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이항복의 복귀
광해 12년, 서기로는 1614년이 밝았다.
새해가 밝았지만 조선은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였다. 황후의 승하이후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황실의 종친들을 초대해 조촐하게 베풀던 연회도 올해는 취소가 되었다. 대신 광해는 태자와 태자비를 데리고 황후가 묻혀있는 화릉에 다녀오는 것으로 새해의 첫 일정을 소화했다.
그렇게 새해 연휴를 황실은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맞은 초6일. 확대문무 백관회의로 조선 조정의 새해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대만도와 남포르투갈도, 녹주도, 그리고 북미도로 이루어진 원해4도의 관찰사들은 전신으로 연결하고, 그 외 지역의 관찰사들은 모두 입조했다.
여전히 벼락 연구소의 음성통신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다소 시간이 걸리는 전신으로 원해4도의 관찰사들이 의견을 개진했다.
가장 먼저 올라온 안건은 새롭게 조선의 강토로 편입된 나고야도를 관할하는 관리들의 등용문제였다.
의외로 대신들은 현직에서 물러나 있던 이항복을 추천해 올렸다.
고향으로 낙향해 있던 그는 황후가 승하한 이후 넋을 놓았던 태왕을 설득해 달라며 총리대신인 정인홍이 신의주로 불러올린 이래로 계속해서 황도에 있는 자신의 사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광해는 그런 대신들의 청을 거부했다. 원지(遠地)였던 남포르투갈도에서 다년간 고생한 노관리를 다시 원지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 광해가 거부한 연유였다.
그런 광해의 거부에 총리대신인 정인홍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을 천거했다.
“하오면 이원익은 어떠하시겠나이까?”
총리대신의 물음에 광해가 물었다.
“무슨 생각인가? 이항복도 그렇고 지금 거론한 이원익도 그렇고 그대들이 다시 등용하라 말할 사람들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광해가 아무리 개혁을 했다고는 해도 정치는 세력싸움이었다. 이항복이나 이원익 정도의 무게를 가진 사람이 다시 조정에 기용되면 그만큼 지금까지 조정의 중심을 맡고 있던 이들의 세력이 줄어들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당장 이원익을 등용하라 주청한 총리대신 정인홍의 자리가 위험해질 터였다.
누가 뭐라 해도 이원익은 태왕의 신임이 두터웠던 전임 총리대신이었고, 이항복은 조선의 모든 관리가 인정하는 태왕의 총신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총리대신인 이인홍은 자신의 세력을 깎아먹을 사람을 불러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광해의 물음을 정인홍도 제대로 알아들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폐하께오서 마음을 둘 만한 신하를 곁에 두심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각하였나이다.”
한마디로 광해가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열어 보일 신하를 곁에 두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런 신하로 정인홍은 이항복과 이원익을 꼽은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이라면 광해가 이순신만큼이나 신임하는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돌려 말하며 정인홍 본인은 태왕으로부터 그 정도의 신임을 받지 못함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고, 행동인지 잘 아는 광해가 정인홍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광해 자신을 지지하는 대신이긴 하나 그 성정이 고지식해서 유연함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었건만 자신이 손해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황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 행동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총리대신의 마음이 짐을 기쁘게 하는구려. 고맙소.”
“어이 당연한 일에 고맙다 하시옵니까? 소신의 책무를 다하였을 뿐이옵니다.”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고지식한 노신의 답에 오랜만에 광해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하면 총리대신의 천거를 받아들여 이원익에게 나고야도 관찰사의 직을 내리 하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광해의 물음에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의 뜻이 지당하시옵니다.”
“하면 그리 정하여 거행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대신들의 복명이 일제히 터져 나온 이후 광해가 내친김에 이항복까지 조정으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아울러 이항복에게 승정원 도제조를 제수(除授)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세종조에 기틀을 완비한 후 줄곧 승정원의 수장은 도승지였다. 승정원에 고문(顧問)에 해당하는 도제조를 둔 적은 아직 없었으나 대신들은 태왕이 자신의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이항복을 가까이 두려 하는 뜻임을 알고는 반대하지 않았다.
“폐하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대신들의 복명에 광해가 난데없이 상전을 모시게 된 도승지, 허균을 돌아봤다.
“도승지는 서둘러 교지를 작성하여 두 노신을 입조케 하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깊게 허리를 숙여 보인 허균의 눈짓에 배석해 있던 좌부승지가 재빨리 움직였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황제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도승지 대신에 좌부승지가 교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안건이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된 이후 나고야도에 관한 사항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최초 점령지에 적용하던 관례대로 나고야도는 내년에 이장 선거를 실시하고, 그 2년 후 다시 이장과 읍장선거를 실시하기로 했다.
시장과 관찰사 선거는 그 이후에 다시 논하여 정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 안건은 갑작스런 나고야, 동일본 전투로 미뤄진 하와이 점령건이었다. 외교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러 개의 소왕국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하와이는 복속을 거부했다.
광해로써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거점인 하와이 제도를 그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하와이에 투입할 병력이 없었다. 지금도 예비군이 30만이나 동원된 상태였다. 더 이상의 병력 누수는 조선이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광해는 대월 전선을 먼저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가능한 방법도 연초에 생겼다.
