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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72화 (272/325)

제272화. 동일본 최초의 선거

이항복의 주도로 새로운 국모감에 대한 대신들의 물밑 인선작업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수면위로 드러났을 경우 태왕의 분노가 터져 나올 것을 우려해서 공론화 없이 대신들 사이에서만 논의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선된 이는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를 배출한 청송 심가의 여인으로 집안은 크게 출사한 이가 없었으나 그 가풍이 검박하고 당사자인 여식의 미모가 뛰어난 것에 비해 성품이 온순하고 차분하다 하여 선택되었다.

권문세가의 여식일 경우 이름을 들이밀기도 전에 내쳐질 것을 감안한 인선이었다.

이항복은 여기에 하나의 패를 더 얹기로 했다. 이순신이 광해가 누구보다 믿는 충신이라면 태왕이 도저히 청을 거절 할 수 없는 이를 한명 더 이일에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움직인 이항복의 발길은 황궁 한편에 마련된 대한제국 재무원 건물로 향했다.

재무원장 집무실로 들어서는 이항복을 발견한 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필운 대감.”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재(無財) 영감.”

무재, 그러니까 재산이 없다는 이상한 호로 불리는 이는 김억수였다. 올해로 72살이 된 김억수는 광해의 삼고초려로 재무원장에 오른 이후, 여전히 그 자리에서 훌륭히 임무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일흔둘이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상재는 여전해서 그가 추진한 제국의 사업들이 모두 탄탄대로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이항복이 은근히 말을 넣었다.

“제가 영감께 어려운 청이 하나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어디 조용히 도와야 하는 제후국이라도 있는 겝니까?”

업무에 관한 청인 것으로 오해한 김억수에게 이항복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하오시면······?”

궁금하게 바라보는 김억수에게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사이 폐하께오서 힘들어 하시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요?”

이항복의 입에서 광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억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 압니다. 요사이 찾아뵐 때마다 수척해지시는 것도 같고. 대전 큰상궁에게 물으니 수라도 잘 드시지 않으신다더군요.”

“그래서 저희도 걱정이 되어 한 가지 방책을 써볼까 합니다만.”

“어떤 방책이시기에······?”

“새로운 국모를 들이시라 주청드릴 생각입니다.”

이항복의 답에 김억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그것은 폐하께오서 극구 반대하시는 일이 아닙니까?”

“압니다. 하나 지금은 폐하의 곁에서 마음을 잡아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 생각했습니다. 대신들과 저는 물론이고, 이 원수께서도 같은 생각이시지요.”

이항복의 입에서 이 원수, 그러니까 이순신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것에 김억수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그런 김억수에게 이항복이 말을 이어나갔다.

“대전 조회에서 주청을 드리는 자리엔 이 원수와 제가 나아갈까 합니다. 그 자리에 영감께서 힘을 보태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흐음······.”

깊은 침음으로 한참동안 고심하던 김억수가 물었다.

“누굴 천거하실 생각이십니까?”

“청송 심가의 여식입니다. 세종조에 왕비를 낸 가문이지요.”

“세종조의 왕비시면······. 소헌왕후를 말씀하시는군요.”

“예. 맞습니다.”

“소헌왕후시라면 현비로 소문이 자자하셨던 분이시니······. 하나 그 가문은 역적으로 몰렸던 것으로 압니다만.”

“무고한 죄를 뒤집어 썼다하여 문종대왕 때 사면되어 복권이 이루어 졌지요.”

“흠······. 어련히 잘 고르셨겠습니까만······. 좋은 여인입니까?”

“혼사를 넣은 명문가가 수두룩할 정도로 뛰어난 규수입니다. 다만 그 집안이 명문가와 연을 맺을 생각이 없다하여 계속 혼사를 거절하고 있다더군요.”

소헌왕후 이후 생긴 가풍이라 주장하였다던가. 하긴 왕후의 집안이었기에 외척을 걱정한 태종의 손에 풍비박산이 났던 경험을 가진 가문이었으니 권력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만도 했다.

“그런 가문에게 그 여식을 왕비로 세우려 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일반 혼사야 거절도 할 수 있겠지만 국혼입니다. 폐하만 승낙하신다면 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한마디로 상대방의 가문에겐 동의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뜻일 터였다.

그런 일처리 방식은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인선한 여인이 권력을 탐하는 가문의 여식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 여인을 새로운 국모로 맡길 주청하는 방식이다. 대전 조회에서 주청 드리겠다는 이항복의 방식은 태왕의 성품상 절대로 받아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가 무슨 힘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함께 노력해 보지요. 다만.”

힘을 보태겠다는 말에 반색을 하던 이항복의 표정이 ‘다만’이란 단서에서 굳어졌다.

그런 이항복에게 김억수가 말을 이었다.

“조용히 주청 드려보면 어떻겠습니까?”

“조······용히요?”

“이른 밤에 술 한 잔 주십사 제가 청해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감과 이 원수, 그리고 제가 간절히 청해보는 것으로 하지요.”

김억수의 말에 이항복이 가만히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좋겠군요. 대신들이 늘어선 대전이라면 폐하께오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으시니.”

“그럴 겁니다. 또 다른 국모를 세워 권력을 탐하려는 시도로 받아 들이실수도 있으시니까요.”

