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이순신의 판단력
태평양 함대의 확장에 따른 재배치 계획에 따르면 하와이를 모항으로 두게 되는 태평양 함대는 단독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전대 6개로 구성된 함대로 확대 편성하도록 계획되었다.
이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광해는 거제 건선단지에 5차 신형 증기철선 건조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필요 함선은 태조급 전함 1척, 유리급 순양함 8척, 온조급 구축함 16척,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 10척이었다.
현제 거제 건선단지는 11월을 목표로 20척의 정경달급 경비선과 12월 진수를 목표로 한 60척의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을 건조 중이었다. 거기다 내년 2월을 목표로 한 이순신 함대 교체분 일칠함대인 4차분 신형 증기철선이 한창 건조 중이어서 추가 건조여력이 없었다.
더구나 내년 1월부터는 13수송함대분과 조선무역선단에 공급될 탈해급 초대형 수송선 80척의 건조 계획이 이미 잡혀있었다. 따라서 5차분 함선들은 일괄 건조가 아니라 비는 건선거를 활용한 분할건조를 통해 내년 12월까지 진수를 마무리 하도록 계획되었다.
광해가 원수부의 청원으로 해군의 재배치 계획을 세우던 시기, 대월 전선은 확전 일로를 걷고 있었다. 각 제후국이 동원한 6만의 병력이 추가로 도착한 까닭이었다.
이 병력에는 국왕의 패사로 혼란스러웠던 남진군 1만도 끼어있었다. 그들을 이끈 이는 남진의 왕세자가 아니라 관홍이라는 장수였다.
태생이 명나라 방해군 장수들의 반란으로 건국된 남진은 장수들의 입김이 아직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군권을 장악한 몇몇 군벌들이 왕실과 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국왕의 패사가 확인 되었음에도 왕세자에게 왕위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연유였다.
장수들은 왕세자보다는 자신들 중에서 차기 남진왕이 나오길 바랐고, 짧지만 격렬한 논의 끝에 군벌들은 최대 군벌인 관홍이 대월과의 전쟁을 성공시킨다면 남진왕으로 추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것이 관홍이 자신의 군벌에 속한 병력을 이끌고 대월전쟁에 참여한 이유였다.
그것이 대병을 잃은 데다 왕까지 패사한 남진이 1만의 병력을 동원한 이유였다. 그런 남진을 제외한 각 제후국은 5천 씩 병력을 보내왔다.
이미 한성 조약에 의거해 대한제국군의 이름으로 제후국이 보유하거나 조선의 동원요구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하는 3만의 병력은 모두 소집되어 대서양군에 파병되어 있거나 조선에서 훈련 중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제후국들이 동원한 병력은 자국을 방어하는 병력에서 차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한제국기를 앞세웠고, 대한제국군의 이름을 썼다.
그 병력들 중 5만은 남진을 통해 대월의 북부로 들어섰고, 나고야와 동일본이 동원한 1만의 병력은 조선 해군의 도움으로 할롱에 상륙했다.
할롱에 상륙한 병력은 자연스럽게 조선군의 지휘에 따르게 되었지만 북부로 진입한 5만의 병력이 문제였다.
8개나 되는 제후국들의 군대가 모인 연합군이었으니 지휘권 통일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하지만 제후국들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자국의 지휘권을 다른 제후국 장수에게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군의 작전이 겉돌았다.
거기다 할롱에서 작전 중인 조선군과 별개로 움직여져 비효율적이라는 지적까지 일었다.
결국 보다 못한 원수부에서 대한제국군의 지휘권은 조선이 행사한다는 한성 조약을 근거로 작전지원대를 구성해 제후국 병력이 주둔중인 대월 북부로 급파했다.
이 작전지원대에는 조선군 고위 지휘관과 통신, 병참, 그리고 의무대로 구성되는 지원대 병력이 딸려 있었다.
6만이나 하는 대병을 지휘해야 하는데다 8개 제후국을 아울러야 했기 때문에 지휘력과 고위직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 작전지원대의 지휘관으로 원수부는 정기룡을 선임해 보냈다.
그는 와병 중인 신립을 대신해 육군 부총사의 직책으로 조선 육군을 이끌고 있었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최근 광해와 함께 정왜전쟁을 치러냈던 1세대 고위지휘관들의 대다수가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있거나 이미 사망했다.
그로인한 군부 고위지휘관들의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조선군의 핵심지휘부인 원수부를 이끄는 이순신이 아직 건재하다지만 그도 이제 예순여덟의 고령이었다.
의료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의료체계도 1612년이 맞을까 싶도록 체계화 되어 조선인들의 건강수준이 놀랍도록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평균수명은 60을 밑돈다.
그런 상황에서 보자면 이순신은 장수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이순신도 자신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군의 경우 손일원을 비롯한, 흔히 이순신의 제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뛰어난 전공들을 세우며 확고하게 자리들을 잡고 있었지만 육군과 해병대는 이렇다 할 인재를 키워내지 못했다.