며칠 전, 휴스턴으로 보냈던 지증급 헬륨 수송선이 헬륨 기체를 만재한 채 귀환했던 것이다. 광해는 그렇게 도착한 헬륨 기체를 모두 사용해 비행선을 완성하도록 명령을 내려두었다.
거제 건선단지 한쪽에 별도로 마련된 비행선 제작소에는 이미 20대의 날틀03과 이순신의 요청으로 수송용에서 공중포격용으로 개량된 날틀04 5대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들의 기낭에 이번에 도착한 헬륨기체만 채우면 언제든지 비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시험기들을 활용하여 조종사들의 육성도 마무리 단계였던 까닭에 완성만 되면 곧바로 실전 투입도 가능했다.
그에 따라 광해는 확대 문무백과 회의가 끝난 직후인 16일, 비행선들을 투입하는 것과 동시에 대월 전선에서의 대규모 공세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 두 가지를 결정지은 직후 맞이한 점심시간에 관례대로 광해와 대소신료들이 모두 대전에서 수라간이 마련한 점심을 먹었다.
황제의 음식 외에는 만들지 않기로 유명한 수라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대소신료들은 굉장한 영광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휘황찬란한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황실의 수라가 검박하다는 것은 이미 태자의 국혼례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소문이 난 것이니 모르는 대소신료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신(神)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황제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작은 소반에 한 가지 국과 4가지의 반찬으로 차려진 점심상은 대소신료들 앞에 놓인 것이나 황제의 앞에 놓인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황제와 함께 점심을 들고난 후 나온 차를 후식삼아 잠시의 여유를 즐기던 시간에 좌부승지가 만들어온 교지가 광해의 앞에 놓였다.
이원익과 이항복을 임명하는 교지였다. 그것에 광해가 조선 황제의 옥새를 찍어 내어주자 좌부승지가 그것을 소중히 갈무리하여 서둘러 움직였다.
이원익과 이항복에게 직접 전하고 곧바로 회의에 참석하도록 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좌부승지가 떠난 직후 오후 회의가 속행되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로 시작되었던 오전과 달리 오후 회의는 고성으로 물들었다.
오후 첫 안건으로 올라온 것이 새로운 국모를 맞으라는 대소신료들의 주청이었기 때문이다.
국모의 자리는 황제의 자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단 하루도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 대소신료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광해는 불같이 분노하며 대소신료들의 주청을 뿌리쳤다.
이전에는 황실의 내밀한 일에 대신들이 간섭하지 말라는 광해의 분노어린 외침 한마디로 입을 다물고 감히 다시 논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대신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광해와 대신들 간의 설전이 길게 벌어졌다. 그 와중에 정인홍이 나섰다.
“폐하. 공주 마마를 생각하소서. 국모의 자리가 비워있는 상태에서 공주 마마를 어찌 훈육하려 하시나이까?”
“유모를 통하면 된다!”
“황실 자손의 훈육은 반드시 황후가 직접 책임지는 것으로 왕실의 법도를 세우신 것이 바로 폐하시옵니다. 그것을 다른 이도 아니고 폐하께오서 어기실 생각이시옵니까?”
“그건······.”
“아비는 가르치고, 어미는 보듬어 안는 것이 인지상정이옵니다. 공주 마마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의 백성들과 나아가 대한제국의 백성들을 어미 없는 자식으로 만들지 마소서.”
“만들지 마소서!”
정인홍의 뒷말을 따라 대소신료들이 모두 외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것에는 이순신도 함께 하고 있었다.
믿었던 이순신마저 대소신료들과 뜻을 같이하자 광해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뜻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새로 황후를 들였다가 덜컥 왕자라도 낳게 되면 황실의 분란이 야기될 공산이 너무 컸다.
아무리 광해가 조심하고 경계한다고 해도, 사람의 욕심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없는 법이다.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난 친형제끼리도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마당에 배다른 형제라니.
어린 태자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짊어지우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광해는 아예 그럴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에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전례를 만들어 후대도 모두 따르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광해는 단호히 거부했다.
오후는 온통 그 문제로 소비된 탓에 다른 안건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만찬가지여서 밤 9시에 회의를 폐하면서 광해가 오늘은 헛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하였다며 한탄 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새로운 국모의 문제는 둘째 날부터는 다뤄지지 않았다.
그 안건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면 아예 확대 문무백관 회의에 참석할 생각이 없다는 광해의 최후통첩이 이항복을 통해 대소신료들에게 전달 된 까닭이었다.
그로인해 둘째 날 부터는 중앙부처와 지방 감영간의 조율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가 확대 문무백관 회의 중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시기다.
각도 감영의 입장과 중앙 조정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손해를 덜 보는 형태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수싸움과 논리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논쟁을 지켜보던 광해가 관여하여 통 크게 지원책을 꺼내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굉장히 희박해서 대부분은 중앙 조정과 각 감영간의 논쟁을 통한 합의로 사안을 결정짓는다.
그렇게 길고 긴 회의가 앞으로도 8일이나 더 이어질 예정이었다.
조정에서 연일 확대 문무백관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거제 건선단지 일원에 조성된 비행선 제작소는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완성된 비행선들의 기낭에 헬륨 기체를 불어넣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쪽에서는 헬륨 기체 공급이 이뤄지고, 또 한쪽에서는 공급이 끝난 비행선의 최종 성능 점검이 진행되었다.
그 일정이 모두 끝나면 비행대원들이 탑승하는 실제 시험 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