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선거 열풍
광무11년, 서기 1613년 새해가 밝았다.
첫 5일간의 공식 휴일 때문에 매해 정초엔 한가로웠는데 올해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온 도시가 선거로 왁자지껄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선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하긴 이번에 선출되는 이들의 임기는 이전과 달리 5년을 보장받았다. 선거로 선출된 관리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졌다고 판단한 까닭에 임기를 기존의 2년에서 5년으로 늘린 것이었다.
사실 2년은 무엇을 하기가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로인해 선출 관리들이 바뀔 때마다 하다만 사업들이 쌓여만 갔다.
그에 대한 개선요구가 매 선거 기간 때마다 있어왔기에 이번 선거부터 임기를 5년으로 늘려 잡은 것이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일을 못하면 2년 후에 다시 뽑으면 되지’라던 생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뽑아놓으면 꼼짝없이 5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 입에서 반십년이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뽑는 이들에게 자신들과 자신들 마을의 반십년을 맡기는 것이니 신중하자는 것이다.
정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정치에 대해 비난과 욕설은 난무했어도 어떤 방향으로 마을이 나아가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선 어떤 일들이 필요하고 누가 그것을 말하고 있는지 가족들끼리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가 본격적으로 백성들의 주관심사가 된 해였다.
백성들이 선거로 소란스러운 새해를 맞고 있었다면 광해는 황후의 입덧으로 분주한 새해를 맞고 있었다.
태자 때와 달리 황후의 입덧이 심했던 것이다. 평소엔 황후를 보필하는 지밀상궁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지만 한가히 황후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게 된 정초가 되자 그 일을 광해가 직접 한 것이다.
현대시대 기억 속에서 ‘임신했을 때 서운한 건 평생 간다’라는 말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광해가 황후가 머무는 교태전(交泰殿)에서 수라간을 하루에도 십여 번이 넘게 왕래했다. 환관이나 궁녀들을 시켜도 되는 일이었지만 광해는 자신이 직접 하고자 했고, 황후는 그것에 놀라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렇게 각자가 분주했던 정초가 지났다. 다른 해 같았다면 곧바로 6일부터 확대 문무백관회의가 개최되었겠지만 올해는 전반기 확대 문무백관회의가 3월5일로 연기 되었다.
선거로 인해 각도의 관찰사들을 불러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간 1년에 2번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1월과 7월에 황궁의 대전에서 개최되던 이 회의를 광해는 1년에 1월에 열리는 1번으로 수를 축소시켰다.
대신 7월엔 전신을 통한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현대시대의 화상회의나 음성을 통한 회의와도 완전히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될지는 실제로 열어보아야 명확해지겠지만 그것을 위한 연구들이 홍문관에서 진행 중이었다.
광해는 조금 번거롭고 원활하지 않겠지만 원거리에 위치하는 관찰사들이 이 방식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실제로 남포르투갈도 관찰사는 단 한 번도 확대 문무백관회의에 참석해보지 못했다. 초기엔 몇 개월씩 걸리는 장계로, 나중엔 전신을 통한 장계로 그것을 대체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단순히 남포르투갈도 감영의 청원을 올리는 선이었지 의견 교환을 거쳐 협의하는 과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사자인 남포르투갈도 관찰사를 뺀 나머지 인원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을 통보하면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그로인해 남포르투갈도의 사정에 맞지 않는 법령이나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추후 남포르투갈도 관찰사가 폐지나 조정을 청하는 장계를 올려 그것을 바로잡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불편함이 있었던 것이다.
광해는 그것을 바로잡아보려 했다.
사실 광해는 이 회의에 음성을 활용하고 싶었지만 아직 벼락 연구소는 음성 전달이 가능한 무선통신 기술은 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는 광해도 딱히 현대적 지식을 가진 것이 없어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벼락 연구소의 연구자들의 능력에 맡겨진 것이다.
요사인 그런 부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광해의 조언이 큰 힘이 되던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조선의 기술이, 과학수준이 높아졌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하간 그렇게 정초에 열리던 확대 문무백관회의가 연기된 대신, 그 자리를 대전 조회가 채웠다.
본래 확대 문무백관회의가 열리는 동안은 대전 조회가 정지된다. 그곳에 참여하는 이들이 확대 문무백관회의에 그대로 모두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확대 문무백관회의 대신 열린 대전 조회에서도 선거에 관한 사항이 중점으로 다루어졌다.
사간원의 책임자인 대사간으로부터 선거관리 상황을 보고받은 광해는 포도청장에게 명해 선거의 안전한 이행을 위해 특별히 만전을 기할 것을 명했다.
그런 광해의 명에 포도청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이당시 포도청은 경비, 치안 활동을 담당하는 좌포청과 수사를 전담하는 우포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에 따라 포도청장 밑에 좌포대장과 우포대장을 두었고, 그 관제는 지방의 모든 포도분청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관할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포도청에는 각도 포도분청의 장과 동일한 직품인 4품의 포장이 장을 맡은 중앙포도부를 두어 관할을 넘는 사건을 전담하고 있었다.
대전조회가 끝난 이후 선거가 치러지는 조선 21개도 포도분청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동원 가능한 모든 포도청의 병력이 동원되어 선거가 끝날 때까지 불상사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게 될 것이었다.
1월10일. 예정대로 조선 21개도에서 선거가 시작되었다. 시작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이장을 선출하는 조선의 방식 때문이었다.
