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중형 수송 비행선
태자와 이순신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비행선에 이렇게 많은 기술이 접목되어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여 폭탄 적재량도 2배로 늘었나이다.”
이장손의 설명이 끝나자 광해가 물었다.
“승무원은?”
“항법사가 추가로 탑승하여 조종사의 업무를 줄이고, 원거리 비행에 대비하도록 하였나이다.”
“비행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이오?”
“3천리(약1,170Km)이옵니다.”
부력의 대부분을 헬륨기체에 맡긴 터라 체공에 드는 연료량이 크게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보다 적은 연료로 더 많은 무게를,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비행선의 이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결과였다.
물론 속도는 비행기에 비해 현격하게 느렸다.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최고속도는 시간당 2백리(약78km), 순항속도는 시간당 150리(약58km)정도이옵니다.”
“날틀02에 비해 상당히 늘었군.”
“날틀02의 1백 마력 내연기관보다 두 배나 출력이 높은 2백 마력 내연기관을 장착하여 가능하였나이다.”
이장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광해가 물었다.
“신형에선 무선전신도 될 거라 들었소만.”
“예. 장거리 통신에 대비해 발전설비를 확충하고, 무선전신 장비도 탑재하였나이다. 저기 기낭 옆을 길게 가로지르는 선이 전송선의 역할을 하는 것이옵니다.”
말하자면 수평 안테나였던 셈이다. 이상손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광해가 곁에 있던 태자에게 물었다.
“저것을 어디에 썼으면 좋겠더냐?”
“마차나 기차처럼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에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바마마.”
무기로 먼저 생각하는 자신과 달리 일반적인 것에 생각이 먼저 닿는 태자를 광해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바라봤다.
“그렇지. 그렇기에 저것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지금까지 살피던 날틀03 옆에 계류되어 있는 조금 더 큰 비행선을 가리켰다. 그런 광해의 말에 태자 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하면 저것은 사람을 많이 태우고 나는 것이옵니까?”
태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광해가 아니라 그의 눈짓을 받은 이장손의 입에서 나왔다.
“예. 그렇사옵니다. 태자 전하. 승객 20명 또는 화물 1천관(약3.7톤)을 싣고서 시간당 250리(약98km)의 속도로 자그마치 1만 리(약3천9백km)를 날수 있나이다.”
이장손의 설명에 놀란 태자의 입이 벌어졌다. 사실 이 비행선은 장거리 폭격용으로 개발하던 기체였다. 좀 더 멀리, 더 많은 폭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발하던 것이란 소리다.
수송체로 사용하기에 비행선은 워낙 악천후에 약해서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군용이외에는 개발할 생각이 없었던 광해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랬던 광해의 생각이 바뀌게 된 원인은 북간도에서 벌어졌던 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북간도 고속도로라 이름을 바꾼 신의주와 제제합이를 연결하는 중앙도로를 달리던 마차 전복 사고였다. 과속이라는 실책이 있었으니 탓할 사람은 없었지만 그 후속대책이 문제였다.
부상이 심한 사고자의 수술이 시행되어야 했는데 워낙 장기손상이 심해서 제제합이에 있던 왕립 북간도 종합병원의 의료진으로써는 수술이 불가능했다.
현대시대의 의료수준이라면 아무 병원에서나 가능한 수술이었지만 이 시대의 외과의료 수준으로는 굉장히 고난도의 수술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신의주에 있는 왕립 조선 종합병원의 의료진 중에는 그 정도 중증 환자에 대한 수술이 가능한 의원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동 시간이었다.
지형 또는 기착지를 따라 휘어지며 건립된 도로나 철도를 운행하는 마차나 기차로는 원하는 시간에 도달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포도청 기마대가 나서서 의료진을 말 뒤에 태우고 도로와 상관없이 직선으로 달렸지만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조차도 지형지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
아마도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 슬픈 일로 묻혔겠지만 사고 난 이가 북간도 관찰사였던 내음타방이었다. 선왕시절부터 광해와 함께 여진을 아우르고, 그간 북간도 일대의 부족들을 잘 아우르던 공신이었다.
