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태자의 국혼
4월에 접어들면서 조선의 황궁이 분주해졌다. 5월에 태자와 에스파냐의 안 도트리슈 공주의 국혼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에서는 칼데론 백작을 위시한 축하 사절단이 국왕 대리로 국혼에 참석하기 위해 조선으로 오고 있었다.
제후국들은 물론이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도 별도 축하사절단을 보냈을 정도로 조선 태자의 국혼은 큰 행사였다.
사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입장에서 강대국 조선과 에스파냐의 결합은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유럽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공통적으로 에스파냐와 경쟁 또는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양국은 이번 국혼이 혼인동맹으로 발전하여 에스파냐가 유럽에서 다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조선이 네덜란드 전쟁에 투입된 에스파냐군을 수송해주고 폭발탄까지 제공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그 위기감은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조선군과 실질적으로 전투를 벌여본 적이 없는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위기의식이 조금 덜 했지만 조선의 발전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잉글랜드로써는 작금의 상황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축하사절은 애덤스 백작이 노구를 이끌고 직접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조선이 이 잉글랜드 사절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 사절단 속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의 관리들은 잉글랜드에서 유명한 극작가였던 셰익스피어를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잉글랜드 사절단 명단에서 그 이름 발견한 광해가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은 거의 모조리 쓸어다 장원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지만 문학자들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라는 거물이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물론 사절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단순 방문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광해는 그가 조선에 머물게 되길 희망했다.
오죽하면 신도항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던 잉글랜드 사절단의 선박을 부산포로 인도하고, 부산포에서 황도인 신의주까지는 비행선으로 태워오도록 지시했다.
하늘을 나는 경험을 얻은 셰익스피어가 또 다른 창작 세계를 발견하여 조선에 눌러 살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부산포에 도착한 잉글랜드 사절단은 날틀04를 타고 황도인 신의주까지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셰익스피어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가 그 경험만으로 조선에 남길 희망할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준비가 갖추어져가던 5월 드디어 태자의 국혼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성대했다고는 해도 그 규모가 컸다는 것이지 화려하거나 번잡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왕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소했다. 수라상에 반찬은 4가지 이상 오르지 못했고, 국도 한 가지 뿐이었다.
당장 국혼 연회에 등장한 음식도 수라상의 규칙을 넘지 못했다. 외국 사절단들이 수백 명씩 방문했음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없는 나라의 절약은 빈곤의 상징이겠지만 세계최대 부국, 세계최강의 강대국인 조선의 모든 권력과 금력을 움켜쥔 황실의 잔치였다. 더구나 사절들에게만 그런 음식이 제공된 것이 아니라 태왕과 황후마저도 똑같은 음식을 받았다.
그것으로 조선 황실의 검박함을 알아차린 사절들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자고로 임금이 수라상에 올리는 반찬 하나를 줄이면 백성들의 고심이 하나 준다는 고사가 있었다. 하나 그것을 실천하는 임금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절로 온 이들이 각국에서 이름 꽤나 높은 신하들이었기에 그것을 실천하는 조선의 태왕을 높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런 태왕의 행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는지 황후도 사치하지 않았다. 패물을 멀리했고, 치장도 가능한 잘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입궁하는 여인들은 황후보다 튀어 보이지 않기 위해 패물을 모두 빼놓고 와야 할 정도로 황후는 사치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선의 황실은 백성을 위해 베푸는 것엔 아낌이 없었다.
당장 태자의 국혼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음식이 황궁이 위치한 신의주의 백성들에게 대량으로 풀리면서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졌다.
마찬가지로 행궁이 위치한 서경(베이징)과 동경(하얼빈), 남경(오사카), 그리고 구경(舊京)이라 불리는 한성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행해졌다.
어린 신랑과 신부는 식이 거행되는 내내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11개 제후국에서 보낸 사절들만도 수백 명이었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잉글랜드와 프랑스, 그리고 혼인 당사자인 에스파냐는 물론이고 여러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왔다.
마드라스를 통해 접촉을 늘여가던 무굴 제국은 물론이고, 말레이 일대의 여러 술탄국들에서도 사절들이 달려왔다. 일대의 패자인 조선의 국혼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신성로마제국과 스웨덴, 덴마크-노르웨이는 물론이고, 폴란드에서도 사절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교역은 있었지만 그 어떠한 외교적 접촉도 없던 네 나라였기에 조선으로써도 상당히 의외인 일이었다.
혼례가 마무리된 날 밤, 광해는 잉글랜드 사절단의 대표로 참석한 애덤스 백작의 알현 요청을 받았다. 외국 사절을 만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만 광해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외국 사절과의 만남이었기에 대전으로 자리를 옮긴 광해와 마주한 애덤스 백작은 늦은 시간에 이루어진 자신의 알현 요청을 허락해준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전했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물었다.
“이 시간에 짐을 만나길 원했다는 것은 그 만큼 중한 일이라고 생각하오만.”
광해의 물음을 황실 역관을 통해 전달받은 애덤스 백작은 조선파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듬더듬 조선말로 답했다.
“잉글랜드는 폐하의 의중을 알고 싶어 하옵니다.”
애덤스 백작의 조선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광해가 이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짐의 의중이라면 어떤 것을 묻는 것인가?”
“에스파냐와 국혼을 맺었으니 그 관계가 혼인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옵니다.”
대번에 애덤스 백작의 질문이 가진 핵심을 광해가 파악했다. 그것을 광해가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에스파냐를 조선이 지원할 것인가를 궁금해 하는 것이겠군.”
“송구하오나······. 그러하옵니다.”
제법 조선의 궁중 언어까지 제대로 구사하는 애덤스 백작에게 광해가 말을 이었다.