현재 부총사의 직분으로 조선 육군을 이끌고 있는 정기룡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신립의 후계자였다. 그래서인지 육군엔 강골 지휘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대서양군 소속으로 대한제국 원정군을 지휘하고 있는 김경서가 대장군 이상의 고위지휘관들 중에서는 차분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지만 그도 작전에 능한 지휘관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후금의 왕자 자리도 버리고 자신을 찾아와 호종을 자처하는 추옌을 몇 년간 곁에 두고 가르치는 하였으나 그도 맹장류여서 두들기고 부수는 작전에는 나름 성취를 보였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운 작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립의 인맥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육군에서 공공연히 자신의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다. 자칫 그 시도가 군부 내에 파당을 지으려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순신은 육군에서 믿을만한 장수를 찾지 못했다. 그것은 해병대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육군에 비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해병대의 임무특성이 대체로 닥치고 돌격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적지에 상륙해서 적의 방어를 힘으로 뚫어내는 것이 해병대의 주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해군으로 배속된 특수비행대가 이순신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 천재적인 무장은 이 시대 사람들이라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항공 전력의 중요도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곧바로 할롱 전투에서 활약하고 있는 특수비행대의 전과를 확인하고는 직접 장원까지 걸음해서 비행선에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장원은 해당 연구가 태왕의 승인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기밀연구소에서 취급되는 것이기에 아무런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아울러 이순신이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이 곧바로 태왕에게 보고되었다. 광해가 직접설계하고 수없이 확인한 장원의 보안체계가 작동한 결과였다.
그간 조선이 보유한 각종 기밀자료에 모두 접근할 수 있었던 이순신으로써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지위를 들먹이며 장원의 관리들을 닦달하는 따위의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곧바로 궁으로 향해 태왕과의 독대를 청했다.
자신의 예상만큼이나 항공 전력의 효용성이 입증된다면 이순신은 해군의 지휘부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다면 육군과 해병대의 지휘부가 실수를 하더라도 어떠한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이순신의 알현 요청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태자와 단둘이 있을 때는 어지간한 일은 다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미루는 태왕이었지만 이순신의 알현 요청은 예외였다.
이순신이 어지간한 일로는 독대를 청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태자에게 나라 일도 가르칠 겸 곁에 앉힌 채 태왕이 이순신을 맞았다.
일과 중 대전이 아니라 침전에 있는 태왕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이순신은 광해의 곁에 초롱초롱한 태자가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대강의 상황을 유추했다.
공손히 인사를 드린 이순신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소신이 폐하와 태자 전하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하옵니다.”
“이 정도로 무슨······. 원수의 청이라면 내 시간 전부를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으니 필요하다면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괘념치 말고 언제라도 찾아오시오.”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이는 광해에게 이순신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자자, 그만하고 이리 앉으시오. 오늘은 태자가 직접 차를 내렸으니 원수도 한 잔 드셔보시구려. 이젠 제법 틀이 잡혀 가르친 보람이 있소이다. 태자는 원수께 차를 내어 드려라.”
광해의 말에 태자 호가 찻잔을 내고 숙우를 기울 차를 따랐다. 그런 태자의 찻잔을 이순신이 조심스럽게 받았다.
“태자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차를 다 받아보고 소신이 오늘 횡재를 하옵니다.”
이순신의 말에 어린 태자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배움이 짧아서 입맛을 버리실까 걱정입니다.”
어린 시절 지금의 태왕을 보듯 제법 기틀이 잡힌 태자의 말에 이순신이 미소를 그리며 찻잔을 살짝 기울여 한 모금 마셨다.
“좋군요. 소신 뜨거운 물에 찻잎만 넣으면 차인 줄 아는 한낱 무부인지라 차 맛은 잘 모르나 평생 이처럼 맛있는 차는 처음입니다.”
헛된 말을 하지 않는 이순신인지라 설사 그것이 어린 태자를 위한 과찬일지라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 까닭에 태자 이호가 한껏 고무된 표정이 되었다.
그런 태자를 미소 띤 얼굴로 일별한 광해가 이순신에게 물었다.
“이런 시간도 좋긴 하오만 이유 없이 독대를 청할 원수도 아니고······. 무슨 일이오?”
“아! 비행선 말입니다. 그 정보에 접근하려면 폐하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여······. 승인을 청하려 하였습니다.”
기밀을 알려달라는 것이었기에 유난히 조심스러운 이순신의 말에 광해가 담담히 물었다.
“비행선의 정보는 왜 필요한 게요?”
“현재 할롱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비행선이 투입되어 있나이다.”
“짐도 그렇게 알고 있소. 실전에 어찌 소용되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 보냈으니까.”
“결과도 보고 받으셨나이까?”
“한대를 보낸 것 치고는 제법 효과를 내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소.”
“제법 정도가 아니옵니다.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적에게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공격을 퍼붓고 있으니까요.”
“하나 화력 집중도가 떨어지고, 정글 내부에 대한 화력투사가 수월하지 않다고 들었소만.”
광해의 말이 다소 부정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이순신이 열정적으로 비행선의 공적을 두둔하고 나섰다.
“하나 적도 노획한 포를 정글 밖으로 빼내지 못하옵니다. 겨우 한 대의 비행선 때문에 말이옵니다.”
“하여 어찌 하자는 것이오?”
“비행선을 추가로 생산해 주시옵소서.”
“추가로?”
“예. 폐하.”
“그것으로 무엇을 할 요량이오?”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 광해에게 이순신이 답했다.
“비행선으로 부대를 만들까 하옵니다.”
“비행선으로 부대를 만든다? 그리하면 이점이 무엇이오?”
광해의 물음에 이순신이 답했다.
“예. 그 비행선 부대로 하여금 우리 조선은 안전한 곳에서 적을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폐하.”
하늘을 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만 생각하는 이 시대의 사람인 이순신이 비행선으로 공중제압작전을 펼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이순신의 놀라운 관찰력과 판단력에 광해가 속으로 ‘역시’를 연신 되뇌었다. 그런 광해가 이순신에게 말했다.
“우리 잠시 여행 좀 해봅시다.”
“여행······, 이요?”
다소 뜬금없는 태왕의 말에 의아해하는 이순신을 두고 광해가 침전 밖을 향해 외쳤다.
“상선. 상선 게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