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양파 벗기기
동일본 영지군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혼다 마사즈미는 아라카와강 전투의 패배에 큰 시름에 잠겨 있었다.
조선군과의 전투를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지만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수군이 문제였다.
임진년에 벌어졌던 조선과의 전쟁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있어서 조선은 가히 괴물과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조선과의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 자에 두려움을 품지 않는 일본인은 없다. 동일본 뱃사람들 중 일부는 살아있는 이순신을 기리는 사당을 지어놓고 제를 올리는 이들까지도 있다.
사람의 탈을 쓴 신이라 믿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선의 수군, 아니 해군이 다시금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당장 동일본 영지군 병사들이 공포에 물들었다. 하긴 화포로 아무리 쏴도 꿈쩍도 않는 배에서 총탄을 비 오듯 쏘아대니······. 그 모습을 목격한 자신도 오금이 저려서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을 지경이었으니 농사나 짓던 영지군 병사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혼다 마사즈미를 비밀리에 찾아온 이가 있었다.
“누가 와?”
“나고야 왕국의 사신이라 합니다.”
“마에다 토시나가 그 배신자의 사신이란 말인가!”
대번에 눈을 찌푸리는 혼다 마사즈미에게 가신이 재빨리 답했다.
“그의 양자인 마에다 토시츠네의 사신이라 합니다.”
마에다 토시츠네라면 나고야 왕국의 국왕에 오른 마에다 토시나가의 양자가 되어 왕세자가 된 자였다.
“그런 자가 내게 사신을 왜?”
“그것이······. 나고야 왕국군이 동일본의 영토를 밟았다 합니다.”
순간 혼다 마사즈미의 표정이 굳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에 대한 어떠한 보고도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 그 탓에 쉽게 믿을 수 없었던 혼다 마사즈미가 서둘러 그에 대한 소식이 있는지 확인해 오라 명하고, 마에다 토시츠네의 사신이란 자를 들였다.
외인, 그것도 적대국의 사신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인지 무장한 무사 네 명이 길게 앉아 있는 자리 밑에 엎드린 마에다 토시츠네의 사신은 생각보다 젊은 자였다.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소인은 미우라 토모카즈라 합니다. 합하.”
합하라는 호칭에 눈썹을 움찔거린 혼다 마사즈미가 호통을 쳤다.
“갈! 감히 서푼의 혀로 이간질을 하러 온 것인가!”
“아닙니다. 어찌 제가 이곳에 와서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저 저의 주군이신 마에다 토시츠네 왕세자 저하께오선 장군을 그리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웃긴 수작질이로구나.”
“곡해하지 마십시오. 제 말을 오해하신다면 국왕 전하의 뜻과 달리 저를 장군께 보내신 마에다 토시츠네 왕세자 저하의 뜻이 어긋나게 됩니다.”
“그깟 나고야가 제멋대로 세운 왕세자 따위의 뜻이 어긋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강경하기만 한 혼다 마사즈미에게 미우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에다 토시츠네 왕세자 저하의 뜻이 장군의 부귀와 영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같지 않은 소리! 내가 부귀와 영화 따위에······.”
“조선에 함께 대항하고자 하십니다.”
미우라의 한 마디에 혼다 마사즈미의 말문이 막혔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에 함께 대항한다?”
“나고야 왕국은 조선의 명에 따라 군대를 동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 말에 시선을 들어 가신을 바라봤지만 조용히 가로저어지는 고갯짓만 돌아올 뿐이었다.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랬기에 혼다 마사즈미는 미우라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어찌 하자는 것이더냐?”
“국왕 전하이신 마에다 토시나가님과 달리 제 주군이신 마에다 토시츠네님께서는 조선의 충동질에 일본인들끼리 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미우라의 말에 혼다 마사즈미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그래서?”
“현재 마에다 토시츠네님을 따르는 병력은 3만, 국왕 전하이신 마에다 토시나가님을 따르는 병력 1만을 포함해 중립을 지키겠노라 약조를 한 병력이 2만입니다.”