“조선은 에스파냐를 도울 것이오. 하나 그것이 타국을 침공하는 일까지 미치지는 않을 것이오.”
“하오나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애덤스 백작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광해의 답이 나왔다.
“네덜란드는 조선을 공격한 적. 조선의 적을 에스파냐가 공격하겠다는 것을 막을 이유도, 돕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다소 차갑게 내려앉은 광해의 음성에 태왕의 기분이 나빠지고 있다고 판단한 애덤스 백작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잉글랜드의 걱정을 폐하께오서 살펴주소서. 에스파냐와 잉글랜드는 오랜 전쟁을 겪었던 숙적이오니 그 여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에스파냐가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일 때 조선이 지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걱정인가?”
“바로 그러하옵니다.”
솔직히 답하는 애덤스 백작에게 광해가 말했다.
“에스파냐가 혼인으로 맺어진 곳이라면 잉글랜드는 오랜 시간 조선과 함께 나아가고 있는 동맹. 잉글랜드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믿소만.”
생각이상으로 잉글랜드를 신임하는 말이었기에 애덤스 백작의 표정엔 기쁨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큰 것은 잉글랜드가 여전히 에스파냐보다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폐하. 잉글랜드에 영광을 주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
흥분했기 때문일까 더듬거리던 조선말이 아니라 영어로 전달된 말을 역관을 통해 들은 광해가 물었다.
“무슨 영광을 말하는 것인가?”
“성문화된 동맹조약을 맺고자 하옵니다.”
과거 이순신과 애덤스 백작을 통해 조선과 잉글랜드가 맺은 동맹은 일종의 협정에 준한다. 그것을 온전한 외교 조약으로 발전시키길 원하는 것이다.
애덤스 백작의 말을 잠시 곱씹던 광해의 시선이 배석해 있던 도승지를 향했다.
“가서 외교부 대신과 이 원수를 들라 하라.”
태왕과 함께 항모를 방문한 이래 계속 항공모함에만 머물던 이순신은 태자의 국혼을 맞아 원수부로 귀환한 상태였다.
태왕의 지시를 받은 도승지가 나서자 애덤스 백작은 꽤나 상기된 표정이었다. 광해가 자신의 요청을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교부 대신과 이순신이 대전으로 들었다.
그들은 태왕과 마주하고 있는 애덤스 백작의 존재에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외국 사절이 태왕과 함께 있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태왕의 허락을 얻은 애덤스 백작이 자신이 요청한 조선과 잉글랜드간의 동맹조약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이순신과 외교부 대신에게 광해가 물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떠한가?”
물음을 받은 두 사람 중 이순신이 먼저 답했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 전쟁에서 조선을 도운 유일한 나라이옵니다. 소신은 저들과의 동맹 조약에 찬성하옵니다.”
“소신도 반대할 이유가 없나이다.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조선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온 나라이오니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시는 것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이옵니다.”
외교부 대신까지 찬성하고 나서자 광해가 애덤스 백작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동의하니 내일 조회 때 정식 안건으로 올려 상의 할 것이오. 내가 지금 경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가 아닐까하오.”
광해의 말에 애덤스 백작의 허리가 깊게 숙여졌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다시금 더듬거리며 하는 조선말에 광해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다음 날 벌어진 조회에서 잉글랜드와의 동맹 조약은 큰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세세한 조약의 내용은 주무부서인 외교부가 맡아서 조율하고 그 체결은 가능한 잉글랜드 국왕 대리자격오로 온 애덤스 백작이 머무는 기간 안에 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에스파냐 사절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자신들은 그따위 문서로 통하는 조약보다 강력한 혼인 동맹으로 맺어졌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였다.
프랑스는 의외로 초탈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축하사절을 보내 외교적 접촉에 막 나섰던 신성로마제국과 스웨덴, 덴마크-노르웨이도 큰 의미를 갖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양극 외교부와 국왕전권대사 사이에서 조율된 협정은 거의 상호방위조약에 가까웠다. 외교조약이라기 보다는 군사안보조약이라는 것이 더 어울리는 조약내용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이나 잉글랜드가 외국으로부터 공격받았을 경우 즉각적인 군사력 지원부분이 담겨있다는 것이 그랬다.
이 조약은 조선과 잉글랜드 본토뿐만이 아니라 해외영토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운항중인 선박에도 통용되도록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조선의 해외 영토가 공격당하면 인근의 잉글랜드 해외영토에 주둔하는 병력은 지체 없이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원해를 항진하는 배가 공격당해도 인근을 항해하는 동맹국의 선박은 즉시 지원에 나서야 했다.
다만 이 조약은 침공에는 통용되지 않음을 명시했다.
그러니까 조선이나 잉글랜드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에는 상호 지원의무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후과로 벌어진 본토의 전투는 예외가 인정되었다. 물론 이 예외는 무조건적이진 않았다. 이행 당사국이 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침공했다가 패했고, 프랑스군이 잉글랜드 본토를 공격했다면 조선이 개입하고 안하고 둘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 조약을 전신으로 전달받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승인하자 그 대리자 신분의 애덤스 백작과 조선 태왕의 대리자 신분인 외교부 대신이 광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작성된 조약문에 서명했다.
이 서류는 각기 자국의 국왕들의 서명을 추가로 받도록 되어 있었다.
광해는 그 자리에서 추가 서명을 마치고 옥쇄를 찍었지만 잉글랜드의 경우엔 다시 이 서류를 가지고 가서 찍어와야만 했다.
그것을 위해 외교부 고위 관리가 귀환하는 사절단과 함께 잉글랜드로 다녀 올 예정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돌아가는 사절단과 함께 귀국했다.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조선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기회를 잃은 것을 광해가 꽤나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