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35화 (235/325)

제235화. 조선의 첫 항공모함

좁게 붙은 의자에 태왕과 태자, 이순신 그리고 내금위 부장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고, 그 앞에 내금위 위사 네 명이 무장을 주렁주렁 달고 앉아있었다.

각자 수탄을 여섯 발씩 달고, 다총을 세정씩 소지한데다 일권총도 네 자루나 차고 있었다.

그것들은 비행선에 탑승하기 전에 다른 내금위 위사들로부터 인수받은 것이었다. 유사시 장탄 없이 사격할 수 있는 무기를 최대치로 확보하기 위한 내금위 자체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을 싣고서도 비행선은 무리 없이 떠올랐다. 기관부와 승객실이 분리된 날틀04와 달리 하나의 탑승부로 이루어진 날틀03 탑승부 내부는 기관소음으로 굉장히 시끄러웠다.

그 상태로 1천750리(약687km)를 날아가야 했다. 순항속도로는 자그마치 12시간을 날아야 하는 거리였다.

다행히 날틀03은 최고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기관소음이 미친 듯이 더 커졌고, 연료소모량은 순항속도로 비행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아졌지만 비행시간은 9시간으로 3시간이나 줄어들 터였다.

비행선이 순항고도에 오르자 이동이 허락되었다. 그러자마자 태자는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시끄러운 소음으로 귀마개를 하고 있어 대화가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난다는 것에 흥분했는지 태자는 조종석 뒤에 바짝 붙어서 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광해가 굳이 태자까지 데리고 비행선에 오른 것은 자신과 달리 하늘을 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태자에게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직접 알려 주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태자.”

탑승부를 가득 채우고 울리는 기관 소음 때문에 광해의 부름을 처음에는 잘 듣지 못했던 태자가 내금위 부장의 전갈로 황급히 광해에게로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아바마마.”

“비행선에 흥미가 있더냐?”

“예, 아바마마 정말 놀라운 기구이옵니다.”

“흥미로만 보지 말거라. 더구나 네가 보아야 할 것은 이 비행선 이외의 것이니라.”

“비행선 이외의 것이요?”

의아해하는 태자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으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이 아비가 네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은 좁은 궁에서 너만 바라보는 궁인들이 아니라 저 아래에서 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니라. 그렇다고 내려 보라는 말이 아니다. 멀리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소리다.”

그 말끝에 조종석 쪽을 바라보는 광해의 시선을 따라 돌린 태자의 눈으로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지상이 보였다.

사전에 지시를 내려두었던 터라 광해가 태자를 부르자 조종사인 이사훈 상령이 비행선의 고도를 내려 지상으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이 아비에 이어 네가 지켜야 하는 이들이고, 네가 돌봐야 하는 백성들이니. 네가 행하는 모든 걸음에, 네가 하는 모든 생각에 저들이 있기를 이 아비가 바라마지 않는다.”

그 말과 함께 손을 놓고 조종석을 가리켰다. 가서 직접 보라는 의미였다.

광해의 손짓에 다시 조종석 뒤로 가서 내려다보는 태자의 눈은 이전처럼 흥분으로만 물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랬다. 광해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백성들의 삶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궁을 벗어난 적이 없는 태자는 백성들의 삶을 알지 못했다.

그런 태자에게 진짜 백성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곁에서 직접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보여주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들과 논밭에서 일하던 백성들과 도심에서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던 백성들이 하늘을 나는 비행선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까이 내려온 비행선에 대한제국 황실을 뜻하는 삼압삼족오(三壓三足烏 : 황룡, 푸른 늑대, 그리고 검을 움켜쥔 삼족오) 문장과 조선 황실을 뜻하는 이화 문장을 확인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황실이 운용하는 비행선이라는 것만으로도 환영을 받은 것이다.

하늘을 나는 물체가 놀랍고 당황스러울 법도 할 터인데 백성들은 태왕이 머무는 황실의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그대로 받아들였다.

백성들을 위해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는 태왕이 머무는 황실이니 저런 걸 만들어 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손을 흔드는 백성들을 향해 태자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태자는 그렇게 백성들과 교감 아닌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태자의 뒤로 가서 선 광해가 태자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기 저 밭을 갈자면 오늘 저들은 하루온종일 저기서 일을 해야 한다. 허리를 펴는 시간도 드물 것이다. 저들이 저리 고생해 지어올린 곡물들로 이 아비와 네가 편안히 앉아 밥을 먹는다. 잊지 말거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백성들의 땀과 부단한 노력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아이의 어깨를 대견한 눈빛으로 두드려준 광해가 고개를 돌렸다.

지상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던 태자와 달리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신형 기관총인 ‘기01’사수에게 달려가 이것저것 묻고 있는 이순신이 보였다.

광해가 그런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순신과 기01 사수와의 대화가 들려왔다. 제법 큰소리를 내야만 대화가 되는 터라 두 사람이 대화는 곁으로 다가온 광해에게도 다 들렸다.

이순신은 기01의 지상사격효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사수도 상당히 세세하게 설명했다.

지상제압 사격훈련을 다각도로 상당히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이순신의 질문에 답하는데 막힘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 올리던 시선에 태왕을 발견한 이순신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소신이 궁금한 것이 많아······. 송구합니다.”

“아니오. 그러라고 경을 이리 함께 오자 한 것이니. 궁금증은 좀 풀렸소?”

“일단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만 격납고에서 보았던 날틀04말이옵니다.”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태왕에게 이순신이 물음을 이었다.

“그곳에 일속포를 실으면 어떨까 하옵니다.”

