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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25화 (225/325)

제225화. 종심 타격 전술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다가오는 어선들에 몰려있던 상황에서 구축함의 견시수가 상대의 정체를 확인했다.

“네덜란드 깃발 확인!”

함종이 어선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군사작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군선에 접근하는 모든 배는 적으로 간주한다는 조선 해군 교전규칙에 따라 구축함의 함장이 곧바로 위협사격을 지시했다.

“선수 함포 위협사격 실시!”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선수에 설치된 2연관 일장함포가 두발의 위협사격을 실시했다.

쿠궁.

묵직한 폭음이 울려나오고, 몰려오고 있는 어선들의 앞에 커다란 물기둥이 솟았다. 작렬탄을 사용하는 까닭에 수면과 충돌한 충격에 포탄이 폭발하면서 일어난 물기둥이었다.

하지만 어선들의 전진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함, 포격위치 잡아.”

함장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이 선회하며 측면을 어선들이 몰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것을 확인한 함장의 추가 명령이 떨어졌다.

“전포 적함 조준!”

함장의 명령에 따라 포술장의 명령이 전파되고 곧바로 선수와 선미, 그리고 적을 향한 좌측 측면의 포들이 선회해 적을 조준했다.

“전포 적함 조준 완료!”

포술장의 보고에 함장이 지체 없이 명령했다.

“격파 사격 개시!”

함장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포술장이 복창하고 이내 위협사격을 가했던 선수의 2연관 일장함포는 물론이고, 선미의 2연관 삼포와 좌측면에 배치된 2문의 단장형 삼포까지 어선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목표가 겨우 네댓 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어선들이라는 점에서 솔직히 모기다리에 대포 쏘는 격이었지만 구축함은 교전교리에 따라 충실히 움직였다.

상대적으로 대구경인 함포의 사격이 시작되었지만 목표가 너무 작아서인지 아니면 야간의 물결에 반사된 달빛 때문에 거리 가늠이 잘 되지 않아서인지 포격의 정확도가 너무 낮았다.

곧바로 포술장의 호통이 떨어지고, 포수들이 신중해졌다. 사격속도가 느린 함포가 신중해지면서 포격간의 시간이 길어지자 어선들이 큰 피해 없이 계속 다가왔다.

어선과 구축함의 거리가 일속포의 사거리인 2천5백보(약4.5Km)까지 줄어들자 구축함 측면에 장비되어 있던 일속포 2문이 사격에 가세했다.

2개의 포신으로 이루어진 일속포의 분당 발사속도는 20발이다. 그런 일속포 2문이 가세하자 대량의 사격이 어선들에 퍼부어졌다.

오히려 어선들에게는 대구경 함포보다 구경이 작은 일속포의 포격이 훨씬 위협적이었다. 당장 여러 척이 포격에 직격당해 화염에 휩싸였다.

화염에 휩싸여 침몰하고, 또 부서지면서도 어선들은 악착같이 다가왔다. 그들에 대한 접근을 경계하느라 견시수와 탐망병들의 시선이 온통 그 어선들에 쏠렸다.

막강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어선들의 접근이 지속되었다. 결국 살아남은 수척의 어선들이 4백보(약7백M)정도까지 접근하자 폐쇄식 현식총좌가 사격을 개시했다.

‘다르르르륵’ 거리는 현식총 특유의 총격음과 함께 빨랫줄 뻗어나가듯 쭉 뻗는 현식총탄이 어선을 두들겼다.

두터운 목재를 쓰는 군용 범선도 아니고 일반적인 목재를 쓰는 어선들은 현식총 세례에 금방 벌집이 되어버렸다.

불타거나 폭발하는 등의 부수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탑승하고 있던 선원들에겐 훨씬 치명적이었다.

결국 네덜란드의 어선들은 3백보 정도의 거리에서 모두 제지당했다.

견시수와 탐망병들이 어선에 살아남은 적병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집중했다. 자칫 살아남은 적병이 위협요소로 작용할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살펴보던 가운데······.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구축함 인근에 정박해 있던 에스파냐 범선 한척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놀란 표정으로 모두의 시선이 그 배로 향한 순간.

