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229화. 날틀02
특수비행대에 배치된 비행체와 함께 배속되어 온 기술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날틀02’로 불리는 이 비행체는 분류상 헬륨 비행선이라 했다.
수소를 사용했던 시험선 성격의 날틀01을 더욱 발전시켜 만들어진 비행선이라는 설명이 딸려있었다.
크기는 상당해서 부력을 담당하는 타원형의 기낭, 그러니까 풍선의 길이만도 70척(약21M)에 달했다. 그 커다란 기낭 밑에 작게 달린 탑승부는 2명의 비행대원이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1명이 조종사와 폭격수를 겸하고. 다른 1명이 탑승부 아래에 선회 가능한 형태로 달린 현식총좌 사수와 기관사 임무를 겸한다.
추진은 얼마 전에 간신히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1백 마력 내연기관에 연결되어 장착된 바람날개 1개가 탑승부 후방에 설치되어 비행선을 밀어내는 형식이었다.
기술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설계상 최고속도는 시간당 150리(시속 약59km)이고, 순항속도는 시간 당 1백리(시속 약39km)라 했다.
순항속도를 준수하면 1천리(약395km)를 비행할 수 있다는 설명도 딸려왔다.
무장은 탑승부 아래에 달린 폐쇄식 현식총좌하고 10발의 공중투하폭탄이었다. 포탄개발조에서 만들어냈다는 공중투하폭탄은 최근 무연화약을 채용해 만들어낸 여러 포탄들 중 하나로 폭발방식은 작렬탄과 같은 충격식이었다.
현식총좌엔 5백발의 총탄이 지급되어서 연속사격의 경우 1분이면 보유총탄이 바닥난다.
비행선이 가진 부력의 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의 총탄은 실을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비행대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몸무게를 17관(약63kg)이하로 유지해야만 했다.
비행선에 부착된 유일한 고정무기인 현식총좌의 경우 폐쇄식이라고 해서 해군 함정에서 사용하는 장갑형은 아니었고, ‘알루강’이라 이름 붙여진 알루미늄합금으로 만들어진 골격을 얇은 알루미늄 판으로 덮고 일부에 한해 투과용 유리창을 부착한 형태였다.
화살에 대한 방호력은 있다는데 솔직히 이치원은 신임이 가지 않았다. 보기에는 그냥 주먹으로 쳐도 구멍이 뚫릴 듯 너무 얇은 판에 싸여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행선을 받은 다음 날 부터 특수비행대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치원의 임무는 2번조 2번 대원으로 현식총 사수와 기관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특수비행대에 배치된 이치원과 동기는 지난 석 달 가량을 내연기관에 대한 운용 및 정비 교육을 받았다.
하루 온종일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던 놈들이 기술교육을 받았으니 좀이 쑤시는 일이긴 했지만 ‘태왕 폐하의 특명’이라는 말 한마디에 대꾸 한마디 못하고 열심히 배웠다.
그 덕인지 배치된 비행선의 기관은 그럭저럭 운용이 가능했다.
하나의 비행선을 두개조의 비행대가 번갈아 사용하면서 훈련을 진행했다. 실전에서도 비행선의 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는 기술자들의 설명이 있었다.
이치원이 속한 2번조의 조장이자 조종사를 맡은 이는 신만수라는 육군 비행대 출신 6품 사과(司果)로 장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육군으로 보면 병력 1천명을 지휘하는 단장급이고, 해군으로 보면 순양함 함장급이다. 꽤나 고위직이라는 소리다. 그래서인지 육군 비행대 군관들 중 서열이 3번째로 높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재미있는 것은 특수비행대의 대장이 바로 그 신만수라는 점이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대장이 1조장을 맡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특이한 상황임엔 분명했다.
1조장은 7품 사정(司正)으로 준령(准領)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고승환이란 자였다. 준령이면 육군에선 백인대라고도 불리는 대의 지휘관을 역임한 후, 단급 부대의 참모로 근무하는 이들의 계급이었다.
