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슬픔이 조선을 덮다
나고야 왕국의 마에다 토시나가 국왕으로써는 이번 사태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해서 벌어진 반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전히 국왕과 실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던 다수의 다이묘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세자와 연로해진 다이묘들을 대신해 나간 젊은 후계자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던 까닭이다.
그나마 그들은 후계자들이라도 연관이 되어있었지 병력만 보내고 다이묘도, 후계자도 참여하지 않았던 영지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가시와자키에 조선군이 상륙하자마자 백기를 들고 달려온 다이묘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군은 그런 다이묘들과 나고야 병사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수용소를 만들어 가두어 둔 것은 아니었지만 무장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당황했지만 다이묘들은 그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긴 가시와자키에 상륙한 조선군 병력이 10만에 달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저항 의지 같은 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열을 정비한 조선군이 차례차례 상륙지를 떠나 나고야 왕국을 점령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기를 들고 찾아온 다이묘들과 병사들은 비무장인 상태로 그런 조선군을 따라 움직였다. 자신들의 영지가 조선군에게 저항하는 것을 방지하여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였다.
조선군 지휘부가 그런 항복 다이묘들의 동행을 허가했다. 그런 까닭에 나고야 점령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백기를 들고 찾아온 다이묘가 아니더라도 조선군에 대항을 선택하는 영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고야가 그렇게 평탄하게 점령 작전을 수행해나가기 시작한 것과 달리 동일본 왕국에 상륙한 예비군 2군단은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판단한 동일본 내 모든 영지들이 필사적인 저항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광해는 해당 보고를 원수부로부터 받고는 동일본에 대한 말살을 명령했다.
과거 북원의 반란으로 제후국들이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그보다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제후국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광해의 뜻이 원수부를 통해 동일본 정벌군 사령부로 전달되었다.
7전단장 겸 동일본 정벌군 사령관인 정충신이 그런 태왕의 뜻에 따라 무포로, 무생존자 정책을 결정하여 전 부대에 통보했다.
상륙과 동시에 동일본 정벌군에 편입된 예비군 2군단을 포함해 북상을 시작한 특수임무부대 4개 여단이 전투 방식을 바꾸었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던 것에서 바꾸어 무자비한 살육전이 전개된 것이다. 도시란 도시는 모조리 포격하여 파괴하고, 병력이 투입되어 완전 일소(一掃)했다.
동일본의 피해가 시간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동일본의 영토에 살고 있던 생명체면 사람이고, 가축이고 가리지 않고 살상되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이 극도로 높아졌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후유장애를 걱정해서 가능한 포격전으로 도시를 묵사발을 내는 것을 선호했다. 아무런 저항의지가 없는 아이들이나 노인, 부녀자들을 살해하면서 받는 병사들의 충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국일 지라도 민간인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던 기존의 확고한 방침을 바꾼 것에 대한 병사들의 혼란도 적지 않았다.
하긴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 교육이 굉장히 강력하게 진행되는 곳이 조선군이었기에 그 혼란은 예상외로 심각했다.
보고를 받은 광해가 동일본 정벌군에 교지 하나를 내려 보냈다.
<동일본 말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짐에게 있다. 그대들은 짐의 황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명을 수행한 것일 뿐이다. 죄도, 업도 모두 짐의 것이다. 그대들은 짐이 휘두른 검일 뿐이니, 행한 모든 일에 뜻을 두지 말라>
병사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조처였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동일본의 상황이 너무 처참했다.
살려 달라 울부짖는 아이들과 부녀자들, 병석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들, 심지어 임산부와 갓난아이들까지 참살해야 했던 병사들로써는 그 일을 행한 자신들을 그저 태왕의 명을 좇은 것뿐이라는 핑계로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반대로 전쟁의 악마적 충동에 빠져버리는 병사들도 생겨났다. 필요이상으로 잔인한 방법으로 살육을 벌이는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찰군교(현대시대 헌병 또는 군사경찰)가 그런 병사들을 잡아들이고는 있었지만 죽이라고 명령해놓고 정작 죽였다고 잡아들이는 상황이니 그 이율배반적 상황으로 인해 기찰군교들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동일본 전선이 혼란으로 가중될 때 조선 황궁에서도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정일을 훌쩍 넘긴 황후의 출산이 시작되면서 난산으로 번진 것이다.
왕립 조선 종합병원에 파견 나가있던 어의들은 물론이고, 산부인과에 실력 좋기로 소문난 의원들이 모조리 동원되었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실제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했다지만 현대시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 조선의 의술이었다.
더구나 산부인과 계통은 그 발전 속도가 거북이보다 더 느렸다. 여전히 유교적 사고가 남아있는 조선인들은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남성 의원의 경우엔 아예 산부인과로 진출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일부 여성 의원들만이 산부인과로 진출했다.
의료품 개발도, 의료기술 발전도 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게 부족한 의료인 숫자와 산부인과를 찾는 병자들의 부족, 그리고 인식의 부족이 결합된 결과였다.
광해도 산부인과에 대한 별도의 지원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기에 그런 경향은 광해의 의료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정책 속에서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광해의 자책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산부인과가 아니어도 의술이 좋다는 외과 의원들이 태왕의 특명으로 총동원되었다. 지금은 황실의 법도이고 나발이고, 황후의 출산이 무사히 끝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황실은 물론이고, 조정의 모든 대소신료들이 긴장한 채 황후의 출산에 모든 이목을 집중시킨 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산실 밖에서 긴장된 신색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광해의 귀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산파의 소임을 맡은 여의원과 의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외과 의원들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훨씬 바빠지기 시작했다.
