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비행선을 탑재 및 운용하기 위해서는 격납고와 뜨고 내리는 이착륙 장소를 모두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온달급의 경우엔 개조를 거쳐 함교를 앞으로 빼고 후미의 149척(약45M)을 온전히 비행선 운용지역으로 배정했다.
그렇다 보니 나머지 101척(약30M)에 함교와 선수 무장을 모두 실어야 하는 공간 제약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온달급의 경우엔 2연관 일장함포를 2연관 삼함포로 낮추고, 부포도 일속포 2문만 배치했다. 근거리 무장인 폐쇄식 현식총좌의 경우에도 선수에 1정, 후미 격납고 위에 1정만 배치되어 운용되었다.
비행선 운용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배 자체의 전투력을 상당수 희생한 개조였던 것이다.
날틀 02를 운용하기 위한 길이가 149(약45M)척이었다면 그보다 대형인 날틀 03을 탑재,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180척(약54M)의 공간을 필요로 했다.
이 공간을 빼면서도 해군이 원하는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무장을 싣자면 절대로 순양함보다 작은 크기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함선 건조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신형 비행선 탑재 전투함을 개발할 요량이라면 순양함급의 함선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최종의견을 광해에게 제출했다.
광해는 이순신과 우치적 해군 총사를 불러 해당 사안을 논의 했다.
해당함선의 보유에 해군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비행선을 통한 작전의 효율성에 입각해 이순신도 찬성했다.
항공 전력의 유효성에 대해선 이 시대에 광해만큼 잘 이해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비행선의 한계와 위험성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칫 너무 비행선에 기대고 있다가 운용 불가한 상황에 처할 경우 벌어질 전력 공백을 우려한 것이다.
더구나 그런 전력공백을 우려해 비행선 운용이 어려운 기상상황에서도 지휘관들이 무리하게 작전을 펼치다가 비행대원들을 덧없이 잃게 되는 상황도 걱정했다.
거기다 미사일이 없는 이 시대의 함대함 전투는 포격전일 수밖에 없는데 함포의 수를 비행선 운용공간으로 절반가량 빼앗긴 전투함의 효율성에 의문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비행선 모함까지 만들면서 선뜻 비행선 탑재 전투함의 생산과 배치를 주저하는 연유였다.
그런 광해의 우려에 우치적 해군 총사가 해군 지휘관 전원에게 비행선의 한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무리한 운용을 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시키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비행선 탑재 전투함의 배치를 희망했다.
이순신도 해군 함선 1척당 경계영역이 너무 넓어져서 신속한 작전 전개를 위해서는 비행선과 같은 고기동성 무기가 필요하다는 말로 우치적을 지원했다.
결국 광해가 해군의 희망을 수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잔뜩 고무된 얼굴의 해군 총사가 이순신과 함께 물러가자 광해가 거제 건선단지에 신형 비행선 탑재 전투함의 설계를 명령했다.
다만 이 명령에서 광해는 몇 가지 성능을 더 요구했다. 광해는 해당 함선의 설계를 내년까지 완료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날 오후, 장원 화포 개발조에서 신형무기의 시제품 완성보고가 올라왔다.
과거의 무기인 신기전을 광해가 나서서 장원의 기술자들과 현대시대의 다연장로켓과 비슷하게 개량하던 것인데, 근 20년 만에 그것이 일정수준에 도달하면서 시제품 생산이 완료된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지체 없이 달려갔을 광해가 시험사격 후 결과를 보고하라는 명령만 내려 보내고 말았다. 승정원 관리들을 불러 그것을 지시하는 광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무원장이 오늘 저녁 7시에 폐하께 알현을 청하였나이다.”
“7시에?”
“예. 폐하.”
알현을 청한 시간이 일과가 끝난 후의 시간이었기에 광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처럼 사직을 청하려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군. 기다릴 터이니 오라 하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공손히 허리를 굽혀 보인 이항복까지 물러간 침전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광해만 남았다.
요사이 이렇게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상하게 의욕이 없었다. 간혹 이유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광해의 나이가 올해로 불혹(不惑)이라는 마흔에 달했으니 갱년기 일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 깊이가 너무 깊었다.
하긴 이런 상황은 황후가 승하한 이후부터이긴 했다.
“하아······.”
황후 생각을 하자 깊은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이 다른, 이 세상에서 우연히 얻은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을 뒤지고, 그 기억이 맞는지 의심하고 관찰할 필요 없이 온전히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자신의 사람.
함께 있으면 포근했고, 그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바보 같은 농담에도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가, 복잡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손을 맞잡고 함께 정원을 걸어 주던 그녀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게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 속에 광해의 입에서 한숨이 다시 새어나왔다.
“하아······.”
그렇게 깊은 그리움이 광해의 침전을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
7시. 예정대로 재무원장인 김억수가 침전으로 들었다. 한데 그렇게 찾아온 김억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항복은 물론이고, 이순신까지 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고야도의 관찰사로 나가있는 이원익과 함께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보고해도 믿어줄 마음이 있을 만큼 광해가 신뢰하는 총신(寵臣)들이었다.
그들의 방문에 반가워하는 광해에게 김억수가 술을 한잔 내려주십사 청했고, 모처럼 미소를 지은 광해가 주안상을 들이도록 했다.
처음 얼마동안은 신변잡기들로 이야기를 채운 까닭에 분위기는 훈훈했다. 그 분위기를 타고 김억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소신이 긴히 드리고 싶은 말이 있나이다.”
“말씀하시구려.”
“이제 곁에 누군가를 두시지요.”
“무슨 소리요?”
“우리 공주 아기씨에게 어머니를 만들어주셔야 하지 않겠나이까.”
김억수의 말에 광해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말이라면 그만 하시오.”
“폐하. 국모의 자리옵니다. 채우심이 옳다 아뢰옵니다.”
이항복의 지원사격이 있었으나 광해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자칫 말을 더 붙여보기도 전에 태왕이 세 사람의 말문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이순신이 서둘러 나섰다.
“폐하. 폐하께서 바뀌고 계시다는 건 아시옵니까?”
그답게 직선적으로 나오는 이순신의 말에 김억수와 이항복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언사가 너무 직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순신의 말에 광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 황후가 승하했소. 이전과 같을 수는 없는 게 아니겠소.”
“소신이 전장에서 전사하였다고 제 부장이 지휘를 소홀히 한다면 조선은 전쟁에서 패하옵니다.”
“그건······.”
“누군가는 죽어가야 하는 전장에 폐하의 명을 받고 나가 싸우는 장병들도 방금 전까지 곁에서 자신의 등을 지켜주며 함께 웃고 떠들던 전우가 죽어도 전투를 계속 이어 가옵니다. 하물며 폐하는 군왕이시옵니다. 폐하가 조선이옵고, 폐하께서 대한제국이시옵니다. 흔들리지 마옵소서. 빈틈을 보이지 마시옵소서. 적은 도처에 있고, 폐하를 바라보는 적의 눈도 사방에 있사옵니다. 부디 대범함과 강건함을 잃지 마소서.”
감히 누구도 태왕 앞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놓고서는 바닥에 엎드린 이순신을 광해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또한 그의 곁에 함께 엎드려있는 이항복과 김억수도 보았다.
만고의 충신들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광해를 지지해주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한 결 같이 말하고 있었다.
‘태왕이 흔들리고 있노라고.’
“흐음······.”
그날 광해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고, 김억수를 비롯한 세 명의 대신들도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침묵으로 채웠던 만남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직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