해군이라면 순양함의 부장, 또는 구축함의 함장을 맡을 계급이다. 한마디로 1조장조차도 달랑 4명뿐인 부대에 배치될 정도의 계급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치원과 함께 배치된 왕립군관학당 동기인 송현이 그런 고승환 준령과 함께 1조를 이루고 있었다.
적응 훈련과 운용훈련이 시작 된지 얼마 안 된 6월쯤엔 자신들이 훈련기로 사용 중인 날틀02도 연구시설에서 실증기로 제작되었던 날틀01처럼 시험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기술자들은 특수비행대에 속한 비행대원들을 시험비행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왜 왕립군관학당에서 검술을 중점적으로 배워온 자신들이 특수비행대에 배치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이치원과 송현 두 사람은 구조 및 탈출 과목에서 최고점을 받은 수료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사시 비행선이 추락했을 때 조종사와 함께 탈출할 수 있는 비행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구조 및 탈출 작전에 자신들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들이 내금위에 있겠지만 그들은 특수비행대로 오길 꺼려했다. 당연히 가장 막내가 되는 신입 군관들이 그 임무를 떠맡게 된 것이었다.
여하간 난데없는 비행선 탑승자가 되었지만 이치원이나 송현, 둘 다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비행도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고, 덕분에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던 훈련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던 8월 말에 상황이 갑자기 변했다. 특수비행대의 소속이 내금위에서 해군 총사부로 변경 되며 장원을 떠나 신도항으로 급파된 것이다.
이치원을 비롯한 특수비행대는 그곳에서 온달급 구축함을 처음 보았다.
정식 함종이 아닌 온달급은 온조급 구축함의 선미 전체를 평탄화하여 날틀02를 적재,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함선이었다.
그러니까 단일 목적에 의해 개조된 조선에 딱 1척뿐인 배였던 셈이다.
온달급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수병들은 배속된 ‘날틀02’를 평강공주라고 불렀다. 맨 처음엔 놀리는 것 같기도 해서 이치원은 그 명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비행대원들도 날틀02를 ‘평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도항을 떠난 온달급 구축함에서의 운용 훈련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각 조당 하루 네다섯 차례나 비행선을 띄우고 착륙하는 훈련이 연이어졌다.
육지에서 이착륙하는 것과 바다에서 이착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육지에선 상당한 바람에도 부드럽게 착륙시키던 신만수 장령조차 착륙지점을 놓치고 재착륙을 시도하는 일이 빈번했다.
더구나 파도로 출렁이며 15노트(약27km)의 속도로 이동하는 구축함에, 그것도 길이 80척(24m), 폭 40척(12m)의 착륙 갑판에 정확히 착함하는 것은 굉장한 조종 기술을 요했다.
그렇게 격렬한 훈련을 마치고 9월초의 찬바람을 맞으며 부산포로 입항한 이치원은 항구에 가득 들어찬 수송함들의 숫자에 놀랐다. 1백 척에 달하는 수송함들은 모두 11, 12, 13 수송함대 소속의 조선무역선들이었다.
며칠 후, 이치원을 포함한 특수비행대가 배치된 온달급 구축함의 소속이 해군 총사부에서 이순신 함대로 바뀌었다.
그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부산포 외항에 이순신 함대가 도착했다. 이치원은 조선군 최고의 장수로 이름 높은 이순신 원수를 직접 볼 수 있길 희망했지만 기대와 달리 이순신 함대의 지휘관은 함대의 부장인 손일원이었다.
여러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손일원은 4품 호군(護軍)에 올라 장군의 직에 있었다.
해군에서 호군의 직책은 대체적으로 전대장이나 함대의 부장 정도였으니까 손일원의 직책이 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순신 함대가 원수부 직할함대로 지정된 까닭에 원수가 직접 지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함대의 지휘를 부장이 맡는 것이다.
이틀 후, 온달급 구축함이 그렇게 도착한 이순신 함대와 함께 병력 탑승을 끝낸 수송함대를 호위해 부산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갔다.
제주도 근방을 지나면서야 함대가 향하는 목적지가 공개되었다.