더구나 그가 탄 마차가 과속한 이유도 태왕의 부름에 잠시 황도인 신의주로 왔다가 제제합이에서 벌어진 부족 간의 마찰이 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에 급히 귀환하느라 벌어진 일이었다.
그가 북간도의 감영이 있던 제제합이에서 신의주로 왔던 이유도 그렇고, 사망한 이의 신분 때문에 그 사고에 대한 세세한 조사 결과가 광해에게 보고된 것이다.
그로인한 광해의 자책이 상당했다.
내음타방과 같은 일이 백성들에게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아니 이미 숱하게 일어났지만 광해가 보고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국 지형지물에 상관없이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이동체가 절실해졌고, 광해가 대형 폭격비행선으로 개발되던 것을 수송용으로 교체하여 우선 개발하도록 명했던 것이다.
그 결실이 바로 눈앞의 중형 수송비행선, 날틀04였다.
놀란 눈으로 태자가 이리저리 살펴보는 가운데 광해가 이장손에게 물었다.
“속도가 상당하군.”
“2백 마력 내연기관 2개가 탑재되옵니다. 저기 탑승부 뒤에 달린 바람날개도 2개가 되어 속도와 안전성 두 가지를 다 잡았나이다.”
“고생했네. 그나저나 승무원의 수는 어찌 되는가?”
“장거리 비행에 대비해서 2명의 조종사와 항법사, 기관사가 따로 탑승하고 자위무장으로 탑재한 기01 사수 한명이 추가로 탑승하옵니다.”
“하면 그들을 포함해 20명인가?”
“아니옵니다. 승객수는 승무원을 제외한 숫자이옵니다.”
이장손의 답에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선의 크기에 비해 상당한 숫자로군.”
“필수 공간을 제외하고는 다 들어내서 가능했습니다.”
“장거리 비행인데 너무 좁거나 하지 않겠나?”
“안을 한번 살펴보시지요. 의자간의 간격도 그리 좁지 않고, 별도로 작은 활동공간도 마련해서 부족한 운동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놓았나이다.”
이장손의 설명에 광해를 선두로 태자와 이순신이 중형 수송 비행선 탑승부 안으로 들어섰다. 명칭에 중형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기낭의 길이만 170척(약51m)에 달하는 거체였다.
거기다 기관을 포함한 탑승부만도 33척(약10m)에 이른다. 2층 구조의 탑승부는 아래층에 기관부와 작은 방 크기의 활동실, 그리고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기관은 아직 외부로 빼내지 못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내연기관은 굉장히 초보적인데다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실제로 평강조차 그 짧은 작전기간 동안 벌써 세 차례나 공중 부유 상태에서 멈춰서버린 기관을 수리해야 했다. 따라서 시끄러운 기관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비의 효율성을 위해 기관부를 탑승부 안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래도 조종실과 객실은 2층에 마련되어 있는 구조라서 단층 구조인 날틀03보다 소음으로 인한 피로도는 훨씬 적었다.
중형 수송비행선에 붙은 명칭은 날틀04였다. 이 날틀04의 경우 최고속도와 순항속도가 거의 같았다. 2백 마력 내연기관 2개를 사용하여 순항 속도를 올려놓았지만 최고속도는 큰 의미가 없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기술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광해는 그것이 공기저항에 의한 구조적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길이를 늘이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위로 키운 기낭은 마치 위로 높게 부푼 식빵 같은 모양이었다.
부드러운 유선형을 그려 공기저항을 감소시키는 현대시대의 비행선 기낭과는 차이가 컸다. 더구나 실제역사에서 독일이 운용했던 힌덴부르크 비행선처럼 내부에 탑승부를 만드는 형태도 아니었다.
기낭 밑에 탑승부를 별도로 부착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런 기초적인 형태로 지금의 속도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광해는 생각했다.
광해의 곁에서 살피던 태자와 이수신은 같은 비행선을 바라보며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태자는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는지, 더 멀리도 날아갈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순신은 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나 가능한지 등을 중점적으로 물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지은 광해가 이장손에게 물었다.