콰과과과쾅!

여러 개의 폭발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해당 범선이 기울기 시작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이 선체 하부였기 때문인지 침수와 침몰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람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나머지 3척의 에스파냐 범선들에서도 일제히 폭발이 일어났다. 모두가 처음의 범선과 마찬가지로 배 하부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무언가 잘 못됐다는 것을 직감한 구축함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함 전속. 즉시 이 자리를 이탈한다!”

함장의 명령을 부관이 복창하여 전파하는 와중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구축함의 선체가 요동쳤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순간, 요란한 폭음이 연속해서 선체를 때리며 울렸다.

콰과과과쾅!

폭음은 함체의 선수에 집중되었다. 폭발의 충격으로 나동그라졌던 탐망병들이 배 주변을 확인하고는 다총을 쏘았다.

“물속이다! 물속에 적이 있다!”

탐망병의 외침에 폐쇄식 현식총좌가 움직였지만 배 하부는 사각에 해당하기에 사격이 불가능했다. 그것은 구축함이 장비한 모든 포가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인식한 함장의 즉각적인 명령에 수병들이 다총을 가지고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그 와중에도 폭발이 일어났다.

콰쾅!

뛰어나가던 수병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뭐하나 기관 전속!”

함장의 외침에 다시금 부관이 기관실과 연결된 확성관에 대고 소리쳤고, 요란한 기관음이 울리면서 배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주변 에스파냐 범선들에선 폭발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축함이 항진을 시작하면서 쓰러졌다 일어선 수병들이 함체 주변을 살피며 다총을 쏘았다. 살아있는 사람이건 폭발의 여력으로 죽은 시신이든 가리지 않고 총알 세례가 퍼부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그쳤다. 구축함이 위험수역을 벗어나 이동한 까닭이었다.

함장의 명을 받은 갑판장이 서둘러 폭발이 일어났던 함수부분으로 달려갔다. 폭발의 횟수에 비해 실제로 찢어진 선체는 두 군데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찢어진 외벽 두 군데를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판장이 곧바로 침수지역에서 수병들을 빼내고 격문을 닫았다.

격실 구조로 건조된 조선 군함들의 구조상 침수에도 어느 정도는 방호력을 제공한다. 문제는 침수 구역의 범위였다.

온조급 구축함의 경우 격실은 12개였고, 이중 3개의 격실이 침수되는 것 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 침수 구역은 두 곳에서 멈추었다. 더구나 선수를 노린 까닭에 선미와 가까운 기관부는 멀쩡해서 동력도 살아있었다.

구축함은 상황을 대서양 함대 지휘소와 대서양군 사령부에 보고했다.

대서양 함대 지휘소는 곧바로 함을 안전구역으로 이동시켜서 긴급 수리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기가 개발된 이후 용접이 가능해지면서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철선의 야전 응급수리가 가능해졌다.

물론 가지고 있는 응급 수리 부품들이 감당 가능한 범위였지만.

긴급수리반이 점검한 결과 다행히 두개의 파손부위 모두 응급수리 부품들로 수리가 가능할 정도로 구멍은 크지 않았다.

문제는 파손 위치였다. 침수로 인해 선수가 평소보다 깊게 가라앉아 두 파손부위 모두 물속에 잠겨서 응급 수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아직 조선의 용접기술은 수중 용접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긴급수리반의 보고에 함장은 해당상황을 보고하는 동시에 리스본으로의 귀환을 요청했다.

대서양군 임시 지휘소에 있던 이억기가 함대 제독의 권한으로 구축함의 귀환을 허락했다. 아울러 위기대응반이 영국 해협에 대기시켜두었던 위기대응전력에 긴급 출동을 명령했다.

지휘소의 명령을 받은 유리급 순양함 1척과 온조급 구축함 2척이 닻줄을 올리고 그간 정박해 있던 영국 해협을 벗어나 속도를 올렸다.

