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반역(反逆)
8월 중순, 동일본에서 큰 행사가 열렸다.
귀환병들에 대한 개선 및 환영행사였다. 여하간 그들의 덕분에 포르투갈에 동일본이 해외 영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후국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리긴 했지만 동일본의 경우엔 실권을 쥐고 있던 막부만이 아니라 일왕이 나서면서 행사의 규모가 더 커졌다.
더구나 일왕이 직접 행사에 참여했다.
‘은둔의 신’이라 불리는 그간의 전통적인 일왕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당금의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물론이고, 오고쇼로 물러난 도쿠가와 이이야스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군권의 대부분을 막부가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왕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왕궁을 수비하는 왕궁수비대 정도였다. 병력도 겨우 2백 남짓인데다 무장도 칼과 활 같은 전통적인 무장이어서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일왕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믿었다. 그로인해 막부는 그저 귀환한 이들 앞에 얼굴이나 내밀고 일왕이 건재함을 과시라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귀환한 장병들 앞에 나선 일왕이 동일본 대한제국군 지휘관에게 킨노오쇼군(勤王將軍, 근왕장군)의 지위를 내리고 병사들을 각각의 조정벼슬에 해당하는 정식 직업군으로 임명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 환영행사를 끝으로 해산할 병력이 단숨에 일왕을 호위하는 무장집단으로 탈바꿈 해버렸기 때문이다.
놀란 막부의 인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기도 전에 환희로 물든 지휘관의 선창에 따라 병사들이 일제히 ‘국왕 전하 천세’를 외쳤다.
전통 무장을 갖춘 2백의 병력뿐이었던 일왕의 손에 일약 일총과 일포라는 신무기로 무장한데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실전 경험까지 갖춘 정예화된 거의 1만의 병력이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오고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환영행사가 끝난 후 대한제국군 병사들은 왕궁으로 들어갔다.
근왕군이니 근무처가 왕궁이라는 것은 당연했다. 병사들에겐 1천 명씩 돌아가면서 고향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먼저 1천명의 병력이 각자의 고향으로 향했다. 특이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부상자들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은 조선에서 황제가 내어준 군인연금 첫 달치를 소지하고 있었다.
몸 성히 돌아온 이들은 대부분 그대로 왕궁에 남았다. 그것도 황궁 수비는 전쟁과 같다는 일왕의 명에 의해 전시 편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막부가 어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불안했던 일왕이 취한 조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열린 막부회의는 소란스러웠다.
모두가 나서 일왕을 성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가능한 일왕의 존엄은 건드리지 않았던 그간의 막부회의의 행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왕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막부에 충성하는 다이묘들의 권한이 약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막부의 분위기만큼이나 도쿠가와 가문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간 오고쇼로 물러나면서 막부회의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상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위기의식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질질 시간을 끌지 않았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사항이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이묘들의 군대를 소집했다.
그간 일왕에 대한 쇼군의 무력도발은 없었다. 은근히 위력 시위를 통해 압력을 가한 경우는 있었지만 대놓고 군대를 동원해 죽이거나 폐위시킨 전례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다이묘들은 겁에 질려 머뭇거렸다.
자신들이 일왕을 죽이는 일에 동원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 다이묘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호통을 쳤다.
“근왕군을 말로 깰 생각인가!”
비로소 자신들이 군대가 어디에 쓰일지 확인한 다이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부가 본격적인 병력 동원에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고미즈노오 일왕은 기다리면 필패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따라서 그는 막부가 충분한 병력을 동원하기 전에 먼저 치기로 결심을 굳히고 킨노오쇼군으로 봉한 대한제국군 지휘관을 호출했다.
자신이 쇼군이 되었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어 있던 지휘관은 일왕의 부름에 지체 없이 응했다.
그런 그에게 고미즈노오 일왕은 막부의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약속했다.
왕권을 되찾으면 그 아래에서 누구보다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일왕이 약속한 것이다.
기댈 곳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무라이였기에 지휘관으로 뽑혀 조선으로, 다시 유럽까지 갔다 온 지휘관은 곧바로 일왕의 제의를 수용했다.
그는 태왕의 명이라는 거짓까지 동원해서 동일본 대한제국군 병력을 움직였다.
만약에 대비해 궁에 약간의 병력을 남겨둔 채 8천의 병력을 몰아 막부가 세워진 에도성으로 향했다.
일왕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이래로 일왕이 머물고 있는 일왕의 거처와 에도성의 거리는 도보로 1시간 거리였다.
그 거리를 동일본 대한제국군은 구보로 뛰었다.
모두가 일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무장을 주렁주렁 달고 갈 필요가 없어서 속도는 꽤나 빠른 편이었다.
이 근왕군에는 말에 묶은 30문의 일포도 함께 동원되었다.
조선에서 귀환할 때 소지를 허락받은 일포의 수는50문이었지만 20문은 일왕의 거처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이 기습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막부의 주요인사가 모조리 에도성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단 한번으로 막부를 종식시킬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너무 서둘렀다.
그 탓에 선도 정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선도 정찰대를 투입하긴 했지만 기마대도 아니고 도보 정찰대를 투입했다.