“사전에 짐이 지시한 비행 준비는?”
“날틀03의 폭탄창을 긴급히 개조해놓긴 하였습니다만······. 차라리 04를 타고 가셔서 거제에서 갈아타시는 것이 낫지 않으시겠사옵니까?”
“아닐세. 03의 운용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으니 그냥 사전에 내가 지시한 대로 하세.”
광해의 말에 이장손이 공손히 읍을 해보이고는 손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이장손의 손짓에 앞으로 나선 이는 어깨에 이화문양 3개가 수놓아진 견장을 차고 있었다.
상령이다. 정식 품계로는 5품 무관직인 사직(司直)으로 장군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계급이다. 육군이라면 병단급 부대의 참모급이고, 해군으로 치면 전대나 함대의 참모, 또는 전함의 함장급이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선군 계급장을 잠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일단 지금은 사라진 군역병의 계급은 가장 말단인 평군평이 가로작대기 하나, 상군병이 가로작대기 둘, 만군병이 가로작대기 셋이다.
그 위의 품 외 별정직, 흔히 10품이라 부르는 준사가 세로작대기 하나다. 그 위부터는 정식 무관으로 첫 번째가 9품 사용으로 세로작대기 두 개를 다는 이들을 준위라 부른다. 다시 그 위가 8품 사맹으로 세로작대기 셋을 달며 위관이라 부른다.
육군에선 백인대라고도 불리는 대를 지위하는 대장의 직분을 수행하며 해군에서는 구축함의 부장을 맡는다.
그 위가 이화문양 하나를 계급장으로 다는 7품 사정이다. 준령이라 부르며 단급 부대의 참모나 구축함의 함장을 맡는다.
이화문양 두 개를 달면 6품 사과다. 특수비행대의 대장인 신만수 장령이 바로 이 6품 사과의 직품이다. 그 위가 바로 이화문양 세 개를 다는 상령이다.
그 위로 가면 이제 비로소 군부의 꽃이라는 장성들이다.
삼태극 문양 1개는 4품 호군으로 장군이라 불리고, 삼태극 2개면 3품 대호군으로 대장군이라 불린다. 그 위가 삼태극 3개로 각 군 총사를 맡고 있는 2품 상호군으로 상장군이라 불린다.
원수의 계급장은 이순신의 어깨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검은색 삼족오다.
여하간 상령이면 꽤나 고위지휘관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가 나와 절도 있게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을 치듯 갔다대었다.
조선 육군식 경례다.
“충! 육군 비행대 부장 이사훈입니다. 폐하를 뫼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이 직접 조종하는가?”
“예. 폐하.”
이사훈 상령의 답이 끝나기 무섭게 이장손이 설명을 곁들였다.
“비행선 비행만 2백회가 넘사옵니다. 수소 비행선이었던 날틀01부터 시험 비행사를 자처하여 위험한 임무도 모두 무사히 완수한 최고 기량의 조종사이옵니다.”
“경을 믿고 타지.”
미소 띤 광해의 말에 이사훈 상령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영광이옵니다. 폐하.”
그 뒤로 항법사와 기총사수가 군례를 올렸고, 광해가 그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함께 갈수 있는 인원이 몇인가?”
“폭탄을 내리고 폭탄창을 제거한 상태에서 줄어든 무게는 260관(약 1톤)정도이옵니다. 안전을 생각하면 8분 정도가 적당하다 사료되옵니다.”
다시금 재빨리 나선 이장손의 답에 광해가 내금위의 부장을 곁으로 불렀다.
“다섯을 뽑게. 함께 갈 이들은 그것이 한계일세.”
“가신다면······. 설마 이걸 타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날틀03을 바라보며 당황으로 눈을 크게 뜨는 내금위 부장에게 광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네. 10분 안에 인선 마무리 하게. 이건 어명일세.”
만류는 거부한다는 듯 ‘어명’까지 거론한 광해의 단호한 명에 내금위 부장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