공간의 협소성으로 밖에서 대기하던 외과 의원들이 부름을 받고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광해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후, 산실 안에서 들려오는 상궁 나인들의 울음소리에 얼굴이 굳은 광해가 상궁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산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황후가 핏속에 누워있었다.
온통 헤집어진 아랫도리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고, 얼굴은 핏기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광해의 모습을 확인한 어의가 서둘러 하얀 광목천으로 황후의 하체를 덮었다.
그런 황후의 위에 올라탄 여의원 한명이 광해가 의원들에게 전파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수분, 수십 분에 걸친 시도에도 황후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 명의 여의원이 돌아가며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의 충격에 황후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를 상하게 한 것이다. 돌아오지 않은 숨에도 불구하고 오랜 새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폐해였다.
“그만!”
차마 볼 수 없었던 광해의 명이 떨어지자 여의원이 황급히 황후의 몸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죽여주소서.”
그와 동시에 어의를 비롯한 산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엎드려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죽여주소서.”
부들부들 떠는 광해의 발길이 간신히 황후의 곁으로 그를 옮겨놓았다.
“화, 황후······.”
목이 메어 잘 나오지도 않는 음성으로 아무리 불러도 황후는 답도, 눈도 뜨지 않았다.
광해가 잘게 떠는 손길로 황후의 볼을 감싸 쥐자 서늘하게 와 닿았다. 피를 얼마나 쏟았던지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황후의 얼굴이 새하얗게 바래 있었다.
“서안······. 이보시오, 황후······.”
아무리 불러도 황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눈을 뜨고 작게 미소 지을 것만 같은 황후의 얼굴을 바라보며 광해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털썩 무릎을 꿇은 광해가 눈물범벅인 얼굴을 황후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그 상태로 황후의 귀에 대고 끊임없이 ‘미안하다’ 말하는 광해의 눈물이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흥건한 피와 뒤섞이고 있었다.
온 조선에 황후 승하의 비보가 전해졌다. 조선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나고야와 동일본 점령전도 잠시 중단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월 전선과 북미 대륙 점령 작전도 중단되었다. 온 조선군과 대한제국군이 그곳이 어디이든 백색 띠를 철모에 두르고, 모든 전투를 중단한 채 황후의 죽음을 애도했다.
소식을 들은 명왕이 황급히 황도인 신의주로 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례절차가 개시되었지만 황후의 입관조차 하지 못했다. 광해가 산실에 그대로 황후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총리대신인 정인홍이 설득을 시도했으나 광해는 입조차 열지 않았다.
결국 정인홍이 이항복과 이원익을 조정으로 불러 태왕을 설득해주길 청했다. 그 둘은 태왕을 설득하는 대신 산실 앞에 엎어져 구슬피 곡을 하며 우는 것을 택했다.
지금은 설득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것이 태왕에게 필요한 일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두 노신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실 안의 광해는 멍한 얼굴로 하얀 황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에 대소신료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원수부에 소식을 넣어 이순신을 청했다.
상례(喪禮)에는 전쟁으로 피를 보고 있는 무관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관례마저 깬 일이었다.
궁으로 든 이순신은 태왕이 머물고 있다는 산실로 향하지 않고, 태자를 먼저 찾았다. 이순신이 찾은 태자 호는 광해만큼이나 피폐해져있었다.
그나마 그의 곁에 태자비가 된 안 도트리슈 공주가 붙어 위로를 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런 태자에게 이순신이 말했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어마 마마의 승하를 슬퍼하고 있습니다.”
“제국은 여러 곳에서 전쟁 중이고, 수천만 백성들은 황실만을 바라고보 있습니다. 폐하의 슬픔이 깊어 수렁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계신다면 태자 전하께서는 어찌 하셔야 하십니까?”
이제 막 어미를 잃은 겨우 11살의 태자에겐 가혹한 말이었지만 이순신은 지금의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태자라 믿었다.
태왕을 자극해서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태자뿐이라고 말이다.
이순신의 말에 태자 호가 물기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경은 내게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라 말하는 것인가요?”
“하면 저리 폐하를 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황후와 함께 있는 광해를 ‘홀로’라 표현하는 이순신의 말에 태자 호의 눈에서 기필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런 태자에게 이순신이 말했다.
“슬픔은 마음에 담으소서. 차마 폐하께는 드릴 수 없는 말이나 태자 전하께는 이 어리석은 무부(武夫)가 감히 말씀 올립니다. 머리를 차갑게 가지시고 마음은 무겁게 쓰소서. 지금은 태자 전하께서 일어나 움직이실 때이옵니다.”
그 말과 함께 이순신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조선군 최고의 장수에게 깊은 군례를 받은 태자에게 안 도트리슈 공주, 아니 태자비가 조용한, 그러면서도 꽤나 또렷한 조선말로 말했다.
“전하······. 이제 일어나소서.”
자신을 바라보는 태자에게 태자비가 말했다.
“황제 폐하는 물론이고, 이제 갓 태어난 동생도 챙기셔야 하옵니다.”
“아!”
태자비의 말에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생각이 미친 태자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소매로 눈물을 훔친 태자가 말했다.
“갑시다. 먼저 아기에게로.”
휘청한 첫걸음과 달리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은 온전히 힘을 찾아 성큼성큼 걷는 태자를 따라 태자비가 움직이자 이순신도 군례를 거두고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