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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62화 (262/325)

제262화. 대양 체제로의 전환

“반대······, 입니다.”

단장들의 답은 모두 같았다. 그 예상외의 결과에 이자키 후지하루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병사들의 생각인가?”

“예. 저는 솔직히 본국의 막부와 뜻을 같이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병사들과 하위 지휘관들 다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한 단장의 답에 또 다른 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제 생각과 병사들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두 단장의 말에 이자키 후지하루가 물었다.

“반대하는 병사들의 비율은?”

“삼분지 이 이상입니다.”

“저희 단은 찬성의 비율이 극히 낮습니다. 2할도 채 되지 않습니다.”

두 단장의 답에 이자키 후지하루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고개를 올려 위로 시선을 주었다.

하늘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는데 천막 지붕이 보였다. 자신 마음만큼이나 답답한 광경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이자키 후지하루가 결론을 내렸다.

“병사들의 뜻에 따르겠다고 공언한 이상, 결론에 승복한다. 반발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잘 다독이도록.”

이자키 후지하루의 말에 단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마음이 복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왜 아닐까. 본국을 배신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마음은 본국의 막부와 함께 행동하고 싶었지만 머리는 지금의 결정이 옳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오는 복잡한 심경을 애써 내려앉히며 이자키 후지하루가 막사를 나섰다.

대월 정벌군은 두 가지 지휘계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선 조선군이 중심이 된 할롱 주둔 대월 정벌군은 임시로 재건된 산악전단장 지세창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그와 달리 대월의 북부에 주둔하여 작전을 수행 중인 5만의 대한제국군은 작전지원대를 이끌고 파견된 정기룡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계급은 둘 다 3품 대호군으로 대장군의 직급이다. 누구 한사람이 선임이라 자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한제국 군사부를 겸하는 조선군 원수부에서 이 두 사람 중 선임 지휘관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지휘권을 행사할 경우, 양측의 거리가 떨어져있어 원만한 작전지휘가 어려울 거라는 점을 고려한 조처였다.

대신 양측의 작전 중재를 원수부가 직접 챙겼다. 이순신은 그것을 위해 원수부 통합지휘소에 아예 대월 정벌군 지원조를 꾸려 놨다.

그런 대월 정벌군 지원조로 할롱 주둔 조선군 사령부의 전문이 들어왔다.

그것을 통신군관으로부터 전달받은 이는 통합지휘소의 좌부장이었다. 원수인 이순신이 근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합지휘소를 지휘할 이들을 일러 중, 좌, 우 부장이라 부르는데 흔히 이들 셋을 모두 합해 원수부 삼부장이라 칭한다.

이들은 셋 모두가 3품 대호군직에 오른 대장군들로 현대 시대로 보면 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정도에 준하는 직책을 맡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셋이나 되는 것은 야간근무를 순환하여 맡기 때문이었다.

조선군 원수부의 통합지휘소는 당직 지휘를 이 삼부장이 전적으로 도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순환당직이라 해서 육군과 해군, 그리고 해병대의 부총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야간 당직을 선다.

그 세 번의 당직이 삼부장이 쉬는 날이었다. 다시 말해 삼부장이란 직책은 상당히 고된 자리였던 셈이다.

그런 삼부장 중 한명인 좌부장이 통합지휘소의 전령을 보내 퇴궐하여 사가로 돌아간 이순신에게 할롱에서 도착한 전문을 전하도록 했다.

압록강에 인접한 강안 지역은 수려한 풍광으로 인해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많이 들어선 지역이었다. 태왕이 하사한 이순신의 사가도 그 강안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통합지휘소 전령으로부터 전문을 전달받은 이순신의 입가로 부드러운 미소가 깃들었다.

퇴궐한 자신을 찾아 소식을 전해야 했을 정도로 시급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순신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걱정하던 일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좌부장도 그런 이순신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주고 싶어서 굳이 전령을 보냈을 터였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이순신도 자신만큼이나 걱정하고 있을 태왕을 떠올렸으나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잠시 일었던 갈등을 접어두고 수고했다는 말로 전령을 돌려보낸 이순신이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대전 조회에서 이순신이 보고한 것은 할롱 주둔 동일본 대한제국군이 조선군에 항복한 소식이었다.

여태까지 함께 힘을 합해 대월군과 싸워와 놓고서는 무슨 항복인가 싶겠지만 광해는 그 말을 재빨리 이해했다.

동일본 막부가 일으킨 조선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러니 동일본 대한제국군의 입장 상 조선군에 항복의 형식을 취해 저항의지가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또한 동일본 대한제국군 지휘관의 보고에 의하면 대부분의 장병이 반란 가담을 반대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무장 상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항복을 받아들여 무장해제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을 통해 해당 보고를 받은 광해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복은 받아들이겠소. 아울러 해당 부대원 전원을 오늘부로 전투에서 제외시키고 조속히 부산포로 이동 조치하시오.”

태왕의 그간 행동으로 미루어 나고야 대한제국군 병력처럼 조선군으로 흡수할 것이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에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이순신이 물었다.

“귀국······, 시키는 것이옵니까?”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요.”

“하온데 어찌 하시어······. 외람되오나 대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병력을 뺀다는 것은 남은 병사들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이옵니다. 그러니 통촉하여 살펴주시옵소서. 폐하.”

이순신의 간언에 광해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흔들릴 조선의 병사들은 아닐 것이라 믿소. 그리고 동일본 대한제국군 병사들을 둔다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오.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행동에 조심했겠지만 이젠 결정이 섰으니 뜻을 달리하는 이들은 움직일 것이 분명할 터. 원수가 걱정하던 분란이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으니 차라리 부산포로 데려오는 것이 나을 것이오.”