그들에겐 손상당한 구축함을 호위해 리스본으로 무사히 귀환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

조선의 구축함이 해역을 이탈한 가운데 자신들의 무모한 공격이 성공했다는 것을 확인한 네덜란드군 지휘관들이 대기시켜두고 있던 병력에 총공격을 명했다.

2만의 네덜란드군이 1만5천의 에스파냐군이 지키고 있는 요새를 향해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양측 모두 아쿼버스를 주력무기로 삼고 있을 정도로 모두가 화약무기로 무장된 군대들이었다. 더구나 다량의 화포를 사용하는 이 두 나라 군대의 충돌은 처음부터 요란한 포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네덜란드는 초선포와 폭발탄을 사용했다.

에스파냐군도 초선포로 맞대응 했지만 포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쇠구슬로 된 구형탄이었다. 그로인한 파괴력의 차이가 뚜렷했다.

그나마 에스파냐군은 작은 쇠구슬을 다량 집어넣어 쏘는 일명 포도탄 사격으로 대량 살상을 노려 양측의 화력 차이를 메우려 노력했다.

더구나 네덜란드가 보유한 폭발탄의 종류가 화염탄 하나라는 것이 에스파냐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스파냐가 인근의 나무를 베어 급조해 만든 요새의 벽은 개전 초기 네덜란드의 폭발탄 공격으로 불에 타 무너졌다.

적의 공격을 막아줄 벽이 사라진 상태에서 2만대 1만5천의 차이는 상당한 전력 차이로 다가왔다. 그 상황에서 에스파냐군은 사력을 다했다.

에스파냐 육군이 한동안 유럽대륙의 강군으로 취급되었던 것은 단순히 테르시오 방진의 이점에만 기대어 이룬 것이 아니었다.

불국의 투지와 확고한 명령체계가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실제로 대한제국군과의 전투에서도 화력의 열세로 전투에서 패했을 뿐이지 오합지졸들처럼 도주하거나 무질서한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다.

그 에스파냐군 특유의 뚝심이 나왔다. 열세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도주하거나 물러서는 병사는 나오지 않았다.

굳게 진형을 지키고, 곁에 선 동료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병사들은 명령에 철저하게 따랐다.

거세게 두들겨도 뚝심으로 버티고 서서 그걸 다 맞아가며 버티는 맷집 좋은 상대였던 셈이다. 더구나 에스파냐군은 유럽군대 중 유일하게 대한제국군과 지상전투에서 맞상대해 본 군대였다.

그 과정에서 대한제국군의 전투형태와 공격 방식을 답습할 기회를 얻었다.

네덜란드의 대량 포격과 대량 사격에 에스파냐군은 집중 포격에 집중 사격으로 맞섰다. 전선 전체에 퍼져나가는 네덜란드의 공격과 달리 에스파냐군의 포격이나 총격은 한부분에 집중되었다.

과거 포르투갈 전투에서 에스파냐군에 급습을 당한 대한제국군이 부족한 화력을 만회하기 위해 사용한 종심 타격 전술에 에스파냐군은 상당히 많은 피해를 입어야 했었다.

그 당시 대한제국군의 전술을 이번엔 에스파냐군이 네덜란드군을 상대로 써먹었다.

네덜란드군은 에스파냐군 전열 이곳저곳에 피해를 입혔지만 에스파냐군은 한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아예 공격받은 부대를 재기 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구멍이 뚫리면 네덜란드는 황급히 다른 부대를 투입해 그 틈을 메꾸어야만 했다. 계획과 다른 급격한 부대의 이동으로 네덜란드군은 군열이 흔들리고 명령체계가 복잡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그 현상은 점점 더 깊어져서 종래엔 지휘부의 명령이 단위부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더 많은 병력에 더 뛰어난 화력을 동원했음에도 더 이상의 피해확산에 실패한 채 네덜란드군은 전선에서 물러서야만 했다.

전열을 정비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전투 지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대가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물러나는 네덜란드군을 바라보며 에스파냐군이 함성을 질렀다.

더 많은 피해를 입고, 더 많은 병사가 죽었지만 이 전투의 승리자는 에스파냐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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