일왕궁이 보유한 말이 너무 적어서 30문의 일포를 끌고 갈 말을 마련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투입한 정찰대의 진출 속도에 비해 뒤를 따르는 본대의 진출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정찰대는 진군로에 대한 수색보다는 확인 정도에 머물렀다.
적의 근거지의 정세를 확인하고 적의 대비를 살피는 적정 정찰이라는 행위는 아예 빠져있었다.
역사는 실수에서 시작되어 그 실수가 빚어낸 공간에서 완성된다고들 한다.
근왕군이 이번에 행한 모든 작전에는 평소 대한제국군의 작전규칙과 모두 어긋나 있었다. 그 탓에 이의를 제기하는 참모들도 있었지만 지휘관인 킨노오쇼군의 명령에 모두 묵살되었다.
그로인해 근왕군은 막부의 병력이 에도성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병력이 일왕궁에서 에도성으로 오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길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풀과 짚으로 대충 위장하고 있었지만 선도 정찰대는 속도에 쫓겨 미처 확인하지도 못하고 그 매복 지역을 통과했다.
이상이 없다는 표식을 따라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던 근왕군은 그렇게 막부의 병력 2천이 매복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막부의 군대는 모두가 구식무기였다.
도쿠가와 가문에도 일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있었지만 그 병력은 에도성에서 한나절 이상 떨어진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에 있었다.
그들을 동원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 결과 막부가 동원한 병력은 활과 창, 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과 이시가루들뿐이었다.
수도 2천에 불과해서 근왕군에 크게 못 미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병력에 에도성 인근의 백성 5백을 끌어 모아 끌고 왔다. 가족을 인질삼아 호통을 친 탓에 그들은 도망도 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끌려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모종의 명령을 받은 현재의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몇몇 사무라이들과 함께 그들을 이끌고 길가에서 조금 더 가까이 숨어있었다.
공격은 5백 명의 궁수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진군 중 갑자기 길 양쪽에서 쏟아지는 화살세례에 근왕군은 크게 놀랐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갑자기 길 양쪽에서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수백의 사람들이 일제히 떨쳐 일어났다.
공격받고 있다는 것에 놀란 근왕군 병사들이 일제히 응사했다.
자그마치 8천의 총이 길 양쪽에서 불쑥 솟아오른 5백 남짓한 인원에 쏟아졌다.
나총에 비해 형편없는 정확도를 가진 일총이었지만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인지 쏘아진 총탄의 절반 이상이 목표를 맞췄다.
순식간에 5백 정도의 적이 쓰러졌지만 그들은 무장도 하지 않은 양민들에 불과했다.
그 순간, 진짜 적이 나섰다.
와아아.
거친 함성과 함께 칼을 뽑아든 사무라이들과 창을 곧추세운 아시가루들이 몸을 일으키고 달려 나왔다.
적을 확인한 병사들이 총을 쏘려다말고 멈췄다.
8연발 리볼버 탄창이 채용되어 있던 기존의 나총과 달리 일총은 한발을 쏜 후 재장전을 필요로 했다. 습관이 무섭다고 그것을 망각했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재장탄한다고 분주할 때 막부의 병사들이 군열로 들이닥쳤다.
재장탄을 마친 병사들보다 그렇지 못한 병사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급한 대로 재장탄을 포기하고 총검으로 달려드는 막부군의 창칼을 막았지만 살수 무기의 사용에 있어 대한제국 병사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막부에 상주하는 무사들답게 그 실력도 상당히 좋았다. 8천의 병력 속으로 겨우 2천이 뛰어들었지만 전투는 2천의 병력이 이끌어갔다.
순식간에 도륙되는 병사들 속에서 막부의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이 맹위를 떨쳤다.
화기를 가진 이들과의 전투에 대비한 훈련을 충실하게 받았던 그들은 총을 가진 이들과 어찌 싸워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수많은 실전경험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군 병사들은 일총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
전투가 모두 끝났을 때 살아남아 숨을 쉬는 근왕군 병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2천의 막부군에서도 1천5백에 달하는 전사자가 나왔을 정도로 전투는 치열했다.
뒤로 갈수록 전투에 적응한 대한제국군 병사들의 저항이 격렬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의 여유가 허락되었다면 오히려 막부군이 패했을 수도 있었을 만큼 대한제국군 병사들의 전투력은 뛰어났다.
너무 좁은 지역에서, 너무 밀집하여 살수무기를 갖춘 사무라이와 아시가루를 맞닥트린 탓이 컸다.
한발도 쏘아보지 못한 포는 말들에 묶인 채 그대로였다.
5백의 무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심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아들이자 현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불렀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류하는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강하게 질책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부 중상자들을 추스른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에도성으로 돌아갔지만 4백 정도의 병사들은 남았다.
그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명령했다.
“왕궁을 친다!”
병사들의 표정에 당황이 들어섰다.
그런 그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왕이 되면 너희들의 공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도 후대하여 그 가족은 영광을 누릴 것이다.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당황으로 물들었던 병사들 사이로 열기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함성이 병사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와아아.
드디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 왔던 반역의 칼을 뽑아 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