길게 이어진 설명으로 광해의 생각을 이해한 이순신이 두말없이 물러났다.

그런 이순신에게 광해가 물었다.

“2차 원정군의 귀환 일정은 어찌 되어가고 있소?”

“현재 11, 12 수송함대가 2차 원정군을 탑승시킨 채 귀환 중이옵니다. 현재의 여정대로라면 2월 말에는 부산포에 당도하게 되옵니다.”

“병사들의 반응은 어떻다 하오?”

“다른 제후국의 병사들은 귀국의 기쁨에 들떠 있다고 들었사오나 동일본 병사들의 경우엔······. 복잡하다 하옵니다.”

말을 잠시 끌다 복잡하다 말했으니 아마도 태왕을 저주하며 분노를 감추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터였다.

하긴 광해, 자신이어도 그럴 테니까.

“안전사고에 유의 하도록 지시하고. 나고야 병력은 어찌 하고 있다하오?”

광해의 물음에 이순신이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것이······. 이건 좀처럼 생각지 못한 반응이온지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요?”

“그것이······. 보고대로라면 나고야 출신 병사들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답니다.”

“잘 되었다?”

“비로소 조선의 백성이 되었다고······. 돌아와 조선군에 남을 수 있는지 문의하는 병사들이 많았다고 하옵니다.”

동일본에 비해 조선을 따라 배우기에 열심이었던 나고야 왕국이었다지만 그들도 왜 특유의 다이묘 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권력과 부의 편중이 해소되지 않았고, 백성들의 삶도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더구나 나고야의 경우엔 동일본과 달리 조선의 땅이 된 관서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어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져서 비교대상이 바로 코앞에 있는 셈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윤택해지는 관서도 백성들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깊었는데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니 일반 백성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병사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나고야의 경우엔 동일본처럼 대대적인 살육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일도 그다지 없었다.

더구나 일자리 얻기가 어려운 나고야와 달리 조선의 영토가 되면 당장 조선군에 남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던 나고야 출신 병사들은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을 나고야가 제공했으니 조선을 침략자라 비난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망국을 슬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희망에 부풀어 있다니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보고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고야 출신 병사들 중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선군 임용 기준에 부합되는 한 조선군에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하라.”

광해의 명에 이순신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조회의 다음 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이순신이 요청한 조선군의 대양군 체제로의 전환문제였다.

이 사안이 광해와 이순신의 독대나 조선군 최고 사령부 회의석상이 아니라 대전 조회에서 언급된 것은 대양군 체제로 전환할 경우 행정구역의 조정도 병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대만도의 관할이 태평양과 인도양에 걸쳐 있었고, 녹주도의 관할지도 인도양과 대서양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양군 체제로 전환되었을 때 주둔군의 지휘권과 관할권 문제가 대두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해서 이 원수는 어찌 변경했으면 하는 것이오?”

광해의 물음에 이순신이 답했다.

“세세한 것은 폐하께오서 국토부의 의견을 청취하신 후 결정해야 하겠사오나 소신과 원수부의 의견은 대양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정리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이순신의 답이 끝나기 무섭게 국토부 대신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굳이 잘 돌아가고 있는 군을 대양군 체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옵니까? 행정구역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나이다. 이제 와서 또 변경한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백성들의 혼란을 가중시킬까 두렵사옵니다.”

국토부 대신의 말에 광해가 이순신을 바라봤다. 직접 설득해 보라는 의미였다.

광해의 그 시선에 이순신이 나섰다.

“대양군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은 현재 각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의 지휘체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오. 간단히 실례로 들면······.”

이후 이어진 이순신의 설명은 이러했다.

대만도에 속한 동티모르가 정체불명의 무리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경우, 현 체제대로면 동티모르 주둔군 지휘관은 대만도를 관할로 두고 있는 5전단 예하 54병단 지휘부로 상황을 보고한다.

이 경우 54병단장은 상급부대인 5전단 상황실로 보고하고, 다시 5전단 상황실은 육군 총사부 상황실로, 이후 육군 총사부는 다시 조선군 최고 사령부와 원수부로 동시에 상황을 보고한다.

여기서 최종 결정은 조선군 최고 사령부에서 내려지고 그 결정은 다시 역순으로 동티모르 주둔군 지휘관에게 내려간다.

작전 결정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길다는 것이다.

또 하나, 동티모르에 대한 지원을 실시할 경우 현 체제라면 54병단이 우선 지원부대이다. 포라중에 주둔 중인 54병단 예하 부대가 주둔 함대의 지원 하에 출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리상 가장 가까운 지역은 암본과 반다제도이다. 행정구역상 대만도에 속한 지역이지만 이 두 지역의 주둔군은 해병대 해외영토 방어부대였다.

점령 초기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해병대가 현지인들을 징집해 훈련시켜 사용한 이래, 두 지역의 주둔군은 조선 본토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 현지 해병대가 맡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해병대는 육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이들을 통합지휘하기 위해서는 원수부 통합지휘소나 조선군 최고 지휘소가 매 작전 개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부대의 규모 상 적절한 지휘체계는 아니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동티모르뿐만 아니라 대양에 흩어져있는 해외 영토라면 어디라도 터질 수 있었다. 그것을 일정한 구역단위의 통합 지휘소로 묶는 과정이 바로 대양군 체제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의 설명이 주요했던지 국토부 대신이 물러서자 조선군만이 아니라 조선의 행정구역을 대양을 기준으로 크게 나누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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