“겨우 5만. 우린 20만으로도 에도에 웅크리고 있는 조선군을 어찌 하지 못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농민들로 급조한 이들이 아닙니다. 중립을 지키기로 한 2만중 대한제국군 1만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병력은 모두 수년간 훈련으로 다져진 정예 병력입니다.”
“감히 동일본의 전력을 얕보는 것이더냐!”
“조선에 대항하는 일은 나고야의 운명도 거는 일. 어찌 그와 같은 중차대한 일의 동반자를 얕보겠습니까. 나고야 병력의 정예화를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미우라의 말에 혼다 마사즈미가 애써 분노를 누그러트리며 물었다.
“아무리 정예라 해도 조선군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 그 병력은 너무 적다.”
“비수를 들이댈 것이니 충분할 것입니다.”
“비수를 들이댄다?”
“접경에 머물고 있는 나고야의 병력은 남진을 통해 에도의 조선군과 합류할 것입니다.”
“감히 동일본의 영토를 유린 할 것이란 소리더냐!”
“조선의 눈을 속이자면 일부에서는 피를 봐야겠지만······. 서둘러 백성들을 빼내면 큰 피해는 입지 않을 것입니다.”
“진군로를 알려주겠다는 뜻인가?”
진군로를 상대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급소를 내놓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었기에 혼다 마사즈미가 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놀라는 혼다 마사즈미의 물음에 미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조선과 맞서 싸울 동료인데 당연히 그리해야겠지요.”
미우라의 답에 그 진의를 파악하고자 유심히 상대를 관찰하던 혼다 마사즈미의 시선에 가신에게 다가서는 무사가 보였다.
그에 시선을 가신에게로 주자 당황한 표정의 가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파발이 전선에 참여하지 않은 다이묘들이나 일왕궁 사태에서 전사한 다이묘들의 후계자들이 모여 있는 후쿠시마를 들렸다 오느라 늦은 것일 터였다.
미우라의 말대로 나고야 왕국군이 동일본의 영토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한 혼다 마사즈미가 낯빛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조선군과 합류해서는 어찌 하겠다는 것인가?”
혼다 마사즈미의 물음에 미우라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그 날, 미우라 토모카즈는 꽤나 성대한 대접을 받고 무사히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접경지역에 눌러 앉아 머뭇거리기만 하던 나고야 왕국군이 속도를 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
조선 해병대 야전 교리에 양파 벗기리란 전술이 있다.
흔히 지향뢰라 불리는 비격진천뢰 지향형을 사용한 전술로 대규모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고안된 작전이었다.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가 처음 대규모 적에게 지향뢰를 사용한 이래로 지향뢰를 사용하는 전술은 조선군에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실제로 육군에서도 상당히 세세히 가르치고 여러 가지 작전 사용 방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처음 대규모 적군에 사용한 것이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였기 때문인지 해병대는 상당히 심도 있는 연구를 거쳐 다양한 지향뢰 전술을 개발해 놓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양파 벗기기였다.
이것은 목표인 적을 포위하듯 빙 둘러 지향뢰를 매설하되 다중으로 설치하여 한 번에 다 터지게 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폭발하도록 조절한 것이다.
일자대형과 달리 원형으로 모여 있는 적에게 지향뢰를 사용할 경우 외곽의 병력과 달리 내부의 병력에까지는 살상력이 미치지 않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전술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다중으로 설치된 지향뢰를 순차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일차 폭발로 외곽이 무너지면 다시 또 폭발 그 안의 병력을 살상하고, 그 다음에 또 다시 폭발하여 내부의 병력을 살상하는 식이다.
그 방법이 마치 양파를 까는 것 같다 해서 양파 벗기기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작금의 조선 해병대에서 이 전술을 가장 잘 쓰는 이는 우습게도 정통 해병대 출신 장교가 아니라 육군에서 전군(轉軍)되어 온 아원이었다.
