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24화 (224/325)

제224화. 네덜란드 결사대

이유가 어디에 있든 군왕의 눈과 귀를 막은 대역죄를 지은 죄인들에게 너무 관대한 처벌이 내려졌으니 재고해 달라는 사간원의 간언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감해진 광해가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을 불러들였다.

“짐이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니 사간원은 그만 간언을 거두라.”

“그리 할 수 없음이옵니다.”

“어이하여 그럴 수 없는가?”

“폐하의 처분이 공정치 않기 때문이옵니다.”

“공정치 않다?”

“예. 폐하.”

“어찌하여 공정치 않다고 말하는가?”

차갑게 내려앉은 광해의 음성에도 대사간은 굴하지 않고 답했다.

“폐하께 감히 여쭈옵니다. 현재 사국도의 관찰사인 모리 데루모토가 저들과 같은 행동을 하였어도 똑같이 처분하셨겠나이까?”

대사간의 물음에 광해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런 태왕에게 대사간이 말을 이었다.

“답을 하지 못하심은 그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처결은 두 사람에 대한 폐하의 인연이 작용하였다 할 것이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폐하시옵니다. 부디 처결에 평등을 기해주시옵소서.”

구구절절 대사간의 말이 옳았다.

그의 물음대로 현재 사국도의 관찰사를 맡고 있는 모리 데루모토가 그런 일을 했다면 그때도 이원익과 이항복에게 했던 것처럼 유하게 일을 처리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대사간의 말대로 그 두 사람에 대한 처리는 광해 본인과 두 사람의 인연에 기댄 기울어진 처사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아······. 그대의 말을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하나 그렇다 해도 그 두 사람이 세운 공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니 대역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옵니다. 그것이면 족하다 사료되옵니다.”

“하면 정녕 그 둘을 내치란 말인가?”

“훗날 다시 불러 쓰실 지언 정, 지금 당장은 그리하셔야 하옵니다. 관용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말씀하셨던 폐하의 처결을 만 백성과 수많은 관리가 지켜보옵니다. 부디 공정함을 잃지 마소서.”

대사간은 그 말을 남겨두고 물러갔다. 더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다는 듯이. 그런 대사간에게 광해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광해가 스스로 패왕을 자처하는 이상 사간원의 관리들이나 대사간의 말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쯤 힘으로 누르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위세도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광해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대사간과 사간원 관리들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내세운 까닭이다.

자신의 사후에도 지켜지는 법을 구축하기 위해 그간 노력해온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써 쌓아올린 탑을 스스로 무너트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탓에 대사간이 물러간 연후 광해의 고심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간원의 관리들은 연일 상소를 올렸고, 일부는 대전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신들로 인해 태왕이 곤란을 겪자 이원익이 사직상소를 올렸다. 지은 죄가 크니 부디 관찰사의 직을 거두어 달라는 내용의 사직서였다.

같은 시간, 이항복의 사직상소도 함께 전신소를 통해 광해 앞에 놓였다.

한참의 고심 끝에 광해가 두 사람의 사직을 허락함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사간원의 간쟁이 멈추고, 농성도 풀렸다.

광해가 사간원에 어식을 내려 그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광해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패왕을 상대로 정면 비판을 벌인 일이니 그들도 나름대로 목숨을 건 일이었을 것이다.

설사 그 일이 자신의 결정에 대한 반발이긴 했어도 그렇게 자신들의 본분을 지킨 이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 광해의 행동에 대신들이 안도했다.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까닭이었다.

광해가 국내와 국외를 다스리는 중심에 서 있던 총리대신과 포르투갈 총독, 두 사람이 동시에 파직됨으로써 향후 인선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광해는 와병을 이유로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있던 노신 정인홍을 불러 총리대신에 임명하고 해토부 대신을 지내고 있던 기자헌을 포르투갈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둘 다 광해가 군(君)시절일 때부터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다 선조의 눈 밖에 나서 옥고까지 치렀던 이들이라는 점에서 흔들릴지도 모를 친정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었다.

고지식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어 있는 정인홍에게 총리대신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은 그만큼 내각이 이번일로 흐트러지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광해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인홍은 광해로부터 교서를 받고 총리대신으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내각을 바짝 조였다.

부드럽던 이원익과는 달리 모든 것을 법과 원칙에 입각하여 돌아가도록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인해 내각에 군기가 바짝 들었다.

그런 일련의 소요가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이항복과 하비에르 후작 사이에 맺어진 약속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태자비의 나라와 맺은 약속을 깨기 어렵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속내는 어떻게 하든 네덜란드 사태를 종료 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에스파냐는 산탄데르에 도착한 1백 척의 조선무역선에 1만5천의 육군 병력을 무사히 탑승시킬 수 있었다.

연합전단 소속인 4척의 왕무급 호위함에 8척의 에스파냐 함대가 합류하여 호위하는 가운데 1백 척의 조선무역선들이 네덜란드를 향해 항진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함대의 이동에 놀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함대가 다가오기도 했지만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황룡과 푸른 늑대, 그리고 칼을 쥐고 있는 삼족오가 그려진 깃발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물러갔다.

더 이상 유럽에서 대한제국 또는 조선의 함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정신 나가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함대는 무사히 도버 해협을 지나 네덜란드 남부의 오스텐트에 상륙했다. 자그마치 1만5천의 중무장 병력이 한차례의 상륙으로 네덜란드의 땅을 밟은 것이다.