투표 이전에 이장 후보들을 두고 투표권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토론이 열리는데 이것을 진행하는 동안 마을의 모든 기능이 멈추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든 마을에서 한날한시에 열면 조선 전체가 멈춰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조선은 이 토론을 각 마을마다 달리하여 열흘에 걸쳐 진행한다.
물론 한 마을에 허락된 날은 하루뿐이다. 오전 9시에 토론이 시작되고, 오후 5시에 투표가 시작되어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다.
선거회라 명명된 이 토론회 중에는 가끔 의견이 다른 이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마을 잔치 비슷하게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음식 장만이 이루어졌고, 마을 어른들이 참여하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직은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성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시대였다.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대부분은 함께 어울려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회의는 비교적 원만하게 잘 이루어져갔다. 그렇다고 말을 막거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지 못하도록 이 선거회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태왕의 어명으로 못을 박아놨기 때문이다. 따라서 15살로 처음 투표권을 가진 소년들은 물론이고 여인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이 되고 있었다.
선거회가 토론을 이룬다지만 결국 결정은 토론 말미에 진행하는 비밀투표로 이루어진다.
사간원 관리는 토론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선거회 토론은 그 마을 노인회가 주관하고, 청년회와 부인회가 보조한다.
따라서 불법행위의 여부만을 감독할 뿐 그런 일이 없다면 사간원 관리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물론 투표가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간원 관리의 철저한 관리 하에 완벽하게 보장된 비밀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사간원 관리가 하지만 그 보조는 포도청에서 맡는다. 경비만이 아니라 진행요원도 포도청 포교나 포졸들이 맡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모든 지역에서 선거회가 끝나는 1월 19일 다음 날인 20일 일제히 발표된다.
선거 결과에 이의가 있는 이는 곧바로 이의제기가 가능하고 이 경우, 애초에 선거를 관리했던 사간원이 아니라 어사대가 파견되어 검증을 실시한다.
이조차 승복을 하지 못할 경우, 다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때에는 태왕의 임명을 받은 특명어사들이 해당 마을의 선거를 완전히 재증명한다.
이 경우엔 해당 마을 사람들의 비밀투표권이 태왕의 어명에 의해 증명기간 동안 박탈당한다.
모든 투표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투표용지가 공개되고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는 기표에 따라 각자 투표한 용지가 배분된다. 이 때 각 투표권자는 자신이 한 투표가 맞는지, 자신이 남긴 기표가 명확한지 확인하게 된다.
이것으로 투표 결과는 완벽하게 증명이 된다. 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받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여기까지 몰고 간 후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 결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이의를 제기했던 후보자의 향후 마을 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상황까지 이의제기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게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조선은 시끌벅적했다.
매일같이 선거관련 이야기가 신문을 장식했고, 모이는 이들마다 선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현직 시장들의 대다수가 또한 현직 관찰사들 중 절반 이상이 이번 선거에 나간 탓에 그 관심도가 유난히 높았기 때문이다.
광해는 이번 선거를 통한 결과를 지켜보고 다음 선거에서는 국회의원도 뽑아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왕정에서 입헌 군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것을 조선이 감당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자 한 것이다.
아직은 광해의 속내에만 머무는 생각이었기에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광해가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선거가 끝나고 1월 20일 오전 일제히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때까지는 태왕조차 그 결과를 미리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광해도 굉장히 궁금해 하며 결과를 보고받았다.
다시 도전한 현직 시장들 중 절반 정도가 다시 자신들 마을에서 이장으로 선출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선거에 도전한 현직 관찰사들 중 자신들이 사는 마을의 이장으로 뽑힌 이들은 겨우 3명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아는 마을 사람들이 뽑는 이장 선거가 더 통과하기 어려웠다.
이장 선거 결과가 공표된 다음 날인 21일부터 읍장선거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모든 조선에서 한날한시에 열린다.
참여자가 이장으로 선출된 이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읍사무실에 모여 토론하고, 후보자를 받아 읍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옆마을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처음 보는 이들도 있는 까닭에 이 읍장 선거는 3일에 걸쳐 실시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토론과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 상대를 조금 더 깊이 파악하라는 의미였다.
3일째 오후 10시에 투표가 실시되어 12시 전에 마무리 된다. 당연히 투표는 비밀투표다.
여기서 읍장으로 당선된 이를 배출한 마을은 다시 이장 선거를 진행한다. 동일한 방식의 선거회가 다시 열리는 것이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자신들 마을에서 인근동리가 다 인정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 재선거회는 거의 축제분위기로 진행된다. 비밀투표가 끝나면 그대로 술판도 벌어지는 이유다.
이 술판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는데 음식은 마을에서 무한정 장만할 수 있지만 술은 시에서 무상으로 공급하는 물량까지만 소비할 수 있었다.
과음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시가 이 마을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의미로 시장이 나온 마을의 재선거회에는 감영에서 술을 내리고, 이번에 관찰사가 나온 마을의 재선거회에는 태왕이 어주를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조선의 모든 마을이 자신들의 마을에서 관찰사가 나오길 바랐다. 그 정도의 위인이 출현한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태왕이 내리는 어주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까닭이었다.
심지어 각 마을마다 어주를 받게 되면 마시지 말고 대대손손 물려주어 자랑으로 삼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읍장선거가 끝나고 다시 시장 선거가, 그다음에 다시 시장들이 모여 관찰사를 뽑는 관찰사 선거가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2월 중순까지 조선이 선거열풍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