함대의 목표는 대월의 할롱이었다. 명나라 말로 성포하룡(城舖下龍)이라고도 불리는 이 대월의 동부 해안 도시는 조선의 대만도 관할인 해남섬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었다.
하긴 이치원을 비롯한 장병들도 어느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3만에 달하는 대규모 지상군이 수송함대에 탑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일간의 항해를 통해 해남섬에 도착한 선단은 하루의 정비 및 준비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사이 이순신 함대에서 분리된 주몽급 순양함 10척이 먼저 할롱으로 출발했다.
혹시라도 모를 대월의 해상전력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음날 해가 수평선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시간 선단이 할롱을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인 할롱은 해남섬 북부에 위치한 해구(海口)항에서 대략 890리(약350km)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선단에 속한 조선무역선들의 속도로는 15시간 전후가 소요되는 거리였다.
따라서 야간 운항을 통해 함대가 할롱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하루 먼저 전개된 이순신 함대 소속 10척의 주몽급 순양함들은 대월의 함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곧바로 해안가 가까이 다가간 이순신 함대의 주몽급 순양함들이 상륙포격을 실시했다.
그사이 조선무역선들에서 상륙정들이 내려지고 병사들이 배 난간에 걸린 그물사다리를 통해 상륙정에 올라타느라 북적거렸다.
먼저 상륙을 시작한 병력은 이번 원정을 맡은 산악전단에 배속된 해병대 2개 여단병력이었다.
이순신 함대의 상륙포격으로 쑥대밭이 된 해안가 작은 어촌 마을에 상륙한 해병대가 상륙거점을 확보하자 조선무역선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상륙선이 측정한 수심 자료에 근거하여 최대치로 해안가로 붙어 상륙을 조금이라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처였다.
해안가에서 1백보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선 조선무역선들이 병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직은 깊어서 병사들도 여전히 상륙정을 이용해야했지만 해안과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상륙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동안 이순신 함대의 기함에서 이륙한 열기구가 하늘 높이 올라가 주변정찰을 시작했다. 잠시 후, 열기구로부터 지급통을 받은 기함에서 온달급 구축함으로 특수비행대 출격을 지시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 비행 순번은 2조였다.
긴장어린 표정의 신만수와 이치원이 기함의 출격 명령에 따라 평강에 올랐다. 조종석에 앉은 신만수 장령이 절차에 따라 계기를 점검하고 추진기관을 가동시켰다.
곧바로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리면서 기관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이치원이 뒤를 돌아보는 신만수 장령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이치원의 신호로 추진기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신만수 장령이 갑판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술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조종사의 신호에 기술자들이 평강의 기낭을 구축함에 고정시켜 놓았던 계류용 안전 밧줄을 풀자, 비행선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날틀02의 기낭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커다란 하나의 공기주머니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쪽에 8개의 공기주머니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6개는 모두 헬륨으로 채워져 비행선에 정지부력이라 불리는 부력을 제공한다.
비행선에서 사용하는 정지부력이란 용어는 그러니까 만재량을 채운 비행선을 손으로 살짝 밀면 슬그머니 떠올랐다가 부드럽게 내려오는 정도의 부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헬륨 기체가 들어있는 공기주머니의 부력만으로는 비행선이 뜨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비행선을 띄우는 것은 중심부에 자리한 나머지 2개의 공기주머니다. ‘열 공기주머니’라 부르는 이 공기주머니에 뜨거운 공기를 채우는 것으로 부력을 더하는 것이다.
날틀02는 이 열 공기주머니에 차는 뜨거운 공기의 양으로 부력 차이를 만들어 고도를 조절한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비행선인 셈이다.
기낭을 고정하고 있던 계류밧줄이 풀린 것을 확인한 신만수 장령의 신호로 이치원이 맨 후방에 달린 추력기관의 회전손잡이를 돌렸다.
전자식, 또는 전기식 시동기가 장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동으로 시동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조는 현대시대에 오토바이나 경운기에 흔히 사용하는 크랭크형 시동기와 같은 원리다.
이치원이 두어 번 회전손잡이를 돌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추력기관으로 사용되는 내연기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