포르투갈 전투에서 수도 없이 지향뢰를 사용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원은 조선군 전체를 통 털어서 가장 많은 실전에서 지향뢰를 사용한 지휘관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아원이 무슨 생각인지 에도의 조선군 주둔지에 지향뢰를 묻기 시작했다. 3여단이 보유한 지향뢰는 물론이고, 정충신의 지원을 받아 55병단과 7전단이 보유한 지향뢰까지 총동원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자그마치 2만 발을 매설했다.
꼼꼼히 아원이 직접 확인까지 하는 수고를 들여 매설한 지향뢰는 얼마나 감쪽같은지 지향뢰를 매설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조선군 장수들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지향뢰를 모두 매설한 다음 날,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나고야 왕국군이 에도로 들어섰다.
나고야 왕국군의 지휘관이 왕세자인 마에다 토시츠네였기 때문인지 정충신이 직접 주둔지의 입구까지 나가 맞아들였다.
그들은 이미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의 유도를 받아 병력이 주둔할 지역을 할당받고 숙영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조선군을 따라 만든 약식 천막을 치는 것에 불과하긴 했지만 나고야군의 숙영지는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고야군 고위 지휘부는 정충신의 안내로 지휘소로 이동해 상견례를 갖고 간단한 정보 교환을 이루었다.
직후 정충신이 마련한 가벼운 연회에서 다과와 음식을 나누어먹은 나고야군 지휘부가 자신들의 숙영지로 돌아갔다.
정식 작전회의는 내일 오전에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나고야군 지휘부를 정충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아원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해병 3여단장 아원이 사냥감을 앞에 둔 범과 같이 흉험함 기운이 감도는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고야군의 숙영지는 조선군 7전단 예하 71병단 숙영지와 해병 3여단 숙영지 사이였다. 71병단은 전단장 직할 부대로 정예라 불리는 7전단 중에서도 최강의 정예로 불리는 부대였다.
한데 그런 71병단의 외곽 경계를 해병 3여단 병력이 도맡았다. 그 대가인지는 몰라도 71병단 병력이 해병 3여단 숙영지 내부 경계를 맡아 병력을 파견했다.
여하간 그 덕에 나고야군 숙영지의 좌우경계가 해병 3여단장의 지휘 하에 들어왔다.
“나고야 애새끼들 중에 1차 원정군 출신 없는 건 확인하거니?”
이젠 조선말을 한성 출신 군관들만큼이나 잘 구사하면서도 이상하게 부장하고만 있으면 억센 남간도 말투가 나오는 아원의 물음에 부장이 답했다.
“확인 했슴다. 함께 유럽원정에 나갔던 이들이 있나 궁금해서 찾아본다고 정식 요청도 해봤슴다만 없다했슴다. 다 해산해서 고향 갔담다.”
포르투갈 전선과 북미 대륙 점령군 시절 111여단 3단장을 역임했던 부장은 여단장급인 상령에 이른 지금도 그때처럼 남간도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 부장의 답에 아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새끼들 미쳤구나. 그 정예 병력을 해산? 정신 나간 새끼들이다야.”
“그래서 우린 다행아님까.”
“그렇긴하지. 아니면 우리가 매설한 지향뢰를 알아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구포는 어떻게 됐니?”
“빙 둘러 배치했슴다. 근데 이거 필요하긴 하겠슴까? 묻은 게 2만발인데 말임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하지 않니.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그야 그렇긴 함다만······.”
“정신 바짝 차리라. 아새끼들 칼 거꾸로 들면 지체 없이 움직여야 한다. 알았니?”
“알갔슴다.”
건성으로 답하지만 부장의 치밀한 성경을 알기 때문인지 아원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김준용만이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그런 김준용에게 부장이 말했다.
“겁먹었니? 아새끼 장령 달 때까지 실전을 그렇게 겪어보고선 이만한 일에 겁을 먹으면 어찌하니.”
“겁 안 먹었습니다!”
“새끼. 목청 좋네. 왜 더 질러서 나고야 아새끼들 다 깨우지 그러니.”
부장의 핀잔에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김준용을 아원이 돌아보곤 피식 웃었다. 여단장은 그렇게 웃고 있었지만 3여단의 장병들은 완전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대가 긴장하고 있다는 티가 나지 않는 것이 대단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