“일속포를?”

“예. 마음 같아서는 일장함포나 삼포를 실었으면 더 할 수 없이 좋겠사오나 무게 부담이 있으니 일속포를 이쯤에 이렇게 아래로 비스듬히 싣고, 방풍문을 열고 지상을 향해 사격하게 하면 상당한 파괴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옵니다.”

열정적으로 손짓과 몸짓을 더해가며 설명하는 이순신의 말을 광해는 얼른 알아들었다. 지금 그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건쉽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시대 미군이 수송기인 C-130에 대포와 발칸포를 싣고 지상을 향해 포격하는 AC-130을 운용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하시오?”

“지상에서 작전하는 해병대나 육군을 지원하는 것엔 큰 힘을 낼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완벽하게 건쉽의 사용처까지 짚어낸다. 하늘이 낸 장수였다. 이런 장수가 실제 역사에선 너무 일찍 죽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자신의 조선에선 여전히 살아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 광해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거든 장원의 기술자들과 한번 논의해 보십시다.”

태왕이 자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이순신이 환하게 웃었다.

“감읍하옵니다. 폐하.”

“조선과 왕실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경의 노고에 짐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는 이순신의 모습이 공손했다.

긴 시간 비행을 이어간 비행선이 바다로 나아갔다. 거제가 섬이긴 해도 이렇게 먼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어 의아해 하던 이순신의 시야로 커다란 배가 들어왔다.

“저, 저건!”

해군을 제 손바닥 안에 두고 있던 그조차 들어본 적이 없던 배였기에 놀라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웃으며 말했다.

“거제 건선단지에선 초대형 평면갑판함이라 부르고 난 항공모함이라 부르는 배라오.”

“하, 항공모함이라시면······. 설마!”

무엇을 짐작했는지 눈이 커지는 이순신에게 광해가 미소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 비행선과 닿아 있다면 아마 그것이 맞을 것이오.”

광해의 압에 이전보다 더 커진 눈으로 이순신이 점점 가까워지는 항공모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와 가까워지면서 비행선과 항공모함 사이에 무선전신이 이루어졌다. 통신병의 임무도 함께 수행하는 항법사가 그렇게 이루어진 통신으로 받은 항공모함의 속도와 접근 가능방향, 착륙지점, 그리고 바람 방향을 조종사에게 알려주었다.

바람방향을 알 수 없는 비행선과 달리 배에는 바람방향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를 받은 것이다.

바람방향을 알려주는 장치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흔히 보는 바람주머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부풀어 나부끼는······.

항법사로부터 그렇게 정보를 받은 조종사가 비행선을 천천히 항공모함의 상공으로 조종해 나아갔다.

바다를 순항하는 항공모함에 비행선이 착함하는 방식을 굳이 비교하자면 현대시대 항공모함에 수직이착륙기가 착함하는 것과는 비슷한 방식이었다.

항공모함의 갑판에는 커다란 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각 사각형 마다 ‘가나다’의 순서로 한글이 쓰여 있었다.

비행임무명칭이 ‘삼족오01’이라 붙여진 날틀03이 비행갑판 중간쯤에 위치한 ‘라’라 쓰인 큰 사각형에 맞춰 천천히 하강을 시작했다.

항공모함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면서 하강해가는 비행선의 조종에 이사훈 상령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워지면서 그 큰 사각형이 날틀03보다 약간 크다는 것을 확인한 이순신이 그 의미를 파악하고는 재빨리 갑판에 그려져 있는 사각형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사각형은 사이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3줄로 5개씩 질서정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 우측 네 번째 자리는 함교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판에 세울 수 있는 비행선의 수는 자그마치······.

“14대!”

곧바로 갑판에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비행선의 수를 파악한 이순신의 눈이 빛났다.

지금 이순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보였기에 광해가 작게 웃었다. 아마도 내려서 설명을 듣는다면 저 눈빛은 더 강렬하게 빛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광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비행선은 무사히 항공모함에 착함했다.

비행선이 착함하자 계류용 안전밧줄을 기낭에 있는 고정용 고리와 연결한다고 갑판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완전히 비행선이 갑판에 고정되자 갑판요원들이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확인한 항법사가 비행선의 문을 열고 안쪽으로 접혀 있던 계단을 밖으로 펼쳤다.

날틀03의 경우엔 날틀02보다 탑승부와 지상과의 거리가 더 멀어서 4치(약120cm)에 달했기 때문에 타고 내릴 때 계단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식총좌보다 신형 기관총인 기01의 폐쇄식 총좌가 조금 더 대형이었기 때문이었다. 탑승부 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더 커진 것이다.

그렇게 내려진 계단을 타고 가장 먼저 내린 것은 중무장한 내금위 위사들 4명이었다.

그들이 내려 재빨리 주변을 확인하고 계단 옆에 앞에총 자세로 버티고 서자 내금위 부장이 계단 밖을 확인하고는 비켜섰다.

그러자 태왕과 태자, 그리고 이순신이 내렸다. 그들 뒤를 내금위 부장과 나머지 위사 한명이 재빨리 따라 내렸다.

그렇게 갑판을 밟은 태왕 일행을 선장을 위시해 거제 건선단지 소속 시험선 승무원들이 정렬한 채 영접했다.

“충!”

민간인 신분이라고는 해도 모두 해군에 고용된 군속들이었기에 군례를 올린 것이다.

그런 선장과 선원들에게 광해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현대시대 대한민국도 가져보지 못한 조선의 첫 항공모함에 조선의 태왕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 감격에 광해의 가슴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