상륙한 에스파냐 군대는 곧바로 점령 작전으로 나가지 않고 요새를 건설해 주둔지역을 확보했다. 추가 상륙으로 규모를 키운 후 본격적인 점령 작전에 돌입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4척의 에스파냐 함선을 해안가에 놓아둔 채 함대는 다시 에스파냐의 산탄데르를 향해 출발했다.

그 과정을 급파된 온조급 구축함이 모두 대서양군 사령부로 보고했다. 아울러 해당 함선은 함대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상륙거점에 에스파냐 함대 소속인 4척의 범선들과 함께 남았다.

향후 벌어지게 될 전쟁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속도 모르면서 에스파냐는 대한제국의 신형 철선이 함께 남음으로써 든든해하고 있었다.

에스파냐군의 기습적 상륙에 대해 네덜란드는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미 사실상 와해되어 있던 네덜란드 의회가 다시 소집되어 논의를 벌였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오스텐트 해안가에 대한제국 깃발이 나부끼던 때부터 남부 네덜란드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해병기마대에게 당했던 혹독한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부 네덜란드 대표들은 서둘러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하자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북부 네덜란드 대표들만 다시 모여 벌인 회의에서 최후의 결전을 결의했다.

북부 네덜란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2만 내외로 숫자는 상륙한 에스파냐군에 비해 오히려 많았다.

지난 조선과의 전쟁에서 제대로 사용도 해보지 못한 정규군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무장도 충실한 편이고, 훈련도 나름 잘 되어 있었다.

그들을 투입해서 곧바로 몰아내자는 것에는 합의를 했는데 오스텐트 해안가 가까이 정박해 있는 배들이 문제였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조선의 악마배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수는 단 한척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포격이 정확한데다 파괴력이 커서 해안가에 통나무로 급조된 에스파냐군 요새로 접근하는 네덜란드 군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4척의 에스파냐군 함선들도 위협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네덜란드군 지휘부는 그 배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조선 함대와의 결전으로 대형 함선이모조리 격침된 탓에 네덜란드는 함대 결전을 펼칠 배는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네덜란드군 지휘부는 사람으로 배를 상대하겠다는 조금은 황당한 결정을 내리고 결사대를 모집했다.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에 모인 네덜란드 장병들의 수가 물경 이백에 달했다.

그들은 기름종이에 싸인 화약가방을 짊어지고 헤엄쳐서 배에 다가가 불을 붙여 폭발시키겠다는 일종의 자살임무를 맡은 이들이었다.

네덜란드군은 그들을 며칠간 훈련시킨 후,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곧바로 공격 작전에 돌입했다.

2만의 북부 네덜란드군이 에스파냐가 건설한 요새 인근에 도착해 대기하는 사이 결사대가 어두운 밤에 바다로 들어갔다.

그들은 경비병들을 눈을 피해 무거운 화약가방을 짊어진 채 3Km에 달하는 거리를 헤엄쳐가야만 했다.

조선 해군의 함선 경계는 3단계다.

첫 번째는 높은 망루에 배치된 견시수의 장거리 탐색이다. 망원경을 통해 먼 거리에서 다가오는 배나 함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함교 바로 위에 배치되는 탐망병이다. 견시수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 병사의 임무도 망원경으로 견시수보다는 조금 더 안쪽의 경계를 맡는다.

세 번째가 선수와 선미, 그리고 측면에 배치되는 탐망병들이다. 이들은 순수하게 육안으로 배 주변을 감시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조선 해군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운용하는 당시 해군함선의 경계망과 비슷했다. 따라서 네덜란드군 지휘관들도 결사대의 접근이 발각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위험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네덜란드군 지휘관들은 또 다른 결사대를 투입했다.

이들은 조선군 순찰선의 위협에서 살아남은 30여척 남짓한 작은 어선들을 활용해 자살임무를 맡은 병사들이 배에 접근하는 동안 조선과 에스파냐 함선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역할을 맡았다.

조선군 함선이 장비한 포의 정확도와 사거리로 보았을 때 이들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살 임무라는 점에서는 화약가방을 짊어지고 바다로 들어간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이 지휘부의 명령을 받고 항해를 시작했다.

어둠이 내린 바다 위를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나가는 작은 어선들에 타고 있는 네덜란드 장병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에스파냐군 요새가 세워진 인근 포구에서 출발한 탓에 해당 선박들이 정보 수집을 위해 머물고 있던 온조급 구축함 견시수에게 발각된 것은 그들이 바다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긴 그러기 위해 요새와 가까운 곳까지 지상으로 실어 와서 동시에 출발한 것이었으니까.

곧바로 비상이 발령된 구축함에 설치된 전등이 들어오고 수병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전투 위치로 달려갔다.

신형 증기철선 계획에 의거하여 건조된 온조급 구축함은 견시수와 탐망병 외에는 선체 밖에서 몸을 드러내고 작전에 임하는 병사가 없다.

폭발탄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전투배치가 완료되면 대부분의 병사들은 폐쇄식 포탑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식총 사수도 마찬가지로 일칠함대로 구성되는 신형 증기철선들에는 모두 폐쇄식 현식총좌를 장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투 시 수병들의 안전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시야를 좁히는 단점도 있었다. 그로인해 구축함이 전투태세로 들어가면 시각 정보는 대부분 견시수와 탐망병들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문제는 갑자기 나타난 네덜란드 어선들로 인해 견시수와 탐망병들의 시선이 모조리 그 배들로 몰렸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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