“그렇군요. 제가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역시 무재 영감이십니다.”

이항복의 감탄에 김억수는 그저 겸연쩍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

동일본 막부에서 비롯된 동일본 반란사태는 동일본 대한제국군에 의해 진압된 이후, 조선군의 확인과 안정화 작업까지 거쳐 완전히 끝이 났다.

막부의 반란과정에서 일왕가가 몰살당했고, 막부를 이루던 쇼군의 가문도 진압과정에서 완전히 몰살당했다.

저들의 저항이 마지막엔 자신들의 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격렬한 저항을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동일본엔 기존의 권력기반을 가진 가문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조선의 조정은 나고야와 마찬가지로 동일본을 조선의 영토로 포함할 것을 광해에게 주청하였다.

주청을 받은 광해는 원수부에 명을 내려 동일본 대한제국군 병사들에게 그 뜻을 묻도록 했다. 조선의 영토가 될 것이냐의 찬반이 아니라 동일본의 미래가 어찌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묻게 하였던 것이다.

원수부는 곧바로 태왕의 명을 동일본 대한제국군에 전했다.

이자키 후지하루를 비롯한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은 태왕의 물음에 든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대들의 나라이고, 그대들의 미래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선택은 귀관들의 몫이라 믿는다’

자신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며 태왕이 남긴 말이었다.

그때처럼 태왕은 동일본의 미래를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휘부의 결정으로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에게 광해의 뜻이 전달되었고, 곧바로 장병들 사이에서 토의들이 이루어졌고, 격론이 벌어졌다.

조선의 영토가 되자는 이들부터, 새로이 국왕의 가문을 선출하자는 이들도 있었고, 막부를 새로 열자는 이도 있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딱 한가지였다.

‘투료를 통해서.’

무엇을 하든 투표를 통해서 결정짓자는 것이었다.

투표.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이 아는 한 그것은 조선의 방식이었다.

조선은 어떤 단체이든, 그 규모가 얼마나 크던, 작던 무엇을 결정할 때 구성원들의 투표로 결론을 도출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선거가 도입된 후에 조선에 유행하게 된 방식이었다. 나름대로 조선의 백성들이 선거를 공정한 결정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생각들이 조선군으로 옮겨갔고, 군령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면 가능한 병사들의 의견을 추렴하는 조선군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면 식비를 공지하고, 그 비용 안에서 식단을 짜는 것에 병사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일부터 투표를 활용한다. 그런 일들이 조선군에서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군 지휘부 막사 앞에는 투표를 알리는 공고가 항상 한두 가지는 붙어 있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소 번거로운 그런 결정방식에도 조선군 병사들은 불만이 없었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결정에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병들은 투표에 꽤나 진지했다.

그런 성향이 대한제국군 지휘부를 맡은 조선군 장수들과 군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한제국군으로 전파되었다.

지금은 대한제국군 내부에서도 투표를 당연시 하고 있었다. 그것이 동일본 대한제국군에서 모든 것을 투표로 결정하자고 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자키 후지하루가 한 가지 제안을 내놨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건 어떠한가’하고 말이다.

생각보다 반응들이 좋았다. 결국 여러 가지 방안을 두고 병사들이 투표를 거쳐 결정한 방식은 이자키 후지하루가 제안한 방식이었다.

곧바로 그 결정사안이 광해에게 보고되었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겠다는 것은 독립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아니옵니까? 가납하지 마소서.”

외교부 대신의 주청에 많은 대신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가납하지 마소서. 폐하.”

조정의 대신들은 이참에 동일본을 집어 삼키길 원했다. 일본 열도에 다른 나라를 존속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대신들의 주청에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짐의 뜻은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에게 밝혔다. 그러니 저들의 결론을 지켜보고자 한다.”

광해의 말에 반대하고 나서려는 외교부 대신을 총리대신이 손짓으로 만류했다. 그리고는 총리대신이 앞장서 허리를 굽혔다.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총리대신의 행동에 당황하는 대신들의 귀로 군부인 서반의 맨 앞자리에 서있던 이순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의정부와 군부 최고 신하들의 동의가 나온 셈이다. 여기서 반대를 해봐야 먹히지도 않고, 미운털만 박힌다는 것을 알아차린 대신들이 결국 허리를 접었다.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그렇게 동일본의 미래는 동일본 대한제국군 병사들의 손에 맡겨졌다.

황제의 윤허가 내려지자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은 온 동일본에 방을 붙였다. 그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던지 특별휴가를 신청하여 얻어내곤 모두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 선거의 방식과 그 이점을 설명하기로 했다.

그랬다. 동일본 대한제국군 장병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는 대신 어설프더라도 동일본 백성들 전체의 의견을 모아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선거라고는 단 한 번도 치러본 적이 없는 동일본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전국선거가 벌어진 셈이었다.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던지 광해가 조선의 선거를 관리하는 사간원에 명해 사간원의 관리를 동일본으로 보내 돕도록 했다.

그런 광해의 명에 따라 사간원에서 선거 관리 업무를 맡아보던 관리 십여 명이 부산포에서 정기선에 몸을 싣고 동일본으로 향했다.

역사서에 동일본 최초의 전국 선거라 기록되는 일대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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